Fantasy novel, Fantasy fiction
목차
1 정의와 설명
공상, 마술, 상징 등 서구적인 판타지 클리셰들을 주소재로 삼는 일련의 소설군. 판타지 소설 팬덤 쪽에서는 『판타지=환상』이라는 단어적 의미에 따라서 과학소설(SF)을 사이언스 판타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순문학에서는 작품에 조금이라도 판타지적 요소(말을 할 수 없는 게 말을 하거나,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가 들어간 작품을 판타지라고도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판타지 소설이라 불리는 책들과는 차이를 보인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박민규의 《지구영웅전설》, 김영하의 《엘리베이터에 끼인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등이 있다.
판타지 팬덤이 판타지 소설을 어떤 식으로 향유해 왔느냐에 대해 살펴보자면 그 초창기에는 주된 소재인 마술, 공상, 심상 등은 근대문학의 리얼리즘에 대한 안티테제로 썼다. 하지만 장르가 진행되면서 이런 리얼리즘의 안티테제가 아닌 다른 방향의 판타지 소설 또한 생겨났다. 소재적인 마술, 신화, 공상 등을 사용하여 신화의 재구축을 시도하는 것이 또 다른 하나의 방향이다. 이런 경향이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났고 이후 많은 뒷 세대에 많은 영향을 준 소설이 바로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다. 《반지의 제왕》은 자체적으로 영국 신화의 창조라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신화의 재구축은 현실의 재구성과 맞닿아 있고 사색의 깊이를 더해주는 경향이 있어 일부 진지하고자 하는 판타지 팬덤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외에도 외국의 판타지 문학에서 유명한 아르헨티나 판타지 문학이 있는데, 이 장르는 통상의 판타지 문학과는 다르다. 마술적 사실주의에 입각한 사람 골 아프게 만드는 소설로서 판타지 소설만 읽다가 읽으면 이해하기 힘들다.
움베르토 에코는 환상적 서사와 현실적 서사의 차이점은 전자의 경우 그 세계가 현실적인 세계와 구조적으로 다르다고 말하기 했다.
1.1 근대적 판타지 소설의 시초
일단 근대적인 환상 소설의 시초는 낭만주의에 기초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논하기 위해선 당시 유럽의 상황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18세기, 즉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이 활발하던 때가 지나고 19세기가 도래했다. 19세기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이 등장해 전 유럽을 휩쓸고 지나갔고 시민들은 계몽되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생긴 일련의 변화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민족주의의 대두였다.
앞서 언급했던 산업과 계몽의 효과로 19세기 이후 사람들은 그 당시까지 유럽 세계를 주도하고 있던 기독교를 제한된 믿음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여기에 덧붙여진 민족주의의 성행은 그 이전까지 기독교에서는 이교도의 산물이라 하고, 시민문화에서는 미신이라 치부하던 각 지방의 전설들을 부활시키게 되었다.
그리고 산업의 발전을 통한 새로운 기술들의 개발도 변화를 가지고 왔는데, 이 새로운 기술들로 인하여 보다 체계적인 학문 탐구가 가능해졌고 열차와 같은 새로운 운송수단으로 유럽이 하나가 되었으며[1] 폼페이와 이집트 등 고대의 유적들의 발굴도 수월해졌다.
하지만 너무나도 급작스러운 기술의 발전은 옛 것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오게 되었다. 거기다가 억압적인 기독교 문화와는 달라 보이는 고대의 문화들의 재발견은 자유 사상 아래 자라난 문인들에게 신선한 소재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그들은 자신의 지방에서 유행하던 어릴 적의 민담이나 전설들을 가공해 새로운 글들을 쓰게 된다.
특히 이들 중에 E. T. A. 호프만이라는 작가는 환상을 소재로 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묘사 덕분에 이후의 많은 환상 소설가들에게 영향을 주게 되었다. 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호프만은 에드거 앨런 포에게 영향을 주었고, 포는 또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에게 영향을 주어 오늘날 반은 농담 삼아 말하는 빛의 톨킨, 어둠의 러브크래프트라는 구도를 만들게 된다. 그 외에도 기실 고대 신화의 재구성이라는 것 자체가 낭만주의적 경향이 강하기에 톨킨 또한 이와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2 영미권의 판타지 소설
이 글에서 〈D&D〉는 어디까지나 TRPG 게임일 뿐이라는 전제하에 작성됐습니다. 〈D&D〉는 판타지 소설 세계관이 아니라 판타지 TRPG 세계관입니다. 게임과 소설의 구성은 분명히 다릅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판타지 게임, 영화, 만화, 애니 등등에 대한 관점을 최대한 절제하고 쓰여졌습니다. |
기본적으로 설정이 협소하고 클리셰가 만연한 한국의 양판소보다 소재 면에서도 더 자유롭고 설정도 창의적인 경향을 보이며, 우리나라에서 흔히 '판타지'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난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또한 메이저한 판타지 소설은 물론 얼추 중간 정도는 가는 판타지 소설들도 대체로 문장력이라던가 개연성, 고증 등이 한국의 양판소들에 비하면 수준이 넘사벽인 것들이 많다.
세계관은 딱히 정형화된 것은 없다. 필수요소 수준으로 특정 요소가 꼭 첨가되는 한국의 판타지 소설과는 달리 작가 개개인의 특유의 세계관이나 색다른 설정들이 돋보이는 편이다. 또한 한국의 양판소들이 엘프, 오크, 트롤, 오우거, 드래곤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것과 다르게 이쪽은 초자연적인 힘이나 초자연적인 존재가 하나 혹은 소수만 등장해도 판타지 소설로 분류된다. 닐 게이먼이 이런 작가의 대표격으로 마법, 마녀, 신, 악마, 천사 같은 초자연적인 요소를 넣긴 하지만, 위에 언급된 '양판소 기본 종족'들을 넣은 적은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필수적으로 인식된 《반지의 제왕》이나 〈D&D〉의 세계관 구성을 따르려는 작가나 소설은 의외로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이다. 인터뷰 등에서 톨킨의 팬 성향을 드러내는 조지 R.R. 마틴조차 《얼음과 불의 노래》에서 드래곤을 제외하고 엘프나 드워프나 트롤이나 오우거 같은 종족들을 넣지도 않은 것만 봐도 알 것이다.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양판소들과는 달리 작가가 직접 창작한 존재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마이너한 신화 속 존재들을 가져와서 특이한 방식으로 재해석을 하는 경우도 있다.[2] 그나마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것이 드래곤인데 (워낙 전세계적으로 보편화되고 인지도도 높은 상상 속 동물이므로) 이것도 필수요소와는 거리가 한참 멀며, 등장하지 않는 작품도 허다하다. 특히 오크나 발록 같은 경우는 정말 작정하고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오마쥬한 작품이 아닌 이상 다른 작품에서는 등장하는 일이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전쟁'에 대한 인식도 양판소들과 다르다. 전쟁이 차지하는 비중이 사실상 없거나 있으나 마나하고, 전쟁에 돌입하더라도 백만대군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양판소들과 달리 비교적 합리적인 전쟁 인구수를 보여주며, 고증이나 개연성 면에서도 더 뛰어난 편이고, 주인공의 신화적인 무용담을 위한 양판소들과 달리 《반지의 제왕》이나 《나니아 연대기》에서처럼 기독교적인 철학을 바탕으로 한 선 vs 악의 대결구도에 가깝게 묘사되는 경우도 있다.
마법에 대해서는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만 봐도 알겠지만 마나/마력/서클/사이클 타령을 하며 운용 원리 설명하느라 수 페이지를 할해하는 양판소들과 다르게 '마법이니까 가능하다'는 심플한 논리다. 마법이라는 것 자체의 본질적인 의미에 가깝게 《반지의 제왕》처럼 단순하게 '영험한 힘'이나 '기적' 수준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있고, 고대/중세에 행해지던 저주나 주술에 가깝게 묘사되기도 하며, 《해리 포터》 시리즈처럼 주문이나 효과가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는 경우에도 딱히 마법의 원리를 시시콜콜하게 설명하려 드는 경우는 많이 없다. 물론 마법의 작동 원리에 대한 부연 설명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도 작가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르고, 한국 양판소들에서 클리셰 수준으로 통용되는 특수 용어들은 아예 찾아보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이며, 독자가 꼭 알 필요가 없는 부연 설명은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마법사들의 수준이 나눠져 있는 경우야 당연히 있지만 양판소처럼 강조되지도 않고 엄격하지도 않다. 심지어 마법이라는 개념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 판타지 소설들도 많다.
신에 대해서도 입장이 다른데, 아예 대놓고 신화 판타지인 《퍼시 잭슨과 올림포스의 신들》 시리즈나 닐 게이먼의 《신들의 전쟁》이나 《실마릴리온》이 아닌 이상 신들의 직접적인 등장 및 개입은 사실상 없는 편이고[3] 언급으로만 존재하는 정도이다. 양판소처럼 신이 능력 퍼주고 환생 시켜주고 그런 거 없다. 신 죽이기는 물론 신과 싸운다는 중2병적인 전개도 없다. 아무래도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인 전개를 피하려는 것이거나, 기독교 문화가 강한 영미권에서 신 = 범접 할 수 없는 전지전능한 절대자라는 인식이 강하므로 감히 다루지를 않는 것으로 보인다. 예외로 마이클 무어콕의 《엘릭 사가》 같은 경우 주인공인 엘릭은 자신의 종족이 섬기던 혼돈의 신과 점점 대립하며 결국 소환된 신들을 스톰브링거로 추방하기에 이른다. 이는 동 작가의 《코룸 연대기》 등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현실에 스테이터스 창이나 스킬이 표시된다던가 게임적인 요소를 도입하는 건 존재하지도 않는다. 애초에 게임 소설이라는 것 자체가 한국의 양판소나 일본의 라이트 노벨에서만 나타나는 장르이기 때문에 서양의 판타지 소설에는 그런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문체에 관해서도 꽤나 엄격한데 아무리 재미 없고 못 쓴 소설이라도 양판소들처럼 한 줄 쓰고 엔터 방식 같은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일단 기본적으로 좀 마이너하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판타지 소설이나 짤막한 아동용 판타지 소설들도 대다수의 한국산 양판소들보다 문체가 훨씬 뛰어난 경향을 보인다.
물론 이것이 외국에 질이 낮은 판타지 소설이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소설들은 애초에 정발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 웬만하면 알려지지 않는 것일 뿐이다. 다만 질이 낮다고 해도 한국의 양판소처럼 디테일한 설정만 약간씩 틀리고 구체적인 용어나 설정까지 통용될 정도로 심각하게 정형화되어 있지는 않기 때문에 양판소라고 부르기에는 어폐가 있는 편이며, 이런 것들 중에서도 독특한 설정이 있는 작품들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게다가 전반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이 있는 작품들이 출판되기 때문에 아무리 나쁜 판타지 소설이라도 기본적인 문장력은 되는 편이며, 상당수의 한국 양판소들처럼 묘사나 구체적인 서술 없이 대화로만 책을 채워놓다시피 한 저질 작품들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
3 국내의 창작 판타지 소설
3.1 1세대, PC통신 연재에서 출판으로
대한민국의 창작 판타지 팬덤은 90년대에 VT 통신망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팬덤의 형성 과정은 크게 두 시기로 가를 수 있다. 90년대 중반 초창기의 상업적 형성 과정과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자생적인 무협소설과 MMORPG에 영향을 많이 받은 시기다.
90년대 중반의 초창기 한국 판타지 팬덤의 탄생 배경에는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나 〈소드 월드 RPG〉 같은 TRPG 문화, 《슬레이어즈》, 《로도스도 전기》, 《은하영웅전설》 같은 일본의 초기 라이트 노벨 계열, 〈울티마〉 시리즈, 〈위저드리〉, 〈드래곤 퀘스트〉 같은 게임을 통한 판타지 문화의 수용, 1994년 용대운의 《태극문》을 시작으로 일어났던 일련의 신무협 열풍[4], 《반지의 제왕》, 《드래곤랜스》 등 영미 문학의 제한적인 영향이 섞여 있다.
TRPG는 당시 청소년들이 즐겨보던 게임 잡지(예: 게임 매거진)를 통하여 소개되었으며, PC통신을 통해 취미생활로 즐기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일본, 영미의 판타지 소설은 번역을 통해 소수나마 출판되었으며, 《슬레이어즈》 등의 애니메이션은 TV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또한 비디오 게임과 PC 게임을 통해 판타지 세계관을 접하기도 했다.
이것은 초창기에 나왔던 홍정훈, 이경영 등의 판타지 소설들을 읽어 보면 현저하게 느껴진다. 이 시기에는 한국 판타지는 독창적인 판타지라기 보다는 주로 외국 판타지를 모방한 습작’이며, 일종의 ‘팬픽션’과도 같았다. 실력 있는 작가들은 이미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으나, 대부분은 모방과 습작에 그치고 있었다. 때문에 TRPG 룰이나 JRPG의 설정을 차용하는 일들이 빈번했는데, 사실 당시로서는 큰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해외 저작물 저작권이 국내에서 인정된 것이 90년대 중반부터고,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저작권은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개념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중반부터 문제가 제시되었는데, 이후 1세대 판타지 소설의 개정판을 출간할 때, 설정을 수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이영도, 이우혁, 전민희, 홍정훈, 김근우, 방지나, 임경배 등등이 있다.
팬들 입장에서는 정말 가뭄에 콩나듯이 나오는 지뢰작이 아니라면, 적어도 출판되었다면 어지간하면 실패하지 않는 작품들의 시대였다. 애초에 PC통신의 연재를 통해서 엄격하게 걸러져서 출판사들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이 나오면 모조리 구해서 읽는 시대였다. 게다가 신문에 전면 광고 형식으로 소설 광고가 올라왔으며, 제법 그럴듯한 비평가들의 비평들도 올라왔고, 숱한 작품들이 영화화 혹은 애니화할거라는 소식이 들려오는 등 그야말로 황금의 시대...
...였었는데...
3.2 2세대, 인터넷으로
PC통신을 통한 취미 활동에 머물던 판타지 소설은 《퇴마록》이 통신 연재 소설의 상업성을 증명한 것을 계기로, 여러 출판사에서 통신 연재 소설을 출판하는 것을 재고하고 있을 때, 《드래곤 라자》가 출판되고 굉장한 판매고를 올리면서 그 상업성을 증명하게 되었다. 또 도서대여점에 대량으로 공급되어 자생적인 팬덤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또한 이미 한국에서 대중소설 장르로서 자생력을 확보하고 있던 '무협소설'의 영향을 받게 된다. 《묵향》과 《비뢰도》의 히트가 그것이다. 판타지는 무협의 영향을 2번 받았는데, 첫번째는 앞서 언급했던 자생 초기에 공간을 함께 했던 신무협 열풍이고, 단순한 안티테제로서의 신무협은 자생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자인한 기존 무협 작가들이 주춤한 사이에 급부상한 3세대 무협의 영향이다. 그리고 이 3세대 무협은 무협이라는 도구를 차용한 라이트 노벨의 길과 소위 퓨전 판타지라고 하는 양자 혼합의 길로 갔는데, 전자를 대표하는 것이 《비뢰도》, 후자를 대표하는 것이 《묵향》이다. 《묵향》은 판타지 소설과 무협 소설의 퓨전을 보여주었고 《비뢰도》는 무협 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상업적으로 판타지 팬덤까지 아우르면서 무협 소설적인 요소가 한국 창작 판타지 팬덤에 스며들기 쉽게 했다.
연재 환경 면에서도 크게 변동을 겪었다. PC통신이 황혼기를 맞으면서 판타지 소설이 연재되는 공간은 별개의 인터넷 웹 사이트로 진출하였으며, 라니안, 삼룡넷 등의 중간 규모의 팬클럽 사이트가 중심을 차지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팬 사이트의 영역을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사이트들은 점차 몰락하고 작가 팬클럽이 중심이 된 팬커그 정도만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인터넷 소설 사이트의 중심축은 조아라, 문피아와 같은 기업적인 초대형 사이트들이 차지하게 된다.
팬들 입장에서는 지뢰작의 비율이 급상승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 와중에 개성이 강한 물건들도 많이 나와서 취향을 탄다라고 애써 무시할 수 있었던 시대였다. 이후의 양판소에 영향을 주는 책들도 이 시기에 나오지만, 말 그대로 그 책들이 양산되었기 때문에 양판소가 된 것이지 처음 한 두 권은 신선하고 가벼운 맛으로 봐줄만 하던 시대였다. 구매는 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신간이 나오면 무조건 대여점에서 대출이 이루어지던 시기. 비유하자면 은의 시대로 대략 2000년대 초반이다.
3.3 3세대, 대여점 정착
3세대 이후의 한국 판타지 소설은 초창기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상업적으로 판타지 소설들은 본격적으로 대여점에서 소비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문학적으로 초창기 외국 판타지의 영향은 설정과 배경으로 그 영역이 줄어들게 된다. 영미권이나 일본의 판타지 장르는 더 이상 한국 판타지 소설에는 많은 영향을 주지 못하게 되었는데, 본래 '오타쿠' 지향이었던 초기 판타지 팬덤에서 벗어나 대중화 되면서 팬덤의 정서가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설정 면에서는 《묵향》 등 몇몇 소설의 자기복제가 반복되면서, 새로운 풍조는 거의 유입되지 않았다. 또한 판타지 소설의 주된 정서는 무협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한국 무협의 사생아라 해도 좋을 정도로 닮게 된다.[5]
대여점 정착 전에는 판타지와 무협은 명확한 구분이 있었지만 정착 후 퓨젼소설이 유행하면서 무협요소를 상당 부분 받아들였다.
또한 〈리니지〉를 비롯한 MMORPG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적 사이버펑크인 게임 판타지 소설 역시 판타지 팬덤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 판타지 소설의 이런 변화는 장르의 자연스런 변화로서 단순히 욕하거나 거부하며 눈을 가릴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는 300쪽짜리 판타지 소설 한권을 8천원에 팔아치우는 악덕 상술의 출판사와 대여점책과 스캔본만 보는 독자, 그리고 단순히 틀에 박힌 판타지 소설을 쓰는 작가 등으로 인해 점점 침몰하기 시작했다.
사실 300쪽도 말이 좋아 300쪽이지, 문장이 문단이 되는 경우(=강제개행)가 비일비재해서 내용의 부족함이 더더욱 심하다. 실제로 1세대와 3세대의 분량 차이를 비교하면 대략 2/3인데, 책의 가격은 1/4 가량 상승했다.
내용적인 면에서는, 애초에 대부분의 판타지 소설과 신인 작가들은 판타지 연재 사이트 등에서 자기가 보던 물건의 확대 재생산을 습작처럼 연재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평소에 찍혀나오는 책들이 취향에 맞는 독자들이 그걸 환호하며, 어차피 내용을 완벽하게 무시하는 출판사는 그냥 돈이나 벌려고 찍어낸다. 오죽하면 순수문학하겠다는 출판사 사장이 그에 충당할 돈 벌려고 판타지 찍었다고 당당히 말했다는 전설도 돌고 있을 정도니... 이렇게 한번 출판이 되면, 그 작가들은 당당한 출판 작가가 되어서 출판을 준비하면서 보다 팔릴만한 내용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게 대여점을 통해서 팔리면 재탕이고, 안 팔리면 그걸로 끝.
내부적인 완성도와 외부적 경제 요건이 이렇게 완벽하게 맞아서 돌아가니 당연히 그 나물에 그 밥이 될 수 밖에 없다. 그 구성요소인 출판사나 작가나 독자나 전부 막장. 여기서 가장 막장인 것은 출판사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돈 벌겠다고 생각없이 글 쓴 물건들을 시점의 오류나 오타 같은 걸 교정하지도 않고 덜렁 계약해서 출판 작가를 양산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두 요소들의 죄 역시 부정할 수는 없으나, 출판물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출판사 쪽의 책임이 가장 큰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는 독자와 구매자가 완벽하게 유리된 것도 한 몫 한다. 책을 직접 읽을 생각이 없는 구매자, 즉 대여점주는 책의 품질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모험을 하기보다는 안전하게 기존에 잘 나가는 작품과 비슷한 작품을 주로 들여놓게 된다. 출판사는 구매자의 입맛을 맞춰야 하니 당연히 그런 작품들을 내게 되고, 작가도 당연히 그런 작품을 쓰게 된다. 이 체제에 독자의 의견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출판사 방식도 기존 무협 소설의 대본소 중심 체제를 그대로 답습하였다. 시장성이 있는 극소수 유명 작가의 작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소설은 대여점에 유통시킬 분량만 소량으로 찍는다. 가격은 어찌되든 어차피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게 아니니 분위기 봐서 정하며, 그나마도 비싼 편이다. 어쨌든 대여점에 들어가는 분량만큼은 팔리는 게 보장되어 있으니 실제 시장성은 차치하고 조회수가 높으면 그냥 출판한다. 인터넷 작가들의 역량이 부족한데다가 출판사에서도 제대로 읽지 않고 적당히 편집하고 적당히 교정을 보기 때문에 비문, 오타, 틀린 맞춤법이 난무한다. 출판의 특징이라면, 완결이 나지 않아도 작가가 적당히 부지런하고 어느 정도 조회수가 나와주는 작품을 출간하기 때문에 작가가 연중하면 그대로 묻혀버리고, 대여점에서 안 나간다고 반품을 해버리면 뒷권을 내지 않거나 한다. 더구나 출판사와 작가가 감정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애초에 판타지 소설의 거품이 심할 때는 돈 좀 벌어보겠다고 잠시 등장했다가 무너지는 출판사도 많아서 출판되던 책들이 한 방에 나가 떨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실제로도 수많은 소설 중에서 제대로(형식적인 의미에서라도) 완결을 낸 작품은 많지 않다.
물론 다들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시장이 막장화되자 타개책을 찾기 시작했는데......
작가 : 독자들이 책을 사면 작가들에게 돈이 들어오므로 품질이 올라갑니다.독자 : 쓰레기 같은 책을 안 내고 고품질 책을 내면 삽니다.
닭과 달걀 논쟁의 재판이었다.
물론 둘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쓰레기책을 판타지 소설의 미래를 위해 사 줄 천사같은 독자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고, 고착화된 시장에서 고품질 책을 쓰는 글쟁이도 없다. 한마디로 시장이 악순환에 들어가서 도저히 개선의 여지가 없어진 상태.
앞서 말하자면, 나무위키에 등재된 판타지, 무협 소설들은 극소수(흔히 말하는 이영도, 좌백, 전민희, 이우혁 등의 작품 제외)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상당히 저평가되는 경우가 많으며,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죄다 양판소라고 되어 있고, 양판소 항목에서 예로 언급된 소설들은 정작 그 형태를 처음 개창한 대략 2세대 소설들이 태반인데다, 장점보다는 단점을 중심으로 소개된다. 때문에 나무위키만을 읽고 특정 작품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도록 하자. 나무위키에 만들어진 항목 중에서 평가가 좋은 것이 있다면 까는 게 기본인 사이트에서 칭찬을 해 줄 정도의 작품이라는 뜻이니 한 번쯤은 구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앞에서 꾸준히 언급한 황금시대 - 은의 시대의 다음인 3세대는 청동시대여야겠지만 그런 거 없고 독자와 출판사와 대여점과 작가가 서로 피를 보게 된 철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굳이 청동시대를 억지로 만들자면 2세대를 양판소에 영향을 준 작가와 개성을 드러낸 작가들로 쪼개야 할 것이다.
3.4 4세대, 경소설화와 공모전
판타지 업계가 전체적으로 침체에 빠지고 부진의 늪에 허덕이자 대원을 비롯한 출판사들은 일본의 포켓판 소설의 부류인 라이트 노벨들을 수입하여 번역 출간하고, 대여점 공급을 엄격하게 끊고 감시해 직접적인 수입을 노렸다. 기존의 청소년들을 주 대상으로 하던 시장에서 청소년~청년 오타쿠 계층에 더 주력하는 일본의 판타지 출판 업계를 벤치마킹한 것인데, 이것은 실제로 상업적으로 성공하여 각 출판사들은 경쟁적으로 일본 소설을 번역 출간하는 한편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 발굴되는 신진 판타지 소설들 역시 판형을 라이트 노벨과 같게 축소하여 원가를 절감시켰다. 또한 소설 모집에 있어서 공개 공모를 이벤트화 하여 적극적으로 추진하였으며, 기존 판타지 소설들의 라이트 노벨과의 혼입으로 인한 경계가 희미해지는 현상은 현 판타지 출판계의 특징이다.
그러나 이 라이트 노벨은 기존 대여점 소설을 완벽히 대체하지는 못했다. 국내 라이트 노벨 시장이 오타쿠 계층 대상으로만 편중되는 현상이 나타났고, 이런 점은 라이트 노벨이 오타쿠 계층을 넘어서서 보급되지는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대여점 시장과 라이트 노벨 시장이 공존하는 형태를 보였다.
대여점 시장을 대상으로 하던 판타지 소설은 2010년부터 하나의 전환기를 맞기 시작했다.
3.5 5세대, 전자책 시대
2010년을 기점으로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보급되면서 판타지 소설을 포함한 장르소설 업계는 하나의 전환점을 맞았다. 스마트폰, 태블릿을 비롯한 성능 좋은 모바일 기기의 보급으로 인하여 전자책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2010년 이전에도 전자책은 있었지만, PC에서 온갖 DRM을 설치하고 보거나 전용 기기를 사용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기에 널리 퍼지지 못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폰에서 몇 번 터치만 하면 어디서나 소설을 볼 수 있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이때부터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 "온라인 대여"와 "유료연재"라는 시스템이었다. 온라인 대여는 말 그대로 전자책을 대여해서 일정기간 볼 수 있는 것으로, 대여점 시장에서 책을 빌리는 것과 비슷했지만 대여 수익이 작가에게도 돌아간다는 장점이 있다. 유료연재는 싼 가격으로 연재분을 결제해서 볼 수 있는 제도로, 건당 100원이라는 싼 가격으로 어필하는데 성공, 시장에 안착하게 되었다. 이후 유료연재는 여러 수익모델이 나왔는데, 북큐브, 문피아 등지에서 하는 건당 100원의 유료연재부터 시작해서, 네이버 웹소설의 선행 유료연재[6], Yes24 또는 허니앤파이의 본방사수 유료연재[7], 조아라나 노블스퀘어의 정액제 유료연재 등의 여러 방식이 나와 있다.
4 국내에서 배척받는 판타지 소설
국내에선 많은 교사와 부모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보통"문학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많이 하는데, 이러한 주장은 우리나라의 판타지 소설이 주로 PC통신을 통해 널리 퍼지면서 양판소와 같은 수준 이하의 소설이 범람한 것도 있지만, 실제로도 특성상 판타지 소설의 대부분은 1차적으로 소비되며, 단순히 웃고 즐기기엔 무리가 없지만 그 이상을 넘어선 수준을 기대하긴 어렵다. 주 소비층인 10, 20대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문학작품의 예술성보단 재미를 더 강조하고 자극적, 폭력적인 소재를 다루는 경우도 많다. "소설은 일어날 법 하지만 거짓인 것을 다루기 때문에 좋지만, 판타지 소설은 허구이기 때문에 나쁘다" 와 같은 주장을 한다는 말도 있지만, 단순히 허구이냐 아니냐를 떠나 그 허구인 소재의 활용 방법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단적인 예로 카프카의 《변신》과 다른 판타지 소설에서 변신하는 것과는 같은 소재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쪽은 작품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 소재를 단순히 "나쁜 적을 물리치겠다!" 수준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수준의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판타지 소설이 천대를 받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학생들이 판타지 소설을 읽느라 학업에 방해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독 판타지 소설만 까이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부모나 교사의 세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8] 아마도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아이들이 연예인을 좋아하고 TV를 보는 데 시간을 많이 쓰더라도, 그런 것들은 부모와 교사 세대에도 존재했던 것이라서 무작정 까기에는 '나도 그랬는데 이렇게 잘 컸잖아.'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신은 즐기지 않았으나 요즘 아이들이 즐기는 판타지를 까는 것이다. - 텍스트 형식으로 주로 보급되기에 전자사전 등으로 공부하는 척 하고 몰래 보기가 쉽다. - 특히 국어교사들 입장에서는 저급한수준의 책이 학생들 사이에서 읽히는것에 거부감을 갖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판타지 소설을 비난하는 교사들은 국어교사인 경우가 많다. 워낙에 인터넷 등에서 대규모로 생산되는 탓에 저급한 작품이 많지만 분명 그 중 명작인 것들도 있으며 국어 전공자들이 주로 다룬 세계적 명작과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장르를 비교하기엔 무리가 크다. - 부모 입장에서는 같은 소설인데 읽으라는 고전소설은 안 읽고 입시에 전혀 도움도 되지 않는 소설을 읽느라 시간을 쓰는 것이 가장 못마땅할 것이다. |
이런 이유들로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청소년들은 어른들과의 판타지 전쟁을 벌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보통 중학교에서 이런 분란이 많이 일어나는데, 이유는 일단 고등학생이 되면 입시 방해라는 학생들도 반박하지 못할 절대적 이유로 압수하고 대부분 전자기기도 반입 금지라서 오히려 문제 소지가 적지만, 중학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론, 판타지 소설이 아무 이유 없이 까이는 것은 아니며, 그들만의 합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 쯤은 알아두자.
5 대한민국 판타지 소설의 특징
5.1 게임적인 요소
소위 양판소라 불리우는 판타지 소설들을 보면 알겠지만 문학이라기 보다는 게임과 만화적인 특성이 강하게 나타나며 깊이가 없고 얄팍한 캐릭터, 주제의식, 스토리, 문체 등이 전반에 나타난다. 애초에 태생부터 판타지 규칙이 아니라 롤플레이 게임 규칙으로 제작된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9], 한낱 게임에 지나지 않는 JRPG[10]와 오락물인 소년만화와 슬레이어즈로부터 시작되었으니 짊어진 한계라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서 서클 매직 드립은 깊은 의미 없이 강력한 힘으로 상대방을 찍어 누르고 승리를 거두는, 문학적이라기 보다는 전형적인 게임적인 장치로 기능하고 있으며, 소드마스터 단계 드립도 마치 만렙처럼 오락적인 요소로만 기능하고 있을 뿐이다.
이라한 문화적 유전자를 단적으로 보여주는것이 바로 달빛조각사로 대표되는 게임 판타지 소설의 열풍일것이다. 또한 5세대(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노블레스와 문피아에 올라오는 레이드물들도 현실속에서 게임 스테이터스가 등장하는 등 게임적인 요소가 유지되고 있다.
참고로 이영도는 판타지 소설의 게임화를 경계하는 듯한 글을 남긴 적이 있다.
(중략) 신화는 인간과 세계가 대화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희생자는 자기 파괴적인 인간이 자신 대신 세계와의 장벽 -거짓 자아- 을 파괴하기 위한 대가입니다. 이제는 단물이 다 빠진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관계의 회복'을 위해 판타지는 비인간 캐릭터들을 동원합니다. 이것은 관계의 파괴를 위해 비인간 캐릭터를 동원하는 컴퓨터 게임과는 다릅니다. 몇번이나 말했지만 인간의 거울이 될 수 있는건 인간뿐입니다. 따라서 판타지의 비인간들은 인간의 역할을 맡을 필요는 없으며 그러려 해서도 안됩니다. 그 비인간들이 겉모습이나 행동이 독톡할 뿐 인간과 똑같이 사고하고 행동하는, 즉 외형이 다른 인간에 불과하다면 그 순간 그들은 사냥감으로 전락합니다. 어쨌든 우리 인간은 동족을 살해하는 동족들이니까요. 정의로운 주인공의 강대함을 보여주기 위해 인간을 살해하게 할 수 없으니 오크나 나쁜 마법사를 살해하게 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며, 이것은 컴퓨터 게임의 패러다임이지 예술이 아닙니다. 앞서 이견이 있다고 말한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이것이 판타지가 빠지기 쉬운 유혹이기도 합니다. |
5.2 무협지적인 특징
대한민국의 판타지 소설에는 수련 및 경지 달성과 내공과 기와 무공 그리고 직접적인 무력을 중요시하는 무협지[11]적인 설정과 용어 그리고 플롯들이 남용되며, 이런 점 때문에 환협지로도 불린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의 판타지 문화가 유치한 수준이라고 까내릴 것만은 아니다. 판타지가 기반하는 것은 인간들이 각 문화에서 쌓아왔던 환상, 설화, 신화들이다. 따라서 서양에서는 서양의 사상이 반영된 것이고 동양에서는 동양의 사상이 판타지 소설에 반영된 것일 뿐이다. 그래서 서양의 판타지와 동양의 무협지나 판타지와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우리들은 도가나 불교 사상에 기초하여 깨달음을 통해 인간이 정신적으로 초월적인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는 신화를 가지고 살아왔고 그것이 판타지 문화에 반영되어 경지를 개척해나가며 깨달음을 통해 더 강한 힘을 얻게되는 동아시아 삼국의 고유의 판타지 문화로 자리잡게 된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양판소들은 아주 빈약한 지식과 상상력으로 조잡한 깨달음의 경지를 묘사하여 책을 유치하게 만드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지만 그 몇몇 작들 때문에 뛰어난 자기만의 철학과 세계관으로 높은 정신적 경지와 그로 인한 힘을 묘사한 판타지 소설까지 그 수준을 까내려서는 안될것이다.
5.3 출세와 현실도피
이고깽, 영지물, 갑질물로 대표되는 남들 위에 올라서고 싶은 욕구가 드러나는 소재들이 메인으로 쓰이고 여기에 보조적으로 루프, 환생, 차원이동 등등 현실에 대해 책임을 지지않고 도피하고 싶은 듯한 욕구를 반영한 소재가 빈번히 쓰인다.[12]
5.4 고전소설에서 벗어나지 못한 구조
조금만 생각해봐도 양판소들은 고전소설들과 내용전개가 거의 흡사하다. 고전소설들이 즐겨 쓴 이야기 중 하나가 '하늘에서 쫓겨나 중국 대륙에 태어난 주인공이 외적과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위명을 떨치는 입신양명적인' 전개인데 하늘을 현대 세상으로, 쫓겨남을 차원이동으로, 중국 대륙을 판타지 대륙으로, 외적을 몬스터나 외지인으로 바꾸면 흔한 차원 이동물이 탄생한다. 문장의 경박함은 고전소설보다 못한 경우도 많다.
6 관련 사이트
7 관련 문서
- ↑ 이 덕분에 당시 유럽의 문인들은 몇 다리 걸치면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예시를 들자면 마르크스는 하이네와 서신을 주고 받았고, 괴테와 하이네는 자신의 작품 번역을 네르발에게 맡겼으며, 네르발은 자신의 친구 고티에를 위고에게 소개했고, 또한 네르발은 뒤마와 합작을 했다.
- ↑ 사실 한국 판타지물에서 정형화된 엘프, 오크나 트롤도 그 모태가 되는 《반지의 제왕》이 출간되기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던 개념이었으며, 원래 《반지의 제왕》의 저자인 톨킨이 그때까지만 해도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전설/민담에서 등장하는 상상 속 존재들을 가져와서 원형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세계관에 맞게 창의적으로 재해석을 해서 새로운 이미지로 창조한 것이다. 톨킨 옹이 유럽의 신화/전설과 영미 문학의 전문가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당시만 해도 이는 굉장히 신선한 묘사였으나, 《반지의 제왕》이 불후의 명작으로 대중화되면서 너도나도 그걸 따라하기 시작해서 일종의 클리셰가 되어버린 것.
- ↑ 신화적인 세계관인 《반지의 제왕》도 세계관 내에서 신이라 쳐주는 존재는 반신 마이아인 간달프, 사우론, 사루만, 발록 정도 밖에 없고, 이들도 작품 내에서는 대략 기독교 세계관의 '천사'와 비슷한 위치로 취급된다.
- ↑ 당시 PC통신에서 무협과 판타지 소설은 같은 곳을 공유하고 있었고, 그 결과 서로 영향을 어느 정도 주고 받았다. 1세대 판타지 소설들이 소위 말하는 정통 판타지 소설에 반기를 들고 어떤 의미에서는 실험적인 시도를 이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 ↑ 판타지 소설 자생 초기를 보면, 함께 태동했던 신무협의 영향도 있어서인지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정통 판타지나 정통 무협적 요소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었다. 소위 말하는 모험을 떠나는 용사가 모험과 수련을 통해서 강해졌다고 하는 이야기가 극초기 발매작에는 단 한 권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던 것이 신무협의 종료 이후 퓨전 판타지와 섞인 뒤에는 판타지 소설+무협+라이트 노벨이라는 복잡한 형태가 되더니 자기 복제를 통한 끊임없는 변주와 각종 기연의 남발은 그토록 신무협이 거부하고 나섰던 구무협의 그것이다. 정통 모험물의 뿌리가 없었기 때문인지 거슬러 올라간 결과 80년대 무협지가 튀어나온 것.
- ↑ 돈을 내면 기 연재된 분량의 몇 화까지는 미리 볼 수 있는 시스템
- ↑ 연재 당일 자정이 되기 전까지는 무료, 그 이후는 유료.
- ↑ 게임이 배척받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 ↑ 참고로 국내에 흔히 퍼진 인식과 다르게 영미권 판타지계에서 D&D가 차지하는 위상이나 매상 파이는 그리 절대적이지 않다. 결국에는 하는 사람만 하는 매니악한 TRPG고, RA 살바토레가 D&D 세계관에 기반한 다크엘프 트릴로지 소설로 2천만부가 넘는 대박을 터트렸지만, 시야를 조금만 넒혀본다면 결국에는 D&D 세계관이 아닌 작품들이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게 될것이다. 일단
꼭 외국 판타지 소설하면 반드시 나와주는4억 5천만부 가량 팔린 해리포터, 수억부쯤 팔린 반지의 제왕, 어스시의 이야기, 나니아 연대기는 차치하고 2천 4백만부 가량 팔린 얼음과 불의 노래, 3천만부 가량 팔린 스티븐 킹의 다크타워 7부작, 5천만부 가량 팔린 디스크월드, 8천만부 가량 팔린 뱀파이어 연대기, 각각 6백만부 가량 팔린 라스트 유니콘과 바티미어스 트릴로지, 닐 게이먼의 판타지 소설들, 미하엘 엔데의 소설들과 그밖의 알려지지 않지만 나름 히트친 수백 수천의 작품들과 영어덜트 판타지 소설 등등이 D&D계열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작품들이 '왜 한국에서는 유명하지 않은가'라고 되물을수도 있겠는데 취향이 맞지 않는것도 있겠지만 국내의 편협한 사정 때문에 들어와도 찬밥 취급 받는것이다. - ↑ JRPG에도 소위 명작들은 있지만 그것들의 스토리나 분위기나 설정을 소설속으로 가져오는 건 무리수라고 할 수 있다. 게임은 게임이고 소설은 소설이기 때문이다.
- ↑ 무협지는 부정적인 표현이고 무협 소설이 맞다고 하는 주장하는 무협빠들이 있지만 표현의 차이일 뿐 본질적으로 다를건 없다.
- ↑ 몇몇 이들은 이를 카타르시스라고 하는데, 문학에서 카타르시스는 비극을 봄으로써 감정을 정화한다는 것이지 이런 말초적인 대리만족 장르에 쓰일 용어가 아니다.
차라리 아드레날린이라고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