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영화를 평론하는 글을 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영화 감독들이 이 사람들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합니다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나름대로 참고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에, 직함이 '평론가'인 사람들 중에서는 가장 대중적인 편에 속한다.
2 진로와 자질
영화 평론가가 되는 방법은 문학 평론가와는 달리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문학 평론가는 대부분 인문대학의 각 어문학과에서 훈련받은 대학원 석사 이상 학위 소지자들이지만, 영화 평론가는 보통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전공한 사람들 중 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영화잡지 기자가 되거나 하는 식으로 자신의 전공을 살려 영화를 분석하게 된다. 미국의 전설적인 평론가 로저 이버트(영문학 전공), 국내의 경우는 이동진(종교학 전공)과 정성일(신문방송학 전공)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장르 문학가가 영화 평론을 겸하는 경우도 있는데 SF 작가인 듀나가 그 예이다. 그 외 영화학 전공인 사람도 있고, 학사도 있고, 석사에 박사 학위까지 따고, 외국 유학까지 갔다와서 평론가를 하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으로 박찬욱처럼 영화 감독과 평론가를 공식적으로 겸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좋은 영화를 만드는 영화 감독들의 상당수는 그만큼 많은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해 생각하기 때문에 잠재적인 영화 평론가라고 봐도 무방하다. 반대로 프랑스의 카예 뒤 시네마 출신 영화 감독들처럼 평론가가 감독으로 데뷔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내의 경우는 정성일 평론가도 감독 데뷔를 하였다.
영화 잡지사에 독자 비평이라고 해서, 정기적으로 영화 비평을 투고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사실 비평을 하면서, 비로소 평론을 하게 되는 사람도 있다. 그 중에서 정말 잘 정리되어 있는 비평은 뽑혀서 잡지사 독자 비평란에 실리기도 한다. 이렇게 정기적으로 화제가 되어서 평론가로 이름을 알리는 경우도 있고, 일부는 블로그도 운영하면서 비평을 아예 블로그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절대 파워블로거 같은 블로그가 아니다. 아예 비판적 사고를 지니고 트롤링을 즐겨 하는 평론가도 있다.
평론가라 함은, 자신의 '전문적' 지식을 사용하여, 해당 영화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지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것에 그 의의를 두는 경우가 많다. 영화 평론으로 논문을 쓰는 사람도 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영화학 전공자들이 모여서 영화 토론을 하는 소모임 같은 곳에 들어가면 보통 열띤 토론을 하게 되는데, 원샷, 투샷, 오버더숄더, 하이앵글, 로앵글 같은 촬영 용어부터 레디, 액션, 컷(이건 정말 기본적이다) 등의 연출 용어까지 세세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가령, 영화 《물랑 루즈》가 1899년 파리를 배경으로 한다면, 그 해 19세기 말 파리가 어떤 곳이었는지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 대학교 영화학과 과목 중 영화학개론을 수강할 경우엔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그 배우가 움직이는 손짓, 발짓, 몸짓이 의미하는 것을 추론해야 한다. 아예 영화의 한 시퀀스만 가지고, 이 장면을 평론해보라는 것이 레포트 주제일 때도 있다(...). 그리고 모든 영화학도가 멘붕하지
어떤 영화를 평하기 위해, 그 영화를 수십 번이고 보는 사람도 있다. 시대적 배경과 시대적 상황, 그 당시 정치적 성향부터 사회 분위기까지... 심지어, 촬영장의 분위기를 본다든가, 배우들의 표정과 떨림까지 세세하게 묘사한다. 《원스》에는 열악한 제작비와 촬영 환경 때문에 일반 시민들이 '이 분들이 뭐하시는 건가?'며 구경하는 장면들이 있는데, 평론가들은 그런 세세함을 집어내기도 하고 옥의 티를 지적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정통 사극인데, 장터 상인이 파는 물건 중에 뿔테안경이 놓여져 있다든가 하는 것.
3 평론
사람들이 가장 쉽게 접하는 건 별점 평가와 20자 평이다. 물론 별점 체계는 평론가마다 각각 달라서, 누구는 별 네 개가 사실상 만점인데 다른 평론가에겐 아닐 수도 있다. 사실 별 몇 개와 20자 평 정도로는 평론가 입장에서도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기 힘들고, 평론을 보는 사람도 영화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받지 못한다. 게다가 20자 평 같은 경우, 가뜩이나 짧은데 평론가들이 함축적이거나 시적인 표현을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 정성일 평론가처럼 별점 평가를 혐오하는 평론가가 있는가 하면, 다만 정성일은 트위터로 20자평을 한다 박평식 평론가는 별점과 20자 평을 주로 이용해서 호불호가 갈린다.
어찌 되었든 직업상 작품에 대해 호평도, 혹평도 하며 살아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영화 감독들과의 사이는 대체로 좋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대중들에게는 잘난 체 한다는 취급을 받는 경향이 있다(…). 특히 디 워 사태 때 진중권 교수가 100분 토론에 나와서 시종일관 혹평을 하던 것이 화제가 되면서 이런 인식이 확산되었다. 물론 영화 평론가들이 소위 '예술 영화'를 더 좋아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중 예술인 영화의 특성 때문에 순문학 평론가들처럼 학계에서 정한 예술성이라는 기준으로 모든 작품을 평하려고 하기보다는 상업성이나 오락성 같은 대중적인 요소도 반영해가면서 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故 로저 이버트만 해도 호불호가 크게 갈렸던 영화 《2012》에 별 네 개 만점 기준 세 개 반을 주었고, 이동진이나 듀나 같은 국내 평론가들도 "그래서 이 영화는 재미있는가 없는가?"를 철저하게 따진 평가를 올렸다. 듀나의 경우에는 영화 평론에 엉뚱한 기준이나 언급을 하여 부적절한 평가가 됐다는 반발을 산 적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제대로 된 평론가라면 균형 감각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개인의 취향에 따라 평이 갈리는 경우도 많다. 특히 소수의 평론가들이 내린 평점을 중심으로 운영되거나, 이에 영향을 받는 누리꾼이 많은 국내 포털 사이트, 영화 사이트 등에서 이러한 곡해가 많이 발생한다. 해외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들이 국내에서는 동 시기 개봉한 국내 작품에 비해 평가절하되는 경우가 발생하기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해외 작품은 국내 평론가들의 평만 볼 것이 아니라 해외 평론 사이트들을 참고하거나, 故 로저 이버트처럼 작품 특성에 맞춤식 평가를 하는 평론 영상 및 문헌 등을 참고하는 것이 낫다. 국내 영화에 대한 평론 역시 특정 사이트 평만 참고하기보다는 다양한 사이트 및 작품 자체에 대한 정보를 알아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건 어느 분야에서든 유효한 이야기이다.
네이버 영화에서는 마르지 않는 떡밥으로 언제나 논쟁의 대상이 된다. 보통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가 평론가에게 혹평을 받으면 '감독이 열심히 만든 건데 니가 뭔데 평가를 함?', '10점은 절대 안 주네', '어휴 그럼 뭐가 재밌다는 건지?' 같은 비난이 쏟아지고 이에 반박을 하면서 헬게이트가 열릴 때가 잦다. 당연하지만 평론가 또한 한명의 관객으로서 영화를 평가할 권리가 있고, 10점을 준다는 행위는 모든 영화 중에서도 정점에 서 있는 영화 중 하나라는 평이 되기 때문에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1] 그리고 영화 평론가들이 높게 평가한 영화들은 사실 널리고 널렸다. 다만 이러한 영화들이 시네필들이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일 뿐. 가끔은 이런 현상이 심해져서, 단지 평론가들이 높게 평가했다는 이유로 영화에 별점 테러를 하거나, 반대로 '전문가 별점이 낮군요. 꼭 보러 가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조롱하는 상황까지 생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