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역사

울산광역시 행정구역 변천사
경상남도 울산군
(慶尙南道 蔚山郡, 1895)
경상남도 언양군
(慶尙南道 彦陽郡, 1895)
경상남도 울산군
(1914)
경상남도 울산시
(蔚山市, 1962)
경상남도 울주군
(蔚州郡, 1962)
경상남도 울산시
(1962)
경상남도 울산군
(1991)
경상남도 울산시
(1995)
울산광역시
(蔚山廣域市, 1997)

자본의 땅 위에 새겨진 노동의 역사, 울산

1 삼국시대 ~ 남북국시대

울산이라는 이름은 지금의 울주군 웅촌면과 양산시 웅상 일대에 걸쳐 존재했던 소국 우시산국(于尸山國)에서 유래되었다. 다만 훈민정음은 물론이요 이두도 정립이 안되던 고대의 향찰식 표기에서는 'ㄹ' 받침을 尸로 나타낸 사례가 여럿 있으므로 고대에도 울산/울뫼/우르산(by 촹기리) 등으로 불렸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우시산국은 곧 경주시 일대를 지배하던 신라의 탈해 이사금 때 장군 거도에게 정복당했다.
바로 위에 신라수도 경주가 있는 덕분에 신라시대부터 수도권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통일신라 때 울산항의 위치는 중요하여서, 현재의 인천항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와 관련해 신라 관련 유적·설화가 은근히 많다. 예를 들면 동구 일산동의 대왕암. 신라 파사왕 때 굴아화현(울산), 거지화현(언양)이 되었다가 통일신라 경덕왕 때 하곡현(울산), 헌양현(언양)으로 개편되었다.

2 고려

태조 때 굴아화현에서 흥례부가 되었다. 그러다가 성종 때 공화현으로 강등되었다. 현종 때 울주가 되었다.

한편 인종 때 헌양현은 언양현이 되었다.

3 조선

태종 때 울산군으로 개편되었다.

태종 17년(1417년) 이래 조선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의 영성(營城) 소재지였으며, 구한말(1907년) 진위대(육군보병 제3연대 3대대)가 해산할 때까지 경상좌도 지역의 군사기지이자 군사중심지 역할을 수행해왔다[1].

한편 일본과 가깝기 때문에 조선 시대에는 대마도주의 요청으로 개항한 삼포 중 하나인 염포가 울산에 있었지만 다른 두 포구였던 진해, 부산에 비해서는 또 일본과 거리가 적당히 멀어서 가장 이용률은 적었다(...) 임진왜란 때는 일본군에 의해 일찍이 요새화되어 이곳저곳 왜성이 많이 지어졌고, 울산성 전투의 처절했던 전장이기도 하다. 울산성에서 농성했던 가토 기요마사는 울산에서 포로들을 엄청나게 끌고 갔는데, 당시 가토의 영지였던 일본 구마모토시에는 울산정(町)[2]이라고 하는 이 있다. 1960년대까지 행정구역이었고 현재는 울산마치역(우루산마치역)이라는 역 이름으로만 남아있는 상태. 구마모토 측에서 한국의 울산에서 유래한 게 맞다고 밝혔다.

1906년 경주군 외남면을 편입하여 두북면으로 개칭하였고, 웅상면이 양산군으로 편입되었다.

4 일제강점기

1910년 두북면을 두동면과 두서면으로 분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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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울산군의 행정구역 상황.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울산군과 언양군이 울산군으로 통합되었다. 울산면은 1931년, 동면은 1938년에 각각 울산읍, 방어진읍으로 승격되었다.

5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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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울산시 승격 당시 행정구역 상황.

1962년 울산군 울산읍, 방어진읍, 하상면, 대현면, 범서면 무거리와 다운리, 청량면 두왕리, 농소면 송정리와 화봉리가 울산시로 승격되었으며, 울산군의 잔여지역은 울주군으로 개칭되었다. 1963년 울주군 서생면이 동래군에 편입되었다. 울산시는 특정공업지구 지정이라는 특혜로 대단위 중화학 공업 단지가 들어서고, 현대자동차, 현대미포조선, 석유화학단지 등의 공단이 들어서며 발전했다. 1983년 서생면이 양산군[3]에서 울주군으로 환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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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울산시의 행정구역 상황.

1985년 태화강을 경계로 중구(태화강 이북)와 남구(태화강 이남)를 설치하였다. 1988년 방어진출장소를 동구로 승격하였다.

1991년 울주군이 울산군으로 명칭을 환원하고, 1995년 울산시와 울산군이 통합되었다. 이 때 울산군 지역은 울주구로 개편되었고, 농소면이 농소읍으로 승격되었다. 흠좀무한 사실은 울산시의 직할시(현 광역시) 승격안이 중앙정부 차원에서 1994년에 사실상 확정된 상황(기사)에서[4] 울산시와 울산군의 도농통합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1996년 언양면이 언양읍으로, 온산면이 온산읍으로 승격되었다.

1997년 울산광역시로 승격되었다.[5] 지방 중심도시 역할을 하지 않는 도시 가운데 광역시로 승격된 것은 도 체계 자체가 폐지되지 않는 이상 인천광역시에 이어 울산이 마지막일 것으로 보인다.[6][7] 이 때, 울주구를 울주군으로 개편하였다. 또한 농소읍과 강동면, 중구 효문동, 진장동, 송정동, 양정동을 편입하여 북구를 신설하고, 중구 염포동을 동구에 편입하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큰 동네 여러 개를 묶어 광역시로 만들었다고 까는 사람도 존재한다.[8] 실제로 태화강 이남, 태화강 이북, 방어진, 장생포, 범서읍, 온산읍 등 시가지가 분산되어 있는데다, 이를 묶어줄 교통수단이 도로(+버스)밖에 없는지라...

1998년 동구 염포동을 북구에 편입하였다. 또한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원,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이 각각 울산지방법원, 울산지방검찰청으로 승격되었다.

2001년 온양면이 온양읍으로, 범서면이 범서읍으로 승격되었다.
  1. 이동 지금도 울산 병영성 유적과 병영동(병영1동, 병영2동)이라는 행정동 이름으로 그 흔적이 남아있다.
  2. 이동 한국으로 치면 울산동
  3. 이동 동래군은 1973년에 폐지되어 양산군에 편입되었다.
  4. 이동 하지만 정부의 울산직할시 승격안이 발표되자마자 경상남도측에서 거세게 반발하는 바람에 잠정 유보되기도 했었다.
  5. 이동 보통 광역시 승격 조건이 인구수 100만 이상인 줄 아는 사람이 많은데, 인구 조건에 대한 법적 근거는 없다. 실제로 대전, 광주가 직할시가 될 때와 울산이 광역시가 될 때의 인구는 90만을 넘기기는 했지만 100만을 채운 상태는 아니었다.
  6. 이동 현재 광역시 승격 가능성이 있는 도시들은 모두 각 지역의 중심도시이다.
  7. 이동 울산의 광역시 승격을 위한 정계 인맥 총동원령급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초자치단체 시절인 경상남도 울산시 당시에 서울출장소를 설치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8. 이동 수원시나 창원시 등 인구가 비슷한 규모인 곳에서 광역시 승격을 주장하면서 비교대상으로 걸고 넘어지는 곳이 주로 울산. 울산은 되고 우리는 왜 안 되는데? 미치지 않고서야 경기 경남이 저 둘을 독립시킬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