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럿 호네츠

NBA 동부 컨퍼런스
사우스이스트 디비전
50px애틀랜타 호크스
(Atlanta Hawks)
60px샬럿 호네츠
(Charlotte Hornets)
50px마이애미 히트
(Miami Heat)
70px올랜도 매직
(Orlando Magic)
55px워싱턴 위저즈
(Washington Wizards)
­
샬럿 호네츠
Charlotte Hornets
창단1988년 / 2004년
연고지노스캐롤라이나샬럿
컨퍼런스동부 컨퍼런스
디비전사우스이스트
구단 연고지 변천샬럿 (1988~2002, 2004~)
구단명 변천샬럿 호네츠 (1988~2002)
샬럿 밥캣츠 (2004~2014)
샬럿 호네츠 (2014~)
구단주마이클 조던 (Michael Jordan)
단장리치 초 (Rich Cho)
감독스티브 클리퍼드 (Steve Clifford)
파이널 우승
(0회)
-
컨퍼런스 우승
(0회)
-
디비전 우승
(0회)
-
홈구장스펙트럼 센터(2005년 건립)
약칭CHA
홈페이지
유니폼
155px155px155px
원정얼터네이트

1 소개

NBA의 프로농구팀. 동부 컨퍼런스 사우스이스트 디비전 소속. 연고지는 샬럿. 호네츠라는 명칭을 가진 구단은 1988년에 창단되었으나 뉴올리언스로 연고지를 옮긴 다음 2013-2014 시즌부터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로 변경되었다. 샬럿에는 2004년에 밥캣츠라는 구단이 새로 창설되어 10년을 보내다 뉴올리언스에 간 호네츠가 펠리컨스로 바뀌자 밥캣츠가 호네츠로 팀명을 다시 사용하기로 했다.

사실 원래 이 동네에 있던 호네츠 구단은 인기가 제법 많은 팀이었다. 그런데 고비에서 결국 우승 도전에 실패한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구단주인 조지 신의 성추문으로 지역에서 평판이 떨어진 것이 컸다. 이 때문에 새 구장 건립에 실패하자, 빡쳐서 그냥 뉴올리언스로 날라 버렸다 지 잘못한 건 생각도 못하고... 졸지에 NBA 팀을 잃어버린 샬럿 주민들은 "우리의 NBA 팀을 돌려줘" 라고 징징댔고, 결국 NBA 사무국이 30번째 팀을 만들면서 그 연고지를 샬럿으로 못박으면서 팀이 생기게 되었다.

팀의 특징은 초대 구단주가 사상 최초의 흑인 구단주였다는 점. 그리고 지금도 그 분이 구단주이니, 이 전통은 이어져 오는 셈이다. 샬럿 주민들도 새 팀을 맞으면서 과거 호네츠가 떠나는 한 원인이었던 새 구장에 대한 건립 약속을 지켜서 2005년 새 구장을 지어줬다.

2 역사

2.1 원조 호네츠

샬럿 호네츠
Charlotte Hornets
1988/89 ~ 2001/02

노스 캐롤라이나 지역은 전통의 농구 라이벌 UNC,듀크를 비롯해 명문 대학 농구팀들이 밀집한 농구 열기가 좋은 곳[1]인데 정작 NBA 팀은 없었다. 이 지역 출신의 사업가인 조지 쉰은 이에 착안해서 NBA 팀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마침내 1988년에 팀이 창단되었다. 당시 홈구장은 샬럿 콜로세움.

호네츠의 원년 시즌 당시를 다룬 하이라이트 비디오 (1989). 팀의 창단 과정과 당시의 반응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창단 초기에는 이 동네에 처음 들어선 NBA팀이라는 점 때문에 제법 인기를 모았다. 팀도 상당히 괜찮은 전력을 만들었다. 초창기에는 쇼타임 레이커스의 스타였던 커트 램비스를 중심으로 팀을 편성하면서 그동안 하위권을 전전해 오다가 1992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인 루이지애나 주립대의 센터 샤킬 오닐과 강력한 라이벌 구도를 만들었던 농구명문 조지타운 출신 1992년 드래프트 전체 2순위 센터 알론조 모닝과 파워포워드이자 1991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출신 LJ 래리 존슨[2] 160cm의 키로 NBA 무대를 누빈 먹시 보그스[3], 3점 슛터인 델 커리[4]등을 앞세워 팀 최초로 5할 승률을 넘김과 함께 플레이오프 진출도 성공했다.

호네츠로서는 매 시즌 20-10을 해주는 엘리트 센터 알론조 모닝을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키우려 했고, 홈구장앞에 무려 동상까지 세워주면서 그 뜻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95-96시즌을 앞두고 벌였던 모닝과의 연장 계약 협상이 끝내 결렬되면서 결국 시즌 개막을 단 하루(!) 앞두고 알론조 모닝을 대형 트레이드를 통해 마이애미 히트로 처분하면서 리빌딩에 들어갔다. 대신 비교적 전력을 공백을 빠르게 메운 편이었는데, 모닝을 주고 받아온 당시 히트의 1옵션이자 3점슛 달인인 글렌 라이스를 축으로 한 끈적한 농구로 변신했고, 여기에 앤소니 메이슨같은 다재다능한 포워드도 있었다. 그리고 여러 번의 트레이드를 통해 다시 배런 데이비스자말 매쉬번을 축으로 한 끈적한 농구를 보여주며, 스타는 없어도 조직력의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팀이었다.[5]

하지만 호네츠의 문제는 팀 전력에 있지 않았다. 꾸준히 팀을 갈아 엎으면서도 매번 일정 이상 전력은 만들어 냈지만, 정작 그들의 적은 외부에 있었다. 1999년부터 구단주인 조지 쉰의 성추문이 터지면서 지역 사회에서 조지 쉰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졌고, 새로운 구장 건설을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졌다. 처음부터 UNC,듀크같은 강력한 경쟁자에 밀렸던 호네츠는 결국 이러한 갈등 속에서 새 구장 건설도 어려워지고, 자신들에 대한 분위기가 썩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식한 호네츠는 연고지를 옮겨 버렸다. 그러나 농구 열기 자체가 죽은 건 아니어서, 결국 10년이 지나기 전 샬럿 밥캣츠가 창단되었다.

2.2 밥캣츠 시절

샬럿 밥캣츠
Charlotte Bobcats

성적은 전형적인 신생팀의 한계를 못 벗어난 약체였다. 나이가 40대인 구단주가 현역 선수들을 이기는 동영상도 나돌정도니...

안습한 나날을 보내다 명장 래리 브라운과 올스타 포워드인 'G-포스' 제럴드 월러스를 앞세워 2009-10 시즌에 팀 역사상 첫 위닝 시즌(44승 38패)과 PO 진출을 이룩했다. 그러나 PO에서는 드와이트 하워드가 이끄는 올랜도 매직에게 0:4 떡실신. 그리고 브라운 감독이 떠나고, 월러스도 리빌딩을 이유로 트레이드시키면서 다시 긴 리빌딩에 들어갔다.

오히려 앞에서도 언급한 그 분이 구단주라는 점이 더 큰 화제거리고, 샬럿 밥캐츠를 아는 사람들은 이 팀에 어느 선수가 있는지는 잘 몰라도 조던이 구단주라는 사실은 안다. 2005년부터 지분에 투자하기 시작한 조던은 2010년 최종적으로 구단의 전체 지분을 매입하며 단독 구단주로 등극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조던은 팀을 구하지 못했다. 마사장의 대표적인 흑역사중 하나인 콰미 브라운으로 대표되는 드래프트 삽질이 밥캐츠에서도 재현되었고, 신인들이나 중견급 선수나 하나같이 헤맸다.차라리 내가 뛸까

그렇게 헤매다가 맞이한 2011-12 시즌, 샬럿 밥캣츠는 NBA 역사상 최악의 팀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직장 폐쇄로 66경기만 치뤄진 2011-12 시즌에서 7승 59패라는 희대의 성적을 기록, 0.106의 승률로 NBA 역대 단일 시즌 최저 승률 기록 경신[6][7]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것. 이미 언론에서는 2012년 NCAA 토너먼트 우승팀 켄터키 대학교와 붙을 경우, 샬럿이 진다는데 한 표를 던지고 있다(...). 그리고 조던도 열이 잔뜩 받았는지 이대로면 팀 팔거라고 징징을 시전중이다(...). 심지어 경기 수가 단축되지 않았다면 대구 동양 오리온스의 32연패를 깰 수 있을 뻔했다는 소문도 퍼졌었다고

이 팀이 재건에 성공하려면 방법은 단 하나, 드래프트 1순위를 뽑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드래프트에서도 가장 높은 확률은 가지고도 2순위가 되었다. 2012년 드래프트가 인재가 많다고 해도 1위 유망주인 앤서니 데이비스와 2위 그룹간의 격차가 매우 컸기 때문에 사실상 리빌딩 시간은 최소 반년 이상 길어졌다고 봐야한다.

결국, 2012 드래프트에서 2픽으로 켄터키 대학 출신의 스몰포워드 마이클 키드길크리스트를 골랐다. 단장도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리빌딩 당시 프런트 출신이자,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前 단장이었던 리치 초(Rich Cho)[8]를 선임하여, 조던이 원하는 리빌딩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할 듯하다.

2012-13 시즌의 최종 성적은 21승 61패. 시즌 내내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올랜도 매직과 함께 동부 컨퍼런스 탈꼴찌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였다. 2012년 11월 27일에 있었던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와의 경기에서는 50점차까지 벌어지며 떡실신당했고 18연패를 기록하기도 하는 등 2012-13 시즌도 그다지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그나마 후반에 조금씩 승을 챙겼고 같은 최하위 팀인 올랜도가 연패를 하면서 아슬아슬하게 꼴찌를 면했다.

2.3 2013-14 시즌

2014 드래프트 대어들을 위해 로스터를 약화시키면서 탱킹을 노리는 구단들이 많아졌으나 구단주님은 이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반대 노선을 걷는다고 선언, 유타에서 공격력이 좋은 센터 알 제퍼슨을 영입하는 등 전력을 보강했다. 작년 전체 2픽이었던 마이클 키드-길크리스트와 올해 4픽이었던 코디 젤러는 아직은 갈 길이 멀었음을 보여주었지만 알젭은 동부 컨퍼런스 유일의 20득점-10리바운드 빅맨으로 활약하고 2011년 드래프티인 켐바 워커가 잘 성장해줌과 동시에 수비에 총력을 기울여 승점자판기 신세에서 탈출, 43승 39패로 다시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는데 성공했다. 마사장님 보고 계십니까

그러나 상대는 시즌 전적 0승 4패에 사우스비치에 머물고 있는 큰 재능에게 61점을 허용했던 마이애미 히트. 마이애미가 빅 3를 결성한 이후 단 한번도 이기지 못한 완벽한 천적이었다. 1차전에서 부상을 당해 제 컨디션이 아니었던 팀의 핵심인 알 제퍼슨의 공백을 메우는데 실패했고, 플옵 진출 팀들중 유일하게 깔끔하게 스윕당하며 시즌을 마쳤다. 꾸역꾸역 플옵 올라갔더니 상대가... 안습

800px
플레이오프 탈락 후 밥캣츠 홈페이지 대문. 10년의 안습한 역사가 끝났다.

2.4 호네츠로 귀환

2013 시즌 이후부터 원조였던 뉴올리언스 호네츠가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라는 이름으로 바꾸자, 이 팀이 과거의 호네츠 이름을 다시 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아무래도 샬럿 호네츠가 훨씬 인지도가 높은게 원인. 구단주 마이클 조던도 호네츠 이름을 다시 쓰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고, 결국 NBA 구단주 전체 회의에서 호네츠 이름 사용이 허가되어, 2014-15 시즌부터 샬럿 호네츠라는 이름으로 시즌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원래 호네츠의 프랜차이즈였던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와의 협의를 통해 현 호네츠는 샬럿 시절의 호네츠 역사를 가져가고, 원래 호네츠 프랜차이즈였던 펠리컨스는 뉴올리언스로 연고지 이전을 한 후의 역사만을 가져가기로 합의함으로써 자칫 잘못하면 개족보가 될 뻔한 관계를 어느 정도 교통정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 소식을 알리는 샬럿 호네츠 트위터

2014년 드래프트 순위 추첨식에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1픽을 차지하면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가 9픽으로 밀려났는데, 이 픽은 2012년 벤 고든과 코리 메거티 트레이드 당시 8픽까지라면 디트로이트가 그대로 쓰지만 9픽 이하부터는 샬럿이 행사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받아왔기 때문에 샬럿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도 2014년 드래프트에서 9픽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거저 얻은 9번픽으로 최소 8픽 안, 매체에 따라서는 5픽 안쪽으로도 예상했던 인사이더 노아 본레를 뽑으면서 2014 드래프트 최고의 승자로 거듭나게 되었다. 디트로이트 감사합니다. 새크라멘토 감사합니다.

가드 포지션의 보강이 필요했기에 유타 재즈의 제한적 FA 고든 헤이워드에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과감한 맥시멈을[9] 질러서 욕을 먹었는데 헤이워드를 놓치기 싫었던 유타가 울며 겨자먹기로 샬럿의 제안에 매치하면서[10] 르브론 제임스, 카멜로 앤써니, 크리스 보쉬 등 대형 FA들에게 가려 관심밖이었던 준척급 FA들이 너도나도 맥시멈을 부르면서 에어컨 리그를 혼돈의 카오스로 몰아넣었다. 그런데 3년 $27.5M 이라는 싼 가격으로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젊은 슈팅가드 랜스 스티븐슨을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팬덤에선 남의 팀은 혼란으로 몰아넣고 자신들은 알짜영입을 한 마갈량을 찬양하는 분위기(...) 사실 단장인 Rich Cho의 능력이다.

야심차게 시작한 2014-15 시즌이었지만 첫 20경기 성적은 5승 15패로 상당히 실망스럽다. 켐바 워커와 랜스 스티븐슨이 둘 다 볼을 가지고 플레이해야 하는 선수라 모아놓고 보니 그다지 좋지 않은 조합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외곽슈팅과 볼배급능력이 좋았던 조시 맥로버츠의 이탈 때문에 알젭의 위력이 감소한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결국 플레이오프권에는 들어갈거라는 시즌 전 예상하고는 달리 33승 49패로 동부 11위에 그치고 말았다.

2.5 2015-16 시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던 랜스 스티븐슨를 클리퍼스로 트레이드, 드래프트 9픽으로는 위스콘신 대학교의 4학년 빅맨 프랭크 카민스키를 선택했다. 그리고 포틀랜드의 주전 스몰포워드 니콜라스 바툼과 썬더의 벤치 멤버였던 제레미 램을 트레이드로 데려왔고, FA가 된 제레미 린을 영입했다.

개막 전부터 MKG가 어깨 부상을 당하며 시즌아웃을 당하는 등 악재가 있었지만 슈팅가드로 전업에 성공한 바툼과 벤치멤버인 제레미 콤비의 선전에 힘입어 동부 상위권까지 치고 올라가는 듯 했지만...주포 알젭의 부상이 길어지면서 12월과 1월에 접어들면서 연패가 길어져 10위 밖으로 내려앉아버렸다.

그나마 2월 시점에서 호재인것은 시즌아웃인줄 알았던 마이클 키드 길크리스트가 2월에 복귀했다는 것과 부상 전력이었던 알 제퍼슨, 코디 젤러등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마이클 키드 길크리스트 복귀후 선전으로 5할을 맞춰 플레이오프 가시권에 다시 들었는데 마이클 키드 길크리스트가 시즌 아웃되었다. 다시 부상 악재로 고생하게된 셈.

골든스테이트와의 홈경기에서 샬럿 호네츠의 레전드이자 스테판 커리의 아버지인 델 커리[11]를 위해 Dell Curry's Night 행사를 열어 그의 팀을 위한 헌신에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스테판 커리는 아버지의 행사로 들뜬 샬럿을 초토화 시키면서(...) 골든스테이트의 연승을 이어나갔다.

샬럿 호네츠의 구단주 마이클 조던은 이 행사를 계기로 델 커리의 호네츠 구단내에서의 비중을 점점 늘려갈 생각인 듯 하다. 국내 농구팬들은 마사장이 스테판 커리를 포섭하기 위한 물밑작업이 아닌가라며 반농담조로 추측하는 중.

3월 5일까지 좋은 성적으로 팀순위가 6위까지 올라갔다!! 다만 9위 시카고와 경기차가 2.5경기차 이기에 안심하기엔 이르다.

정규시즌 최종성적은 48승 34패. 동부에서 3~6번시드 다툼을 하던 샬럿 호네츠, 보스턴 셀틱스, 마이애미 히트, 애틀란타 호크스가 모두 똑같은 성적을 거두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결국 타이브레이커에서 밀려 6번시드가 되었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 상대는 3번시드 마이애미 히트. 상대전적은 동률이지만 마이애미가 디비전 리더자격으로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가져간다.

원정 1,2차전을 압도당하며 플레이오프 연패기록이 12연패로 늘어났지만 홈에서 열린 3차전부터 신예 빅맨 프랭크 카민스키의 기용, 제레미 린이 잘해주면서 내리 3,4,5차전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고, 6차전 홈에서 끝낼 분위기였다. 하지만 부상을 달고 뛰던 니콜라스 바툼이 6차전 경기 도중 다시 부상이 악화되어 경기를 전부 뛸수 없었고, 켐바 워커와 알 제퍼슨이 잘해줬지만 제레미 린이 부진에 빠졌으며 드웨인 웨이드의 클러치샷이 연속으로 작렬하는 바람에 7차전 원정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7차전에서 완패하며 아쉽게 2라운드 진출에 대한 꿈을 접어야했다.

이 경기에서 드웨인 웨이드는 마이클 조던의 플레이오프 블록 기록을 그의 눈 앞에서 갱신했고, 7차전 도중 조던이 깊게 화가난 모습이 중계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내가 뛸까

오프시즌에는 니콜라스 바툼과 5년 1억 2000만 달러 재계약을 맺었고, 제레미 린과 알 제퍼슨이 각각 브루클린 네츠, 인디애나 페이서스로 이적한다.

3 2016-17 시즌 선수단

2016-17 시즌 샬럿 호네츠 선수단
감독 스티브 클리퍼드
코치 패트릭 유잉, 스티븐 사일러스, 밥 웨이스, 팻 딜레이니, 브루스 크루처, 스티브 헤첼
가드 3.제레미 램 7.라몬 세션스 9.애런 해리슨 15.켐바 워커 22.브라이언 로버츠
포워드 2.마빈 윌리엄스 14.마이클 키드-길크리스트 50.크리스찬 우드핸스브로
센터 44.프랭크 카민스키 55.로이 히버트
가드-포워드 5.니콜라스 바툼 12.트레번 그레이엄 21.마르코 벨리넬리
포워드-센터 00.스펜서 호즈 40.코디 젤러

4 영구결번

샬럿 호네츠의 영구결번
13. 바비 필스

13.바비 필스 : 샬럿 호네츠의 캡틴이었으나 교통사고로 사망.[12] 불과 3년밖에 뛰지 않았음에도 불구, 뛰어난 리더십과 활발한 지역사회 봉사 활동으로 모두의 귀감을 받는 그야말로 진정한 캡틴이었다. 사후 영구결번. "Michael, WHO?"라는 도발로도 유명.

5 기타

샬럿 호네츠라는 이름의 팀(뉴올리언스로 이전한 호네츠도 포함)은 리그 최고의 슈퍼스타들과 인연이 있는 팀이다. 마이클 조던이 현재 구단주로 있고, 뉴욕 닉스의 영구결번 패트릭 유잉이 코치로 재직하고 있으며, 과거 전신 호네츠 시절 코비 브라이언트를 드래프트에서 선택했었고[13], 스테판 커리의 아버지 델 커리가 오래도록 뛴 팀이기도 하다. [14]
  1. 단, 이들 대학은 주의 동쪽 끝에 위치한 주도 레일리와 채플힐,더럼,윈스턴-세일럼 등에 위치해있다. 샬럿은 정반대인 주의 서쪽 끝에 위치.
  2. UNLV 출신에 생긴 것도 조폭스타일의 터프가이 파워포워드였다. 득점을 성공시킨 뒤 L자 모양의 사인을 하기 때문에 Big L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한창 주가를 날렸을 땐 미 운동화 메이커 컨버스(Converse)와 전속계약을 통해 할머니 분장으로 열연한 찍은 광고가 대박을 쳤고 여기서 연기했던 '할머니(Grandmama)'로도 불렸다.
  3. 역대 최단신 선수다. NBA 초창기에도 180대가 작은 키였단 걸 생각하면 (포인트가드로 슈퍼스타가 된 최초의 인물이며 5,60년대를 주름잡은 밥 쿠지가 185) 평균신장이 2미터 정도였던 90년대에 이 키로 주전으로 뛴것 자체가 엄청난 것. 170이하인 선수는 그 외 스퍼드 웹, 얼 보이킨스도 있지만 보그스처럼 플옵권 팀에서 주축선수로 뛴 선수는 없었다. 175이하로 범위를 넓이면 휴스턴 로케츠의 레전드 캘빈 머피가 있는데(175) 이분은 심지어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됐다!
  4.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의 가드 스테판 커리의 아버지이다.
  5. 안타까운 것은, 이때 호네츠의 주전 슈팅가드이고 팀의 리더로써 활약했던 바비 필스가 시즌도중인 2000년 1월 30일 눈길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던 것.
  6. 종전 기록은 1972-73 시즌의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9승 73패 승률 0.110
  7. 역대 최저승수는 1947-48 시즌 프로비던스가 기록한 6승으로 11-12 시즌 샬럿도 간발의 차이로 이 기록만큼은 깨지 못했다.(...) 참고로 이시즌 프로비던스는 6승 42패로 승률은 0.125였다.
  8. NBA 최초의 아시안계 출신의 단장이다. 이름을 봐선 언뜻 재미교포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미얀마계 이민 2세다.
  9. NBA는 연차별로 연봉 한도가 정해져 있는데 각 연차별 최고로 받을 수 있는 연봉액을 맥시멈이라 칭한다.
  10. 제한적 FA는 타 구단이 제시한 조건과 동일한 조건으로 현 소속 구단에서 매치하면 현 소속팀에 남는 제도이다.
  11. 전국적인 스타는 되지 못했지만 선수변동이 심했던 90년대의 샬럿에서 가장 오랫동안 뛰었고, 팀 내 득점 상위권을 독식하고 있다. 현재도 샬럿에 머무르면서 중계 등을 통해 구단과 관계를 맺고 있다.
  12. 이게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데, 이 교통사고가 하필이면 불법 자동차 레이싱(분노의 질주에 나오는 그 자동차 경주를 생각하면 된다.)을 하다가 사망하게 된것이다. 원래 필스는 사생활이 깨끗한 선수로써 이런 일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을 테지만 당시 팀의 성적이 좋지 않아서 주장으로서 책임감때문에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당시 공동주장을 맡고 있던 데이비드 웨슬리가 레이싱을 제안했을 때 안타깝께도 필스는 수락하고 말았고, 결국...이 일로 필스에게 자동차 경주를 제안했던 웨슬리 본인도 심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13. 드래프트 이후 바로 LA 레이커스의 디박과 트레이드 되었다. 코비가 호네츠의 모자를 쓴 드래프트 당시의 사진들은 남아있다.
  14. 델 커리가 스테판 커리가 어린 시절 샬럿에서 오래 머물러서 스테판 커리의 고향은 보통 샬럿으로 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