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피어스


보스턴 셀틱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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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네츠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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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위저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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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시절.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No. 34
폴 피어스(Paul Anthony Pierce)
생년월일1977년 10월 13일
출신학교캔자스 대학교
201cm (6 ft 7 in)[1]
체중107kg (235 lb)
포지션스몰포워드
드래프트1998년 드래프트 1라운드 10순위
보스턴 셀틱스에 지명
소속팀보스턴 셀틱스(1998~2013)
브루클린 네츠(2013~2014)
워싱턴 위저즈(2014~2015)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2015~)
등번호34번, 65번
수상내역NBA Finals MVP (2008)
NBA All-Star 10회 (2002-2006,2008-2012)
All-NBA Second Team (2009)
All-NBA Third Team 3회 (2002,2003,2008)
NBA All-Rookie First Team (1999)
NBA Three-Point Shootout champion (2010)
2008년 NBA 파이널 MVP
토니 파커폴 피어스코비 브라이언트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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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선수. 주요 포지션은 스몰 포워드이며 보스턴 셀틱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셀틱스의 암흑기와 부흥기를 함께 경험한 몸에 녹색 피가 흐르는 남자. 별명은 The Truth 샤킬 오닐이 지어준 별명이다. 국내매니아들은 저 별명을 인용해서 진실이, 진실이횽, 진실이 횽아 등의 애칭으로 부르고 있다.

2 고등학교 & 대학시절

고등학교 시절, 팀을 주 챔피언으로 이끈 피어스는 올 맥도날드 아메리칸 게임에 선발된다. 그때 같이 선발된 선수로는 빈스 카터, 케빈 가넷, 스테판 마베리, 앤트완 재미슨 과 같은 쟁쟁한 선수들이 있었다.

피어스는 대학농구의 명장 중 하나였던 로이 윌리엄스가 지휘봉을 잡고 있던 캔자스 대학에 입학했다. 당시 대학 최고의 빅맨중 하나였던 레프 라프렌츠와 함께 팀을 이끌면서 팀을 Big 12 토너먼트에 우승시키면서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꼬박 3년을 뛴 피어스는 1998년 NBA드래프트에 참가신청을 하게 된다.

3 파란만장한 NBA 경력

그러나 피어스는 의외로 전체 10순위라는 낮은 순위로 보스턴에 지명된다. 팀 동료인 라프렌츠가 전체 3순위로 지명된것과는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 더군다나 마이클 올로워캔디라는 성씨도 이상한 녀석이 떡하니 전체 1순위 지명인것도 그렇고, 또 어디 독일에서 갑툭튀한 녀석이 자기보다 높은 순위로 지명되자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했을 것이다. 이때 피어스는 인터뷰를 통해 "지금 날 지나친 9개팀은 반드시 땅을 치고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 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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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보스턴은 NCAA 켄터키의 감독으로 주가가 오른 릭 피티노를 감독으로,켄터키에서 뛰었던 중심선수들과 비슷한 선수들로 로스터를 꾸렸고,피어스 이전에,켄터키 출신의 스윙맨 론 머서와 포워드 앤트완 워커로 팀의 공격중심을 잡아놓은 상태였다.하지만 드래프트에서 운좋게 피어스를 뽑게 되었고,머서-피어스-워커를 동시에 선발로 기용하면서 나름 젊은 트리오로 각광받기도 하였으나,세 사람의 조합이 아주 좋지는 않았고 또한 머서가 연봉문제로 팀과 불화를 빚으면서 결국 트레이드.보스턴은 이후 익히 알려진 피어스-워커의 '다이나믹 듀오'를 중심으로 팀을 리빌딩하게 된다.

신인시즌, 피어스는 평균 16.5점. 6.4리바운드 2.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올 루키 퍼스트팀에 뽑혔다. 그러나 당시 팬들의 관심은 하늘에서 예술을 펼치는 빈스 카터와 땅에서 예술을 펼치는 제이슨 윌리엄스의 차지였다. 아마도 팬들의 주목을 많이 받지 못하는 피어스의 안습 커리어는 여기서부터 시작된 듯.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피어스는 계속해서 자신의 기량을 향상시켰다. 기존에 있었던 앤트완 워커가 점점 3점슛만 던져대면서 서서히 망가져가는 사이 피어스는 견실할 플레이로 보스턴에 리더이자 팬들의 새로운 희망이 되었다. 그런데 3년차 시즌에 위기가 찾아왔다.

피어스는 2000년 11월 25일. 한 클럽에서 괴한이 휘두른 칼에 찔려 얼굴, 목, 등, 폐를 포함해 무려 11번이나 칼빵을 맞았다. 보스턴 구단과 팬들은 그야말로 초상집이었다. 그것도 시즌개막이 한달 앞이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피어스는 한달후에 바로 개막전을 뛰었고, 그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전 경기를 다 뛰었다. 그리고 이 시즌에 피어스는 래리 버드이후 어느 보스턴 선수도 하지 못한 시즌 2천득점을 기록했다. 그 많은 칼빵을 맞고 선수생활을 할수 있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선수가 그야말로 날아다닌 것. 팬들은 그에게 존경심을 표했다. 당시 클럽에 함께 있었던 동료 토니 베티와 그의 동생이 피어스를 안전하게 구한후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았더라면 큰일났을 것이다. 다행히도 급소를 모두 피했다고. 억세게 운이 좋은 사나이다.[2]

01-02시즌. 보스턴은 49승 33패를 기록하며, 92-93시즌 이후 오랜만에 5할승률을 기록하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 단숨에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올라가는 돌풍을 일으켰다. 여기서 피어스는 컨파에서 뉴저지 넷츠를 상대로 명승부를 펼쳤는데, 컨퍼런스 파이널 3차전에서 그는 28점을 넣었는데 이중 19득점을 4쿼터에 몰아넣었다. 참고로 보스턴이 4쿼터에 기록한 득점은 21득점. 혼자서 팀의 4쿼터 득점을 다 해먹은 것이다. ㅎㄷㄷ 폴 피어스를 4쿼터만 되면 주시할수밖에 없는 건 바로 이때가 시초였다. 하지만 피어스의 이런 미칠듯한 퍼포먼스에도 불구하고 팀은 2승4패로 탈락했고, 다음 시즌에도 뉴저지와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 맞붙었으나 이번에는 4전전패로 맥없이 탈락했다. 그리고 보스턴은 다시 빠르게 몰락해가고 있었다.

6성 슈가중 한명으로 꼽힐 정도의 활약을 하고[3]03-04, 04-05시즌에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모두 1라운드 탈락이었다. 05-06시즌과 06-07시즌에는 아예 플레이오프 진출도 실패했다. 피어스는 팀이 패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팀에 대한 불만이 커질대로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피어스는 일단 별다른 움직임없이 한번 더 참았다. 2007년 드래프트 순위 발표를 앞두고,당시 대학 최고의 센터 그렉 오든의 드래프트 참여가 확정되면서 06-07 시즌 24승 58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둔 보스턴이 1픽을 받고 오든을 뽑아 팀이 강해질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지만, 애꿎게도 당시 보스탄의 픽순위는 톱3를 건너 5픽으로 드래프트 순위마저 망.[4]

피어스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할 수밖에 없었고, 팀에 전력강화를 하거나 자신을 트레이드시켜달라고 요구했다. 일단 피어스를 안심시키기 위해 보스턴은 시애틀과의 트레이드를 단행하며 만렙슈가 레이 알렌을 데려왔다. 알렌과 피어스. 6성슈가 중 2인이 아직 전성기가 안 지난 상태에서 만난 것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흥분한 가운데, 이번엔 미네소타와의 초대형 트레이드로 외로운 늑대 케빈 가넷을 영입한다.

그 결과 팀 전력은 단숨에 우승후보로 급부상했다. 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피어스는 여러가지 부상전력이 있고, 레이 알렌은 양쪽 발목을 수술한 전력이 있고, 가넷은 새로운 팀에 적응이라는 과제가 남아있었다. 그리고 이 둘을 데려오느라 많은 선수들이 팀을 떠났다.

하지만 보스턴은 66승 16패를 기록하며 NBA전체 승률 1위를 기록했다. 빅3는 서로의 역할에 매진하며 서로를 받쳐주었고, 팀에 있던 젊은 선수인 라존 론도와 캔드릭 퍼킨스 리온 포우, 글렌 데이비스, 토니 알렌 등도 제 몫을 해주며 빅3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그리고 오프시즌동안 영입한 제임스 포지와 에디 하우스, 그리고 시즌 중에 영입한노장 P.J 브라운과 가넷의 고향별 형제샘 카셀까지 영입하면서 로스터는 신구 조화를 잘 이루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1라운드에서 의외로 애틀란타에게 7차전까지 가는 접전끝이 간신히 승리했고, 2라운드에서도 르브론 제임스가 이끄는 클리블랜드에게도 7차전까지 가는 접전끝에 승리하는 등 험난한 플레이오프를 치뤘다. 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를 6차전까지 가면서 승리. NBA 파이널에 오랜만에 올라가게 된다. 하지만 워낙 플레이오프 경기를 많이 하고 올라온 탓에 반대로 승승장구하며 올라온 LA 레이커스에 비해 여러모로 불리했다. 단 한가지 유리한점이라면 1차전을 홈에서 치룬다는 것 정도?

하지만 이런 우려를 깨고 홈에서 2경기를 승리한 보스턴은 LA원정에서도 2패뒤 1승을 했고, 홈에서 열린 6차전을 승리하면서, 통산 17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피어스는 1차전때 무릎을 다쳐 한때 락커룸으로 퇴장했으나 다시 복귀하는 투혼을 발휘하고, 팀의 에이스로써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이 공로로 피어스는 파이널 MVP를 차지했다.

08-09시즌에는 케빈 가넷의 부재로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올랜도 매직에게 발목을 잡혀 탈락하고 말았다. 09-10시즌에는 라쉬드 월라스까지 영입하면서 다시한번 우승에 대한 집념을 보였지만 정규시즌 팀 성적이 오히려 떨어지는 모습이 보여 "이제 보스턴도 끝 아니야?" 라는 어두운 전망까지 있었지만 보스턴은 근성으로 파이널까지 올라갔지만 레이커스에게 우승컵을 내주고 말았다. 10-11시즌에도 좋은 모습을 보이며 플레이오프까지 올라갔으나, 정규시즌동안 주축선수들의 부상과 트레이드로 인해 팀이 어수선한 상태였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뉴욕닉스를 4전전승으로 개발살냈지만 2라운드에서 마이애미 히트에서 1승4패로 패배 탈락하고 말았다. 폴 피어스는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에서 변함없는 활약을 펼쳤지만 팀의 플레이오프 탈락을 막지는 못했다.

2000년대 보스턴의 상징과도 같았던 피어스조차도 팀 전력이 점점 약해지면서 2013년 이후 바이아웃될거란 루머가 돌고 있어 팬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던 찰나에.. 우려가 현실로 되었다. 2013년 6월 27일, 보스턴 셀틱스브루클린 네츠 사이의 3대 7 (드래프트 지명권 포함) 트레이드가 발표되었고, 폴 피어스와 케빈 가넷, 그리고 제이슨 테리가 브루클린 네츠로 이적하게 되었다. 아무리 리빌딩을 위한 포석이라지만 선산의 굽은 나무처럼 지난 15년간 셀틱스를 지켜온 영웅에 대한 합당한 대접이 아니라는 것에 팬들의 중론이 모아지는 중. 하킴-유잉 클럽 가입을 축하합니다. 보사구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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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에서 1년을 뛴 다음 2014년 여름에 워싱턴 위저즈와 2년 계약에 합의했다.오바마, 존 월 내가 왔다. 브루클린, 워싱턴에서 뛸 때 플레이오프에서 연속으로 토론토 랩터스와 만나 활약을 보여줘 두번 모두 1라운드에서 탈락시키는데 공헌, 토론토의 웬수가 되었다.

애틀란타 호크스와의 세미파이널 3차전에서 버저비터로 워싱턴의 승리를 만드는 등 베터랑의 위엄을 보여주고 있다. 6차전에서도 극적인 동점포를 꽂아넣나 했지만 이번에는 간발의 차이로 무효 처리되면서 탈락했다. 플레이오프가 끝난 뒤에는 LA 클리퍼스와 계약하게 되었다.말년에 저니맨이라니!

클리퍼스에서는 시즌초 재앙적인 슛감으로 클리퍼스가 5할승부만 간신히 하는데 벤치멤버들과 함께 일조했지만 1월들어 살아나며 클리퍼스의 전력에 도움이 되고 있다.

4 플레이스타일

언뜻 그의 플레이를 보면 정말 대충대충 플레이하는것 같지만아저씨농구 실제로는 리그에서 가장 쉽게 득점하는 선수중 하나다. 화려한 기술을 구사하지는 않지만 의외로 상당한 순간스피드와 딱 봐도 상당한힘을 활용한 돌파능력도 수준급이며 돌파 이후 자유투를 얻어내는 능력도 리그에서 상위 클래스에 해당된다. 또한 3점슛도 준수한 편이라 그를 상대하는 선수는 골치가 많이 아플것 같다. 수비능력은 많이 가려지는 부분이지만 평균이상정도는 하는편.

다만 공식신장인 2m1보다 작은 1m98cm이다보니, 자기보다 더 크고 빠른 스몰포워드를 막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당장 동부만 하더라도 괴수 르브론이 있고, 카멜로 라든지 서부에 듀란튤라 등등 모두 그보다 큰 선수들이다.

또한 강심장이다 보니 4쿼터 막판 접전일때 피어스를 냅뒀다간 상대팀은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여러차례 중요한 슛을 성공시켜서 팀을 구해내기도 했다.

5 트리비아

2002년 세계농구 선수권대회에 국가대표로 뽑혔으나, 당시에는 미국 국가대표팀이 슬슬 몰락테크를 밟던 중이었다. 이때 미국팀은 6위라는 처참한 성적만을 남겼다. 그것도 미국땅에서 열린 대회였는데도 말이다. 이때 피어스는 9경기동안 19.8점을 기록하며, 정말 열심히 뛰었지만 팀은 그 모양 그꼴(...)

나이키의 모델이지만, 실상은 르브론 제임스코비 브라이언트에게 한참 밀리고, 최근에는 케빈 듀란트에게까지 밀린다. 본인 시그내쳐 슈즈도 가지고 있는데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지경.(...) 미국에서도 잘 팔리지 않는지 그의 시그내쳐 슈즈는 주로 아동용으로 많이 나오는 편이라고 한다.

2010년 11월 3일에 밀워키 벅스전에서 2만득점을 돌파함으로써 존 하블리첵, 래리 버드에 이어 세 번째로 통산 2만득점을 기록한 보스턴 선수가 되었다. 그동안 팀을 위해 많은 헌신을 했기 때문에 은퇴하면 그의 번호 34번은 영구결번이 100%유력 그와 동시에 보스턴은 쓸 백넘버가 없어진다 현재의 셀틱 프라이드를 지키는 보스턴의 심장이라 할수 있었지만....
  1. 이건 NBA공식신장. 실제 맨발 키는 6 ft 6 in = 198.12cm
  2. 보스턴 셀틱스 항목에 나와 있지만, 셀틱스의 암흑기 원인이 되었던 렌 바이어스,레지 루이스의 요절 사태를 한번 더 겪을 뻔했다. 그래서 피어스에 대한 셀틱스 팬들의 애정은 상상을 초월한다.
  3. 200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슈팅 가드 6명. 멤버는 코비 브라이언트, 트레이시 맥그레디, 빈스 카터, 앨런 아이버슨, 폴 피어스, 레이 알렌이 꼽힌다.
  4. 2007년 드래프트에서는 포워드 제프 그린을 지명했으나 직후 레이 알렌 트레이드로 시애틀행. 그린은 2011년에 다시 보스턴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