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1766년 ~ 1779년 (향년 14세)
홍국영의 희생양
본관은 풍산. 홍낙춘과 우봉 이씨의 딸. 홍국영의 여동생. 궁호는 숙창. 원빈 홍씨는 조선 정조의 첫 번째 후궁이다. 홍국영의 여동생이다. 정조의 정비 효의왕후에게서 자식이 없자 후사를 잇기 위해 1778년(정조 2년) 6월, 13세의 어린 나이[1]에 간택되었다. 14살 때인 1779년(정조 3년) 4월 16일, 관례를 치렀다는 기록이 있어 정조와의 초야는 이 뒤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 달 뒤인 5월, 갑작스럽게 죽었다.
원빈 홍씨의 묘소인 인명원[2]은 1946년에 고려대학교에 매입되었고, 1950년 6월 13일 서삼릉으로 이장되었다. 이후 고려대학교에서는 애기능 주변으로 이공계 학과들을 이전 및 신설하였다. 고려대학교에서는 이 무덤이 있던 곳을 애기능이라고 부르고, 자연계 캠퍼스를 애기능 캠퍼스라는 별칭으로 부른다.
야사에 따르면,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정조와 합궁을 한 후 출혈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고 한다. 관련된 드라마에 이 이야기가 차용될 때가 있다.
2 효의왕후와의 갈등
원빈 홍씨는 조선 역사상 삼간택과 가례의 절차를 거쳐 무품빈으로 입궁한 최초의 후궁이다. 빈호에도 정실을 뜻하는 "으뜸 원" 자를 써서, 왕비인 효의왕후 김씨의 심기를 건드렸다. 원빈 홍씨(숙창궁)의 조현례 과정을 그린 《숙창궁입궐일기》가 전하는데, 이 작품에서 효의왕후는 더위를 핑계로 원빈 홍씨의 인사받기를 며칠이나 미루는 모습을 보인다. 또, 홍국영은 여동생 원빈 홍씨의 죽음이 효의왕후 때문이라고 판단, 효의왕후의 궁녀들을 문초하였고 야사에 의하면 효의왕후를 독살하려다 발각돼 몰락하였다고 한다.
3 가계
4 원빈 홍씨가 등장하는 작품
드라마의 조기종영으로 정작 원빈이 된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홍국영의 여동생으로만 나오다가 종영했다.
실제 원빈 홍씨는 13세의 어린 나이에 간택되었으나, 현대적 정서를 고려해서인지 이 작품에서는 방영 당시 32세였던 배우 황금희가 연기하였다. 당초 황금희는 영조의 후궁인 숙의 문씨 역에 캐스팅되었는데, 정순왕후와 화완옹주와의 악역 캐릭터 유사성 문제로 이 배역이 삭제되면서 대신 원빈 홍씨 역으로 등장한 것(...)
히로인인 의빈 성씨와 효의왕후가 선역으로 설정된 상황에서 원빈 홍씨까지 선역으로 설정하면 극 진행이 루즈해질 것이라 판단한 것인지, 악역으로 등장한다. 의빈 성씨에게 질투심을 품고 괴롭히거나 뺨을 때리는 등 매우 악랄한 성품으로 묘사했다.(실제 역사에서 의빈 성씨와 원빈 홍씨는 만난 적이 없다)
실제 역사에서는 임신한 적도 없는데, 극중에서는 상상임신을 했고 그걸 숨기고 실제 임신인 척 하려다가 들켜 효의왕후에게 털린다. 죄를 용서받고자 효의왕후에게 석고대죄를 하다 병을 얻어 죽음으로서 퇴장했다. 안습. 오히려 이 불쌍한 인물을 맨날 천날 털어대는 효의왕후가 더 악해 보일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