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수목드라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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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의 길 메인 테마.
현존하는 MBC 최후의 정통사극.
1998년 4월 15일부터 8월 13일까지 MBC에서 4개월간 방영한 사극. 조선왕조 500년 시리즈 이후 대하소설 등을 사극화[1]하는 것에서 탈피하여 오랜만에 정통사극으로 돌아온 드라마이다. (물론 같은 제목의 책은 있으나 드라마 소설일지도?) 34부작으로 조기종영되었다.
사실 대왕의 길이 탄생한 것은 옆동네에서 방영하던 용의 눈물이 그야말로 사극 역사상 공전절후의 시청률을 기록했기 때문에 이에 자극받았던 것이다. 거기다가 당초부터 MBC가 매우매우 좋아하던 사골소재인 영, 정조 시대를 다루게 된 것.여기도 용의 눈물처럼 부자가 서로 갈구네?
임충이 대본을, 소원영이 연출을 맡았다. 당초에는 영조->사도세자->정조로 이어지는 장기간에 걸친 프로젝트의 하나였으나, 시청률의 저조로 이어지지 못하고 조기종영 되었다. 그 나머지는 이후 홍국영 및 이산으로 재현되었다. 하지만 홍국영도 40부작으로 조기종영 크리
박근형이 영조로 출연하여 폭풍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하지만 1부에서는 경종 때라 김용림의 치마폭에 숨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메인 주인공 사도세자에는 작가 임충의 자제인 임호가 출연했다. 이 작품에서 사도세자는 한중록을 참조하여 다소 정신이상 증세를 보여주지만 한편으로는 노론을 제압하고 개혁을 단행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기도 한다.[2] 혜경궁 역에는 홍리나.
특이한 출연자를 한 사람 소개하자면 김수미가 사도세자를 훈육한 소론계 상궁으로 출연하는데, 출궁당한 이후에는 남자처럼 수염을 붙이거나, 상상이지만 아들뻘인 이진우(김일경 역)와 붕가붕가까지 하는 엽기 장면을 선사한다.[3] 원래 계획에는 정조시대까지 안배를 하고 있었기에, 홍낙춘, 홍국영 부자도 출연한다. 초기에는 많은 비중을 가지고 있었으나, 조기종영 탓에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안습...
윤손하의 사극 데뷔작이기도 하다. 권력을 얻기 위해 자신이 낳은 옹주와 다른 집 아들을 바꿔치기하려고까지 하고(결국 성공하진 못했지만) 사도세자를 모함하는 영조의 후궁 숙의 문씨 역으로 출연했다. 악역연기가 비교적 호평을 받았다.
극 중간에 화완옹주가 사도세자를 사모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런 설정이 나온 것은 나중에 화완옹주가 세손(정조)를 모해하는 한 이유가 될 것이 아닌가 추측되지만, 조기종영 덕분(?)에 알 수 없게 되었다.[4]
결국 시청률 저조로 34회를 마지막으로 종영되었다. 34회는 뒤주 속에서 사도세자가 죽고, 정적 김상로가 그 소식을 듣고는 껄껄 웃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영조는 세자가 죽은 뒤에야 김상로에게 속았음을 깨닫게 된다. 요즘엔 영조가 이게 다 김상로, 홍계희 때문이다를 시전한 것 자체가 정조 보기 민망했던 영조의 구차한 변명으로 보지만 말이다.
종영관련 일화를 하나 소개하자면, 종영후 시청자들이 '왜 조기종영하냐'고 항의하자 담당PD는 그러면 방송할 때 잘 좀 보지...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요즘도 시청률에 따라 연장 및 조기종영의 폐해가 큰데, 거기에 대한 좋은 경종이 될 것이다. 요즘은 저주받은 걸작으로 격이 상승하였다.
이덕일에게 오염되기 이전의 영, 정조 관련 마지막 사극이다.[5] 궁중어를 살리면서도 영조의 심리나 말을 잘 묘사한 대사들도 수준급. 이후로는 이덕일 사관이 떡칠된 사극[6]이 지금껏 판을 치고 있다. 이산도 예외가 아니다.[7]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이 번역, 보급되기도 전의 사극이라서 고증오류도 일부 존재하고,[8] 위에 보듯이 사도세자가 노론 개혁을 꿈꾸는 세자라는 둥 역시나 깨지는 묘사도 없진 않다.
아리랑TV에서 2005년에 "King of the Wind"라는 제목으로 재방송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 인터넷에 남아 있는 대왕의 길의 동영상은 대부분 아리랑TV 자막이 달려있다.
- ↑ '일출봉', '미망' 등
- ↑ 이덕일이 '사도세자의 고백'을 출판하기 바로 전이다.
- ↑ 이진우가 맡은 김일경은 해당 장면의 극중 시점에서 이미 죽은 사람이다. 참고로 김일경은 역사적으로 볼 때 영조가 즉위하자마자 참수당했다.
- ↑ 사실 한중록에 화완옹주가 사도세자의 처소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둘이서만 있었다는 기록이 몇몇 존재한다. 이를 차용한것.
- ↑ 실제로 이덕일이 자신의 칼럼을 엮어서 펴낸 책인 "역사에게 길을 묻다"에서는 아예 대왕의 길에 대한 파트를 하나 할애해서 사극과 관련된 자기 생각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 ↑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정조암살미스터리 - 8일과 한성별곡. 독살 떡밥만 빼면 수작이지만 애초에 독살, 암살 드립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니..
- ↑ 그래도 독살설은 안 집어넣은 게 어디냐..
- ↑ 드라마 마지막회에 사도세자의 자녀를 소개하면서 4남 3녀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5남 3녀. 요절한 정조의 동복형 의소세손의 존재가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