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농구 현재 감독 | |||
추일승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 이상민 (서울 삼성 썬더스) | ||
조동현 (부산 kt 소닉붐) | 문경은 (서울 SK 나이츠) | ||
유재학 (울산 모비스 피버스) | 김승기 (안양 KGC인삼공사) | ||
김영만 (원주 동부 프로미) | 유도훈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 ||
김 진 (창원 LG 세이커스) | 추승균 (전주 KCC 이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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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이 팀의 영구결번[1]으로 지정되고
감독도 된다.
서울 SK 나이츠 감독 | |
문경은(文景垠) | |
생년월일 | 1971년 8월 27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학교 | 광신상고 - 연세대학교 |
포지션 | 스몰 포워드 |
신체사이즈 | 190Cm, 92Kg |
프로입단 | 1994년 삼성전자 농구단 입단 |
소속팀 | 삼성전자/수원 삼성 썬더스 (1994~2001) 인천 SK 빅스/전자랜드 블랙슬래머 (2001~2006) 서울 SK 나이츠 (2006~2010) |
국가대표팀 | 1991 고베 ABC 1993 자카르타 ABC 1994 캐나다 세계선수권 /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1995 서울 ABC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리야드 ABC 1998 그리스 세계선수권 / 방콕 아시안게임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2003 하얼빈 ABC 2005 도하 ABC |
수상내역 | 90-91 농구대잔치 신인상 농구대잔치 베스트 5 3회 (92~94) KBL 베스트 5 2회 (98, 02)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은메달 1997 리야드 ABC 우승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은메달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 |
지도자 | 서울 SK 나이츠 감독 (2011~) |
2003~2004 한국프로농구 올스타전 MVP | |||||
마르커스 힉스(대구 동양 오리온스) | → | 문경은(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 → | 찰스 민렌드(전주 KCC 이지스) |
2012~13 한국프로농구 감독상 | |||||
전창진(부산 kt 소닉붐) | → | 문경은(서울 SK 나이츠) | → | 김 진(창원 LG 세이커스) |
서울 SK 나이츠 영구결번 |
No. 10 |
1 개요
KBL 역대 최고의 3점 슈터
서울 삼성 썬더스 -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 서울 SK 나이츠에서 뛰었던 농구선수이자 감독. 등번호는 14번(삼성) - 10번(SK 빅스 - 전자랜드 - SK 나이츠)
13시즌 동안 프로무대에서 '람보슈터'라는 별명과 함께 수려한 용모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스타였으며, 프로 통산 610경기에 나서 9347점을 기록하여 1위 서장훈, 2위 추승균에 이어서 통산 득점 3위에 올랐다. 하지만 서장훈이 13,000점대라는 넘사벽 기록과 추승균도 10,000점을 넘어간 것과는 달리 문경은은 끝내 10,000점을 넘어가지 못했다. 전공인 3점슛은 1669개로 프로통산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통산 3점슛 성공률은 39.5%.
2011~2012 시즌부터 SK 나이츠의 감독대행이 되었으며, 시즌 후 SK 나이츠의 정식 감독으로 승격했다. 계약기간은 총 3년. 2015년에 재계약에 성공했다. 그리고 망했다
2 선수 생활
2.1 프로 이전
원래는 센터로서 플레이하던 선수였다. 하지만 고교시절 190cm에서 더 이상 키가 크지 않자 스몰 포워드로 전향한다. [2]
스몰 포워드 전향 후 연세대에 입학, 연세대 재학시절 1993-94 농구대잔치에서 이상민, 서장훈, 우지원, 김훈 등과 함께 연세대를 농구대잔치 사상 첫 대학교 우승으로 이끌었다. 키가 190에서 190cm초반 정도밖에 안 되는 센터도 흔했고 슈터라면 보통 180cm대 키를 가지고 있던 시절에 190cm의 키를 가진 문경은은 그야말로 센터급 키를 가진 슈터나 마찬가지였고, 이를 이용한 폭발적인 득점 능력을 선보였다. 한편 당시 인기 탤런트이던 손창민과 닮았다며 오빠부대를 이끌고 다니는 스타로 군림한다.
실업농구팀인 삼성전자와 현대전자의 치열한 스카우트 전쟁 속에서 유형 무형의 엄청난 대우 끝에 알려진 계약금만 5억원을 받고 삼성전자로 진로를 택했고, 삼성전자 입단 후 김현준과 쌍포를 이루며 팀을 농구대잔치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한편 이 때 연세대와의 경기에서 서장훈에 대한 테러 수준의 몸싸움에도 한 몫을 거들어서 욕도 들어먹는다.
그후 상무에 입대, 대학 시절의 동료인 이상민과 재회하고 조성원과 쌍포를 이루면서 상무를 1996-97 농구대잔치 우승 문턱까지 이끄는데 성공하나, 이름값이 못 미치는 활약으로 까이는 일도 자주 있었다.
2.2 프로 시절
상무 제대 후 1997-1998 시즌에 프로화된 삼성에 복귀, 평균 25점에 이르는 득점력을 과시하며 역시 문경은이란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팀은 플레이오프도 나가지 못한다.
다음 시즌에도 평균 21점에 이르는 득점력을 선보였으나, 1999-2000 시즌에는 평균적인 외국인 선수들의 능력 향상에다 자기 관리 문제인지 뭔지 날렵하던 몸에 군살이 꽤나 붙은 모습까지 되면서 평균 득점은 17점 정도를 기록한다. 하지만 주희정의 활약이 팀에 더해지면서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는다.
2000-2001 시즌, 빛을 발하는 주희정과 그 시즌 최고의 외국인 선수인 아티머스 맥클레리, 거기에 이규섭의 공수가 더해전 서울 삼성 썬더스에서 평균 18점에 이르는 공격을 더하면서 문경은은 썬더스 우승의 주축이 되었다.
하지만 팀 내 비중 문제로 당시 삼성 썬더스의 감독이던 김동광과 갈등이 있었고, 때문에 2001-2002 시즌을 앞두고 신세기 빅스(이후 SK 빅스, 현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우지원을 상대로 트레이드되어 빅스의 선수가 된다. 그리고 빅스에선 조니 맥도웰과 콤비를 이루며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 데 성공한다. 다음 시즌에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지만, 빅스가 전자랜드에 인수된 2003-2004 시즌에는 앨버트 화이트를 외곽슛으로 도와 주면서 다시 한번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킨다.
2005-2006 시즌에 김일두, 임효성을 상대로 서울 SK 나이츠에 현금 트레이드되었다. 체력적인 문제로 스팟 슈터 롤을 맡았....어야 했는데 방성윤이 워낙 골골대는 터라 노익장을 발휘해야 했던 경기들이 많았다. 출전시간이 길어지면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했고 수비 문제가 있긴 했지만 이름값은 톡톡히 했다.
2010년 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2010년 10월 12일 서울 SK 나이츠는 등번호 10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3]
2.3 선수로서의 특징
이충희와 김현준의 뒤를 잇는 한국농구 슈터 계보를 잇는 존재로 불리며, 같은 편의 스크린을 이용해 수비수를 제친 후 노마크에서 확률 높은 슛을 쏘는 슈터의 기본기에 매우 충실했다. 특히 한번 "터졌다" 라고 한다면 엄청난 슛 정확도를 보여주는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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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경기 중에 백덩크를 구사할 정도의 운동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런 운동능력을 이용한 돌파도 주요 무기 중 하나였던 때가 있다. 센터 출신이라 포스트업 기술도 있었고, 상당히 괜찮은 패싱 센스도 있었다.
실질적으로 내추럴 포지션이 센터였던 탓에 연세대학교에서 서장훈과 같이 코트에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스트레치 4로 기용되었고, 이는 굉장히 성공적인 변신이었다. 다만, 후술할 최희암 감독의 분업화 경향으로 인해 골밑 공간은 서장훈에게 주고 페이스업보다는 스트레치 플레이나 스팟업등으로 공격 역할이 제한되어 버리면서 연세대 커리어는 파워포워드에 3점 기능 달아둔 선수 정도로 축소된 것은 사실이다. 여러가지 의미로 이규섭의 직계 선배이고, 이규섭과 같이 서장훈때문에 하나 위의 포지션으로 옮기고 포제션을 뺏기면서 어정쩡한 기능성 플레이어가 되어버린 서장훈 시대의 피해자중 한명이다.
99-00시즌 무렵부터 자기 관리 문제인지 뭔지 급격히 몸이 가로로 넓어지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운동능력은 거의 상실해 버렸다. 이 때문에 2000년대 와서 문경은의 플레이만 본 사람은 문경은이 가볍게 덩크할 정도의 운동능력을 가졌던 줄도 모를 정도. 거기다 몸은 넓어지면서 수비범위는 좁아진 덕에 수비에서 구멍이 되는 일이 상당히 많아졌다.
00-01 시즌 무렵부터는 슛과 간간히 보여주는 패스 외에는 예전의 문경은보다 영 못한 모습으로 전락했지만, 그런 상태에서도 슛 하나만은 여전하면서도 꾸준한 모습을 이어갔다.
상대보다 우월한 사이즈를 이용한 공격을 주로 했었기에 자신보다 좀 더 큰 사이즈를 가지고 있으면서 비슷한 스피드를 가진 수비수와 매치업되면 고전하는 일이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대학시절부터 라이벌이었던 김영만과 양경민. 이 둘 자체가 원래 좋은 수비수이기도 했지만. 문경은은 이들 앞에서 좀 심하게 버로우를 타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사실상 문경은의 완벽한 상위호환이었으니까. 그런데 비슷한 키인 추승균에게도 은퇴직전까지도 잡혔는데...[4]
제 2의 허재가 될 만한 재목이 그냥 슈터로 끝났다, 라고 말하는 농구팬들도 일부 있다. 사이즈와 운동능력, 거기다 농구 센스를 겸비한 덕에 슛 만이 아니라 다재다능한 득점 능력과 패스 능력을 가진 선수가 될 수 있었는데, 연세대 시절 간혹 그런 모습을 보여주나 싶다가 최희암 감독의 분업농구론에 의해 골밑이 아닌 3점라인 밖으로 나와서 패스를 받아 슛 던지는 역할로만 계속 뛰었기 때문이다. 슛쟁이로 전락하면서 제2의 허재라는 말은 사라지고, 정작 허재에게 쟤는 선수도 아냐라는 소리를 들었다. 거기다 자신의 강점인 운동능력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잃어버린 것도 문제.
거기다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슈터로 불리면서도 반쪽짜리 슈터 소리를 듣는 일도 많았다. 앞선 세대인 이충희나 김현준이 자신보다 큰 수비수를 앞에 두고도 일대일 상태에서 드리블 등으로 수비수를 제치고 슛을 쏘는데 능했던데[5] 비해 문경은은 이런 기술이 취약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문경은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인게, 이충희나 김현준과 달리 문경은은 내추럴 포지션이 4번이었음에도 국대 사정상 3번으로 출장했기 때문에 트위너의 한계를 그대로 노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문경은 이후 문경은만큼 노마크 슛이라도 확률 높게 넣어주면서 슈터의 기본에 충실한 선수는 거의 없다. 전술한 김영만, 원포지션이 3.5번인 전희철등 국내리그에서 문경은보다 뛰어난 3번은 많았지만 문경은은 확실한 3점 슛이라는 무기때문에 중용받을 수 있었던 것.
2.4 국제 대회에서의 문경은
양민학살용. 아시아선수권 등에서 일본 정도까지의 상대들과 대결할 때는 매서운 활약을 보여주는데, 중국전에서 자신보다 크면서 스피드도 비슷한 상대와 매치업되면 버로우란 표현의 예시라고 해도 될 만한 모습들만 보여줬다. 문경은의 국제대회 최후의 불꽃이 핀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때도 결승 중국전 당시 경기 내내 부진했으며, 이 때는 그래도 막판 추격전 도중에 중요한 한 방을 꽂아줬다.
94년 세계대회에 출전했을 때는 허재가 돌파로 상대 수비를 모은 후 빼주는 패스를 노마크 3점슛으로 성공시키고 하면서, 평균 19점에 70퍼센트의 2점 야투율을 기록하고 37퍼센트의 3점슛 성공률로 전체 출전 선수 중 3점 성공률 1위를 찍는 등 좋은 활약을 했다. 이집트를 상대로 한 두 번의 경기에선 30점과 33점을 기록하기까지 했다.
전술한대로 문경은이 양민학살용 플레이어가 된건, 원포지션이 아닌 풀타임 3번으로 출장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문경은보다 키도 크고 스피드도 한수 위였던 중국의 후웨이동,주팡유,리난같은 190대 후반 스윙맨들과 매치업 되면 슛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래도 다른 국대 포워드진에 비해 3점슛이라는 무기가 확실한데다 서장훈 고정에 김유택, 현주엽 등이 나오던 한국의 골밑 사정상 확실한 스트레치 옵션이던 문경은이 중용될 수 밖에 없었다.
3 지도자 경력
농구계의 브랜던 로저스
SK의 암흑기를 청산한 감독이었으나 애런 헤인즈의 이적과 동시에 무능 감독으로 추락.
은퇴 후 서울 SK 나이츠의 전력분석관을 거쳐 2011년 감독대행 자리에 올라 1시즌을 지휘했다. 시즌 초반에는 중위권 싸움을 했지만 알렉산더 존슨의 부상 이후로 추락하면서 시즌 성적은 9위에 그쳤으나, 김선형 등 젊은 선수들을 중용하여 발굴한 점을 인정받아 2012-13 시즌부터 같은 그룹 야구단의 이만수처럼 정식 감독으로 승격하게 되었다. 계약 기간은 3년.
일단 2012-13 시즌 초반 김선형을 포인트가드로 돌리고, 풍부한 포워드 자원을 적극 활용하며 수비력을 강화시키면서 초반 돌풍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의 법칙에 걸릴 것이라는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시즌 내내 선수들을 독려하고, 모래알이라는 비아냥을 듣던 SK의 조직력을 강화시키는데 성공하면서 마침내 2012-13 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프로농구가 고의 저주기 논란에 승부조작 스캔들까지 터지면서 별 주목을 못 받는 것이 안습. 그러나 통합 우승은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다.
13/14 시즌에도 3-2 드랍 존을 이용한 전술로 재미를 보고 있지만 창원 LG 세이커스의 2-3 지역방어 전술에 의해 파해되는 바람에 상대전적에서 밀렸으며, 애런 헤인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결국 2013-14 시즌에는 울산 모비스에 또 막히면서 챔프전마저 못 갔다.
2014-15 시즌에는 2월 2일부터 24일까지의 1승 7패를 제외하면 여전히 잘 나가면서 상위권에 머물렀고, 3위로 정규시즌을 끝냈다. 하지만 전자랜드에게 막혀 4강 플레이오프에 오르지 못했다.
2014-2015 시즌 후 SK와 3년 재계약에 합의하였다.
비시즌기간에 전창진 승부조작 의혹 경기의 상대팀 감독으로서 불똥이 튀기도 했고, 헤인즈가 한계가 분명한 용병이니 겸사겸사 바꾸는 거야 이해되지만 이정석, 돌승준 형제를 영입한다든지 물음표가 잔뜩 붙은 시즌 출발을 보이고 있다. 김선형 역시 입단 전 상습불법토토 혐의가 있어서 출장 정지 상태이기에 1라운드 5승 4패를 목표로 잡았다. 그러나 1라 마지막 경기에서 졸전끝에 4승 5패(...). 간만에 작전 타임 도중 화를 내기도.
15-16 시즌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어째선지 살이 더 쪘다. 무너지는 팀을 수습하지 못하면서 팬들에게 시즌 내내 까이고 있는 중이다. 원래부터 애런 헤인즈의 의존도가 높다하여 문애런이라는 굴욕적인 별명이 붙었는데, 현재 이 별명에 대해 SK팬들조차 쉴드를 못칠 정도로 못하고 있는 중. SK나이츠의 긴 암흑기를 끊어낸 감독이지만 성적을 내지 못하고 부진하자 슬슬 경질을 논하는 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SK팬들에게 돌경은이라며 자주 까이고 있는 건 덤.
징계가 끝난 김선형이 7경기에서 평균 35분19초를 뛰며 19.86득점 4.0리바운드 6.1어시스트로 맹활약했으나 팀이 1승 6패로 부진하자, 이상민-김승현과 비교하며 김선형이 팀원을 더 살려야한다는 인터뷰를 했다. 김선형은 이후 10.75득점 3.9리바운드 5.3어시스트로 눈에띄게 슛을 줄이고 리딩에 주력하지만, 팀성적은 나아지지않고있다. 그렇게 김선형의 슛을 제한하고 늘린 옵션은 슛이 좋은 스펜서와 박승리의 포스트업(...) 애초에 패싱력보다는 공격력이 좋은 선수를 한국농구역사상 손꼽는 포인트가드와 비교하며 장점을 죽인다는 지적이 있다.
4라운드까지도 정신없이 지면서 돌경은을 넘어 문돼지라고 까이고 있는 실정. 35경기 하는동안 12승 23패로 8위. 승률은 3할대 중반에 머무르고 있고, 연승은 딱 2연승 2번만 했다. 아무리 선수가 답이 없더라도 작년까지 상위권이었던 팀이 이렇게 무너진 건 감독의 무전술, 무능탓이라는 의견이 많다.
결국 20승 34패에 최종순위 9위라는 성적을 받아들었고, 이 성적은 문경은 감독 sk 감독 데뷔시즌과 함께 최악의 성적이기도 하다.[6]
SK 나이츠의 오랜 암흑기를 끊어내준 감독이기도 하기에 아직 SK팬들의 신뢰는 남아있으나, 2015-16시즌은 그 신뢰에 커다란 금이 가게 만들었다. 에어컨리그, 시즌 중에 보여준 단점들도 많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인 것이, 김선형, 사이먼, 스펜서, 김민수 등으로 대표되는 주전선수들과 백업선수들의 기량차이가 너무 심하게 나는 모습을 보이고, 그 백업선수들의 경기감각을 끌어올리기 위해 출전시간을 제대로 배분해주지 못해 식스맨들은 성장을 하지 못하고, 주전들은 과부하가 발생했기 때문이다.[7] 16-17시즌이 문경은 감독의 실질적인 리빌딩 능력을 판가름 할 수 있는 분수령이 되는 셈.
4 흑역사
2004년 3월 7일. 인천 전자랜드와 TG삼보의 시즌 마지막 경기. 문경은은 우지원과 시즌 3점슛 타이틀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었고, 마지막 경기 때까지도 3점슛 타이틀을 누가 차지할지는 안개 속에 있었다.
그리고 펼쳐진 경기. 문경은이 공을 잡자 삼보의 선수들은 슛을 쏘거나 말거나 멀뚱멀뚱 쳐다보는 모습만 보여주고, 그에 보답하듯 전자랜드의 다른 선수들은 삼보의 김주성이 블록슛 적립하게 좋게 슛을 가져다 바쳐주는 훈훈한 상부상조가 이어졌다. 코트 위의 훈훈한 온기가 팬들에게 스팀을 돌게 만들든 어쨌든 이런 훈훈한 배려 속에 문경은은 3점슛 타이틀 확보하기 좋게 3점만 22개를 넣었고, 덤으로 66점으로 KBL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갱신한다. 그러나 다음날 경기에서 비슷한 협조 속에 우지원이 3점슛 21개를 포함, 70점을 몰아넣어, 결국 3점슛 타이틀은 우지원의 몫이 된다(…). 그리고 이 둘은 10년 가까이 뒤지게 욕을 먹고 있다.
이런 또라이짓을 본 팬들의 분노 때문에 문경은이 그 쇼를 하게 만든 그 시즌 3점슛 타이틀은 해당자 없음이 되었지만, KBL 홈페이지의 기록에는 아무 설명 없이 저 날의 문경은의 총 득점과 3점슛 기록이 공식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뭐병. 궁금한 팬들을 위해 적어놓는데 이날 경기는 전자랜드가 승리를 거뒀으며 스코어가 무려 130[8] - 118... 이는 2009년 5차연장 접전 끝에 동부가 삼성에게 135 - 132로 승리한 경기에 이어 단일팀 최다득점과 양팀 합산점수 2위이며 당연히 순수 40분 경기로만 따지면 전무후무한 1위다... 1위라고 칭하기도 더러운 경기라고 한다지만...[9]
5 기타
선수 시절 비오는 날에 유독 슛이 잘 들어가는 징크스가 있었다. 손끝이 촉촉하다나
연세대 출신답게 헐리웃에 능했다. 주로 써먹던 레퍼토리는 스크린을 타는 몸싸움과정에서 팔을 상대선수와 엮은 다음 목을 꺾고 비명소리와 동시에 만세를 부르며 넘어지는 것이였다.
2010년 성탄절을 맞아 SK나이츠 홈경기 하프타임 때 왕년의 라이벌 우지원과 3점슛 기부빵 대결 이벤트를 가졌다.
용인시 수지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다. 저녁에는 직접 주문도 받고 서빙도 하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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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짤로 빅재미를 선사해 줬다.존슨 잃은 문경은(!!!) 사실은 2011-12 시즌에 부상으로 2월에 복귀할 때까지 장기간 아웃된 알렉산더 존슨과 관련된 내용인데 사진과 기사 제목이 뭔가 절묘하다. 심지어 네이버 자동완성에 등록될 정도였다.근데 댓글이 없어
TV 광고에도 몇 번 출연한 바 있다. 삼성 시절 세탁기 광고를 찍기도 하고, 듀스와 오디오 모델도 했다. 2002 월드컵 공인구였던 피버노바를 가지고 농구하는 장면으로 아디다스 광고에 나왔고, 전자랜드 시절 전자랜드 기업 홍보광고에서 김디에나와 같이 농구하다가 김디에나가 문경은의 바지를 벗기는 굴욕 장면으로 나왔다.
2015년 프로농구 승부조작 사건과 관련, SBS 8시 뉴스의 단독보도 중 사용된 자료화면이 잠실학생체육관 경기라는 이유로 승부조작과 관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하지만 당사자인 A감독이 언론과 연락이 되지 않고 잠적했다는 보도와는 다르게, 문경은 본인과는 무관하다는 인터뷰 기사가 신속하게 보도되면서 의혹에서 벗어났다. 해당 사건과 관련해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대상은 SBS 뉴스 자료화면 경기의 상대 팀 감독인 것으로 알려졌고, 추측에 의해 마음고생을 한 억울한 피해자가 되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러나 승부조작 브로커와 문경은 감독이 통화한 내역이 있어 경찰이 수사 중이라는 뉴스가 떠 미궁으로 빠지는 분위기.
큰 점수차로 경기를 리드하거나 승리를 거의 확정짓는 분위기일 때 특유의 후덕한 미소를 짓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역전패를 당하거나 선수들이 정신나간 턴오버를 저지르는 일이 자주 발생해서 SK나이츠팬들은 제발 웃지만 말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 10번. SK의 다른 영구결번으로는 전희철의 13번이 있다.
- ↑ 만화지만 슬램덩크의 신준섭과 비슷하다. 센터에서 3점슈터로 전환한 점, 슛 외에 볼운반이나 수비 등 다른 역할 수행이 모자란 점 등. 몇 년 뒤에 이규섭이 문경은-신준섭과 비슷한 행로를 걷게 되고, 장점과 단점까지 쏙 빼닮게 된다.
- ↑ SK에서 뛴 기간도 4시즌밖에 안되는데다가 이 시기가 SK의 암흑기였기때문에 이 영구결번지정은 자주 까인다.
- ↑ 추승균은 수비력도 수비력이지만 체력과 스피드가 문경은보다 우수해서 늘 잡힐 수 밖에 없었다.
- ↑ 특히 국제대회에서 이런 점이 크게 부각되었다.
- ↑ 이번시즌의 전체적인 실패는 시즌이 한 달 앞당겨진 부분에 대해 준비를 느긋하게 한 팀이었다는 내용이 바스켓카운트에 나오기도 했었고, 에어컨리그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선수들을 영입한 탓이 컸다. 이에 따라 앞으로 선수단 정리를 확실히 했을때 어떤 성적이 나오느냐에 따라 다시 평가가 이루어질 여지도 있다.
- ↑ 김민수의 부상으로 김우겸, 이대헌과 같은 포워드 자원은 시간배분이 적절하여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김선형이 없을 때 좋은 활약을 보여준 최원혁이 출전시간이 줄어들자 버로우를 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 웬만한 경기의 6쿼터에 해당되는 점수이다(...)
- ↑ 요즘 젊은 선수들의 환장할 슛성공률을 본다면... 몰아줘도 그렇게 넣기 힘들거라는 은근한 재조명이 가끔 나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