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로운수

乙路運輸

1 개요

광주광역시버스 회사. 광주광역시 시내버스를 운영하는 업체 중에서 2번째로 규모가 큰 회사이다. 사명이 로운수라서 그렇다. 2등 주제에 광주 버스 상무22를 운행하지 않는다

광주의 시내버스 회사 중 유일한 합자회사.[1]

1954년에 설립된 버스 회사였던 '삼양시내버스'가 이 회사의 전신이라 할 수 있으며, 2008년 삼양시내버스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모든 차량과 승무원들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인수하는 식으로 처리가 되었고 법적상으로는 삼양시내버스는 소멸법인이 되었다. 즉 을로운수는 삼양의 역사를 이어받지 않은 신규법인인 셈.

하지만 삼양시내버스의 면허, 승무원, 차량등 모든 것을 이어받았으므로 실질적인 계보는 이어진다고 볼 수 있겠다.

2 리즈시절 : 삼양시내버스, 그리고 화니백화점

1945년 일성상회 개업, 1948년 일성섬유 창업을 하였던 故 이연술(1923~2003) 씨는 '박리다매 판매주의, 신용제일주의로 고객들의 신뢰를 쌓아가며 점차 호남의 거상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랬던 그가 1961년 차 3대로 버스를 굴리면서 사업을 시작한 것이 시내버스 진출의 시작이었으며 이것이 1967년 삼양시내버스 합자회사로 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이연술 씨는 일성상회를 키워 1977년 충파(충장파출소) 인근에 화니백화점(화니百化店, Funny Department Store)[2]를 출범시키며 호남에서 손꼽히는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호남의 명소였던 화니백화점과 광주의 대표적인 시내버스 회사 중 하나였던 삼양시내버스는 90년대 초까지 광주에서 굳건한 위치를 지켰던 기업이었다.

3 화니백화점의 쇠락

90년대 중반 신세계백화점[3], 현대백화점 등이 속속 광주에 진출하면서 화니백화점을 위협하게 되자 화니는 이에 대비하기 위해 주월동 백운광장 인근에 부지를 사들여 매머드급의 외지 백화점 법인에 맞설 준비를 하게 된다.[4] 그러나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국내에 닥친 금융위기로 지역경제 자체가 흔들리게 되었고 화니도 이 칼바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1997년 화의 신청에 들어갔으나 1999년 법원이 화의 취소를 결정하면서 화니백화점 자체가 순식간에 사라지게 되었다.

이연술 화니 회장의 차남이 물려받았던 삼양시내버스는 화니백화점 부도 이후에도 살아남았지만, 점차 경영난에 시달리며 임금체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삼양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원시내버스에 차량 60대와 일부 승무원을 인계하는 방법도 썼지만 근본적인 경영난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삼양시내버스 대표는 눈물의 편지로 회사를 정리 순천교통 계열에 회사를 매각하게 되었고 이것이 지금의 을로운수가 되었다.

여담으로 삼양 전 오너였던 이연술 회장의 차남은 롯데삼강에 아이스크림을 납품하던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는데 납품처 중 CU가 계약을 끊으면서 매각 절차에 들어갔으나 유찰되어 당좌거래정지에 처하게 되었다.

4 현재

과감한 경영을 해왔던 을로운수는 이후 마찬가지로 경영난을 겪었던 현대교통 노선 일부를 사들이기도 했고, 결국 현대교통 자체를 자회사로 인수하면서 규모가 커지게 되었다. 현재 보유중인 을로운수 차량은 201대로 대창운수에 이어 두 번째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

2014년에는 현대교통 측에서 삼아교통까지 인수하며 점차 광주 시내버스 계에도 힘을 펼치고 있다.

삼양 시절부터 사용되어 온 송하동 본사 차고지가 중형차량 증가 등으로 비좁아지면서 효천역 주차장 일부를 중형 노선 전용 차고지로 사용중에 있다.

5 보유 노선

5.1 급행좌석

5.2 급행간선

5.3 간선

5.4 지선

  1. 대창운수는 주식회사이며, 나머지 회사들은 전부 유한회사.
  2. 실제 화니백화점의 영어 표기가 이랬다. 아니지. 원래는 Funny를 의도했는데 사명을 일본스러운 발음으로 해버려서 저런 게 나온 거지.
  3. 광주법인 따로 존재.
  4. 해당 부지는 화니 부도 이후 다른 업체에서 사들여 리모델링을 하려 하였지만 이마저도 부도나면서 건물이 방치되는 신세를 면치 못했고, 그렇게 버림받는 폐건물이 되나 했지만 2012년 남구청 청사 이전 때 이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것으로 결정하면서 해당 부지에 남구청사가 입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