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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等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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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서석대 설경.
광주MBC 캠페인인 무등산을 사랑하자의 '무등산 사랑 캠페인송' 당선작인 무등 아리랑
형제는 등수를 가리지 않아서 무등입니다[3]
날 알아주는건 무등산 밖에 없다 생각했거든
1 개요
광주광역시 동구와 북구, 화순군 이서면, 담양군 남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최고봉은 천왕봉이며 절대 이 산의 정상이 아니다 높이는 1,187m[4]이다.
백제 때 무진악(武珍岳), 고려 때 서석산(瑞石山)이라고 하였다. 이 영향으로 광주광역시에는 서석초등학교, 서석중학교, 서석고등학교 등의 지명으로 남아 있다. 나주평야와의 경계에 있으며 산세가 웅대하다. 북부는 화강암이 분포하고 남부는 퇴적암지대이다. 대부분 완만한 흙산이다. 산경표에 따르면 호남정맥상의 산으로, 산 서쪽은 영산강 유역이고 산 동쪽은 섬진강 유역이다.
백악기 시절에 화산 활동으로 생긴 산으로, 수천만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은 사실상 완만한 산이다. 하지만 화산 활동으로 생긴 산이었던 만큼 화강암 등의 암석이 있으며 그 영향으로 생긴 것이 서석대와 입석대로 대표되는 주상절리대이다. 산 꼭대기에 있는 서석대는 석영함유량이 매우 많아서 노을이 질 때 보면 반짝거린다 해서 예전에는 수정병풍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서석대란 이름의 뜻부터가 상서로운 바위기둥이란 뜻이기도 하다. 남구쪽에서 바라볼시 산의 중앙부분에 나무가 없는 걸 볼 수 있는데 이게 바로 누럭 내지는 너럭이라 불리는 곳이다. 예전에는 대규모로 있었던 주상절리대들이 풍화되며 형성된 거대한 바위지대이다.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하였으며 2012년 12월 국립공원으로 승격하였다. 공원 면적은 75.425㎢이다.
무등산과 광주 도심 간의 거리가 매우 가까운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광주 금남로에서 무등산이 한 눈에 크게 보일 정도이며, 멀리 광산구나 서구 등지에서도 한 눈에 무등산이 보일 정도이다. 남구에서는 어딜 가나 보인다. 그 이유는 광주 자체가 무등산을 낀 분지 형태의 지형 구조에 형성된 도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100만명이 넘는 도시가 1,000m가 넘는 산을 끼고 형성된 사례는 드물다고 한다. 증심사 쪽만 하더라도 바로 아래에 고층 아파트 단지가 있는 주거지역이 형성되어 있다. 그렇기에 광주 시민들이 느끼는 무등산에 대한 감정은, 국립공원보다는 동네에 있는 꽤나 큰 뒷산으로 느낀다. 중고딩들도 피시방 가다가 질리면 10,000원을 꼭 쥐고 산행한 후 산 밑의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놀다가 헤어질 정도로 동네 뒷산 취급받고 있다.
KIA 타이거즈의 감독 선동열이 현역시절 "무등산 폭격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별명 대신 무등산 각도기로 불린다
최희섭도 KIA 시절 경기에 나올 때보다 부상 등으로 인해 결장하는 일이 많고, 본인이 무등산에 등산을 자주간다고 언급해서 산악인이라는 비하별명을 받았지만 달관했는지 은퇴 후 메이저리그 해설 데뷔 광고 영상에서는 '형저메'와 함께 무등산 드립까지 나왔다.
2 무등산 접근 경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등산 루트로는 '증심사 출발'과 '원효사 출발' 둘로 나뉘어진다.
- 증심사 주차장 출발 루트 :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가장 쉬운 루트이다. 증심사를 종점으로 하는 광주광역시 시내버스가 상당수 있으며 그 외에도 광주 1호선의 학동·증심사입구역을 통해서 접근하는 경우 이 역 인근 버스 정류소에서 증심사 행 버스로 환승하는 방법이 있다. 다만 비교적 낮은 지역에서 출발하는만큼 등산로가 상당히 길다는 단점이 있다.[5]
- 원효사 출발 루트 : 대중교통은... 그냥 광주 버스 1187만 믿고 가자. 무등산 깊숙히 들어가는만큼 증심사 출발 루트에 비해서 비교적 힘을 덜 들이고 등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산수오거리부터 원효사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히는 곳 중 하나이기 때문에 산악회 버스 대절로 오는 경우 다수의 버스들이 원효사 기점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1187을 타고 가다보면 산을 올라간지 얼마 못가서 전망대가 있는데 광주 시내가 한눈에 보이기 때문에 구경하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단 식당이기 때문에 캔음료나 차 등을 주문해야 한다. 건물은 매우 낡은 편.
시외에서 자가용을 통해 오는 경우 광주 2순환도로를 통해 운림나들목(증심사 루트)와 두암나들목(원효사 루트. 약간 우회함) 등으로 빠져서 접근하기 쉽게 되어 있다..
그 외에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루트로 화순군 이서면 쪽을 통해 등산하는 루트가 있지만 대중교통이 잘 오는 동네가 아닌지라(...) 하지만 광주시에서 운영하는 무등산 순환버스를 통해 화순 이서면과 수만리 쪽으로 무등산에 접근할 수도 있다. 2014년 5월 3일을 기준으로 화순 군내버스 215번이 무등산탐방순환버스라는 이름으로 11월 30일까지 운영한다!
도보를 좋아하는 트래커들이 무등산으로 온다면 2011년 복원된 무등산 옛길[6]을 통해 등산하는 경로를 추천한다. 과거 선조들이 무등산 서석대까지 등산하는데 이용했던 구간을 복원한 것으로 오랜 세월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아 생태계적으로도 잘 보존되어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3 문화
주변 문화재로는 증심사(證心寺), 원효사(元曉寺) 등의 절과 환벽당, 소쇄원, 식영정 등의 정자가 있다. 특히 무등산 자락의 광주 금곡동과 충효동, 담양 일대를 아우르는 가사문학권의 발상지이기도 하며[7] 그 외에도 분청사기를 굽던 흔적이 있어 분청사기 전시관이 이곳에 있기도 하다.
4 자연 및 환경
무등산을 상징하는 자연물로 입석대와 서석대로 대표되는 주상절리대가 있다. 1000m가 넘는 고지대에 풍화작용으로 인해 만들어진 주상절리가 있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희귀한 사례이기 때문에 천연기념물 465호로 지정되기도 하였다.[8] 그 외에도 무등산에 있는 특이한 지형물로 풍화작용으로 깎인 바위들이 모여서 군락을 이룬 지공너덜로 대표되는 '너덜'이 특징. 현지인들은 너럭이나 누럭이라고 부른다.
파일:QoaYKER.jpg
광주의 특산물로 유명한 무등산수박이 이 곳에서 자생하는데 다른 수박과 품종도 다르고 산기슭에 있는만큼 수확시기도 다른 수박들에 비해 늦는 편이고 소량품종인만큼 가격대도 비싼 편이다. 그 외에도 증심사 등산로 옆에 의재 허백련 선생이 이곳에서 차밭을 가꾼 무등산 춘설차도 유명하다.
5 시설
지리산을 제외하면 호남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인만큼 무등산 중턱에 여러 통신 관련시설이 존재한다. 특히 광주와 호남 지역의 방송송출을 위한 중계소가 무등산에 집결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공군공군방공유도탄사령부 예하 방공포대가 무등산 정상 천왕봉에 자리잡고 있어 평상시 일반인의 무등산 정상 출입은 상시 통제되어 있다.[9] 그러나 정기적으로 무등산 정상 개방행사를 가져서 가장 높은 천왕봉을 제외한 지왕봉[10]까지 개방하는 행사를 가지며 이 날에는 수많은 인파의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러나 무등산의 국립공원 승격 이후 해당 시설들의 이전 문제가 현안문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 시설들을 옮길 수 있는 마땅한 부지를 찾는 것이 관건이 될 듯 하다. 원래부터 포대 이전 등 말이 많던 부대였지만 2015년 3월 15일, 기름 유출 사건이 터짐에 따라 포대 이전 계획은 가속화 되었고 2015년 12월 무등산 정상에 있는 방공포대 이전 추진이 확정되면서 머지 않아 천왕봉까지 시민의 품에 안길 가능성이 생겼다.
그 외에도 일제강점기 때 축조된 광주 최초의 상수도 취수원이었던 제1수원지가 증심사지구 입구 인근에 있다. 현재 이 곳은 사유지로써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해당 내용은 아래의 '트리비아' 항목을 참조. 제1수원지 외에도 제2수원지가 용연동(용추폭포쪽 등산로 입구)에, 제4수원지가 청풍동에 있다.
6 '무등산을 사랑하자'
광주MBC 전파가 닿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고 있을 지역 캠페인. '양현종의 무등산을 사랑하자.' 이런 건 형저뫼가 더 어울릴 것 같은데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이었던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무등산 등산로 일대에 등산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들이 난립하여 자리잡고 있었다. 호객행위를 위해 자리잡았던 식당들은 증심사 계곡을 중심으로 몰려있었는데 이 시설들로 인해 음식물쓰레기나 계곡 위에 콘크리트 구조를 짓는 등의 불법구조물을 설치하면서 증심사 계곡 주변의 생태계를 오염시키는 원인이 되는 등 문제가 많았다. 게다가 이 때 당시에는 시민의식이 성숙되지 않은 단계였기 때문에 무단 쓰레기 투기나 야외 취사 행위도 일삼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지역방송국이었던 광주MBC와 무등산 보호단체가 주축이 되어 시작한 이 캠페인은, 지역민들에게 무등산에 대한 애정과 인식을 제고시키는데 한 몫을 하였다. 더 나아가 주변 경관과 생태계를 해치는 주범이 되었던 식당들을 현재의 증심사 주차장 인근으로 이주를 시켰고, 난립해 있었던 식당 주변의 생태계 복원 행사, 무등산 옛길 복원 등의 무등산 살리기 운동에 앞장섰고 한때 군사지역으로 묶였던 서석대와 입석대를 개방하는 데 큰 몫을 해냈다.
결과적으로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승격되는데 있어 지역주민 및 환경단체가 참여한 '무등산을 사랑하자' 캠페인이 큰 몫을 해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사무소가 무등산에 정식으로 들어선 뒤 앞으로의 생태계 복원이 새로운 당면과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7 트리비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 1990년대 초 제1수원지 일대에 온천수가 개발되어 운림동 1수원지 일대를 온천관광단지로 개발할 계획이 세워졌었다. 다만 당시 광주 시민들의 정서가 무등산 온천 개발에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개발이 계속해서 미뤄졌고 그 동안 해당 지역은 편백나무 숲단지로 꾸며지면서 삼림욕장으로 유명해졌다. 20여년이 지난 현대에 와서도 해당 부지는 여전히 사유지로 되어 있는데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해당 부지를 개발하기도 힘들어진 상황에서 해당 지역을 광주시에서 매입하여 생태공원으로 지정할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한다.#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지 얼마 되지 않아, 전라남도에서 518m짜리 타워와 케이블카를 놓겠다는 계획을 내놓는다고 했다가 지역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었다(...). #
8 무등산 관련 가요
합필갤의 필수요소가 된(...) 무등산관광이라는 노래가 있다. 특히 "영광굴비 니가 어째 그 맛을 알겠느냐." 이 부분이 포인트(...)라고 한다. 또 가사가 성적요소가 있으니 주의
- ↑ 정상인 천황봉 및 제1수원지에 적용
- ↑ 무등이란 말은 불교에서 나온 말인데, 평등이 크게 이루어져서 평등이란 말조차 사라진 상태를 말한다.
- ↑ 광주전남 지역의 향토 소주회사인 보해양조의 잎새주 부라더 광고판에 써있던 문구. 실제 '무등'이란 말의 의미와 일치한다.
- ↑ 그래서 원효사로 가는 버스 번호가 1187번이다.
- ↑ 사실 등산로는 여러개 있어서 길이가 짧은 등산로를 택한다면 원효사 출발 루트 못지않게 단거리로 주파할 수 있다.
하지만 난이도는 장담할 수 없다. - ↑ 산수동~원효사~서석대~담양 구간
- ↑
역사 시간에 졸지 않았다면 알겠지만가사문학권이 탄생하게 된 것은 서울에서 멀고 비교적 산세가 험한 격오지이기 때문에 이 곳으로 유배를 왔던 문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유배를 온 신세 한탄과 함께 멋드러진 풍경산수를 느끼기에 좋은 풍광을 지녔기 때문에 같이 유배를 온 문인들끼리의 문화 교류도 있었다. - ↑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사례임에도 대체적으로 그에 대한 연구가 늦어져 천연기념물 등록이 늦어졌는데, 아래에도 서술되듯이 이전까지는 해당 지역이 군사작전지역으로 묶여있어서 민간인의 출입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 ↑ 90년대까지는 서석대와 입석대를 포함하여 더 아래 중봉 일대까지 군사지역으로 묶여있었다. 이후 부대이전을 통한 부지 반환 이후 2007년까지 생태계 복원사업을 벌인 끝에 서석대~입석대 구간까지 개방되었다.
- ↑ 여담으로 KIA 타이거즈 선수 나지완의 이름을 이 봉우리에서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