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시즌 중 찍힌 사진으로, 선수 본인은 시즌 끝나고 방출되었다... |
1 개요
이름 | 이경필(李慶弼 / Kyeong-pil Lee) |
생년월일 | 1974년 5월 21일 |
출신지 | 서울특별시 |
학력 | 배명고-한양대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7년 OB 베어스 1차 지명 |
소속팀 | OB 베어스/두산 베어스(1997~2007) |
전 두산 베어스 투수 겸 전 천하무적 야구단 감독 피칭머슴
2 선수 생활
2.1 아마추어 시절
배명고등학교 재학 시절 유격수 김동주와 함께 전국대회(봉황기, 전국 체전, 황금사자기) 우승에 크게 공헌한 인물 중 하나. 청소년 국가 대표로도 여러 번 뛴 적이 있는 그야말로 A급 유망주. 원래는 사이드암 투수였으나 한양대학교에서 오버핸드로 전환했다.
2.2 프로 데뷔 후
2.2.1 활약상
1997년 OB 베어스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으며, 선발+구원 등판으로 7승 4패 평균자책점 3.62를 기록했다. 1998년에는 2자릿수 승수(10승)을 달성했으며, 평균자책점도 3.12로 더 낮아졌다.
1999년은 이경필의 전성기라고 할 만한 해였다. 13승(리그 8위)을 찍으면서 평균자책점은 3.19를 기록했는데, 당시가 극악의 타고투저 시대였던 만큼 3.19라는 평균자책점은 충분히 낮다고 할 수 있는 평균자책점이 되겠다. 리그 평균자책점 3위를 마크했을 정도였으니.
2.2.2 부상
그렇게 전성기를 달리던 중 1999년 여름에 팔꿈치 통증을 느껴 진단을 받은 결과, 토미 존 서저리가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두산 마운드가 그를 중심으로 돌았기 때문에 김인식 감독은 이경필을 전력에서 제외하기 어려웠고, 팀 사정상 계속해서 진통제를 맞으며 뛰어야 했던 그는 결국 시즌이 끝난 후 수술대에 오르게 된다. 그렇게 2000년을 날렸지만 원래 2년은 재활해야 고칠 정도의 팔꿈치 상태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재활을 받지도 못한 상태에서 빠르게 복귀하여 공을 던지게 되었고, 이것이 몰락의 시발점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도 했으니 다행. 다만 1차전 패전을 겪었고, 그 뒤의 성과도 좋지 못했다.
2.2.3 몰락
2001년의 마지막 불꽃 이후 성급한 복귀 후유증이 제대로 나타나며 구위가 급격히 하락, 성적은 그야말로 안습이 따로 없었다. 그 이후 2004년까지 그가 거둔 성적은 도합 12승 27패. 평균자책점도 4점 ~ 5점대를 찍는 등 그야말로 몰락을 보여주었다. 그 와중에 병역비리에 연루되어 버린 데다가,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기 전에는 아예 방출 통보까지 받았다. 방출 통보는 취소되었지만 이 때 이경필의 맘고생은 장난이 아니었던 모양.
2007년에 복귀했지만 1승 2패에 평균자책점이 5점대를 찍는 처참한 성적을 거두었고, 두산은 결국 이경필을 방출하고 말았다.
3 은퇴 이후
방출된 후 김인식 감독과 김성근 감독의 콜을 받기도 했으나, 두산 유니폼을 벗게 된 것에 큰 상심을 받아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야구판을 아예 떠나 버렸다. 관련 인터뷰를 보면 이 때 받은 충격이 장난이 아니었던 듯.
그런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생겼는데, 그 전환점은 바로 김창렬이었다.[1] 김창렬은 이경필에게 김창렬이 속한 야구 동호인 '만신창이'의 감독직을 부탁했고, 이경필이 이를 수락하면서 그는 극적으로 야구판에 복귀하게 된다.(사회인 야구판이긴 하지만)
그 이후 김창렬이 천하무적 야구단을 기획하면서 이경필은 코치로 초청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로 출신인 이경필은 아마추어인 천무단을 가르치면서 더 즐겁다는 말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부담감을 내려놓아서 그런 듯. 이것으로 보아서는 천무단이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보아도 될 듯하다.
천하무적 야구단이 종영된 이후 천하무적 어린이 야구단 창단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IPTV 스포츠 채널인 IPSN에 해설위원으로 들어가 있다. 같은 방송사에서 해설하는 마해영, 김용달, 구경백, 최익성 등과는 달리 목소리가 하이톤이라 그냥 들어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을 단독중계하는 JTBC 중계진에 투입되었다.
해설 일을 하면서 대리운전 사업도 겸하고 있는데, 처형이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어 장애인들의 폐쇄적인 생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장애인을 위한 대리운전 봉사 활동을 시작하였다. 다음 스토리펀딩.
4 기타
- 후대에 배영수도 이경필과 비슷한 전철을 밟게 되었다. 이유 또한 비슷하다. 혹사로 인한 부상 때문에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는 점, 팀 사정 때문에 예정된 재활을 줄여 복귀했다는 점, 결국 이 문제로 부상이 재발하여 복귀 후 예전의 모습을 되찾지 못했다는 점에서 둘은 비슷하다. 이 점 때문에 이경필이 배영수를 걱정하기도 했다. 다른 점이라면 구단에 삼성 트레이닝 센터가 없던 이경필은 선수 생활이 끝났고, STC가 있는 배영수는 살아남았다는 것 정도. 하지만 뭐가 됐건 조기 복귀를 종용한 구단을 까야 한다는 건 변함이 없다.
- 간혹 이경필을 천무단 감독으로 임명하자는 의견이 있으나, 이경필이 감독이 되기에는 오만가지 문제점이 있다. 자세한 사항은 여기를 참조.
- 김석류의 아이러브베이스볼(책)에서 마운드 위에서 항상 껌을 씹었었는데, 직구를 던질 때는 몸에 힘이 들어가서 껌도 세게 씹고, 변화구를 던질 때는 잠시 동안 껌 씹는 것을 멈추는 투구 버릇이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