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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타격코치 시절. 나지완에게 빠따를 때리는타격기술을 코칭하는 모습.
이름 | 김용달(金龍達) |
생년월일 | 1956년 5월 10일 |
출신지 | 경상북도 의성군 |
학력 | 인지초-중앙중-대광고-중앙대 |
직책 | KBO 육성위원 (2015~ ) |
포지션 | 포수, 내야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82년 MBC 청룡 창단멤버 |
소속팀 | MBC 청룡(1982~1988) |
1982년 한국프로야구 1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 ||||
김용달(MBC 청룡) | → | 신경식(OB 베어스) |
MBC 청룡-LG 트윈스 등번호 3번 | |||||
프로 개막 | ➡ | 김용달(1982-1988) | ➡ | 김선진(1990-1994) |
목차
1 소개
前 MBC 청룡 출신의 타자이자 前 현대 유니콘스, LG 트윈스, 한화 이글스의 타격코치, KIA 타이거즈 2군 총괄코치.
포지션은 포수 또는 1루수. 현역 시절에는 강타자도 아니었고 교타자도 아닌 평범한 타자였다. 프로 원년인 1982년 1루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지만, 이때는 오로지 수비율만으로 시상할 때였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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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첫번째 LG 트윈스코치 시절
은퇴 후, 1990년 LG 타격코치로 임명되었다. 여담으로 1994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친 김선진과 1루에서 포옹하는 1루코치가 바로 김용달이다.
이 시절의 업적은 이종열, 박종호의 스위치히터 전환, 김재현의 20-20달성에 어느정도 일조했다는 점이다.
3 현대 유니콘스 코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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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2000년, 고교 2년 선배인 김재박과의 인연으로 현대 유니콘스의 타격코치로 입단하였다.
이 시절 박재홍, 심정수, 박경완, 이숭용 등으로 이뤄진 훌륭한 타선을 만드는데 일조했으며, 명 타격코치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높은 출루율과 공을 끝까지 보는 타격이론을 앞세워 김무관, 박흥식(야구), 황병일 등과 함께 프로야구의 4대 타격코치라 불렸다. 그래서 잘 나갈때는 용달매직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용달차로 불린다.
그러나 LG, KIA 시절의 삽질 이후로는 사실상 거품이였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4 두번째 LG 트윈스 코치 시절
2006 시즌 후 LG의 새 감독 후보에도 올랐으나, 2007년 LG의 신임 감독이 된 김재박을 따라 LG 타격코치로 이적.
이 시기로 접어들면서 그의 코칭스킬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한국 코치들의 고질적인 병폐인 신을 발에 맞추지 않고 발을 신에 맞게 잡아늘이는 코칭스킬로 선수의 특성이나 신체적 조건, 멘탈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똑같은 타격폼을 천편일률적으로 가져다 붙이며 악명이 높아졌다.
그의 타격이론은 변화구가 휘기 전에 때리는 방식. 타자의 중심을 앞에다 둔다. 이게 일반적으로는 이상에 가깝지만, 문제는 이 방식으로는 슬러거가 안 나온다.[2] 장타는 타자의 무게중심을 뒤로 당겨놓고 때려야 잘 나온다. 심정수가 예외적인데, 이 선수는 일단 다른 선수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괴력의 소유자인데다, OB-두산 시절부터 이미 완성형 타자였기에 넘어가자. 게다가 심정수도 바뀐 폼에 적응하다 몸이 망가졌다.
게다가 한국야구도 21세기 이후로 점차 선진화되면서 횡으로 휘는 슬라이더보다는 종으로 떨어지는 커브나 포크에 투수들의 선호도가 몰려갔는데, 이런 구종을 공략하기 위해선 기본적인 선구안을 바탕으로 타격의 중심축을 뒷발에다 놓고 때려내는 게 효율적. 즉, 타격중심을 앞에 두려하는 김용달의 이론은 시대의 변화에 맞지 않았다.[3]
원래 그 타격폼이 맞았던 선수는 상관없겠지만 그게 아닌 선수는... 게다가 선수들과 대화도 잘 하지 않고 자기 교수법을 강요해서 기아로 이적한 김상현이 간접적으로 디스한적도 있다. 게다가 자신이 손대도 전혀 답이 없다고 디스했던 이성열은 두산에 와서 2010년에 24홈런을 터트렸고, 넥센으로 건너가서도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박병호에게도 똑같은 폼을 강요해 박병신으로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결국 위 3명은 모두 LG를 떠난 이후 잠재력이 폭발했다. 또한 박용택이 2009년 타격왕을 차지한 이유도 김용달의 코칭을 따르지 않고 본인 소신껏 타격을 해서 가능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심지어 박병호도 2012년 인터뷰에서 "한 달에 한 번, 많으면 2주에 한 번씩 제 타격폼을 타격코치님 마음대로 바꿨어요. 하도 자주 바뀌다 보니 타격폼 수정에 대한 스트레스가 말도 못하게 심했어요."라며 대놓고 김용달을 디스했다.[4]
결국 LG 시절 거포 유망주들의 육성에 실패하고 그 유망주들이 타 팀에 가서 터져버린 탓에 거품이 완전히 걷히며 평가가 급락했다. 사실 LG 출신 선수들 때문에 가려져 있지만, 그보다 전이었던 현대 시절에는 김민우에게 스위치 히터 전환 및 자신의 타격폼으로 고치기를 강요했다가 대차게 말아먹은 전력도 있다.
다만 김용달이 아주 무능력자는 아닌 것이, 이대형의 개선과 박종호, 이종열의 양손타자 전환 등이 그가 이룬 업적이다. 교타자들과는 궁합이 맞지만 풀스윙을 하는 장타자들과는 잘 맞지 않는 듯하다. 김용달의 문제점은 그가 양상문마냥 끝장나게 무능한 코치라서라기보다는, 시대의 변화에 무력한 것과 그런 타격 스타일을 선수에 상관없이 천편일률 적으로 강요하는 탓에 타자를 심하게 가린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한화 이글스 코치 시절
2012년 5월 12일 한화 이글스에서 김용달 코치를 1군 타격코치로 영입했다. 한화에 오면서 최진행과 고동진을 관심있게 봤다고 했으며 그들을 중점적으로 손봤다고 했다.
김용달 코치를 영입한 이후 잠시 최진행의 성적이 크게 향상되기도 했지만, 이후 장타가 사라지면서 심각하게 부진했다. 반면 고동진은 무난한 시즌을 보냈으며, 오선진의 경우 김용달의 영입과 동시기에 맞물려서 포텐셜을 폭발시켰다.
한화에 와서 있었던 기간이 워낙 짧기도 했고(고작 4개월 반정도밖에 안 있었다.), 한화 타자들도 다소 애매한 성적을 내면서 평가가 엇갈렸다. 다만, 한화에 있는 기간 동안 오선진을 사람으로 만들어놨다는 데에는 모두들 동의.그리고 오선진은 13년 깨끗하게 망하고 군대행 2012년 시즌 후 한화 이글스에 김응용 감독이 부임하면서 사의를 표명했다.
6 KIA 타이거즈 코치 시절
2012년 10월 16일 KIA 타이거즈의 타격코치로 부임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 KIA팬들은 안 그래도 장타 보기 힘든 김기아 타선에는 최악의 조합 아니냐며 걱정하였다. 그래도 이건열보다는 낫겠지
6.1 2013년
해당 문서로.
6.2 2014년
결국 2014 시즌부터는 1군 메인 타격코치 직무를 이명수 코치에게 넘겼고, 2군 총괄코치(2군 감독 임무 수행)를 맡게 되었다. 다만 여전히 남부리그 최하위를 면치 못하는 등 2군 감독으로써의 능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2군 감독으로서의 능력마저 한대화나 김용달이나 도찐개찐.
KIA 팬들 사이에서는 무능력자 감독인 선동열은 물론이고, 역시 무능력한 코치들인 한대화, 김정수, 백인호, 이명수와 더불어 하루빨리 잘리길 고대했다.
그리고 팬들의 바람대로 시즌 후 2군 총괄직에서 사퇴했다.
7 트리비아
2015년부터 서울대 교양과목 야구에 강의를 한다. 그리고 애꿎은 정의윤을 극딜하셨다. 그리고 정의윤은 터졌다. 기요하라는 야잘알, 김용달은 야알못
2010년부터 IPSN에서 해설을 맡았으나, 완성된 문장을 내뱉질 못하는 참담한 수준의 해설로 많은 이들의 분노를 샀다. 야구인 출신의 해설위원 중 말주변이 없는 해설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김용달 위원의 경우는 그 정도가 좀 심했다. 덕택에 조용하던 IPSN 게시판이 김용달 해설위원의 퇴출을 원하는 게시물들로 도배되기도 했다 게다가, LG전 중계에서는 노골적으로 LG편을 드는 편파해설을 하여 더 미움 받았다. LG와 대결중인 상대팀의 홈런에 대해 "아, 저런 홈런은 전혀 의미가 없는 홈런이에요"라며 까대기도..
2012년 자신의 이름을 건 타격 이론서 '용달매직의 타격비법'을 출간했다.
2015년 KBO 육성위원이 되었다.
8 역대성적
역대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사사구 |
1982 | MBC 청룡 | 68 | 168 | 0.315 | 53 | 10 | 0 | 5 | 23 | 29 | 2 | 19 |
1983 | 48 | 83 | 0.217 | 18 | 2 | 0 | 1 | 8 | 7 | 1 | 7 | |
1984 | 57 | 94 | 0.298 | 28 | 5 | 4 | 1 | 14 | 9 | 1 | 15 | |
1985 | 71 | 142 | 0.232 | 33 | 9 | 0 | 3 | 14 | 15 | 3 | 21 | |
1986 | 24 | 43 | 0.209 | 9 | 0 | 0 | 1 | 4 | 3 | 0 | 8 | |
1987 | 31 | 42 | 0.286 | 12 | 2 | 0 | 1 | 8 | 3 | 0 | 7 | |
1988 | 14 | 18 | 0.000 | 0 | 0 | 0 | 0 | 0 | 0 | 0 | 2 | |
통 산 | 313 | 590 | 0.259 | 153 | 28 | 4 | 12 | 71 | 66 | 7 | 79 |
- ↑ 이사만루2014 KBO에서 슈퍼스타 카드가 출시될 때, 골든글러브 전적 덕분에 82 김용달 슈스도 출시되었는데, 상급 스타만도 못한 성능, 6성이라는 낮은 등급으로 나왔다. 게다가 중급선수카드나 최상급 선수카드 등에서 96 박경완과 같이 가끔씩 등장하는 의외의 흔함 때문에 이사만루 유저 한정 네타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 ↑ 감독은 X-존까지 설치해가며 팀의 장타를 늘리려고 했는데 정작 타격코치는 단타 위주의 코칭을 하고 있었다는게 문제인 것이다.
- ↑ 김용달과 정반대의 코칭스킬을 갖고 있는 코치가 황병일. 타격의 중심축을 뒷발에 놓고 때려내는 방식을 주문하며 선수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 ↑ 그 문제의 타격코치로도 서용빈, 윤덕규도 있긴하나, 당시 메인타격코치가 김용달인지라, 김용달이 유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