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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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현석 (金鉉錫 / Kim Hyun-Seok)
생년월일1967년 5월 5일
국적대한민국
포지션공격형 미드필더, 공격수
신장178cm
유스팀연세대학교 (1986~1990)
소속팀현대 호랑이(1990~1999)
상무(1993~1994)
베르디 가와사키(2000)
울산 현대 호랑이(2001~2003)
국가대표23경기 5골
스태프울산 현대(2004~2012 / 코치)
울산WFC 여자축구단 (2013~ / 감독)
종교천주교(세례명 : 스테파노)
1996년 K리그 MVP
고정운(일화 천마)김현석(울산 현대 호랑이)김주성(부산 대우 로얄즈)
1997년 K리그 득점왕
신태용(천안 일화 천마)김현석(울산 현대 호랑이)유상철(울산 현대 호랑이)
1991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기근
FW
고정운
MF
김현석
MF
이영진
MF
김주성
MF
최강희
MF
이상윤
DF
정용환
DF
박현용
DF
테드
GK
김풍주
1992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박창현
FW
임근재
MF
신홍기
MF
김현석
MF
신태용
MF
박태하
MF
신동철
DF
홍명보
DF
이종화
DF
박정배
GK
사리체프
1995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황선홍
FW
노상래
MF
신태용
MF
고정운
MF
김현석
MF
김판근
MF
아미르
DF
최영일
DF
홍명보
DF
허기태
GK
사리체프
1996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라데
FW
세르게이
MF
신태용
MF
바데아
MF
홍명보
MF
하석주
MF
김현석
DF
윤성효
DF
김주성
DF
허기태
GK
김병지
1997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마니치
FW
스카첸코
MF
김현석
MF
신진원
MF
김인완
MF
이진행
MF
정재권
DF
김주성
DF
마시엘
DF
안익수
GK
신범철
1998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김현석
FW
샤샤
MF
고종수
MF
유상철
MF
백승철
MF
안정환
MF
정정수
DF
안익수
DF
마시엘
DF
이임생
GK
김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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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아디다스 코리아컵 우승 기념.

K리그 역사상 유일하게 병장 축구(?)[1]를 구사한 선수

K리그 울산 현대 호랑이의 전직 축구선수이자 레전드. 현 울산WFC 여자축구단 감독. 포지션은 포워드. 선수 생활 말기에 스위퍼로 보직을 변경했다.

별명은 가물치. K리그팬들에게는 흔히 기록의 사나이로 통한다. 신태용, 황선홍, 고정운과 더불어 90년대를 풍미했던 K리그의 레전드 중 한명. 덤으로 그놈의 FC 국대 우대 정책에 따라(...) 신태용 감독과 더불어 리그 시절의 활약상이 잘 알려지지 않은 선수이기도 하다. K리그 통산 371경기 110골[2] 54도움.
J리그 통산 29경기 17골.

연세대를 졸업하고 드래프트 시장에 나올 무렵 이미 대어로 평가받았다. 같은 시기 주목을 받은 선수가 하석주.

1991년 K리그 베스트 11
1992년 K리그 베스트 11
1995년 K리그 베스트 11
1996년 K리그 베스트 11 MVP
1997년 K리그 베스트 11 득점왕

이런 K리그에서 활약상에 비해, 국제 대회에선 활약할 기회가 드물었다. 1994년, 1998년 월드컵 지역 예선에 참가했으나,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리진 못했다. 때문에 번번히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했다. 그러자 국내용이란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붙었다.

2000년 J리그 베르디 가와사키[3]에 진출, 팀 공격을 도맡다시피 하면서 리그에서 16골을 기록한다. 위에 적은 17골은 나비스코컵 대회에서 기록한 1골을 포함한 것.

김현석의 활약상에 만족한 베르디는 김현석과 2년 재계약을 추진했는데..... 울산이 창단 이래 최초로 리그 꼴찌를 기록한다. 그러자 높으신 분이 나서서 복귀를 요청했고, 김현석은 흔쾌히 울산으로 복귀한다. 의리의 사나이 돌쇠 라고 멋지게 말하지만 사실은 베르디에 임대되었던 것으로 임대기간 다 채우고 복귀했다.

대표팀에서 활약이 미미했기 때문에 K리그 팬이 아니고선 듣보잡인 레전드(...)이지만, 지금도 울산팬은 단연코 김현석을 울산의 레전드이자 프렌차이즈 스타로 꼽는 데는 바로 이런 사연이 있다.

2001년 7월 21일, 전남 드래곤즈를 상대로 K리그 최초 50골 50도움 달성. 이른바 50-50 클럽이 탄생했다. 덤으로 이날까지 쌓은 기록이 300경기 99골 50도움. ㅎㄷㄷ 2002년 스위퍼로 보직을 변경했으나, 여전히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이해 신태용과 함께 전인미답의 60-60 클럽 창설을 걸고 경쟁했다. 월드컵에 묻혔지만

2003년 올스타전에서 은퇴했다. 여담으로 이해 올스타전은 K리그 20주년 기념이었고, 80년대 올스타팀과 90년대 올스타팀이 맞붙는 이벤트가 있었다. 또한 프로축구연맹이 은퇴식을 열어준 세번째 선수[4] 였다. 김현석은 올스타전에 출장해 1골 1도움을 기록했다. 그밖에 각팀 서포터들이 올스타전 음소거응원을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올스타전을 매년 지방에서 돌아가며 열기로 한 원칙을 깨고 상암구장에서 연 것에 대한 항의였다. 과연 기록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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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부터 2012년까지 울산 코치로 재직하였고, 2013년 울산WFC 여자축구단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1년 일본 외유를 빼면, 프로 생활을 울산에서 시작해서 울산에서 끝낸, 진정한 이 시대의 프렌차이즈 스타.

아무리 돈이 좋고 빅 클럽이 좋다지만, 최소한의 도의마저 저버린 채 이적 문제로 팬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이런, 저런, 그런 선수들에게 실로 귀감이 된다 하겠다.

K리그에 남긴 굵직한 발자취에 비해 대표팀에서 성과는 미미한데, 어찌 보면 시대를 잘못 타고난 불운한 선수였다. 하필 90년대에 황선홍(1968년 183cm), 김도훈(1970년 183cm), 최용수(1973년 184cm) 걸출한 공격수가 바통 터치라도 하듯 나타났을 뿐더러..... 워낙 황선홍이 끝판대장이라 좀처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당시 아시아권 어느 팀에 갖다놓아도 꿀릴 게 없던 김도훈, 최용수가 만년 2인자 신세를 면하지 못했을 정도니.

더구나 대한민국 축구가 독일 축구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장신에 준족 공격수를 요구하던 팀 전술에도 맞지 않았다. 말하자면 피지컬을 무기로 삼는 공격수가 득세하던 시기에, 순수한 테크닉으로 불멸의 기록을 쌓아나간 이단아였다.

김현석의 특징은 21세기 대표팀 선수보다 한수 위인 퍼스트 터치와 슈팅. 때문에 문전에서 김현석에게 볼이 가면, 수비가 슈팅 타이밍을 예측하기가 힘들어서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흔히 말하는 '볼을 참 얄밉게 찬다'는 스타일. 이러니 뻥축구와 상극일 수 밖에

흔히, 김현석의 전성기 때 연소했던 팬들은 김현석의 플레이스타일이 상당히 투박했다고 잘못 기억하고 있기도 한데 이는 그의 불같은 성격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웬만큼 짬밥(?)을 먹은 후에는 상대팀의 어린 선수가 자신에게 태클을 걸면 폭풍갈굼을 시전하는 일은 예사였었고, 심지어 상대팀이 경기 내내 거친 플레이로 일관하자 지멋대로 경기를 중단시키고 상대팀 11명 전원을 경기장 한가운데 집합시킨 적도 있었다(...)

여담으로, 그 당시 언론에 대응해선 교과서 같은 맨트가 보편화 되어있던 축구계에서 이따금 톡톡튀는 말을 내밷곤 했던 이단아. 일례로 1995년 마라도나보카 주니어스를 이끌고 방한했을때 마라도나와의 대전소감을 묻는 언론 인터뷰에서 "마라도나는 지는 별이고 난 떠오르는 태양이다"라는 호기 있는 멘트를 날렸다.
  1. 자세한 내용은 아랫글에서 참고
  2. 기록 수립 당시 K리그 최다골 기록이었다. 이후 김도훈(114)과 우성용(116), 김은중(121), 데얀(141), 이동국(현재진행형)이 뛰어넘었다.
  3. 지금은 도쿄 베르디
  4. 앞선 두명은 김주성(1999)과 고정운(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