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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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在晩
1959년 5월 10일 ~
1959년 경상북도 경산군 와촌면에서 태어났다. 이후 대구시로 이사하여 신암초등학교, 경상중학교, 달성고등학교,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영남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한양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동구 구청장 선겅게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 때부터 친박계 정치인이 되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승민이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있는 대구광역시 동구 을 선거구에 공천을 신청했다. 그러나 김무성의 당대표 직인 날인 거부 사태으로 인해서 해당 선거구가 무공천 지역이 되면서 공천을 받지 못해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할 수 없게 되었다. 23일을 기해 예비후보들의 당적변경시한이 끝나서 무소속 출마도 불가능하다. 고작 20분 만에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1] 자세한 것은 당대표 직인 날인 거부 사태 해당 문서 참조.
결국 유승민의 당선은 무효라는 선거무효소송을 냈다고 한다. (유승민은 대구 동을 지역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75.7%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이로 인해 앞으로 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면 지역구에 가서 무효소송을 내야 하는가 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실제로도 사적 기관인 정당 내부의 일로 선거무효소송을 하는 것은 법적으로 맞지 않다는 비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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