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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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유승민(劉承旼)
출생일1958년 1월 7일
출생지대한민국 대구광역시
본관강릉 유씨
본적경상북도 영주군 이산면
학력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가족아버지 유수호
2남 1녀 중 차남
슬하 1남 1녀
정당새누리당
지역구대구 동구 을
의원 선수4
의원 대수17, 18, 19, 20
소속 위원회기획재정위원회
현직제20대 국회의원
약력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여의도연구소
한림대학교 연구교수
한나라당 최고위원
새누리당 원내대표
혈액형A형
종교불교

1 소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국민을 이길 수 있는 정당은 없다."
"제가 꿈꾸는 보수는 정의롭고 공정하며, 진실되고 책임지며, 따뜻한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땀흘려 노력하는 보수입니다."

- 2015년 4월 8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영상 전체보기

김부겸과 함께 대구20대 총선 정국의 핫플레이스로 만든 인물
20대 총선여권의 핵심 키워드 & 보수 정치권의 진주인공


왼쪽부터 유승민, 류성걸, 정종섭. 경북고등학교 제57회 졸업앨범이다. 승민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정치인.

이분이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 앵커와 인터뷰를 하는 날에는 지진이 난다 카더라.

1958년 경상북도 대구시 삼덕동(현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에서 태어났다. 삼덕초등학교, 대륜중학교,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있다가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의 영입으로 한나라당의 정책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의 소장을 맡으면서 정치권에 들어오게 되었고 2004년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초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후 20대 총선까지 내리 4선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대 국회 기준으로 지역구는 대구 동구(을)이다.

박근혜와는 2005년에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표의 비서실장을 맡은 계기로 처음 인연을 맺었으며,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에서 활동하며 원조 친박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2012년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국정 운영 방침과 당명 변경을 두고 갈등을 벌여 관계가 멀어진 상태. 현재는 소위 탈박 내지 비박계 인사로 분류된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로도 박근혜정부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청와대와 여러차례 충돌을 벌이다가 2015년 7월 원내대표직 신분으로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갈등의 정점을 찍기도 했다.

부친인 고(故) 유수호 의원도 박정희 정권 때 사법 파동으로 법복을 벗어야 했기 때문에 2대에 걸친 악연인 셈. 자세한 내용은 하단 문단 참조. 결국 원내대표직 사퇴로 마무리 되었지만, 오히려 이를 계기로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부친은 판사 출신으로 제13대,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故 유수호 의원이다. 2015년 11월 7일 아버지 유수호 의원의 별세로 상주를 지내며 정계 각종 인사들을 맞았다.

이때 조문을 온 정치인이 화제가 되어 기사화되기도 했다. 이회창[1]한나라당 총재 및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의 비박계 인사들과 야당 인사까지도 접객했다고한다.

하지만, 서청원, 이정현 등의 친박청와대 인사들과의 만남은 미적지근 했다는 후문이며, 박근혜 대통령 본인까지 조화조차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친박계 핵심인 윤상현 의원은 유수호 전 의원을 조문한 뒤 장례식장에서 기자들에게 대놓고 'TK 물갈이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 및 친박계와 사이가 얼마나 멀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

결국 이러한 갈등은 원내대표직 사퇴부터 시작된 불씨가 화약고나 다름없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공천 문제를 놓고 대폭발하여, 자신이 친박계비박계 간 대립의 정점에 올라서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상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여권 진영의 열쇠이자 진주인공.

자신을 유'시'이라고 소개하는 게 가장 당혹스럽다고 한다. 이 점은 유시민 작가 쪽에서도 마찬가지. 성씨의 한자가 유시민은 버들 류(柳), 유승민은 성씨 류(劉)로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 유시민은 "유승민 씨는 저와 성이 달라서 유비할 때 '유(劉)'씨를 사용한다."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 또한 풍산 류씨를 포함한 柳씨는 적극적으로 '류'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고 강릉 유씨를 포함한 劉씨는 그렇지 않음에서도 차이가 있다. 성향도 친노비박#s-4, 진보와 보수로 극명하게 다르다

2 생애

2.1 어린 시절과 청년기

1958년 경상북도 대구시 삼덕동(현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경상북도 영주군 이산면이다. 집안이 경북 북부 지방에서 생활했으며, 부친인 유수호 전 의원을 비롯한 선대 묘소가 영주에 있다.

유승민의 할아버지는 경북 영주 지역에서 평생 빈농으로 살았는데 글씨를 잘 써서 양반집에서 상을 당하면 비석의 글씨를 써주는 부업을 했다고 한다.

양반집에서 자식들에게 교육을 강조하고 투자하는 것을 보고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을 교육시켰다고 한다. 어쩌면 그 시대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유승민의 아버지는 유수호 전 의원으로 경북고, 고려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60년 육군법무관 대위로 군복무를 마친 뒤, 대구지방법원 판사로 법조인 생활을 시작하였다.

1973년 판사 재임용에 탈락한 후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1985년부터 민주정의당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가 통일국민당 - 신민당 - 자유민주연합을 거쳐서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 은퇴하였다.

유승민은 삼덕초등학교, 대륜중학교,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부친이 법조인이었던지라 특유의 ‘샌님’ 이미지 덕에 생긴 것도 그렇고 유복한 집안에서 귀족처럼 자란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고 한다.

집안이 좋은 것은 맞지만 유복하진 않았고, 어린 시절 성격도 샌님보단 ‘쾌남’에 가까웠다고 한다. 고등학교 비평준화 시절 대경권의 명문 경북고에 입학했다.

학창 시절 유승민은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교우 관계가 좋아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두루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의 고교 동기로 잘 알려진 사람으로는 (훗날 진박 인사로 분류되는) 정종섭 의원, 류성걸 전 의원, 권오을 전 의원, 주성영 전 의원 등이 있다.

1975년 대입 압박에 시달리던 한 친구가 학교 선생님에게 부당한 이유로 맞았고 경남 합천에 있는 해인사로 가출해버렸는데, 이 친구를 찾아오기 위해 유승민도 집을 떠난 적이 있었다. 친구의 가출 소식을 들은 유승민은 아버지의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을 찾아가 돈 3만원을 꾼 뒤 그 친구를 찾아나섰다.

며칠 뒤 친구를 찾아 돌아온 유승민은 머리를 빡빡 깎은 채였다. “어쨌든 자신도 집을 나간 것이니, 걱정하신 부모님에게 사죄하는 뜻으로 머리를 깎은 것”이라 했다.

그의 고교 동문에 증언에 따르면 유승민은 모든 친구들과 두루 잘 지내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며 “당시엔 아무래도 성적순으로 끼리끼리 교제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보통인데, 유독 이 친구만은 모든 친구들과, 특히 퇴학당한 친구들과 아주 가깝게 지내는 독특함이 있었다”고 했다.기사

한 겨울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버스 정류장에서 술에 취해 있던 낯선 이를 업고 집에 들어오기도 했다. 키우던 개가 죽자 한 달 동안 슬퍼하기도 했다고. 가족 중 한 사람은 “승민이가 고 3 때 집에서 키우던 조그만 개가 죽었는데, 한 달 동안 울기만 했다. 어머니가 수험생이 공부는 안 하고 저러고 있다며 걱정했을 정도”라고 했다.

유승민은 1976년 대학입학 예비고사에서 전국차석을 거머쥐었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로 진학했다. 군 입대하여 육군 수도방위사령부에서 복무하면서 육군 병장 만기전역하였다.

서울대를 졸업한 뒤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로 유학을 떠나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전공 분야는 산업조직론, 부전공 분야는 계량경제학, 수리경제학으로 알려져있다.

1987년 한국으로 돌아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과 선임연구위원을 지냈다.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시절부터 같은 연구원으로 있던 이혜훈과 가깝게 지내서 마치 사수-부사수 관계였다고 한다.

재미있게도 이혜훈 의원 또한 유승민 의원처럼 원조 친박으로 불렸던 정치인이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기간 동안 주창해왔던 경제민주화 노선을 버리고 창조경제, 그리고 전임자였던 이명박 대통령과 별 다를 바 없는 경제 정책을 추진하면서 탈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정치이력

상술하였듯이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으로 재직하다가 김대중 정부 시절 정부의 산업 정책을 비판한 일로 감봉, 징계 처리되었고 유력한 대선 후보였던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발탁으로 KDI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떠나게 된다.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지냈고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지근거리에서 도왔다. 당시 이회창 캠프에서 정책 개발, 메시지, 연설 담당을 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이 무렵 박근혜 당시 의원은 자신을 도와달라고 유승민에게 부탁했고, 유승민은 2002년 대선 당시 직언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이 후회가 되어서 자기가 할 말은 해도 되겠느냐는 조건부 하에 수락했다고 한다.

2006년 대구광역시 동구 을 재보궐선거(전임자 박창달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인한 국회의원직 상실)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사임하고 출마하였는데,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이강철 전 시민사회수석과 맞붙어서 승리했다. 맞붙은 곳이 대구였으니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유 의원에겐 손쉬운 싸움이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100분 토론에서 논쟁을 주고받는 등 온, 오프라인 활동을 해왔지만 대중적으로 본격적으로 '유승민'이라는 브랜드가 알려진 건 2010년대였다고 보면 된다. 특히, 국회법 시행령 개정안 파동이 그 방아쇠였다.

2007년 대선은 사실상 한나라당으로의 정권 교체가 유력했다. 이 당시 한나라당에서 서울시장을 지낸 이명박 후보와 당 대표를 지낸 박근혜 후보 간에 경쟁이 치열하였고 친이, 친박 간 갈등은 화약고와 같았다.

이 당시 이명박 캠프의 대표적인 책사는 (훗날 이명박 대통령과 결별하게 되는) 정두언 의원이었고 박근혜 캠프의 대표적인 책사는 유승민 의원이었다. 이 둘은 중앙일보 주최의 토론회에서 격론을 벌였는데, 당시 유승민 의원은 이명박 후보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전격 비판하고 그의 재산 문제, BBK 문제를 집중 공격하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여당 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주장을 했다. 4대강 사업, 부자 감세 정책, 방송 장악 논란 등에 대해서 비판적인 주장을 드러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박근혜, 유승민 등을 비롯한 친박계 인사들은 4대강 사업 표결에도 기권하였고 무상급식에 대해서도 찬성하고 부자 감세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그렇지만 18대 총선 때 당권을 장악한 친이계친박계를 공천 학살하였을 때 공천 학살의 칼날을 피한 몇 안 되는 친박계 의원이기도 하다.

2011년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하였으나 홍준표 의원에게 밀려서 2등을 기록하고 최고위원이 되었다. 이때 당대는 홍준표, 최고위원은 유승민, 나경원, 남경필, 원희룡이었다.

당의 노선을 두고 홍준표와 갈등하였다. 유승민은 추가 부자 감세 정책에 대해서 강력 반대해서 이를 관철시켰고 이명박 정부와의 선 긋기를 주문했다.

그리고 2011년 10월에 열린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패배,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태 등 악재가 겹치자 유승민은 최고위원직 사퇴를 선언하고 이제는 박근혜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준표는 사퇴를 거부하였으나 남경필, 원희룡이 유승민의 사퇴에 가세해서 동반 사퇴를 결의하자 결국 당헌 당규에 따라 내려와야 하는 처지가 되면서 홍준표 체제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해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들어서게 되고 김종인, 이상돈, 이준석 등 비대위원을 꾸려서 당명과 당헌을 고치는 등 기존 한나라당 색깔을 바꾸는 작업을 추진한다.

하지만 유승민새누리당의 쇄신안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었지만 '새누리당'이라고 하는 당명 개정과 정강 정책에서 '보수'를 빼는 작업에 대해서는 전격 비판했다. 이 시기부터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사이가 소원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후 대선에서 최경환 2선 후퇴를 주장하였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코레일 파업 사태, 인사 문제 등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2015년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박계의 후원을 받았고 또 세월호 참사 때 해수부 장관을 지냈던 이주영 의원을 꺾고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박근혜정부의 '증세없는 복지' 기조에 대해서 비판했고 인사 쇄신을 주문했다. 국회법 시행령 개정안 사건으로 말미암아 박근혜 대통령에게 '배신의 정치를 하는 정치인'으로 찍혀서 결국 청와대친박계의 공세를 견뎌내지 못하고 원내대표직을 사퇴하게 되었다.

이후 공천이 불안해졌고 사상 유례없는 공천관리위원회와 최고위원회의 공천 미루기라는 사태를 거쳐 결국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20대 총선에 출마하여 75.7%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되었다.

3.1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사태 관련 발언

2011년 8월 21일에 당시 서울특별시장이었던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 비실시 여부를 정하는 주민 투표에 자신의 시장직을 걸겠다고 공표하기 전인 8월 17일에,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나경원 의원이 오세훈 시장을 당 차원에서 총력전을 펼쳐 도와야 한다고 발언한 일이 있었다.[2]

그 다음날인 8월 18일에 소집된 한나라당 최고위원 및 중진 회의에 참석한 유승민 의원이 나경원 의원의 인터뷰 내용을 거론했다.

"당과 한 번의 회의도 없이 일개 시장이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는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왜 당이 지원해야 하는가?"

"정책 의총(의원 총회)을 열어서 이 내용을 당론으로 지정하려는 노력은 해봤나?"
"이번 투표에서 지면 당이 망한다. 이런 얘기 왜 합니까?"
"서울시는 16개 광역 시/도 단체 중 한 곳에 불과하다."[3]
"경기도에서 이미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김문수 도지사는 민주당 도지삽니까? 한나라당 소속 도지삽니다."

라는 발언들을 쏟아부으면서 동석했던 나경원 의원, 나아가 오세훈 시장을 세트로 묶어 탈탈 털었다. 상황이 민망했던지 유 의원 옆에 앉아있었던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그만하라며 말렸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해서 발언을 이어나가자, 결국 그 한 성격 한다는 홍준표 대표마저 민망한 나머지 손으로 이마를 긁을 정도였다.영상링크

이런 걸 보면 상당히 좋게말하면 자기 소신이 강하고, 나쁘게 말하면 꼬장꼬장한, 그야말로 보통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2 새누리당 원내대표직 사퇴 사건

2015년 2월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당선되었으나, 청와대의 방침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고, 심지어 정부 정책을 비판까지 하였던 탓에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그리고 친박계 의원들로부터 눈엣가시처럼 여겨졌다.

가장 유명한 발언은 2014년 국정감사 도중에 박근혜정부의 외교 안보 정책을 질책하면서 나온 청와대 얼라들[4] 발언과해당뉴스 2015년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에 대한 비판과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고 공식으로 비판한 것이다.뉴스링크[5]

그러다 2015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가 상위법을 침해하는 시행령 제정을 규제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하면서, 이를 야당과의 원내 합의를 이끌어 200표 이상의 통과를 이끌어 낸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 원내대표직 사퇴를 직간접적으로 요구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이 '배신의 정치인을 심판해주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언론에서는 박 대통령이 말한 유승민 의원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고 해석하였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 발언 중에 '여당 원내 사령탑이 뭘 도와줬는지 모르겠다'고 직접적으로 공격하기도 했다.

유승민 의원이 이전까지 친박으로 활동하다 최근 들어 국회의 편에 선 것을 박근혜 대통령은 배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새정치민주연합은 대통령의 이 발언의 선거법 위반 여부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문의하였고, 선관위는 전체회의를 열어 판단하기로 하였다.[6]

박 대통령의 이 발언이 있은 후 유승민 의원은 청와대친박계 의원들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았고, 일부에서는 '유승민이 정치를 하지 못하게끔 만들겠다'는 말도 내뱉어 논란이 되었다.[7]

국회법을 중심으로 한 토론은 다음과 같다. 유승민 의원은 국회법 표결이 정당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와중에, 이에 반해 국회선진화법은 사법부에서 위헌 소지가 있음을 판정을 내렸다며 갑론을박이 오가는 상황. 이 때문에 '대한민국이 왕정국가인가?' 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유승민 의원의 거취를 놓고 친박계비박계의 줄다리기가 한동안 진행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새누리당의 의원 구성을 보면 친박계 의원들보다 비박계 의원들의 수가 훨씬 많았다.

그래서 원내대표를 사퇴시키려면 의원 총회에서 표결을 거쳐야 하는데 비박계 의원들의 수가 친박계 의원들의 수보다 더 많으니 친박계 입장에서도 억지로 끌어내리고 싶어도 끌어내릴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렇지만 친박계박근혜 대통령이라는 든든한 뒷배경이 있었고, 비박계는 숫자는 많아도 친박계처럼 하나로 조직돼 있지 않았고 흩어져 있었다.

그나마 비박계의 중심이라던 김무성 대표는 박근혜정부와 부딪힐 때마다 고개를 숙여서 비박계의 구심점으로 작용하기엔 신뢰가 가지 않았다.

이 두 계파의 갈등이 결국 2015년 7월 2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공개적으로 터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비박계로 분류되던 김태호 최고위원, 이인제 최고위원 심지어는 김무성 대표까지 친박계의 손을 들어주는 쪽으로 기울어지면서 결국 2015년 7월 8일 새누리당 원내대표직을 사퇴했다.

그리고 이때 사퇴의 변으로 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을 지키기 위해서 원내대표직을 고수했다는 발언을 하였다.[8]

한편 종종 여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기도 하지만 2015년 6월 기준, 아직까지는 유의미한 지지율을 얻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간신히 이름을 올리는 정도. 2015년 6월 국회법 개정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과 마찰을 빚으며 오히려 차기 대권 주자 지지율은 더 오르기도 했는데, 이는 이름이 언론에 자주 노출돼서 생긴 효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한편 원내대표직을 사퇴한 2015년 7월 8일에 실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급등해 여권의 차기 대권 주자 지지도 2위에 오르기도 했다. (1위 김무성 19.1%, 2위 유승민 16.8%). 2015년 7월 10일에 실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여권의 대권 주자 지지도 1위에 올랐다. (1위 유승민 19.2%, 2위 김무성 18.8%)

재미있는 점은 새누리당 지지자 모집단 사이에서는 유승민에 대한 지지의사가 9.8%밖에 안 되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자 모집단에서는 20% 초반, 정의당 지지자 모집단에서의 지지율은 28%를 상회하고 있다는 점이다.링크

보수 진영 측 정치인인데 오히려 진보 진영 측 지지자들로부터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

'자유민주연구원'이라는 연구단체가 모범생이 종북이 될 확률이 높다(...)라는 주장을 하며 유승민 의원과 그 주변인물도 의심이 간다고 하여 논란이 일었다. 링크

한편, 일부에서는 유승민 의원이 아예 새누리당을 나와 국민의당 등 야권 중도 세력에 합류할 가능성도 제기할 정도. 하지만 본인은 이 의견에 대해 자신은 'TK의 적자'라며 탈당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3.3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3.3.1 공천 배제 논란

새누리당의 공천 룰에 따르면 상대 후보의 가산점 비율이 높지 않아 공천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가상 투표에서는 친박에게 서포트를 받는 이재만 후보를 무려 2배차로 압도해 유승민 의원 쪽에 가능성이 보였다. 본인도 예비후보로서 지역구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공천 과정에서 유승민계 의원들은 죄다 공천 배제되고 유승민 의원 본인은 공천 보류 상태이며 외부와 연락을 끊고 있다.관련기사

사실상 주도권을 잡고 있는 친박 측에서는 유승민이 먼저 탈당이나 불출마를 선택해라, 유승민 측에서는 그쪽에서 먼저 날 쳐내라는 식의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 상태. 한 마디로 바둑으로 치면 .[9]

이게 굉장히 중요한 것이 유승민의 세력은 박근혜의 본진인 대구광역시다. 만약 유승민이 상승세를 탄다면 말 그대로 박근혜의 영향력은 매우 약해질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유승민새누리당에서 쳐내버리면, 유승민은 희생당한 자가 된다. 반대로 새누리당은 여러 삽질을 계속하고 있어 잘못하면 역풍이 그대로 올 수 있다.

그래서 새누리당에서는 유승민이 자포자기하기를 바라는데, 유승민이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사실 위키러 본인이 유승민이라도 자포자기를 하겠는가? 하지만 새누리당 측에선 아예 후보 등록 직전까지 발표를 안 해서 무소속 출마조차 봉쇄한다는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사람들 중 당선된 사람을 입당시키면 간단히 의석을 확보할 수 있는 것.

3월 22일에는 친박 중진인 홍문종 의원으로부터 유승민을 쳐내기로 공천관리위원회가 이미 결정했지만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는 이유가 유승민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이자 애정의 표시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결국 23일 오후 11시를 기해 기자회견을 열고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후보 등록 마감시한 직전에 이루어진 일.

3.3.2 탈당

23일 마지노선까지 공천 여부가 확정 되지 못하자, 결국 유승민은 2016년 3월 23일 밤 10시 50분에 기자회견을 열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고 공식적으로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아래의 글은 기자회견 전문이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구 시민 여러분, 사랑하는 당원 동지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 저의 고민은 길고 깊었습니다. 저 개인의 생사에 대한 미련은 오래 전에 접었습니다. 그 어떤 원망도 버렸습니다. 마지막까지 제가 고민했던 것은 저의 오래된 질문,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였습니다. 공천에 대해 지금 이순간까지 당이 보여준 모습, 이것은 정의가 아닙니다.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상식과 원칙이 아닙니다. 부끄럽고 시대착오적인 정치 보복입니다. 정의가 짓밟힌데 대해 저는 분노합니다.


2000년 2월 입당하던 날부터 오늘까지 당은 저의 집이었습니다. 이 나라의 유일한 보수당을 사랑했기에 어느 위치에 있던 당을 위해 제 온몸을 던졌습니다. 그만큼 당을 사랑했기에 당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는 말에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는 2011년 전당대회에 출마선언했을 때와 작년 4월 국민 대표 연설을 다시 읽어봤습니다. 몇 번을 읽어도 당의 정강 정책에 어긋난 내용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당의 정강 정책은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를 추구하는 저의 노선과 가치가 옳았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결국 정체성 시비는 개혁의 뜻을 저와 함께 한 의원들을 쫓아내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습니다. 공천을 주도한 그들에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애당초 없었고 진박, 비박#s-4이라는 편가르기만 있었습니다. 국민 앞에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국민 권력을 천명한 헌법 1조 2항입니다. 어떤 권력도 국민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원칙이 지켜지고 정의가 살아있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입니다.


오늘 저는 헌법에 의지한 채 오래 정든 집을 잠시 떠나려 합니다. 그리고 정의를 위해 출마하겠습니다. 권력이 저를 버려도 저는 국민만 보고 나아가겠습니다. 제가 두려운 것은 오로지 국민 뿐이고 믿는 것은 국민의 정의로운 마음 뿐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이 길을 용감하게 가겠습니다. 어떤 고난이 닥쳐도 결코 멈추지 않겠습니다.


보수의 적자, 대구의 아들답게 정정당당하게 나아가겠습니다. 국민의 선택으로 반드시 승리해서 정치에 대한 저의 소명을 다할 것입니다. 오늘 저의 시작이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로 나아가는 새로운 걸음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저와 뜻을 같이 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경선의 기회조차 박탈당한 동지들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이 분들은 당을 개혁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왔습니다. 제가 이 동지들과 함께 당에 돌아와서 보수 개혁을 이룰 수 있도록 국민들의 뜨거운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유승민 측은 당 지도부에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 탈당 발표 직전까지 무소속 출마에 필요한 유권자 300명 서명을 받을 준비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고 한다. 이 서명을 받으려면 선관위에서 도장 찍힌 용지를 받아와야 하는데 그것도 안 받아왔다고.

그리고 김무성이 일명 '옥새 투쟁' 끝에 대구광역시 동구 을 지역에 대한 새누리당 무공천을 얻어내기는 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이 지역구에 이승천 후보를 공천하면서 무투표 당선은 물건너갔다. 하지만 장소가 대구광역시인 만큼 당선 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에 더해, 후보 본인이 비교적 타 정당 지지자들로부터 표를 얻는 면도 있으며, 현재의 분위기가 정치 당파 싸움에 휘말려 내쫓겼다는 식의 구도에 가까워 비교적 동정적, 우호적인 여론이 많은 면도 있을 듯. 결국 그의 영향력은 대구광역시 내 다른 유승민계 의원들의 당선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3.3.3 총선 이후

새누리당크레토스.

대통령! 당신의 비서실장이 돌아왔소! 친박을 파멸시키고야 말 것이오!

비록 탈당했다고 해도 경쟁자가 더불어민주당 이승천 후보 밖에 없어서 사실상 당선이 확실시되는 상황이었고, 결국엔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 유시민 왈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당선이 확실하다 카더라[10]

20대 총선에서 전반적으로 새누리당이 고전했기 때문에 김무성 책임론이 당 내부에서도 불거질 가능성이 크고, 이에 따라 유승민 의원이 복당하여 새누리당을 이끌어야 할 분위기로 가고 있다.

유승민무소속 후보들이 모두 낙선하고 혼자 살아남은 상황이라 씁쓸함을 감출 수 없게 되었긴 했지만, 새누리당이 받은 타격 자체가 워낙 심대해 김무성 의원은 대권 도전에 빨간불이 켜진 것과 동시에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짊어져야 하고 오세훈, 김문수는 아예 낙선이다.

여기에 원내대표직 사퇴를 놓고 자신에게 쓴소리를 했던 김태호도 당직을 그만뒀으며, 원유철 원내대표 또한 결코 무사할 수 없을 것이다.

거기다 새누리당 129 대 전 야권 171의 여소야대의 상황이 이루어진 20대 총선 이후엔 박근혜 대통령의 당 장악력도 흔들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로서는 최고의 기회, 어쩌면 새누리당을 이끄는 리더를 넘어 차기 대권 주자로 올라설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리얼미터가 18~19일에 여권 내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1위를 달성했다! 물론 야권 지지자들의 역선택을 감안해야겠지만 총선 이후 지지율이 폭락한 김무성, 오세훈 등의 여권내 타 대선 주자에 비해서 명확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야권 지지자들의 역선택이 있었다는 점은 오히려 중도적 성향으로 표를 끌어올수 있다는 정치적 장점이기도 하다.

심지어 오직 새누리당 지지자와 무당층들을 대상으로 한 당대표에 적합한 인물 순위에서도 1위를 했다. 이 조사에서 유승민은 20.3%의 지지를 얻었고 이정현 의원은 15.8%, 원유철 전 원내대표는 11.5%의 지지를 얻었다.#

선거 다음날 김무성 대표 사퇴를 시작으로 새누리당 기존 지도부가 총 사퇴하면서 비대위원장을 맡은 원유철[11] 의원 등의 임시 지도부가 친여 무소속 당선자들 모두의 복당을 허용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새누리당 복귀가 사실상 확정적으로 보였으나 원유철 비대위원장이 유승민 의원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고, 이한구 전 공관위원장도 유승민을 저격하는 발언을 하여 아직 복당이 불투명해 보인다.

하지만 현재 새누리당이 원내 제1당 자리까지 빼앗긴 다급한 상황이고, 한 사람의 무소속 의원도 아쉬운 마당인지라 결국 복당할 가능성이 크다. 일단 안상수 의원과 윤상현 의원이 총선이 끝나자마자 복당을 신청한 상태.

그리고 2016년 4월 19일 새누리당 대구시당에 복당계를 제출했다. 그러나 1주일 후인 4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가진 언론사와의 간담회에서 유 의원에 대해 "비애를 느낀다며" 여전히 뒤끝 못마땅한 인식을 드러내면서 복당을 사실상 반대했다.

박 대통령이 "복당 여부는 당이 결정할 일"이라는 원칙론적 발언을 곁들이긴 했지만, 20대 총선 공천을 거치면서 새누리당 내에서 친박계가 다수파가 됐음을 고려하면, 유승민의 복당에 큰 장애가 생긴 것만큼은 분명.

6월 1일, 그동안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다가 성균관대학교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는데 강연을 하는 중에 5.16에 '군사 쿠데타'라는 수식어를 붙여 정치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군사 쿠데타를 군사 쿠데타라 그러는 게 특이한 일이냐'고 물을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보수 진영은,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전권을 잡은 이후의 새누리당5.16을 '군사 혁명'이라고 부르지, '군사 정변'이나 '군사 쿠데타'라고 부르지 않는다. 박정희라는 인물이 이 사건을 통해서 집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근혜정부의 장관들이 인사청문회를 할 때 야당으로부터 받는 단골 질문이 '5.16을 쿠데타라고 생각하느냐, 혁명이라고 생각하느냐'는 거였다. 보수 진영의 대표적인 정치인이, 그것도 대구광역시에서 뿌리를 내린 정치인이 5.16을 쿠데타라고 부른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리하여 정치권에서는 유승민 의원이 실수로 그랬을 리는 만무하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독자적인 노선을 걷겠다는 입장을 확실히 드러낸 것 아니냐는 예상을 한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 버티고 있는 한 새누리당 복당은 요원하니 앞으로 막 나가겠다는 생각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한 것 같기도 하다고(...)

3.3.3.1 새누리당 복당 승인

그런데.. 6월 16일 새누리당 비대위 결정에 의해서 복당이 허용되었다.

당시 세간의 예상은 전당대회 이후에나 복당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전망했으나 그 전망을 뒤엎고 빠르게 결정된 것이었다. 청와대에서 TV 보고 복당 사실을 알았다고 기사가 나올 정도면 말 다한 거 아닌가(...) #

김희옥 비대위원장이 정진석 원내대표의 "복당 문제를 오늘 회의에서 처리하자는 비대위원들의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를 묵살하는 건 중대한 범죄행위로 비칠 수 있다"는 발언에 비대위 결정 직후 당무를 거부 하는 등 친박계는 거세게 반발하였고 이번 결정을 주도한 권성동 사무총장과 정진석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수위 높은 발언들을 쏟아냈지만 친박내에서도 조원진, 김태흠 의원 등은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는 반면에 한선교, 서청원, 원유철 의원 등은 당헌 당규에 따라 비대위 결정을 따라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눠져서 친박내에서도 의견 통일이 안되는 모습을 보였다. #

결국 일련의 복당 파동은 김희옥 비대위원장이 정진석 원내대표의 사과를 수용하면서 당무에 복귀하고 비박계 권성동 사무총장과 친박계 김태흠 제1사무부총장이 나란히 사퇴함으로써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7월 8일 배신의 정치 파동으로 새누리당 원내대표에서 사퇴한지 딱 1년만에 청와대 오찬에 참석 했는데 박근혜 대통령과 35초(...) 동안 얘기를 나눴다고. # 근데 서로 보기 싫은 사람들끼리는 35초 대화도 35분처럼 길게 느껴진다

이 35초 대화 내용중에 K2 공군기지 이전에 관해서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청와대 오찬 3일 후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공항과 K2 이전을 추진하면서 대통령과 화해 분위기로 가는 거 아니냐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

8월부터 여러 언론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지속적으로 대권 도전을 시사하고 있다. #중앙일보 #문화일보 #한국일보

3.3.3.2 정의론

9월 7일 한림대학교 강연에서 사법부의 셀프 개혁으론 안 된다면서 당내에서 반대하는 공수처 도입을 주장하고 자사고의 폐지와 함께 특목고도 과학고, 예술고, 체육고 등 존재 이유가 특별하게 인정되는 걸 제외하고 외고는 폐지하는 게 맞다는 의견을 제시하였고, 박원순 서울시장이재명 성남시장이 실시하겠다고 밝힌 청년수당에 대해선 “서울시성남시는 재정자립도가 85%, 63~64%지만 전남이나 강원도는 자립도가 낮아 돈을 주고 싶어도 못 준다”면서 “좁은 대한민국 내에서 똑같은 혜택을 받아야 상식적으로 정의로운 정책”이라며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였다.

즉, 국가에서 해야 할 일을 지방자치단체에 떠맡기면서 이러한 불공정한 일이 벌어진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또 최근에 새누리당 남경필 경기도 도지사가 주장한 모병제에 대해서는 "모병제는 예산의 문제 이전에 정의의 문제가 있다"면서 "저 제도를 시행하면 우리나라는 부잣집 아이들은 군대 가는 아이들이 거의 없을 것이고 집안 형편이 어려운 가난한 집 자식만 군에 가게 된다"라고 말했고 또 "자식이 전방에 가서 목함 지뢰를 밟거나 북한군과 충돌하거나 내무생활이 괴로워 자살하는 불행을 바라는 부모가 누가 있겠느냐"면서 "모병제 주장은 우리나라 안보 현실에선 정말 말이 안 되는 정의롭지 못한 발상"이라고 비판하였다.#

이에 대해서 새누리당 남경필 경기도 도지사모병제에 대해서 공개토론을 제안하였다. #

10월 5일 국정감사에서 전경련은 해체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였다. 또한 김종인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김영란법에 대해 “성급한 법 시행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당장 (법을) 실현시키는 것을 막았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자 “부패한 나라가 선진국이 된 경우는 없다”며 “김영란법이 성장률이나 소비에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를 근거없이 함부로 하면 안된다"면서 맞섰다.#누가 야당이고 누가 여당인 것인가?[12]

10월 6일 부산대학교 강연에서 “저는 불법폭력시위는 단호히 반대하고 법에 따라 엄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제한 뒤 “그렇지만 공권력이 과잉 대응하는 것도 허용돼선 안된다고 생각한다”면서 백남기 사망사건에 대해서 국가가 사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10월 18일 tbs 교통방송특집 릴레이 토크 콘서트- 난세에 길을 묻다에 출연해서 송민순 회고록 논란, 최순실 게이트, 우병우 민정수석 관련 문제등등 여러가지 현안에 대해서 심도있는 인터뷰를 하였다.#유튜브영상 1부 #2부 #3부 #4부

10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이 10차 개헌을 꺼내자 유승민 개헌 에둘러 비판 "나라 꼬라지가 이상하다"새누리당 잠룡중에서는 유일하게 정면으로 반대했었는데 공교롭게도 당일 저녁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의 44개 연설문을 연설 이전에 비정상적이고 불법적으로 입수, 수정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 다음날인 10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학교 강연에서 유승민, 崔의혹에 "증거 다 나왔다…이건 나라도 아니다"라면서 개탄했다. 그리고 대통령이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서 대국민 사과를 하자 유승민 "대통령 사과 정도로 끝날 문제 아니다"...국정조사·특검 요구라는 반응을 보였다.

3.3.3.3 어젠다 2050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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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와의 만남. 왠지 자신의 정신적 후계자 쯤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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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부산 금정구)의 주도로 정당, 이념, 지역을 초월한 어젠다 2050(Agenda 2050)입법모임을 구성하였다. 상대적으로 온건, 중도적, 개혁적 보수, 진보, 중도 성향의 국회의원들이 참여해서 화제를 모았다.

어젠다 2050은 고용형태 다변화에 맞춘 복지개발, 교육과 고용의 유연성과 사회보장성 강화, 조세 수입구조의 다변화, 복지 전달 체계 전면 재설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해소 등을 미래 입법 과제로 제시하였다.

이를 두고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의 만남, 초당적인 입법모임이라고 평가받으면서도 향후 정계개편의 단초가 되는 것이 아니냐하는 관측도 제기되었다.

4 국방정책 관련


본래 경제학자 출신이지만, 제18~19대 국회에서 연속으로 국방위 소속으로 활동했고, 특히 19대 국회 전반기에는 국방위원장으로도 재직했다. 그 때문인지 국방정책 관련으로도 주목할만한 주장을 간간히 내놓기도 한다.

해군력 강화에 대체로 호의적이며, 2012년 예산안에 해군력 강화를 위한 방사청 연구 용역 발주를 주도했다.[13] 해군의 이지스함 3척 추가 건조가 결정되기도 전에, 국방위 재량으로 관련사업 연구를 위한 착수금 명목의 예산을 배정한 적도 있었을 정도.

반면 공군력 건설, 특히 KFXL-SAM을 비롯한 국산 무기개발 사업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숨기지 않았다.[14] 그 대안으로 F-35 도입 확대와 THAAD, 미국 주도 MD 참여 등에 호의적인 견해도 나타냈다.

때문에 국산 개발을 선호하는 밀덕 사이에서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국회 내 대표적인 사드 도입론자이지만, 국내 예산으로 사드를 도입해야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0년 김관진 국방장관 후보 청문회 당시 영상

20대 국회에서는 기획재정위로 편성되었으므로 국방정책에서 목소리를 많이 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드 배치가 결정되자 "칠곡에 배치하면 수도권 방어가 어렵다"면서 우회적으로 대구경북 지역에 배치하는데 부정적인듯한 목소리를 냈었으나 7월 12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TK에 배치돼도 감당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

5 비판/논란

5.1 보좌관 비리의혹

2013년 대구의 대구테크노파크(TP)측에서 대구 지역의 새누리당 전현직 의원들의 보좌관들에게 금품을 건내고 골프 접대를 한 사건이 있었는데, 여기에 유승민의 보좌관 박씨가 연루되었다. #

5.2 원조 줄푸세

유승민은 이회창의 등용으로 2000년 경제통, 정책통으로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에 참여해 여의도연구소의 소장(2000년 2월~2003년 6월)을 맡으며 경제정책을 이끌었으며, 2007년 대선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에 참여해 총괄단장을 맡아 '줄푸세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 공약을 함께 만들면서 공약의 논리적 근간과 구체적 정책을 만들었다. #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는 '공정한 경제를 위한 시장경제 수술#'을 주장하는 현재와는 매우 대비되는 행보로 비판이 존재한다.

하지만 유승민이 과거 자유주의적 경제학자의 면모가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나 진보진영으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MBC 백분토론에서 토론을 벌였던 유시민은 유승민을 좋은 토론 파트너라고 평가했다. # 그리고 그가 하루 아침에 의견을 바꾼 것은 결코 아니다. 유승민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보면서 자신의 견해가 바뀌었다고 밝혔으며,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야당 의원으로서 비판활동 열심히 했더니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더욱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기는 하지만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도입되고 있다는 인식과 평가가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가 과연 신자유주의 맞는가?"라는 반론도 있다. 더욱이 그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여당 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서 비판을 했으며 특히 재벌, 대기업, 감세정책, 사회경제적 양극화 현상 등에 대해서 적극적인 비판을 하였다.

5.3 경인TV 논란

2006년 11월 9일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 신현덕 전 경인TV 대표, 방송위원회 상임위원 강동순, KBS 심의위원 윤명식, 모 프러덕션 사장 J사장이 서울 유명 고급 일식집에 모여 벌인 술자리에서의 대화 내용이 2007년 4월 5일 관련 내용이 보도되었고, 다음날 6일 전문이 공개되었다.해당 녹취록에서는 심각한 권언유착 의혹들이 드러나 정치적 파장을 불러왔다.

#전문보기 녹취록에 따르면 참석자들은 한나라당의 대선 승리를 위해 해당 언론사들과 한나라당이 서로 도와야 한다며 협조를 다짐했고, 대선 홍보를 위해서는 감성을 자극해야 한다는 등 구체적인 전략이 이야기 되었다. 유의원 역시 "내년에 도와달라"며 언론사에 협조를 부탁했다. 또한 당시 정연주 사장을 견제하기 위해 KBS 노조선거 개입 등을 논의한 정황이 드러났다. [1]

해당 녹취록이 보도된 뒤 열린우리당은 유승민 의원을 국회 윤리위에 제소했다. #

5.4 금수저 딸 논란

아래에서도 언급되는 유승민 의원의 딸의 재산내역이 4.13 총선 기간에 공개되었는데, 22살에 2억의 재산을 보유했다. 하지만 상속세는 한 푼도 내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되어 구설에 올랐다. 이에 유승민 의원은 "입학 졸업 등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받은 돈을 모은 것"으로 "법적 문제가 없다"라고 했으나, 2억은 유치원생때 부터 매달 100만원씩 모아야 22세에 2억이 되는 돈으로 대중의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이에 대해 공직자의 가족들의 재산 형성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6 정치적 노선

새누리당 국회의원 중 중도 스펙트럼이 가장 넓은 인물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좌파적인 발언을 했다고 하여 논란이 있다. 그런데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과거에는 자유주의 성향의 경제학자의 모습이 강했는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보면서 생각이 다소 바뀌었다고 회고했다.

또한 성장 동력이 점점 쇠진해가고 외환위기와 미국발 금융위기 등의 여파로 점점 양극화가 심화되어가는 현상을 보면서 전통적인 보수의 방법과 노선에서 변화를 꾀해야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사실상 현재의 노선은 복지 지향적인 온건 보수주의에 가깝다.[15]

어쨌든 이로 인해,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한나라당 시절 소장파 정치인들의 리더 역할을 했던 권영진, 남경필, 원희룡 등이 각각 대구시장, 경기도지사, 제주도지사로 가게되면서 중앙정치로 멀어지게 되었는데, 유승민 의원이 새누리당 내 개혁적 보수의 상징성 있는 위치로 올라서게 되었고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내 주류에게 밉보인 탓에 20대 총선에서 공천 논란을 겪으면서 본인이 새누리당을 탈당하게 되었고 정치적으로 위기가 찾아왔으나 20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고 비대위 결정으로 세간의 예상보다 빠르게 새누리당으로 복당함으로써 여러 언론에서 차기 대권 주자로써 이름이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유승민 의원은 원내대표 취임 후 첫 국회 연설에서 "10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양극화를 말했습니다. 양극화를 시대의 과제로 제시한 그분의 통찰을 저는 높이 평가합니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칭찬하는 발언을 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이례적으로 새누리당 원내대표 연설에 높은 점수를 주었었다.###

7 딸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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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유담 양이 아버지의 선거 사무소에 모습을 드러내자 유 양의 외모가 화제가 되었다. 위의 움짤을 보면 코나 눈두덩, 입술 등 이목구비가 부친을 많이 닮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유승민 의원 본인도 나이대에 비해서 동안이고 꽤 잘생긴 편이라고들 한다.

모든 남초 사이트는 진보, 보수 상관 없이 예쁘다며 대동단결 했다(...) 좌우합작(?) 개표방송에서 유승민 후보가 나올 때마다 진보, 보수 할 것없이 채팅, 댓글란이 '장인어른'으로 도배될 정도였다... 외모가 거의 배두나 리즈시절 + 혜리 혹은 이연희 + 수지라며 찬양일색(...)

심지어 패러디 포스터도 나왔다(...) 무소속 그러나 따님은 내소속

서울대에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가 누리꾼들 사이에 퍼졌지만, 서울대를 다니고 있는 건 유담 양이 아닌 유담 양의 오빠라고 한다. 유담 양은 동국대 법학과 4학년이라고 알려졌다. 나이는 22세(1995년생)이라고 한다.

8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2004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14번)한나라당-당선2005년 9월 의원직 사퇴
대구 동 을 지역구 재보궐 출마[16]
20052005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17대 국회 대구 동 을)[17]
한나라당36,316 (52.0%)당선 (1위)
2008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동 을)한나라당55,394 (84.4%)당선 (1위)
2012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동 을)새누리당57,556 (67.4%)당선 (1위)
2016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동 을)무소속61,429 (75.7%)당선 (1위)2016년 6월 새누리당 복당

9 여담

2016년 9월 12일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 앵커와의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2016년 경주 지진으로 인해 1주일 미루어졌다. 그리고 1주일 뒤인 2016년 9월 19일 경주에서 규모 4.5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을 일으키는 자!!!

이날 JTBC 뉴스룸에서는 원래 북핵 문제를 비롯한 안보 이슈를 가지고 인터뷰가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지진으로 인해 인터뷰의 주제는 지진과 대한민국의 재난대비 시스템에 관한 주제로 바뀌었다.

딱히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텐데 원자력 발전소 재검토라던지 국민안전처의 대처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던지 나름대로 소신있는 발언을 한 유승민 의원은 오히려 본인에 대한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데 성공했을 것이다. 북핵 문제와 안보 이슈는 아무래도 개개인의 정치 성향에 따라 입장 차이가 있으며 표를 받고 사는 정치인이 TV에서 그러한 이슈에 대해 자기 입장을 밝히는 것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그러나 국민 안전과 재난에 관련된 이슈는 웬만해서 여야간의 입장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본인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의문의 1승

본인은 아직 아무런 얘기가 없으나 잠재적인 대권 주자로서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날 손석희 앵커는 유승민 의원에게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JTBC 뉴스룸에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해 주었다.
  1. 당시 한나라당 대표로서 유승민을 정계에 입문시킨 장본인이었다.
  2. 당시 오세훈 시장을 계백, 무상급식 중단 여부 투표를 황산벌 전투로 비유하며 지원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시작부터 패배를 암시하는 꼴이 된 셈
  3. 물론, 서울특별시장의 지위는 장관급이기 때문에 차관급인 다른 지자체 도지사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은 권위가 있다. 하지만, 나머지 15개 지역에 영향력이 미치는 서울특별시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사태가 악화될 수 있기에 이런 발언을 했다고 볼 수 있다.
  4. 잘 알겠지만 '얼라'는 경상도 사투리로 '아이'라는 말이다. 표준어로 풀이하자면 "청와대 애들"이라고 한 것이다.
  5. 오마이뉴스TV에서 대표 연설을 핵심만 요약한 영상이 있는데, 자아비판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새누리당과 박근혜정부의 실패를 인정했다.영상링크 연설 전문
  6. 삼권 분립의 원칙상 행정부 수반은 다른 헌법기관 중 하나인 국회에 관여해선 안되기 때문이었다.
  7. 원내대표는 소속 교섭단체 의원들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당의 상황에 따라 의견을 취합하여 추대를 하거나 선거를 하여 선출하는데, 유승민 원내대표 또한 개개인이 독립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의 투표를 통해 선출된다. 내부에서 반향이 일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자리가 바로 원내대표다.
  8. 썰전 이철희 소장은 이를 단순 권력 다툼이 아니라 유승민 의원 지역구가 대구인데, 현 대통령 지지 세력도 대구라 여차하면 지지 기반을 잃을 수 있다는 부담감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즉 단순 권력 다툼으로 볼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9. 묘하게 조경태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전 대치 국면에 있었던 상황과 비슷하다. 조경태의 경우 공천 심사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공관위에서 공천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라는 점은 누가 봐도 거의 분명했고, 조경태 자신도 (이리저리 재면서 징계를 유보하느니) 당이 자신을 확실하게 쳐내 주길 바라는 입장이었다.
  10. 1위야 당연히 이군현
  11. 공교롭게도 1년 전 유승민이 새누리당 원내대표에서 떠밀리다시피 물러난 후, 후임 원내대표가 되었던 인물이다.
  12. 근데, 김종인 전 대표는 원래 새누리당에 있다가 박근혜 대통령과 노선이 달라지면서 더불어민주당으로 넘어간 케이스라 성향 자체는 서로 비슷하긴 하다(...)
  13. 이 연구에서 3개 기동전단 체제의 기동함대 건설안이 제시되었다.
  14. 2015년 국정감사에서 미국의 KFX 관련 주요 기술이전 문제가 논란이 된 상황에서도 정부가 자체 개발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방사청과 청와대 참모진이 대통령을 속이고 있다"며 여권 소속 의원으로는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비판했다.
  15. 새누리당 내에서는 가장 좌파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색깔 때문에 일부 진보 진영에서는 진정한 보수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대표적 진보 논객인 진중권은 긍정적으로 평했으나 전원책은 유승민이 무슨 보수냐며 보수 소리 좀 하지 말라며 싫어한다.
  16. 부연설명하자면, 17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당선된 사람이, 같은 17대 국회의 지역구에 공석이 생기자 의원직을 사퇴하고 해당 지역구 재보궐에 출마한 거다.(...) 이에 대해서는 당시에도 말이 많았는데 본인 의사보다 박근혜 당시 당 대표의 의중이었다는 말이 있다.
  17. 전임자 박창달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