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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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政烋
1918년 06월 01일 ~ 1999년 09월 06일
1918년 전라남도 광주군(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일본 호세이대학 법과를 졸업하였다.
8.15 광복 후 우익 단체인 대한청년단 전라남도단 조직부장 및 총무부장, 국민회 광산군 지부장을 역임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전라남도 광산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에서 중앙위원을 역임하였다. 1955년 십만 환의 무거래 수표를 발행하였다는 이유로 고소당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전라남도 광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경 국회의원 신분으로 백선엽 육군참모총장, 송요찬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지프 두 대를 강탈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1961년 3.15 부정선거 가담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전라남도 광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박종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박종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오중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