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1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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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鍾郁
1884년 1월 13일 ~ 1969년 11월 3일

대한민국의 전 종교인, 정치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종교불교다.

1884년 강원도 평창군에서 태어났다. 13세에 월정사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월정사 승려 시절인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한때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으로 지내면서 독립운동 활동을 했다.[1] 그러다가 1920년대 중반 국내로 귀국해서 승려로 활동하며 월정사 주지 등을 역임하였다.

1930년대 후반부터 조선임전보국단 등의 단체에서 활동하며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하였다. 창씨개명도 하여 일본식 이름은廣田鍾郁(히로타 쇼이쿠)이다.

8.15 광복 이후 우익 정치인으로 변신하여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등의 단체에 몸담았다. 신탁통치 오보사건 이래 신탁통치 반대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다시 불교계의 원로로 복귀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회 후보로 고향인 평창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국민당 황호현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51년 동국대학교 재단이사장, 1952년 불교계 대표인 중앙총무원장 자리로 돌아왔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그러나 1993년 국가보훈처가 친일 경력이 있는 독립유공자들을 대상으로 재심을 할 때 재심 대상자 8명 중의 하나로 명단에 올랐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선정되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결국 2010년 건국훈장 독립장 서훈이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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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를 들어서 의친왕 망명 사건 계획이나 공작등 했다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