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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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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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 No.39
이종욱(李鍾旭 / Jong-Wook Lee)
생년월일1980년 6월 18일
출신지태국 방콕서울특별시 중랑구
학력면목초-홍은중-선린인터넷고-영남대
포지션좌익수[1] 중견수, 우익수[2]
투타좌투좌타
프로입단1999년 2차지명 2라운드(전체 16번, 현대)
소속팀현대 유니콘스(2003~2005)
두산 베어스(2006~2013)
NC 다이노스(2014~ )
등장음악Flo Rida - In The Ayer[3]
Let it go(겨울왕국)[4]
응원가두산 시절 : 트랜스픽션 - Radio[5]
현재 : Simple Plan - Jet Lag[6],
Georges Bizet - 카르멘 중 투우사의 노래[7][8]
2007년, 2008년 한국프로야구 플레이오프 MVP
김태균(한화 이글스)이종욱(두산 베어스)박정권(SK 와이번스)

2007년 ~ 2008년 한국프로야구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2006년2007년2008년2009년
이용규(KIA 타이거즈)
이택근(현대 유니콘스)
박한이(삼성 라이온즈)
심정수(삼성 라이온즈)
이종욱(두산 베어스)
이대형(LG 트윈스)
카림 가르시아(롯데 자이언츠)
김현수(두산 베어스)
이종욱(두산 베어스)
이택근(넥센 히어로즈)
김현수(두산 베어스)
박용택(LG 트윈스)

2010년 한국프로야구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이택근(넥센 히어로즈)
김현수(두산 베어스)
박용택(LG 트윈스)
김강민(SK 와이번스)
김현수(두산 베어스)
이종욱(두산 베어스)
이용규(KIA 타이거즈)
손아섭(롯데 자이언츠)
최형우(삼성 라이온즈)
2008년 한국프로야구 최다 득점상
고영민(두산 베어스)이종욱(두산 베어스)정근우(SK 와이번스)
최희섭(KIA 타이거즈)
2006년 한국프로야구 도루왕
박용택(LG 트윈스)이종욱(두산 베어스)이대형(LG 트윈스)
2007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올해의 선수
이대호(롯데 자이언츠)이종욱(두산 베어스)김현수(두산 베어스)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39번
?이종욱(2003~2005)유한준(2006-2007)
두산 베어스 등번호 39번
홍마태(2004~2005)이종욱(2006~2013)장민석(2014)
NC 다이노스 등번호 39번
찰리 쉬렉(2013)이종욱(2014~ )현역
NC 다이노스 역대 주장
이호준
(2013~2014)
이종욱
(2015~2016)

1 개요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 최고의 외야수 중 한 명

NC 다이노스외야수. 명실상부한 자타공인 대한민국의 최고 중견수 중 한 명이었다. 야구 외적으로 문제가 많았던 정수근을 제외한다면 베어스 역사상 최고의 프랜차이즈 리드오프로 남을 수도 있는 선수였으나, 이적 과정에서의 잡음과 이적 후의 반먹튀성 성적으로 이래저래 욕을 많이 먹는 선수가 되어버렸다.

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 재학중, 청소년대표로 발탁되었을 정도로 이름을 날린 유망주였다.

2 선수 커리어

2.1 현대 유니콘스 시절

1999년 현대 유니콘스의 2차 2순위로 지명받을 정도로 장래성을 인정받았다. 당시는 대학교 진학 이후에도 프로 지명권이 유효하던 시절이라 영남대학교를 졸업하고 2003년에 입단하였다. 앞선 순위는 이택근이다. 하지만 1군에는 오르지 못하고 현대 유니콘스 2군에서 1년을 보낸 후 2003 시즌 후 상무에 입대하여 군 복무를 마쳤다. 그러나 상무에서 제대하고 소속 팀 복귀를 앞두던 때, 갑작스런 방출 통보를 받게 된다. 이는 당시 포텐을 터뜨리기 직전이었던 정수성과 포지션이 겹쳐서라는 해석이 있다.[9] 하지만 당시 현대 유니콘스 코칭스태프는 이종욱의 방출을 반대했었다고 한다. 아마 부쩍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 현대 구단 사정과도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이종욱 거르고 정수성 게다가 현대 구단은 그를 방출시키고 두 달 가까이 쉬쉬해 원성을 사기도 했다.

현대 팬 북을 갖고있는 사람이라면 이종욱의 사진을 본 유저들이 있을 것이다. 거기서 나오는 케치프레이즈가 심정수보다도 강한 강견이라고 적혀있다, 그렇다 이종욱은 어깨가 좋은 선수다. 왜 이종욱이 두산 베어스에 있던 중견수 자리를 하지 않고 현재 NC 다이노스에서 우익수를 하는지 봐라 물론 얘가 잘해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이종욱이 나이가 들어서 주루를 못하는게 아니라 나성범이 박재홍과 같은 공수주 비슷한 유형의 타입인데 타구판단에 의한 코너 수비약점이 잡혀있다, 즉, NC판 이택근이다. 뭐 그래도 박재홍도 국대에서 외야 센터+코너뛰고 현대-기아-SK에서 뛸 때는 중견수와 우익수에서만 뛰었다. 이택근은 넥센에서 중견수만 보고있다.
부상이 심하기 전 현대 유니콘스에서 골든글러브를 받던 시절에 전준호-송지만과 골고루 좌익수로도 뛰었다.
그래서 코칭스텝과 김경문은 영입당시 우익수로 돌리고 또 발빠른 김종호를 좌익으로 보내는게 답이였다. 그 전해가 권희동이 있는데 군대에 갔다.

방출 통보를 받은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시절부터 죽마고우였던 두산 베어스의 유격수 손시헌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한 일이었다고 한다. 당시 부동의 주전 유격수 자리를 굳히고 있었던 손시헌은 팀에 이종욱의 입단 테스트를 주선했다. 친구의 도움으로 입단 테스트에 합격함으로써 이종욱은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게 된다.

이러한 입단 과정 때문에 이종욱을 '신고선수' 출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종욱은 분명히 현대 유니콘스가 정식으로 지명해서 입단한 선수이다. 다만 방출당한 후 두산에 처음에 입단했을 때는 신고선수 신분이 맞고, 이후 실력을 인정받아 시즌 시작 전 정식 선수로 등록되는 데 성공한 것이다.[10] 이 과정이 와전되어 아예 선수경력 자체를 신고선수로 시작했다는 오해를 사게 된 것이다. 이를 곧이곧대로 믿은 대표적인 사람이 김은식 작가였으나, 이후로는 오해를 풀었다고.

2.2 두산 베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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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박 베어스

2.2.1 2006 시즌

정식 선수로 승격된 후 1군 엔트리에서 시즌 개막을 맞는다. 스프링캠프에서 성실한 훈련 태도로 김경문 감독의 눈도장을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1군 경험이 전무했던 신인급 선수였기 때문에 여러모로 미숙한 점을 보였다. 특히 시즌 초반에는 좌익수로 나서 뜬공을 잡으려다 만세를 불러 2군행을 통보받기도 했었다. 현재의 귀신같은 외야수비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일화이다.

하지만 빠른 발[11]과 성실한 태도를 무기로 정수근의 FA 이적 이후 확실한 주인이 없었던 1번 리드오프 자리를 꿰차게 된다. 그해 기습번트에 의한 내야안타를 주무기로 삼으면서 51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도루왕에 올라, 고영민과 함께 김경문 감독 특유의 '발야구'의 선봉장이 된다. 그러나 그 해 슈퍼 괴물이 나타나는 바람에 신인왕을 받는 데에는 실패했다.

2.2.2 2007 시즌

지난 시즌의 지나친 내야안타 의존도로 인하여 견제를 받아 고전하리라는 예상이 많았으나, 한 시즌만에 완벽하게 스윙을 가다듬어 외야수 사이로 빠른 타구를 날릴 수 있게 되면서 3할 타율에 등극한다. 시즌 초에는 좌익수로 나오다가 얼마 안가 중견수로 자리매김했고, 이후 수비도 일취월장해서 잠실 야구장의 광활한 외야를 책임지며 숱한 호수비를 선보인다. 여기에 시즌 47도루로 도루 2위에 랭크되며 지난시즌에 이어 육상부의 명성을 이어갔다. 한화 이글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공-수-주 모두에서 대단한 활약을 보이며 MVP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생애 첫 골든글러브도 수상했다.

2.2.3 2008 시즌

여전히 리그 최고급 리드오프의 면모를 과시하며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해서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된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 2년 연속 플레이오프 MVP를 받았으나, 한국시리즈에서는 박경완을 위시한 SK 와이번스 배터리의 집중견제 속에 고전하였다. 2년 연속 골든글러브도 수상했다.

다만 이 때 성적이 조금 더 나았다고 볼 수 있는 박재홍 대신 이종욱이 수상하여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2.2.4 2009 시즌

본 시즌 직전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국가대표팀으로 참가하였다. 하지만 6월 KIA 타이거즈와의 광주 경기에서 수비 도중 김재호와 충돌하여 턱관절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커리어 로우의 성적을 기록한다. 하지만 시즌 말미와 포스트시즌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부상에 대한 트라우마는 겪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시즌 성적 부진으로 인하여 입단 후 처음으로 연봉이 삭감되었다.

2.2.5 2010 시즌

타격 폼을 좀 더 간결하게 수정하겠다고 밝혔고, 시즌 내내 좋은 결과를 낳았다. 3월에 딸 예소가 태어나 분유버프가 예상되기도 했다. 특히 간결하게 폼을 수정했는데 홈런을 5개나 기록하며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도 새로 썼다. 손목 부상으로 타격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데뷔 이후 최고 타율을 기록중이다. 특히 시즌 초반 득점권 타율 1위를 달리면서 리그 최고인 두산 타선의 선봉장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2010시즌 최종 기록은 득점권 타율 0.359로 7위.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22타수 11안타 1홈런 3볼넷 1도루 4타점 3득점, 타율 .500, 장타율 .727, 출루율 .560으로 맹활약했고, 팀은 2연패 뒤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17타수 5안타 2볼넷 1희생플라이 1도루 2타점 4득점, 타율 .294, 장타율 .353, 출루율 .35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결국 2010시즌 또 다시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을 수상했다. 다만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다소 부진해 결승전에서 이용규에게 선발 자리를 뺏겼다.

2.2.6 2011 시즌

2011 시즌에도 3할 타율에 6년 연속 20도루를 달성하며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해냈다.

2.2.7 2012 시즌

2012 시즌 여러모로 부진에 빠지며 타율 0.240으로 커리어 로우를 기록하는 등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특히 1번 타자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공을 무조건 퍼올리는 일이 많아 팬들의 비난을 샀다.

그러나 풍부한 경험이 어디 가지 않아서,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1, 2차전 합쳐서 6타수 3안타 1타점 2득점 1볼넷으로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팀이 시리즈 전적 2패로 몰린 10월 11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3차전 첫 타석에서 롯데의 선발 투수 사도스키의 투구에 종아리를 맞고 부상을 입었다. 그래도 투혼을 발휘하여 도루와 득점까지 올렸지만 결국 다음 타석에서 임재철로 교체되었고, 팀이 스코어 7:2로 승리하여 준플레이오프 4차전이 열렸지만 이종욱은 부상 때문에 4차전도 출장하지 못했는데, 팀이 4차전을 스코어 3:4로 패하면서 이종욱은 더 이상 2012년 포스트시즌에 출장하지 못했다.

이종욱은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에서 1, 2, 3차전에 선발 중견수 겸 1번타자로 출장하여 6타수 3안타(2루타 1개 포함) 1타점 3득점 1도루 1볼넷 1사구(死球), 타율 .500, 장타율 .667, 출루율 .625를 기록했고 팀은 1승 3패로 탈락했다.

2.2.8 2013 시즌

이 시즌을 무리없이 소화하면 프로 첫 FA를 맞이하게 되었다. 시즌 초반 2012년의 부진이 그대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이자 팬들의 원성을 샀지만, 5월 타율이 0.226이었는데 6월 타율이 무려 0.388였을 정도로 6월부터 무시무시하게 타격감을 끌어올렸다.
주루에서도 활발한 모습을 보였고, 수비 또한 여전히 안정적이어서 두산의 상승세를 이끄는 주역이었다. 8월 7일 현재 0.318의 타율로 전체 7위에 랭크되었으며 홈런도 벌써 5개, 7월에는 역대 4번째 8년 연속 20도루를 기록하는 등 여러모로 FA로이드의 위엄이 느껴졌다. 이대로만 시즌을 마칠 수 있다면 커리어 하이를 달성하며, FA 대박도 충분히 기대해 볼 수 있는 상황이었고, 결국 3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하며, 두산을 종박 베어스로 만든다.

넥센 히어로즈와의 2013년 준플레이오프 전 경기에서 선발 중견수 겸 1번타자로 출장하여 19타수 2안타 4볼넷 2도루 2득점, 타율&장타율 .105, 출루율 .261로 부진했지만, 팀은 2연패 뒤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LG 트윈스와의 2013년 플레이오프 1, 2, 4차전에서 선발 중견수 겸 1번타자로 출장하여 12타수 2안타 1희생플라이 1타점 2득점, 타율 .167, 장타율 .333, 출루율 .154로 부진했지만,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3년 한국시리즈 1, 2, 3, 4, 5, 7차전은 선발 중견수 겸 1번타자, 6차전은 선발 중견수 겸 7번타자로 출장하여 28타수 6안타 2볼넷 1사구(死球) 1타점 2득점, 타율 .214, 장타율 .286, 출루율 .290로 부진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앞서다 내리 3연패를 당하여 준우승에 그쳤다.

이종욱은 2013년 포스트시즌에서 59타수 10안타 6볼넷 1사구(死球) 1희생플라이 2도루 2타점 6득점, 타율 .169, 장타율 .237, 출루율 .254로 부진했다.

2.3 NC 다이노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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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16일까지 FA 시장에서 두산과의 우선협상에 실패하여 손시헌, 최준석과 함께 FA 시장에 나왔다. 이후 손시헌과 함께 NC 다이노스로 이적했다. 4년간 총액 50억 원으로 알려졌는데, 문제는 같은 날 정근우, 이용규, 이대형(?!)의 FA 대박으로 묻혀 버렸다는 것(…).

2.3.1 2014 시즌

스프링캠프에서는 중견수가 아닌 우익수로 출장했다. 원래 우익수로 전향하려 했던 나성범이 우익수 자리에 영 적응을 못해 이종욱이 우익수로 들어온 듯하다.

4월 2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결승타를 쳤다.

4월 6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이전까지는 3타수 무안타 였지만 기어이 9회말에 끝내기 안타를 쳤다!

4월 9일 한화 이글스전 5회말에서 역전 적시타로 2루수에 있는 손시헌을 홈으로 끌어들였다. 영상 역시 솔메 그리고 이날에도 결승타를 때렸다!

4월 12일 LG 트윈스전에서 땅볼로 결승타를 쳤다.

시즌 초반이고 타율이 높은 편이 아닌데 알게 모르게 결승타를 챙기고 있다(...)

4월 16일에는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도 연장 12회 선두타자 출루로 결승득점에 성공했다. 경기 내내 죽을 쑤다가 결승득점을 한 것이 포인트. 이날 경기로 타율은 .196이 되었다. 현재 타율이 멘도사 라인도 못가는 리드오프(...)지만 팬들은 경기마다 '결승'의 뭔가를 이뤄내는 이종욱을 보고 깔지말지 고민하고 있다. 사실 1할대 타율은 적절한 순간 투수를 방심시키기 위한 계략이라고 한다.

4월 23일 SK 와이번스전 7회초에서 전유수를 상대로 시즌 마수걸이 홈런을 쳤다. 다음날에는 여건욱을 상대로 투런 홈런을 때렸다.

4월 27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5회초 몸을 사리지 않는 호수비를 보여줬다. 그리고 이날 희생플라이로 결승타를 쳤다.

5월 17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4타수 무안타 4땅볼(...)로 타율이 .206, 출루율은 .263으로 더 떨어졌다. 슬슬 먹튀 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른 외야 경쟁자 권희동, 박정준 역시 타격감이 괜찮은 상황이었다. 본인의 분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5월 18일 5경기만에 안타를 쳐내면서 개인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다. 또한 노경은의 슬로커브 관련 기사를 통해 '장난하는줄 알았다' , '연마했는지 모르겠다'며 따끔한 한마디를 전한 기사가 전해지면서 두산팬은 물론 타팀 야구팬들로부터 실망감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다만 농담으로 한마디 한 것이 기레기 때문에 와전된 것이라는 의견도 있는 만큼 어느 정도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5월 27~29일에 벌어진 한화와의 3연전을 기점으로 타격감이 올라오면서 타율이 2할 8푼대에 근접했다.

6월 4일 넥센 히어로즈 2차전 1회말에 헨리 소사를 상대로 솔로포, 시즌 4호 홈런을 쳤다

6월 10일 두산 베어스 1차전 4회 무사 만루 상황에서 유희관을 상대로 우중간 3루타로 팀승리에 기여했다. 참고로 이 3루타가 결승타였다!

7월 7일 LG 트윈스와의 3차전 4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7회 박민우와 함께 더블 스틸을 성공하며 9년째 연속 두자릿수 도루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8회 2사 만루 상황에서는 몸을 아끼지 않는 호수비(네이버 버전), (NC 유투브 버전)를 보여주며 팀을 위기에서 구했다.

9월 9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홈 경기 연장 11회말에 팀을 승리로 이끄는 끝내기 만루홈런을 때리면서 팀의 승리에 큰 공을 세웠다 ! 이종욱 본인도 이번이 커리어 첫 만루홈런이라고 한다.

10월 4일, 두산 베어스와의 홈 경기에서 4:4 상황에서 8회 결승 홈런을 때려 팀을 4:5 승리를 이끄는데 크게 기여를 했다. 두산팬들은 그저 ㅂㄷㅂㄷ

LG 트윈스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이미 LG쪽으로 상당히 기운 상태였긴하지만 이혜천과의 합작으로 1사 만루에 안타 후 송구를 3루로 한다는게 그만 덕아웃으로 들어가버려 싹쓸이와 함께 이후 이어진 대량실점으로 경기를 완전히 LG가 가져가게 만들었다. 그래도 2차전에선 손주인의 타구를 환상적으로 막아냈다. 하지만 이 날 안타는 없었다. 등가교환 타격면에서 매우 부진한데 1, 2차전에서 7타수 무안타 1볼넷 2삼진이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입이 방정인 후배와 함께 공격의 흐름을 끊어먹으면서 1, 2차전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

3차전에선 급기야 파울 타구에 발등을 맞아 발목에 타박상을 입었고, 권희동과 교체되었다. 나성범이 중견수를 보는 상황이 됐는데, 나성범은 5회에 홈 보살을 기록하며 승리를 견인했고, 교체된 권희동도 2타수 2안타로 활약했다(...) 이 여파로 4차전에선 선발 출장하지 못했고, 7회에 선두타자 대타로 출장해 신정락과 상대했다. 결과는 4구만에 헛스윙 삼진(...) 그런데 NC는 이 이닝에 2득점하며 LG를 1점차까지 쫓아가서 이종욱의 삼진이 더욱 아쉽게 되었다.

이종욱은 2014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0타수 0안타 1볼넷 3삼진으로 타율 .000을 기록했다. 이태원보다 낮다

2.3.2 2015 시즌

이호준에 이어 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었다.[12]

5월까지의 모습은 영 좋지 않다. 테이블세터 자리에서는 완전히 밀려난 상태고, 주로 6번 중견수로 출전하는데 타율이 2할 초중반에서 왔다갔다하는 중.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3번 타자로 쓸 수 있을 정도의 타격능력을 가진 선수라고 평가받던 걸 보면 그야말로 세월이 무상하다. 하도 광고소환을 잘해서 애드박으로 불린다. 한때 국대 붙박이 중견수로써 클래스를 자랑했던 수비력도 흔히 외야수비 라이벌로 꼽히는 김강민 등과 비교하면 많이 떨어진 모양새다.

5월 28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좌측 담장을 넘기는 홈런을 쳤다 이종욱이 데뷔후 처음으로 밀어서 담장을 넘겼다. 이 두산 3연전에서는 왠일로 그야말로 친정에 비수를 꽂는 맹활약을 펼쳤고, 벤치 클리어링 사태를 앞장서서 수습하는 모습으로 주장으로써의 리더쉽을 보여주기도 했다.오히려 벤클의 시발점이었던 옛동료이자 상대 주장 오재원은 비교돼서 더 까였다고 한다

6월 18일 경기가 공교롭게도 자신의 생일임과 동시에 1100경기 출장시점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먼저 달아나는 점수를 냈다.

6월 26일 경기에서 1500루타를 돌파했다. 1499루타에서 과감한 3루타를 성공시킨 것. 이어서 이동현의 공이 튀었을 때 과감하게 승부해서 추가득점까지 올렸다.

10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했다. 일단 5월 말부터는 뭔가 삽질하다가도 한두 시리즈마다왠지 친정팀 상대할 때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적재적소에서 한번씩 활약해주는 모습이다. 문제는 그런 식으로 타율을 .270정도까지 올려놓고 '부활했다'는 소리가 나올 만 하면 도로 두자릿수 타석 연속 무안타를 찍으면서 팬들의 혈압을 올리는 중이라는 것.

10월 2일 염증 치료를 위해 일본 요코하마로 출국하면서 정규시즌을 마쳤다.


10월 18일 두산과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병살타 하나를 포함한 4타수 무안타로 매우 부진해서 손시헌과 함께 패배의 주요원인으로 꼽혔다. 비밀곰 엔젤종욱니뮤ㅠㅠ
10월 19일 2차전에서도 3타수 무안타 1볼넷 3삼진으로 스파이로 맹활약 부진했지만 팀은 이겼다.
10월 21일 3차전에서 분위기상 못치는게 이상한 날이었지만 5타수 2안타 2타점을 기록 하였다.
10월 22일 4차전에서 2타수 1안타 기록. 7회말 수비에서 허경민이 친 중견수 옆으로 흐르는 타구를 슬라이딩으로 막고 빠르게 던지는 동작에 어깨 통증을 느껴 김준완과 교체되었다.
4차전의 어깨 통증으로 출전이 가능할지 의문이었지만 선발 엔트리를 보고 울었다ㅠㅠ 10월 24일 5차전에 선발,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하였다.

2014년에 이어 포스트시즌에서 최악의 활약을 보여주며 2016년에 대한 기대감이 땅바닥을 뚫었다. 현 2년 동안 리더십이나 정신적인 측면에서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는지야 어쩔 지 몰라도, 4년간 총액 50억 원의 성적은 절대 아니다. 20억도 한참 많다던 깝깝한 선수하고 타격력을 맞바꾼 듯 하다 나이도 나이인지라 반등할 여지가 보이는지도 의문이 든다. 이래서야 2013시즌 두산을 멱살잡고 끌고가던 모습도 FA로이드라고밖에 볼 수 없는 상황.

2.3.3 2016 시즌

부활

박석민의 합류로 타순이 한 칸 밀리게 되었다. 시범경기때부터 불안불안하더니 역시 1할대 타격을 보여주고있다. 장거리 타자가 아니면서 폭삼은 예사에 추격상황에서의 결정적인 병살까지 선보이면서 흐름을 끊어먹는 중으로, 세대교체 겸해서 김성욱이나 김준완을 주전으로 쓰라는 팬들의 성토가 쏟아지는 상태. 대신 애꿎은 호구가 짤렸다.

2번 타순으로 나온 4월 8일 한화전에서는 그나마 멀티출루를 기록했고, 9회에 3루타성 타구를 잡아내는 호수비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후 1번타자로 고정되면서, 놀라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작은 5월 27일~29일 KIA와의 3연전에서 깜짝 1번타자로 선발 출전해 11타수 7안타 4타점으로 맹활약한 것이었다. 그 경기를 통해 타율도 2할 8푼 5리 까지 올랐다.
그러나 6월 5일 까지 부진으로 2할 5푼 9리 까지 내려왔다.기량의 노쇠화가 점점 빨라지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1번타자로 선발출전하고 있어서 NC팬들은 속이 타는 중이었다.
하지만 체감과 달리, 1번타자 이종욱은 괜찮았다.

6월 8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는. 3회에는 우중간 3루타를, 4회에는 우익수 뒤 담장을 넘기는 투런 홈런을 쳤다. 총 4타수 2안타 2타점 2득점.

6월 14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1:0으로 앞서던 9회초 2사 1루 상황에서 바뀐 투수 진해수를 상대로 오른쪽 담장을 넘기는 투런 홈런을 치며 팀의 12연승을 이어가는 데에 기여하였다. 이 날 성적은 5타수 2안타 2타점 2득점.
팀이 12연승을 기록하는 동안 1번 타자 자리에 고정되어 3할 8푼 5리의 성적을 올리고 있다.
시즌 타율도 2할 9푼 가까이 까지 올랐다.

7월 6일 마산 롯데 자이언츠전부터 자신의 신인 시절 포지션인 좌익수로 포지션을 이동했다. 김경문 감독은 김준완의 성장된 실력과 이종욱의 나이를 고려해 앞으로는 둘의 포지션을 전환시키겠다고 설명했다.[13]

7월 7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7회 2사 2루 상황에서 1타점 역전 적시타를 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8월 23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시즌 100안타 째를 쳐내며 역대 30번째 7년 연속 100안타를 달성했다.

8월 25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3회 2루 도루에 성공하면서 역대 8번째 11년 연속 두자릿 수 도루를 달성했다. 또한 4타수 3안타로 활약하며 시즌 타율을 0.301까지 끌어올렸다.

8월 30일 kt 위즈전에서는 4타수 3안타로 활약했다. 타율은 0.304까지 올랐다.

9월 6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3타수 2안타 2타점으로 활약했다.

9월 9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1회 선두 타자 홈런을 쳐냈다. 또한 2회 안타를 쳐내며 멀티 히트를 달성헀고, 무려 4경기 연속 멀티 히트 중이다.

10월 9일 kt 위즈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4타수 3안타 1도루의 활약을 펼쳤다. 이로써 시즌 타율 0.305을 마크하게 되었고, wRC+도 FA 계약 이후 처음으로 100을 넘긴 104.1을 찍으며 밥값을 어느 정도 해낸 시즌이 되었다.

3 플레이 스타일

두산 베어스 발야구의 선봉장으로 이름을 떨친 만큼 빠른 발과 탁월한 주루센스를 자랑한다. 홈에서 아웃된 것이 프로 입단 후 몇번 없을 정도로[14]에 그칠 정도로 타구와 상대 수비를 읽고 호시탐탐 '한 베이스 더'를 노린다.

2010년 10월 8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2010년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이 탁월한 주루센스로 6회 때 유격수 희생 플라이라는 진기록을 세운다.#기사#영상거기다가 김상수의 정줄놓는 수비도 한몫 그런데 사실 이종욱은 2007년 한국시리즈때도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2루수 희생 플라이를 만든적이 있다. 참고로 당시 SK 2루수는 정경배.

타격에서는 아주 빠른 스윙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투수의 습관이나 승부 패턴을 읽는 눈이 뛰어나 상황에 맞는 타격을 했다. 2006년 이후 기습번트 시도는 확연히 줄었으나 그후로 적극적으로 타구를 외야로 보내는 스윙을 하면서 타격능력은 더 좋아졌다. 해설자에게 욕(?)을 먹기도 했는데, 1번 타자가 테이블 세터로서 공을 길게 보고 뒷 타자들이 노려칠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하는데 너무 잘 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실제 부상으로 무너졌던 09, 12시즌을 제외하면 항상 3할을 기록했으며 포스트시즌에서는 기습적으로 3번 타자로 나와 활약하기도 했다[15]. 장타툴을 보면 이용규같은 순 똑딱이들과 비교할 때 이쪽은 최소한의 갭파워 정도는 갖춘 편으로 정규시즌보다는 포스트시즌에서 주로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큰 경기에 강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는 선수로, 하위 라운드(준플레이오프든 플레이오프든)에서는 시리즈 MVP급으로 날아다니다가, 위로 올라가서 SK만 만나면 버로우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비슷한 시기에 팀 프랜차이즈로 떠오른 김쿠바의 이미지에 가려서 보기보다 잘 알려지지는 않은 사실. 이는 어디까지나 전성기 이야기고 김경문 감독 사퇴 이후로는 PS만 가면 삽질만 적립... 국가대표에도 꾸준히 차출되었는데 08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전 경기 1번으로 출장해 나쁘지 않은 성적을 찍었으나 2번 타순에서 4할대 타율로 날아다니던 이용규의 맹활약에 묻혔고, 2회 WBC까지 주전 1번으로 뛰다가 2010년 아시안게임 하위 라운드에서 삽질한 후로는 그를 국제전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빠른 발과 훌륭한 타구판단능력, 좋은 글러브질을 겸비하여 최고 레벨의 중견수 수비를 선보였다. 전성기에는 현역 최고의 외야수비수로도 곧잘 뽑혔을 정도. 특히 머리 위로 넘어가는 타구를 워닝 트랙까지 따라가 잡아내는 모습은 명불허전. 어깨도 준수한 편이지만[16] 두산 시절 동료인 임재철, 민병헌에 비해서는 정확도가 조금 떨어졌다.

2009년 4월 11일 역대 14번째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선수이다. 2루타, 사구, 안타(단타), 2점홈런 기록 후 마지막 타석에서 3루타를 치면서 극적으로 성공했다.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플레이, 빠른 발, 파인플레이 이후의 기합과 삼진이나 땅볼 이후에도 기죽지 않는 이종욱의 성격은 김경문 감독이 추구하는 야구의 결정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타격에서 김경문 감독이 추구하는 바를 김현수, 김동주, 최준석이 보여주었다면 수비와 주루에서는 이종욱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정도. FA 때 두산팬들이 (같이 풀린) 손시헌, 최준석은 몰라도 제발 이종욱만은 잡아달라고 했던건 팀의 상징격인 선수였기 때문이다. 다만 결과적으로 그 김경문 감독이 있는 NC로 떠나면서 이래저래 두산팬들 입장에서는 느끼는 감정이 복잡한 선수가 되어버렸다.허슬 두산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던 김경문과 이종욱이 떠나고 나서야 두산이 우승을 해버렸다 특히 DC쪽 팬덤은 완전히 등을 돌린 상태로, 손시헌과 쌍으로 통수메이트라 불리며 그가 뭔가 삽질을 할 때마다 두산 베어스 갤러리는 정말 하나가 되어 비웃는다(...).

이후 NC 다이노스의 감독으로 자리를 옮긴 김경문 감독은 2012년 전력보강선수 지명 때 이종욱과 똑같은 스타일의 외야수로 눈여겨 보았던 김종호를 삼성에서 지명하였다. 그만큼 이종욱의 플레이가 참고된 것이었다. 그리고 김종호는 2013년 도루왕을 차지한다.

NC 이적 후에는 노쇠화인지 위에 언급한 장점들을 거의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3할 30도루가 보장되는 리드오프 겸 S급 수비력의 센터라인 외야수로써 50억이라는 거액을 들여 영입했으나 3할을 친 시즌도, 20도루를 한 시즌도 없고, 정작 덤 취급받던 손시헌이 훨씬 팀 기여도가 높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어쩌다 미친듯이 활약해도 팬들은 가끔 찾아오는 아름다운 며칠간 취급하며, 실제로도 늘 그래왔다(...).

4 기타

  • 얼굴이 꼭 태국사람 같아서 붙여진 별명이 뽕따이, 불법 체류자, 태국용병. 특히 태국 영화 '옹박'에서 유래된 '종박'이라는 별명이 있다. 그래서 인천 아시안게임 때 네티즌들이 농담으로 태국 국대팀에 이종욱을 주고 시작해야 된다고 이야기 하기도. 물론 지금은 그딴거 없고 통박
  • 그래서 봉숭아 학당에서 옹박 역, 사마귀 유치원에서 쌍칼 역을 맡은 코미디언 조지훈과 닮았다는 평을 많이 듣는다. 심지어 1990년대 부산지역 삐삐 광고에 나온 코미디언 홍기훈의 젊었을 때#와도 닮았다. 본인은 한때 이 별명이 토니 자의 근육질 몸매를 닮았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오해했으나, 사실은 그런 거 아니고 까무잡잡한 피부와 얼굴이 닮았기 때문에 그런 거다. 결국 사실을 알고서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 나중에는 예소애비라는 별명으로도 자주 불렸다. 딸인 예소가 "아빠 안타 쳤어 못 쳤어?"하고 물어본다고 했다. 그 때문에 팬들은 이종욱이 활약하면 "예소야 너희 아빠 안타 쳤다!"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예소야 그냥 야구 봐
  • 모교에 야구부 코치를 하고있는 동기와 통화를 하다가 야구장비가 많이 부족하단 말을 듣고 3000만원어치의 야구배트와 글러브를 기증했다고 한다
  • 위키백과의 이종욱 문서는 양준혁에 이어 야구 선수로는 두 번째로 알찬 글로 선정되었다.
  • 박한이와 박석민처럼 독특한 타격 준비 자세가 있다.

5 역대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06두산 베어스120388.284110146
(2위)
13276
(3위)
51
(1위)
47.358.360
2007123465.316147
(3위)
2012
(1위)
14684
(2위)
47
(2위)
52.417.382
2008122458.301138
(5위)
145
(3위)
02898
(1위)
47
(2위)
56.354.376
200982312.276861141284837
(4위)
28.346.334
2010114413.312129162545663049.397.383
2011121436.303132115
(3위)
544642054.385.377
2012121437.240105171039572146.284.309
2013110401.3071232366527730
(4위)
41.439.369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 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14NC 다이노스124438.288126284678731543.411.342
2015125440.268118252552631757.368.350
2016134453.305138244557731555.408.376
통산12964641.29113522035135501779330528.380.361
  1. 2006년 시즌에 뛰었다. 2016시즌 후반기에 들어서는 다시 좌익수로 출전 중이다.
  2. NC 다이노스로 이적한 2014년 한정. 2015년엔 주로 중견수로 나오고 있다.
  3. 두산 베어스 시절부터 사용되었다.
  4. 딸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고 하여 2014년 4월 6일 넥센전부터 사용하다가 6월 응원단 복귀와 함께 원래 등장음악으로 돌아갔다.
  5. 피파 온라인 2의 브금이라 카더라가사는 날려라 이종욱~ 이종욱~ 이종욱~ 날려버려~ 두산의 이종욱이다! 날려라 이종욱~ 이종욱~ 이종욱~ 날려버려~ 두산 이종욱!
  6. 워~어~어어~어~ NC 이종욱~ 치고 달려~ 워~어어어~어어어~ 이종욱~ 치고 달려~ 워~어어어~어어어~ 안타! 안타 이종욱! 안타! 안타 이종욱! 안타! 안타 이종욱~ 워~ NC의 이종욱!
  7. NC의 캡틴 안타날려라 오 이종욱 오 이종욱 다이노스 캡틴 안타날려라 승리를 위하여~
  8. 아마 이 응원가는 이종욱이 완장을 벗는 2016시즌까지만 사용되고 다른 선수에게 넘어갈것으로 추정.
  9. 하지만 전준호의 후계자가 될 거라 기대받았던 정수성은 2005년 한해 반짝 이후 만성 간염과 온갖 잔부상으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정수성은 97년도에 입단했다.... 거의 9년차에 커리어를 달성한거였고 나이에 이른 부상, 결국 2013 시즌 후 은퇴했다. 또 다른 이유로는 현대 유니콘스의 재정 상태가 이 둘 모두에게 연봉을 줄 수 없어서 이종욱을 방출했다는 설도 있다. (...) 선택과 집중
  10. 서건창넥센 히어로즈에 이적했을 때도 비슷하다. 단지 LG/넥센 입단이 모두 신고선수인 것만 다를 뿐. 그래도 2012년 시즌 전 서건창은 박흥식 코치의 눈에 들어와 정식선수로 시작하는 데 성공한다.
  11. 상무 제대를 앞두고 경쟁력있는 무기를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모래주머니를 다리에 차고 스피드 강화 훈련에 매진했다고 한다.
  12. NC는 주장 임기가 2년이라 이종욱은 2016시즌까지 주장을 맡는다.이는 LG도 마찬가지.
  13. [1]
  14. 그 중 한 번은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잠실 야구장에서 가진 쿠바 국가대표팀과의 평가전이었으며, 다른 두 번은 태그업 오심에 의한 억울한 아웃이었다. 물론 수비수들의 정확한 수비에 의한 아웃도 있고, 이종욱의 다소 무리한 플레이가 원인이 된 적도 한차례 맀다.
  15. 사실 이는 김현수의 4번 전환 시도와 연계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4번 김현수는 김경문 시대 이래 14시즌까지 꾸준히 실패만 했지만...
  16. 마른 몸매라서 어깨가 약해보이지만 현대에서 같이 뛰었던 심정수가 자신보다 더 어깨가 좋은 사람을 처음 본다고 할정도로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