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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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虎鉉
1911년 3월 22일 ~ 1992년 3월 20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911년 강원도 평창군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상북도 영주군 부석면으로 이주하여 부석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했다.

8.15 광복 후 노성청년단장과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평창군지부 위원장을 지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로 강원도 평창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국민회 이종욱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2년 9월부터 1953년 9월까지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차관을 지냈는데, 1953년 9월 진헌식 장관이 물러나면서 후임 백한성 장관이 임명되기 전까지 잠시 내무부 장관 서리를 겸임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회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이형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인 자유당 이형진 후보에 설욕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장춘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같은 해 연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강원도지사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박영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강원도 평창군-횡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이우현에 밀려 민주공화당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사회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이우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0월 유신 이후인 1974년 박정희 정권에 반발하여 민주회복국민선언에 서명하고 민주회복국민회의에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