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유나이티드 FC/~2011년

인천 유나이티드 시즌
-~2011년 시즌2012년 시즌

1 2010년 이전

초대 감독으로 독일 1860 뮌헨 전 감독 베르너 로란트를 영입했고, 2004년 3월 1일에 벌어진 창단 기념 경기에서 J리그감바 오사카를 4-0으로 대파하며 큰 기대를 받았지만 K리그 2004 시즌 전기 리그에서 꼴찌인 13위를 기록하면서 팀의 분위기가 상당히 침체된다. 심지어 0:5로 관광당한 적도 있었다. 다름아닌 대구 FC와의 원정 경기. 그 이후로 박이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을 때까지 대구 FC에게 만날 때마다 패배했다.

2004년에 알파이 외잘란이라는 희대의 망나니를 영입해 이득을 본 적이 있다. 외잘란은 2002 월드컵 터키 대표팀 출신이라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정작 제대로 하는 건 없었고 전북의 에드밀손의 발목을 아작내는 등 경고와 퇴장으로 얼룩진 경기를 펼쳐 6개월 동안 고작 8경기에만 출전했다. 그후 'K리그는 관중수가 적다'고 까다가 그가 원하던 관중이 많은 구단인 우라와 레즈로 120만 달러의 이적료로 이적했다. 공짜로 영입한 선수에게 50만 달러만 주고 우라와로부터 120만 달러의 이적료를 받았으니 인천에게는 70만 달러나 득이었다.[1]

그 후 베르너 로란트 감독이 사임하고 장외룡 감독대행 체제로 나가기 시작하면서 팀이 살아나기 시작했으며, 2005 시즌에는 K리그 준우승[2]을 달성한다. 이 과정은 인유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에 잘 나와있다.[3] 2005 시즌 준우승으로 장외룡 감독에겐 외룡사마란 별명이 생겼다. 이는 K리그 시민구단 중 역대 최고 성적이다.

2008년부터 성적을 내기 위해 수비축구로 전환하면서 관중이 많이 줄었다. 팬들에게 수원 2중대라 불릴 정도로 수원에 약한 모습을 보였으나, 2009년 수원의 몰락과 함께 그 징크스는 깨졌다.

2009 시즌은 일리야 페트코비치 감독 부임 이후, 5위로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4위 성남과 6강 플레이오프 전에서 성남 일화의 선수가 2명씩이나 퇴장당한 상태에서도 최악의 골 결정력을 보이며 1:1로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3:2로 패배했다.

2 2010 시즌

유병수 FC
2010 시즌은 항상 신나게 해오던 선수팔기를 안한 유일한 해다.

이적해 나간 선수라고 해야 김상록(부산), 박재현(그리스) 정도로 2년간 확실한 주전은 아닌 선수들이었다. 기존 멤버가 그대로 남아 있고 감독도 적응기가 끝난 2년차가 되었으니 뭔가 다른 분위기를 기대하게 해주었다.

시작과 동시에 연속 홈경기에서 전남(1:0), 광주(2:0)를 이기며 달라진듯 했지만 바로 이어진 성남 원정에서 6:0 이라는 창단이후 최다 실점 패배를 찍어주셨다. 후반 17분동안 무려 4실점...

이후 신나는 4연패를 찍으며 승점 자판기 노릇을 하다가 똑같이 막장짓을 하고 있던 포항을 만나 유병수의 대폭발로 4:0 홈승리를 찍으며 분위기를 반전한다. 유병수는 이날 시즌 첫 득점이자 4골을 모두 집어 넣었고, 이후 4경기 9골을 작렬, 득점선두로 올라간다.

이후 무난한 팀들(대구, 대전, 강원)과 대진으로 다시 승점을 쌓고 있는 중. 초반에 승점을 까먹지만 않았더라면. 경질론이 나돌던 페트코비치 감독도 목을 보전하게 되었고 5월 현재 리그 8위.
유병수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엔트리가 발표되고 나자 한풀이라도 하듯K리그에서 미친 듯이 골을 몰아넣고 있다. 안습...

시즌초부터 부인의 건강악화로 팀에 휴가를 얻고 잠시 떠난 일도 있던 페트코비치 감독이 월드컵 휴식기에 구단과 상호계약해지 방식으로 본국으로 떠났다.
전반기 연패와 연승이 감독의 휴가복귀와 맞물려 있다는 것을 볼 때, 덕장 스타일의 페트코비치 감독이 떠나면서 팀의 후반기 전망에 불안요소가 더해졌다.

역시나 월드컵 이후 무한연패로 승점자판기가 되었다. 일찌감치 FA컵도 탈락하고 2010 시즌은 조기 마무리로 들어가려는 상황에서...

2010년 8월. 월드컵 끝나고 포항으로 갈 줄 알았던 무재배의 달인께서 생뚱맞게 인천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K리그 팬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명성에 걸맞게 9월 12일 현재 부임 후 2연무를 기록했다.
9월 19일 경기에서 대구를 상대로 4-1 대승을 거두며 복귀 첫 승을 기록했다. 이후 새로운 라이벌 더비를 만들겠다며 호기롭게 나선 서울과의 경기에서 0-2로 완패했고 다음 라운드에선 약체 대전을 맞아 유병수의 해트트릭으로 3골차로 앞서가다 후반 중반부터 내리 3골을 허용하며 보기드문 3-3 무재배를 연출했다. 전남 원정에서는 서로 무기력한 경기로 0-0 무재배. 경남과의 경기에서도 2:2로 비겼다!
3연무라는 흠좀무한 기록에 팬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2010년 11월 7일 정규리그가 종료된 시점에서 허정무 감독의 K리그 시즌 전적은 2승 6무 3패. 참고로 허정무 감독 부임 전의 인천의 성적은 6승 1무 10패 무승부 경기가 하나밖에 없었다. 모두 패해서 탈이지

사실 이는 짓궂은 축구팬들의 농담에 가까운 것으로, 속사정을 뜯어보면 좀 다르다.
2010년 페트코비치 감독의 기록은 승-승-패-패-패-패-패-승-무-승-승-승. 그러다 급작스레 사임한 뒤 인천은 팀이 붕괴, 또 다시 패-패-패-패-패 포풍 5연패를 찍으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런 와중에 새로 부임한 허정무 감독이 팀을 추스려 2승 6무 3패를 기록하여 성적을 끌어올렸다. 결코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결국 2010 시즌 최종 순위는 11위.

3 2011 시즌

2011 시즌 8라운드 현재 2승 3무 3패로 14위. 그나마 잘 캐던 무승부는 죄다 어디로 가고 4월 30일 리그 7라운드에선 전북 현대 모터스에게 2:6으로 캐관광을 당하지 않나, 리그가 아닌 컵대회이긴 하지만 이후 5월 5일 벌어진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선 1:4로 역시 떡실신.

5월 6일에는 주전 골키퍼이던 윤기원선수가 자동차 안에서 자살한 것으로 밝혀져(과연...) 축구계와 인천 유나이티드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이후 대전 원정에서 2:1 역전승, 부산전 0:0 무, 광주 원정에서 1:0 승, 그리고 12라운드 수원전에서 창단 이후 수원전 홈경기 무승 징크스를 깨는 2:1 승으로 5승 4무 3패로 6위를 기록중이다. 승점 상으로는 공동 4위 (SK, 전남, 인천)을 기록중이며 13라운드 경기 결과에 따라 최대 3위까지 올라갈 수 있는 상황이다. 13라운드 상대는 12라운드 현재 5위를 기록중인 전남 드래곤즈와의 홈경기. 13라운드 전남과 1:1 무승부, 14라운드 울산과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15라운드는 경인더비로 뜨고 있는 서울 원정. 여기에서도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현재 5위를 기록 중. 16라운드 광주와 2:2 무승부, 17라운드 성남과 2:2 무승부. 리그 9경기 무패지만 5연무 달성

무승부가 많아 역시 무무열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돈의 2011년 리그 속에서 지지않는 축구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며 허정무 감독을 찬양하는 사람도 있다. 무서운건 무승부가 많아서그렇지 중반 이후로는 패배가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 진출 골키퍼에다 핀란드 언론에서 2010 핀란드 리그 최고의 골기퍼로 보도된 권정혁 선수를 영입하여 영입직후 17라운드 성남전에 선발출장 시켰고. 2실점했지만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수원전 패배 이후로 또 무를 캐기 시작하더니 지금 리그 성적은 5승 10무 4패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허정무컵 우승자는 뻔하군 이후로도 연이어 무재배 진수를 보여주며 10경기 연속 무승,8무 2패를 기록하며 5승 12무 5패를 기록했다가, 허정무 감독이 팬들에게 소환당하고 8월 27일 11경기만인 23라운드 대전 시티즌 안방경기에서 2:0으로 이겼다.

2011 시즌 리그 최종성적은 13위. 결국은 6승 14무 10패로 최다 무승부,그리고 허정무와 같이 허정무컵 우승. 망했어요.
  1. 참고로 외잘란은 일본에 가서도 7경기에서 6번의 옐로카드와 3번의 레드카드를 받을 정도로 망나니의 진수를 보여주었고 결국 1시즌만에 분데스리가로 갔는데 거기서도 상대선수를 팔꿈치로 치면서 퇴장과 같이 여러 경기 출전 금지를 당했다.
  2. 정규리그에서는 무려 13승 6무 5패 승점 45점 (득실차 +10)의 괴물같은 성적을 달성하며 통합성적 1위를 차지했다. 현재의 룰이라면 당연히 엠블럼 위에 노란 별을 달았을 성적이지만... 이 당시는 플레이오프 제도가 있던 시절(...)이라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한 팀이 우승팀으로 취급받던 때였다. 결국 우승은 챔피언전에서 인천을 탈탈 털었던 정규리그 통합 3위 울산 현대였다.
  3. 그 덕에 부산 아이파크울산 현대는 본의 아니게 악당(?)팀이 되어버렸다. 끝판왕이천수. 지못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