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국

1 대한민국성우

임종국(성우) 항목으로.

2 대한민국의 민족반역자(친일파) 연구자

임종국 평전
그의 일대기

1929년 10월 26일 경상남도 창녕 출생, 1989년 11월 12일 사망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재야사학. 주류사학이 다루지 못하는 부분을 각고의 노력과 실증적 사료수집으로 채웠다는 점에서 진짜 재야사학이 해야 할 일을 한 학자이다.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 문학을 주로 평론했다. 이상 전집(총 3권)을 펴내며 문학평론가로서 자리잡나 싶었는데, 자료수집 과정에서 유명 작가들의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 행적들을 발견하고, 이에 분노하여 친일파 연구에 한평생을 바친 인물! 재야라는 명칭이 붙었지만 고대 사이비 재야사학자들하고는 그 의미를 달리 해야 한다.

특이한 사실로는 아버지인 임문호가 바로 친일 부역자였다는 것이다. 임문호는 천도교 지도자였는데 수차례 일본의 식민지 정책 및 대외 침략 전쟁에 동참할 것을 선동한 행적이 있었다. 임종국 본인도 친일파에 대한 연구서인 <친일문학론>을 집필하던 도중 아버지의 이러한 행적을 알고 상당히 괴로워했다. 하지만 임문호 본인이 '(그 책에) 내 이름도 넣어라. 그 책에서 내 이름 빠지면 그 책은 죽은 책이다'라고 말하였단다. 그래서 결국 <친일문학론>에 아버지 이름이 들어가지만, 당시 시대 상황상 별다른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초판 발행했던 1,500부가 다 팔리는데 13년이 걸렸다고 하니... 그나마 1,000부는 일본에서 구입했다고 한다.

이후 광적으로 친일 관련 자료를 모으는데 주력했는데 중학생이던 아들과 몇 달씩 도서관에서 자료만 모은 적도 있다고 하니.. 본인 스스로는 약 15년 간 자료수집을 했다고 얘기한다. 말년까지도 모은 자료들을 정리, 기록할 정도 얼마나 자료 수집에 열을 올렸는지 조선총독부 관보 35년분 2만 매를 전부 복사하였으며,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10년분은 일일이 필사하기까지 했다. 말이 10년분이지. 신문 10년분이다. 아무리 현대의 신문과 당시 신문의 볼륨이 다르다지만...... 그 자료를 바탕으로 친일파들의 이름, 생몰연대, 인물별, 단체별 주요 친일 행적을 메모한 '친일인명카드'는 훗날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친일파 연구로 인해 채명신과 만난 일화가 있다. 채명신의 부인의 할아버지는 일본군에 비행기를 헌납할 정도의 거물 친일파인 문명기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채명신 부부가 사실 확인을 위해 임종국을 찾아왔고, 임종국이 찾은 증거 자료를 확인한 뒤 이를 인정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이 일은 훗날 채명신이 간도특설대 출신인 백선엽의 원수 추대를 반대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가 쓴 자료 중에는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이갑성을 친일파로 기록하기도 했지만, 이는 사실무근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결국 이갑성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출판한 친일인명사전에서 제외되었다. 이 부분은 이갑성민족문제연구소 항목 참조.

저서로는 '친일 문학론', '실록 친일파' 등이 있다.

장례식에서 임종국의 유지를 받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설립되었다.

사후에 정운현이 임종국 평전을 출간하였다.

임종국은 조정래의 소설 한강의 후반부에 한인곤과 같이 나오는 그 인물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서는 세 명의 실제 인물이 등장하였는데 그것이 전태일과 임종국 그리고 김진홍 목사이다[1]. (당연히 당대 역사 인물들의 실명이 거론되지만 중심 인물로 묘사한 것은 이 세 명.)

  1. 뉴라이트의 주도자인 그 김진홍 맞다. 청계천 천막 교회 시기와 두레마을 운동 벌일 때에는 지금의 김진홍이 될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