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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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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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현재 모습.

이름임춘애(林春愛)
생년월일1969년 7월 1일
학력상원초등학교
성남여자중학교
성보여자상업고등학교[1]
이화여자대학교 체육학과
가족남편 이상용, 2남 1녀

1 개요

라면 소녀로 잘못 알려진 육상계의 아이돌. 헝그리 정신의 대명사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한 대한민국의 육상선수. 2015년 현재 대한육상경기연맹 여성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 라면 루머

"라면만 먹고 뛰었어요. 우유 마시는 친구들이 부러웠고요."

라면만 먹고 운동했다는 기사가 나왔었는데 사실이 아니다. (다만, 가난하게 살았던 건 사실이다.) 게다가 이는 임춘애가 직접 발언한 것도 아니다. 임춘애 학교의 육상부 코치였던 김번일이 육상부의 열악한 환경을 이야기하며 나온 이야기였다. 육상부에 지원이 부족해서 간식으로 라면만 먹는다는 식으로 기자에게 이야기한 것이었는데, 기자가 이를 왜곡(?)해서 임춘애를 비롯한 육상부 선수들이 '라면만 먹고 운동한다'고 기사를 쓴 것이 사실처럼 전달된 것이다.

후에 그 기자가 왜 그런 왜곡(?) 기사를 작성하였는지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자기도 열악한 육상부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서 좀 더 후원을 많이 받게 해주려고 인터뷰 내용을 심하게 과장해서 쓴 것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당시 큰 대회를 앞두고 사람들은 영웅을 원했고, 그것이 가난을 극복한 스토리였기에 사람들은 라면 소녀에 열광했다. 실제로 이 기사가 나간 이후로 상당한 후원을 받은 것도 사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각인효과가 너무 커서, 임춘애는 영영 라면 소녀로 각인되어 버렸다. 게다가 넘버 3같은 영화에서 이렇게 나오면서 각인 효과는 풀리지 않는다.

"이게 다 라면 먹고 이룬 거야. 뭐 복싱뿐만이 아니야. 그 누구야. 현정화, 현정화 걔두 라면만 먹고, 음? 금메달 3개씩 따버렸어."
“임춘애입니다. 형님”
“나가 있어.”
(저 말을 한 부하를 두들겨 팬다.)
영화 넘버 3 중에서.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당사자는 '라면 소녀'라는 타이틀을 지우고 싶어 하지만, 가능한것 같지가 않다. 최근의 인터뷰를 보면 그냥 포기한 듯 싶긴 하다. 당사자가 아무리 해명하려 하여도 씨알도 안먹힌다고 한다.

“몇해 전에도 해명을 했는데… 라면 이야기는 제가 한 것이 아니라 당시 저를 발굴하고 길러주신 김번일 코치 선생님이 하신 인터뷰에서 열악한 학교 육상부의 처지를 설명하면서 ‘선수들이 간식으로 라면을 먹는다. 조금 환경이 좋은 학교는 우유도 지원된다’고 말씀하신 것인데 ‘임춘애가 17년간 라면만 먹고 뛰었다’‘우유 먹는 아이들이 부러웠어요’라고 쓰는 바람에 이후 제가 ‘라면 소녀’로 불리고 ‘헝그리 정신’의 대명사처럼 된 것이죠. 당시 체력보강을 위해서 도가니탕과 삼계탕은 물론 뱀탕까지 먹었는데 라면만 먹고 어떻게 뛰겠어요.”
문화일보(2010/04/16)의 임춘애 인터뷰 기사

상식적으로, 운동선수들은 당연히 나트륨이 잔뜩 들어간 라면만 먹고 운동할리가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런 언플 자체가 흑역사라고 봐야 할 것이다.

3 아시안 게임에서의 활약

사실 임춘애는 86 아시안 게임의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해서 국가대표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 선발전 이후에 치뤄진 전국체전의 3000m 종목에서 한국 신기록을 세우며 좋은 성적을 기록하자, 임춘애를 국가대표로 선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고 뒤늦게나마 국가대표에 합류한다.

국가대표로 깜짝 발탁된 임춘애는 86 아시안게임에서 '신데렐라'로 거듭난다. 여자 육상 800m, 1500m, 3000m 에서 모두 금메달을 획득하여 3관왕이 되었다.

3000m는 중국 선수에게 10초이상 뒤진 기록이라 금메달은 바라지도 않았는데, 당시 중국 선수의 컨디션이 안좋았는지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임춘애는 포텐이 터지며 운좋게 금메달을 땄다고 한다. 또한, 800m는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1위를 기록한 인도 선수가 파울로 실격당하며 2위였던 임춘애가 금메달을 획득했다. 1500m 에서도 금메달을 따내며 아시안게임 3관왕이라는 대업을 달성했다. 능력도 있는데, 거기에 운까지 터지며 대박이 났다.

4 서울올림픽에서의 부진과 은퇴

아시안 게임이 끝난 뒤, 1988 서울올림픽에서는 부진하였다. 사실 기록이 딸려서 출전권조차 못따냈다. 올림픽에 아예 출전을 안한 건 아니었는데[2], 세계의 벽을 실감하며 예선에서 탈락했다. 이 와중에 아시안 게임에서 메달따고 포상금 받으니 배가 불렀다는 비난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건 심하게 지나친 비난이다. 육상에서의 세계의 벽은 정말 높고 높은 성벽이다. 2015년 현재에도 육상의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기록경기 어느 종목을 봐도 한국 기록은(아니 아시아 기록을 보더라도) 세계 기록과는 어마어마한 격차가 난다. 우리나라는 마라톤에서 성과를 낸것 말고는 육상에서 상위권에 들어 간 것을 찾기도 힘든 수준이다. 이는 헝그리 정신으로 극복할만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 세계의 벽이 높았던 것은 둘째치고, 임춘애가 부진한 것은 학대 수준의 비과학적 훈련에 시달린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떡잎을 알아보고 전담 코치를 자처한 김번일은[3] 과학적 지식 없이 오로지 구타로써 근성을 강요하였고, 급기야는 고막을 파열시키는 사고를 치기도 했다. 성인도 아닌 진짜 '여고생'에 불과했던 임춘애는 아시안 게임 만으로도 이미 한계에 다다랐는데 이후 올림픽 대비 훈련을 하면서 몸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성장기에 무리한 운동을 한 때문에 골반에 금이 갔고, 더이상 운동이 어려운 상태였다.

결국, 88올림픽 이후로 은퇴하고 완전히 육상계를 떠나게 된다.

평범한 여자로 살고 싶었던 임춘애는 축구선수 출신의 '이상용'씨와 결혼하며 조용하게 살고 있었다. 소개해준 사람이 김주성이라고 한다.

5 지도자 생활

오랫동안 육상과는 담을 쌓은 채 살고 있었지만, 그 후 육상계에 후배 양성이 필요하다는 주변의 조언을 받아들이며, 2010년에 성남시 소속의 학교 전문코치로 육상계에 복귀했다.

현재는 대한육상경기연맹 여성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6 트라비아

  • 86 아시안 게임에서 임춘애가 깜짝 활약을 하자 중성이 아니냐는 논란도 발생했다. 3차례씩이나 성별 검사를 받아야 했다고 한다. 현재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확실하게 논란을 종결시켰다.
  • 1988 서울 올림픽에서 성화 최종 주자가 되었다. 경기장에 마지막 도입 주자였던 손기정에게 성화를 받아서 경기장을 한 바퀴 돈 다음, 최종 점화자인 3명의 체육 관련 일반인에게 성화를 전달했다.
  • 육상계에서 체육연금을 받는 몇 안되는 사람이라고 한다. 임춘애를 포함해서 마라토너 이봉주와 투포환의 백옥자 선수 정도가 전부라고한다.참고로, 황영조같은 경우는 연금 대신 일시금으로 받았다고 한다.
  • 라면 루머에서 '우유가 마시고 싶다'고 나왔는데, 임춘애는 정작 우유마시면 탈이 나서 우유를 못 마시는 체질이었다고 한다.
  • 라면 이미지의 원조는 유도선수 '안병근'이라고 한다. '배가 하도 고파 라면이 불기를 기다렸다가 먹었다'는 기사가 나간 적이 있다. 하지만, 무명시절의 안병근이 가난했던 것이 사실이긴 해도, 저런 인터뷰 내용은 과장된 것이라고 당사자가 증언하였다. 게다가, 유도 선수는 체중 감량 문제로 늘 배고플 수 밖에 없다고 한다.
  • 체조 선수 양학선도 금메달을 따내자 유사한 라면 논란의 희생양이 되었다. 비닐하우스에 사는 부모님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라면'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라면 업체에서 라면을 협찬하고, 건설 업체에서 아파트를 후원하는 등 광고 효과를 노리는 대기업들에게 본의 아니게 엮어 버렸다. 약간 차이점이 있다면, 양학선은 라면을 정말 좋아해서 많이 먹는다고 한다.
  • 고교 때는 가난해서 음식을 못먹어 키가 150cm대로 작았지만, 대학 진학 이후 영양 상태가 좋아져 부쩍부쩍 커서 160cm로 올랐다고 한다. 최종 신장은 170cm가 되었다. 알다시피 170cm는 여성에게는 작은 키가 아니다.
  • 2011년 SBS '좋은 아침' 에서 딸(이지수)와 함께 출연하였다. 관련기사
  • 걸그룹 식스밤이 '2016 동아일보 서울 국제 마라톤 대회'참가하여 10km 코스를 완주하였는데, 임춘애가 특별 지도를 해 준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한다. 관련기사

7 미디어

1988년 7월 16일, KBS-1로 방영한 애니메이션 아리수변 꿈나무가 바로 임춘애가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재방송을 지겹게 하던 다른 KBS 당시 애니랑 다르게 재방영도 없었기에 본 사람이 적다. 심지어 비디오조차 제목이 영광의 트랙이다... 비디오 표지 이미지 구하기조차 어렵다.

8 관련 기사

  1. 성보경영고등학교. 2005년부터 남녀공학으로 바뀌었다.
  2. 4x400 계주에 출전하였다. 주최국 자격으로 출전권을 받은 듯 싶다.
  3. 이 사람은 체대 학력도 지도자 교육을 받은 일도 전혀 없었다. 허나 보는 눈은 있었나 보다. 당시 어린 임춘애를 보고 기록이 썩 좋은 것은 아니지만 날렵한 체형과 뛰고 나서도 별로 숨 차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아! 물건이다!"라고 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