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 홍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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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설 장화홍련

조선시대 작자미상, 연대미상의 고전소설.

활자본. 1책. 평안북도 철산(鐵山) 지방에 전해 오던 설화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계모형(繼母型) 가정비극 소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이다.

1.1 줄거리

평안도 철산 땅에 사는 좌수(座首) 배무룡(裴武龍)은 늘그막에 두 딸 장화(薔花)와 홍련(紅蓮)을 낳는다. 그러나 부인 장씨(張氏)가 세상을 떠나 후처로 허씨(許氏)를 맞아들여 3명의 아들을 둔다. 허씨는 용모도 흉악하지만 마음씨마저 간악하여, 전처 소생인 장화와 홍련을 학대했다. 이러한 계모의 구박과 모해(謀害)를 견디다 못해 장화는 연못에 투신 자살했고, 홍련 역시 세상을 떠난 언니를 그리다 못해 같은 연못에서 언니의 뒤를 따른다. 그 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두 자매의 영혼은 원한을 풀고자 새로 부임한 부사를 찾아가나 부임하는 부사들마다 겁에 질려 쇼크사한다.

그러던 중 담이 큰 정동우(鄭東祐)[1]가 자원하여 철산부사로 부임한다. 그는 망령 자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계모와 그의 아들 장쇠를 처형한 뒤, 연못에서 두 자매의 시체를 건져내어 무덤을 만들어 준다. 그 뒤, 정동우는 벼슬길이 터서 나중에 통제사까지 오른다. 배 좌수는 윤씨에게 다시 장가를 들어 두 딸의 현신인 쌍둥이 자매를 낳는다. 이들은 자라서 평양의 거부 이연호(李連浩)의 쌍둥이 아들 윤필·윤석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게 된다.

신활판본으로 50면의 세창서관(世昌書館:1915)판, 50면의 동명서관(東明書館:15)판, 40면의 박문서관(博文書館:17)판이 있고 판각본으로 36면의 경판본(京板本)도 전한다.

판본에 따라선 죽은 의 껍질을 벗기고 장화의 이불 속에 집어넣은 뒤 장화가 외간남자와 통해서 사산을 했니 어쩌니 모함을 하고 시집을 보낸다는 핑계로 강물에 빠뜨려 익사시키기도 한다.[2] 그리고 홍련도 나중에 언니가 세상을 떠난 걸 알고 따라서 자살. 계모가 처형될 때 배 좌수도 멍청하게 자기 딸내미들 죽는 걸 보고만 있었냐고 세트로 처벌받는 판본도 있다. 자매가 자신들을 구해준 정동우의 딸로 환생해서 전생의 아버지인 배 좌수와 현생의 아버지인 정동우를 동시에 모시며 훈훈하게 산다는 판본도 있다.

이 이야기를 뒤집힌 시각으로 재해석하면 이렇게도 읽을 수 있다. 세상을 떠난 전처에 대한 기억이 그대로 남아있는 집안에서, 무기력한 남편과 전처를 닮은 딸들에게 짓눌려 있던 후처가 아들을 낳은 후, 집안에서 아내이자 아들의 어머니로서 권리를 되찾기 위해 딸들과 갈등한다. 후처는 일시적으로 승리하지만, 추녀이고 친정의 기반이 없다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여 끝내 좌절. 하지만 후처가 권리를 찾겠다고 쓴 수단이 모함이었다는 걸 생각하면[3] 결국 후처는 악당일 수밖에 없다. 동화를 뒤집어서 보겠다고 무작정 주인공은 못났고, 악역은 좋은 면이 있다고 포장하다가 본질을 놓친 셈이다. 애초에 그 옛날에 아들 낳았으면 전처 딸 정도는 바르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비슷한 사례로 '놀부는 부자니까 가난한 동생 흥부에 비하면 뛰어난 능력자' 설이 있다(…). 지가 번 게 아니라 상속한 거잖아[4]

참고로 계모가 처형될 때 꽤나 심각한 꼴을 당했다. 장화를 죽이려 한 아들 장쇠는 호환을 당했으며, 판본에 따라서는 장화를 못에 빠뜨려 살해한 직후에 호랑이에게 습격당해 눈과 팔, 다리를 하나씩 잃었다고도 한다.

웅진_지식하우스 간 이정원 지음 <전(傳)을 범하다>를 보면, 장화홍련 설화는 1656년 일어난 실화를 근거로 했다고 한다. 그 책은 우리 나라 고전소설 여러 가지에 대한 분석을 모아놓은 거라 해당 장화홍련 분량은 짧지만 당시 사회상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 영화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 실려 있으므로 관심있는 분은 읽어보시라.

2 영화 장화, 홍련

장화, 홍련 항목 참조.

3 막장 드라마 장화홍련

KBS 아침 드라마
아내와 여자 → 장화홍련 → 다 줄 거야

2009년 4월 20일부터 동년 10월 10일까지 KBS 2TV에서 방영한 전 아침 드라마. 아침극답게 분위기가 딱 막장 드라마.

사실 이 드라마는 실제로 어느 며느리가 병든 시어머니를 유기한 막장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 왔다고 하며 여운계 선생님의 유작이 되었다. 어째 드라마도 여느 아침극들답게 막장스런 드라마인가 했더니만... 하필이면 이런 막장 드라마가 유작이 되다니...
  1. 실제 1656년 사건 기록에 의하면 '전동흘'이다. 효종이 신임하던 무관이었고 후일 총융사, 포도대장, 수군 통제사 등의 군부 요직을 역임했다.
  2. 그런데 이건 너무 허술하다. 갓 태어난 쥐가 아닌이상 탯줄이 없기 때문 게다가 배 좌수가 멍청하다 한들 사산한 태아와 쥐 가죽 벗긴걸 구분하지 못했을까? 물론 사산한 태아를 한번도 본적이 없는 경우가 더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누가봐도 쥐 가죽 벗긴걸 가지도 태아라고 속여서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3. 참고로 조선시대에 여자의 정절에 대해 모함하다가 아주 주옥된 이야기로 은애전이 있다. 그 당시에도 모함은 그만큼 큰 죄였다는 것. 조선시대엔 아얘 무고죄인 반좌율이 있어서 여기에 걸리면 모함한 죄가 어떤건지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면 거짓으러 역모 고변을 하면 들키게 되면 역적 취급은 아니라도 참형에 처해졌다.
  4. 사실 재산 유지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