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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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전해철
출생1962년 5월 18일
출생지전라남도 목포시
소속 정당더불어민주당
선거구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당선횟수재선(19대, 20대)
약력2016. 08 ~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위원장
2012. 05 ~ 제19~20대 국회의원(경기 안산상록갑)
2007. 12 ~ 2012. 05 법무법인 해마루 대표변호사
2010. 안산환경운동연합 자문위원
2009. 노무현재단 상임운영위원
2008. ~ 민주통합당 안산상록갑 지역위원장
2006. 05 ~ 2007. 12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2003. 07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
2001. 01 ~ 2004. 05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
2001~2002 미국워싱턴주립대학교잭슨스쿨 객원 연구원
1999.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언론위원회 위원장
1998.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1996.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외협력위원회 위원장
1994. 안산시 고문변호사
1987. 제29회 사법시험 합격
1985.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1981. 마산중앙고등학교 졸업
1978. 목포영흥중학교 졸업
1975. 목포대성초등학교 졸업
종교가톨릭(세례명 : 프란치스코)
외부 링크블로그

1 개요

대한민국의 법조인, 국회의원.

2 생애

2.1 초년시절

1962년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태어났다.[1] 아버지는 사범학교 출신으로 6.25. 때 평양에서 월남하여 목포에 정착하였다. 목포에서 대성초등학교와 영흥중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때 갑자기 가세가 기울어 마산에서 직장생활하던 형에게 맡겨졌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경상남도 마산에서 자랐다. 한 학년에 600여명이었던 고등학교에 호남 출신 학생은 그를 포함해 단 2명이었다.[2]

1981년 마산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1985년에 고대법대를 졸업하였고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2.2 변호사 활동

육군 법무관으로 병역을 마친 뒤 1993년부터 변호사로 개업했다. 이때부터 안산에서 법무법인 해마루 소속의 변호사로 생활하며 안산에서 터를 닦았다. 법무법인 해마루는 노무현천정배가 1993년에 함께 설립했던 법무법인.

1996년부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대외협력위원장, 노동위원회 대외협력부장, 언론위원회 위원장 등을 하며 민변의 대표 변호사로 떠올랐다. 민변에서 맡은 사건의 70~80%는 노동법이나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이었다.

변협인권위원으로 재직 중이던 2000년 봄, 수지킴사건의 형사고소를 대리하여, 살인죄 공소시효 완성 직전 주범에 대한 검찰의 구속기소를 이끌어냈다. 이때 유가족에 대한 법원의 42억 원 배상판결이 나오자, 형식적으로 소멸시효가 완성된 사건일지라도 기관에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배상청구가 가능하다는 새로운 소멸시효이론이 정립되었다. 이로써 법조계에 '전해철'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2.3 정치 입문

2002년 노무현이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뒤,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며 위기를 맞이하자, 전해철은 법조계 내에서 노무현 지지선언을 주도하였다. 이때 법률지원단을 만들고 이후 대선 캠프 법률지원단의 간사를 하면서 대선에 깊숙이 관여하였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부터 청와대에서 일하였고, 2006년에는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을 역임하였다. 44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민정수석이었다.[3] 이렇게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있으면서 로스쿨 제도를 실현시켰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안산 상록구 갑 선거구에 출마했다. 그런데 김영환이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표를 갈라먹는 바람에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 후 법무법인 해마루의 대표 변호사가 되었고, 민주통합당 안산 상록구갑 지역위원장직도 계속 수행하였다.

2.4 국회의원 활동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60.76%의 득표율을 기록, 새누리당 박선희 후보[4]를 누르고 당선되었다.[5]

그후 문재인 대선 캠프에 들어가 열심히 일했는데, 당내에서 친노 비선 실세 논란에 휘말렸다. 당의 대선 지휘 라인을 전해철 등 친노 비선이 완전히 장악했다는 비판이었다. 논란이 커지자 양정철, 이호철 등과 함께 대선 캠프에서 일괄 사퇴하였다. 겨우 대선을 두 달 남짓 남긴 시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비선 실세' 치고는 국회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 '면이 서는' 당직보다는 일하는 위원직을 주로 많이 맡았다. 2012년 민주통합당 BBK 진상조사위원회 위원, 정봉주 구명위원회 위원, 국회 민간인 불법사찰 국정조사특위 위원 등을 지냈다.

이후 국회 국가정보원 댓글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위 위원, 민주당 대통령 기록물 열람위원, 국정원법 개혁추진위원회 위원(이상 2013년), 새정치연합 야당탄압저지대책위원회 위원, 국회 서민주거복지특위 위원, 박상옥 대법관 인사청문특위 위원,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위원(2014~2015년) 등으로 활동했다.

법사위에서는 야당 간사로서 여당의 공격에 맞서는 수문장 역할을 하였다. 야당 간사에게는 관행상 마지막에 발언 기회가 주어지는데, 이때마다 동료 야당 의원들이 제기한 문제점을 정리하면서 핵심을 한 번 더 찌르는 마지막 공격수의 역할을 해냈다.

선거 때의 공약이었던 반월 시화공단 스마트허브 조성을 꾸준히 추진해가고 있다. 그 외에도 수인선 완전지하화 계획에 성공하였고, 늘푸른아파트 소송 등 여러 소송문제도 잘 해결하여, 지역구 내에서의 평판은 좋은 편이다.

머니투데이가 평가한 제19대 국회의원 의정활동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내 9위를 마크했다.관련 기사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상록 갑에 출마해 1여 다야의 환경 속에서도 35,481표, 38.8%를 득표하며 새누리당 이화수 후보를 9천표 차이로 따돌리며 비교적 무난히 재선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국무조정실, 국무총리 비서실, 국가보훈처, 국민권익위원회 등을 소관 기관으로 하고 금융정책수립 및 집행, 공정거래질서 유지, 국정 조정 및 규제 개혁, 국가유공자관련 보훈사업, 국민권익지키기, 경제 인문 사회분야에 관한 연구 등 다양한 분야의 정책을 입안하고 심의하는 국회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의 더불어민주당 간사로 선임되었다.

2016년 8월에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위원장 선거에 출마하여 압도적인 격차로 당선되었다. 권리당원 ARS 투표와 대의원 현장 투표를 합산한 결과, 63.3%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경쟁자였던 이언주 의원을 상대로 압승했다. 이언주 의원이 20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코어 지지층에서 인심을 잃고 전해철 의원이 노무현재단 운영위원을 맡은 경력으로 반사 이익을 톡톡히 본 결과물이라는 평가다.

더불어민주당이 최고위원 제도를 당의 각 시도당 위원장들이 호선하는 권역별 대표위원제로 바꾸면서 전해철 의원은 경기도 & 인천 권역 대표위원으로서 당 최고위원이 됐다. 전해철 의원이 1년, 더민주 인천시당위원장인 박남춘 의원이 나머지 1년을 맡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3 정치 성향

문재인 전 대표의 사람들 중에서도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전 의원과 마찬가지로 문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양정철 전 비서관, 이호철 전 비서관과 함께 이른바 '3철'로 불린다. 조중동 등 주류 보수 언론이 연일 '친노 패권주의'를 외치며 부지런히 친노 & 친문 인사들을 저격하는 요즘, 문 전 대표의 최측근 인사인데도 언론의 주목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인물이라는 게 특이한 점이다.


본인이 사법시험에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법시험에 대단히 적대적이다. 청와대 정무수석 시절 본인이 로스쿨 도입에 가장 앞장섰기 때문에, 로스쿨 절대찬양론자라고 한다. 제19대 국회 법사위에서 야당 간사로서 사법시험 존치 법안이 심의되지 않도록 최대한 시간 끌기를 하였다. 그때문에 전직 서울변협회장이던 나승철이 그의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 항의시위를 하기도 하였다.

4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 종류소속 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 여부비고
2008제18대 국회의원 선거(경기 안산시 상록구 갑)통합민주당18,054(30.1%)낙선 (2위)
2012제19대 국회의원 선거(경기 안산시 상록구 갑)민주통합당46,927(60.8%)당선 (1위)
2016제20대 국회의원 선거(경기 안산시 상록구 갑)더불어민주당35,481(38.8%)당선 (1위)
  1. 생일이 5월 18일이다.
  2. 원래 혼자인줄만 알았는데 2학년에 올라가보니 한명이 더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전라도말'을 쓴다고 놀림을 받았던 그는 그때부터 지역감정이 정말 근거가 없고, 폐해가 심하다고 생각했다.
  3. 이게 정말 대단한게 남들은 국장, 어쩌면 과장조차도 겨우 딸 나이에 대통령과 국무총리(이 때도 총리들 중 실권이 어느정도 있었다는 고건일 때 이야기다.), 비서실장 다음가는 실질적인 행정부 4인자가 되었다는거다.
  4. 희대의 도망녀로 잘 알려져 있다. 영상 참조
  5. 박선희 후보가 30,297표(39.23%), 전해철 후보가 46,927표(60.76%) 득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