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충

1 후한 말 위나라의 인물

丁沖
(? ~ ?)

후한 말 위나라의 인물이자 정의, 정이의 아버지. 예주 패국(沛國) 출신.

오랫동안 조조와 친하게 지내 조조의 수레를 수행했다. 삼보의 난으로 인한 혼란으로 나라가 안정되지 않을 때 정충은 조조에게 편지를 써서, '족하는 항상 탄식하며 황실을 도와 나라를 바로잡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는데, 지금이 바로 그 때가 아닌가.' 라고 하였다[1]. 당시는 장양이 하내군(河內郡)으로 돌아간 때로, 조조는 이 편지를 받고 헌제에게 허현(許縣)으로 천도하도록 했고, 정충을 사례교위(司隷校尉)에 임명하였다.

정충은 술을 좋아해 여러 장수들과 교제하면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는데, 결국 장이 망가져 사망했다. 조조는 정충이 전에 자신을 깨우쳐 이끌어 준 바가 있었기에 그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졌다고 한다.

2 삼국시대 위나라와 서진의 관료

진서 「왕상등전(王祥等傳)」
왕상정충하증석포

鄭沖
(? ~ 274년)

삼국시대 위나라와 서진의 관료. 자는 문화(文和).

형양 개봉 사람으로 한미한 가문에서 태어나 탁월한 지조를 세워 욕심이 적었으며, 경서를 애독해 유학과 백가의 학설을 넓게 구했다고 하며, 자태와 인망에 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담백함으로 자신을 지켰을 뿐 향리에 이름을 구하지 않았기에 주군에서 오랫동안 그를 알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조비가 태자가 되면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을 발탁해 정충을 문학으로 임명했다가 승진해서 상서령이 되었다가 지방으로 나가 진류태수가 되었으며, 유학자의 예스럽고 아담한 덕이 있어 직무에는 재주나 남의 잘못을 이해해 감싸주면서 일을 능히 처리하는 것에는 명성이 없었지만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은 필요에 맞게만 할 뿐 자산을 불리지 않아 세상에서 정충을 무겁게 여겼다. 대장군 조상이 그를 천거해 종사중랑에 임명했다가 산기상시, 광록훈이 되었으며, 251년에 사공이 되었다.

조모가 서경을 강의할 때에 이르자 경서를 들고 친히 수업해 시중 정소동과 함께 상을 받았다가 얼마 후에 사도가 되었으며, 260년에 조환이 즉위하자 태보에 임명되어 사도, 사공, 태위 위에 있으면서 수광후에 봉해졌다. 정충은 지위가 재상과 같았지만 세상의 일에는 간섭하지 않았으며, 사마소가 당시에 보정의 지위에 있어 폭을 평정하자 가충, 양호 등에게 예의, 율령 등 제정하게 하자 그들은 정충에게 자문을 구한 이후에 시행했다.

265년에 조환이 사마염에게 선양의 의사를 할 때 정충이 책서를 받들었으며, 사마염이 황제가 되자 태부로 임명되면서 작위를 올려 수광후에서 수광공이 되었다. 얼마 후 사례 이희, 중승 후사광, 태보 낭릉공 하증, 태위 임회공 순의 등과 함께 각기 질병이 있어 면직해야 한다고 주청했지만 모두 불허했으며, 사무를 처리하지 않고 사직을 청했지만 사마염이 완곡한 말로 조서를 내리면서 사자를 보내 타이르게 했다.

또 다시 굳게 사양해 초선인수를 바쳤지만 조서를 보내 불허했다고 하며, 273년에 표를 올려 관직을 그만두고 수광공으로 있다가 274년에 1월 11일에 죽었다. 사마염이 조당에서 태부로 추증하면서 비기(고관용 관목재), 조복, 상의 한 벌, 금전 30만, 포 100필을 내리면서 시호를 성(成)이라 했으며, 함녕 연간[2]에는 관리가 정충과 안평왕 사마부 등 12인은 모두 태상에 비명이 있으니 종묘로 배향할 것을 주청했다.

일찍이 손옹, 조희, 순의, 하안 등과 함께 논어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주석 중에서 훌륭한 것을 모아 그 성명을 기록해 그들의 뜻에 따라 합당하지 못한 부분을 모두 고쳐 논어집해라고 했다. 정충은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조카인 정휘가 그 뒤를 이어 평원내사에 이르렀다고 하며, 정휘가 죽자 그 아들인 정간이 뒤를 이었다.

세설신어에서는 가충이 율령을 제정할 때 양호와 함께 상담했는데, 정충이 고요[3]처럼 엄정하고 명석한 뜻은 저처럼 우둔한 사람이 헤아릴 수 있는 바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자 양호가 주상의 뜻은 조금이나 넓고 윤택함을 더하게 하고자 한 것이라고 하자 정충은 자신의 뜻을 밝혔다.

2.1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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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9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9에 등장하는데 지력 70에 정치 78이다. 병법으로는 혼란을 가지고 있다.

삼국전투기에서는 이름이 충이라 벌레로 나온다.(...)
  1. ≪삼국지≫권 19ㆍ<위서>ㆍ<임성진소왕전(任城陳蕭王傳)> : ... "足下平生常喟然有匡佐之志,今其時矣。" 출처
  2. 399 ~ 401년이다.
  3. 순 임금의 신하로 법률과 형벌을 관장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