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포

진서 「왕상등전(王祥等傳)」
왕상정충하증석포

石苞
(? ~ 273)

1 개요

삼국시대 위나라, 서진의 인물. 자는 중용(仲容). 석숭의 아버지.

2 생애

2.1 초기 생애

발해군 남피현 출신으로 학문이 있고 도량이 넓으면서 외모, 행동도 뛰어나 사소하게 꾸미지도 않았으며, 당시 사람들로부터 석중용 같은 미남자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현으로부터 초빙을 받아 전농사마가 되었다가 12, 13살 때 쯤에 당시 농부였던 등애와 함께 전농사마의 추천으로 길본의 허도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에 연루되어 근신 중이던 곽현신의 마부가 된 적이 있었는데, 이 때 곽현신으로부터 등애와 함께 좌상(佐相)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사자를 업에 보내는 일이 있었지만 일이 잠시 미루어져 석포는 업의 시장에서 철을 팔다가 조원유가 석포를 뛰어난 인물이라 교류하면서 뛰어난 재능을 칭찬해 삼공, 사보가 될 것이라 해서 석포는 이름이 알려졌으며, 업의 시장에서 철을 팔던 석포는 청룡 연간[1]사마의를 만났다. 허윤을 만나서 작은 현을 다스리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자신과 대등해 조정에 불려질 것이라면서 거절하자 석포는 허윤이 이 정도로 자신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돌아가면서 탄식했다.

2.2 위나라 휘하에서

사마사의 중호군사마가 되었고 사마의가 석포에 대해 용모는 좋지만 행실이 나쁘다고 했지만 사마사는 석포의 재능을 이야기해 채용해야 한다고 했으며, 업의 전농중랑장으로 옮겨지자 당시의 이익을 모두 조사해서 이 일을 열거하고 상소하자 칭송받았다. 동래태수, 낭야태수 등을 역임해 좋은 통치를 했고 이어서 서주자사, 굉농사마 등을 차례로 역임했으며, 252년에 오나라와의 싸움으로 사마소가 동관에서 패하자 홀로 군사를 잃지 않고 퇴각하면서 분무장군, 가절, 감청주제군사에 임명되었다.

257년에 제갈탄이 반란을 일으키자 감군으로 있던 석포는 사마소를 따라 출정하면서 6월에 도착해 주태와 함께 외부의 침입에 대비했으며, 8월에 주이가 공격했다가 주태에게 패한 후에는 강을 건너 반달 모양의 보루를 쌓고 대항하자 주태와 함께 공격해 주이군을 격파한다.

이에 주이가 무장한 거마를 동원해 오목성을 공격하자 또 다시 주태와 석포가 그를 공격해 결국 주이를 퇴각시켰다. 주이의 패배에 분노한 손침은 주이를 참수하고 이후 제갈탄이 농성하자 왕기와 함께 공격할 것을 청하나 사마소는 좋지 않은 선택이라며 거절한다..

수춘을 평정하면서 진동장군에 임명되고 동광후, 가절에 봉해지고 259년에 형주를 분할해 2명의 도독을 두도록 하면서 석포는 양주도독으로 봉해졌고 위 조정에 입조해 조모에게 인사를 올려 하루 종일 이야기 한 후에는 사마소에게 조모를 뛰어난 군주라 했으며, 정동대장군이 되었다가 표기장군으로 옮겼다. 260년 11월에 오나라의 소신이라는 자가 항복을 하겠다고 청하자 사마소가 거짓 항복인 것을 알고 석포에게 겉으로는 영접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미리 대비를 하도록 했으며, 265년에 사마소가 죽자 통곡했고 조환에게 선양을 권했다.

2.3 서진 휘하에서

사마염이 즉위해 진나라가 건국되자 대사마가 되면서 악릉군공에 봉해졌으며, 시중을 더해 깃털 붙은 덮개가 달린 수레를 타게 되었다. 268년에 석포는 오랫동안 회남 지방에 있었으므로 그의 위엄과 은혜를 베푼 일이 많았는데, 마침 오나라에서 침공하려고 하자 보루를 쌓고 하수를 막아 방비하려고 했다.

그러나 석포는 정봉의 이간책에 휘말려 당시 유행하던 동요인 "큰 돌이 말을 밟아 뭉게다"를 핑계로 감군 왕침(王琛)이 그를 무고하자 결국 중앙으로 소환되었으며, 이에 양호가 사마염에 석포는 그렇지 않다고 변호했지만 오히려 면직되었다.

이때 낭야왕 사마준손삭을 통해 석포에게 조정에서 군사를 파견해 토벌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군사권을 내놓고 도정에 가 대죄하도록 조언했고, 석포는 이를 따랐다. 사마염이 이 소식을 듣고 의심을 풀어 석포의 병권만을 빼앗고 낙릉공의 신분으로 집에 돌아가게 했다.

이후 석포는 사도에 임명되어 농업, 양잠업 등에서 상벌 제도를 도입하도록 상주했다. 석포는 직무에 충실했다고 일컬어졌으며, 273년 2월에 세상을 떠나면서 장례는 간소하게 치르라고 했다. 시호는 무(武).

3 후사

그의 아들은 석월(石越), 석교(石喬), 석통(石統) 석준(石浚), 석준(石儁), 석숭(石崇)이 있었으며 딸은 구양건(欧阳建)과 결혼한 석씨(石氏)가 있었다. 석교는 300년 동생 석숭의 죄에 연좌되어 함께 처형되었다. 석포의 손자로는 석순(石順), 석초(石超), 석희(石熙)가 있었다. 석순은 석통의 아들로 상서랑을 지냈고 석초는 석교의 아들로 성도왕 사마영 휘하에서 독호를 지내다가 305년 범양왕 사마효(司馬虓)와 전투 중 피살되었다. 석교의 또다른 아들 석희는 동해왕 사마월의 참군을 지냈다.

석포의 증손자 석박(石樸)은 후조석륵 밑에서 사도를 지냈는데 성씨가 같아서 먼 친척으로 여겨졌기 떄문이다.

4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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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1
삼국지 12,13

삼국지 시리즈에도 등장하지만 능력치는 신통치 않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72/71/56/43로 분전, 돌파, 제사, 덫을 가지고 있다. 보면 알겠지만 1단계 병법 위주의 병법수는 많은 데 효용은 별로인 구성이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71/67/58/53/62에 특기는 일제, 나선 겨우 2개.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69/71/56/53/60에 풍수 특기를 갖고 있으며 병과 적성은 A/B/B/B/B/C. 특기가 잉여스럽긴 해도 보험용으로 있으면 나쁘지는 않으니 전선 도시에 박아두자. 콘솔판 추가 시나리오인 영웅난무에서는 소패에서 재야로 등장하는데 저 평범한 무력으로 장소 군 최고의 무력을 자랑하게 된다.

삼국지 12에서는 짤렸다가 대전판에서 부활. 어째 황보숭스러운 일러다.

삼국전투기에는 우주전함 야마토 2199의 시노하라 히로키로 패러디되어 나왔다.
  1. 233 ~ 236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