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융

諸葛融
(?~253)

삼국시대 오나라의 인물로 제갈근의 아들이자 제갈각의 동생. 자는 숙장(叔長).

총귀하게 태어나 어려서부터 교만하면서 놀기 좋아했으며, 학문은 장구(章句)를 주로 해 널리 익혔으나 정밀하지 않았다. 성품은 사치스럽고 관용하며, 기예가 많았다고 한다.

수차례 포의[1]로써 봉조청이 되었다가 후에 기도위에 배수되었다.

229년에 아버지 제갈근이 대장군으로 임명되자 제갈융 또한 군대를 맡아 장수들을 감독하는 직위를 얻었으며, 진표가 죽자 제갈융은 그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241년에 아버지 제갈근이 죽자 형 제갈각은 이미 제후에 봉해졌기에 제갈융이 작위를 이어 공안독이 된다.

그가 공안독으로 있을 때 그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데, 부곡과 이사들이 모두 그와 친하게 지내 변경에 일이 없으니 가을, 겨울에는 사냥을 하며 무도를 배웠다. , 여름에는 빈객들을 초빙해 높은 연회를 베풀고, 관리와 병졸들에게 휴가를 주니 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오는 자들도 있었다.

또한 매번 연회 때마다 번번이 빈객들에게 돌아다니면서 재능을 말하게 하고, 탑을 합치고 자리를 오도록 당겨 적수를 헤아려 상대하게 하니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쌍륙, 바둑, 저포, 투호, 궁탄 등을 했고 계속해서 단 과일이 계속 들어와 청주는 서서히 들 정도로 사치스럽게 생활한다.

또 제갈융이 두루 돌아다녀 관람하며 하루 종일토록 지겨워하지 않았으며, 장례식을 치를 때 조차 칠하지 않은 소관과 평소에 입던 복장으로 염하라고 하면서 장례식은 검소하게 해 달라고 유언을 남겼던 아버지나 질박하고 소박했던 제갈각 모두 군대에 있을 때는 몸에는 장식 있는 옷을 입지 않았지만 제갈융은 무늬있는 비단으로 옷을 해 입는 등 혼자 사치스런 옷을 입었다.

변경이 평안했기에 아무 것도 안하고 놀고 있다가 결국 250년 왕창이 오나라의 내부에 혼란한 상황을 틈타 공격하자 퇴각했는데, 이를 본 주적이 제갈융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 공격할 것을 주장한다.

왕창은 먼 곳에서 와 피곤한 상태로 그의 말들은 먹을 것이 없고 병력은 줄어들어 달아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이 우리를 돕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추격하는 병력은 적으므로 병사들을 인솔해 서로 잇도록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먼저 그들을 공격할테니 당신은 뒤를 이어서 공격하도록 하십시오. 이것이 어찌 한 사람의 공로로 이루어지겠습니까? 마땅히 두 사람이 마음을 합쳐 금을 자르는 정신인 것입니다.

제갈융이 그것을 허락하니 주적은 기남성까지 가서 처음에는 승리했으나 제갈융이 편지에서 말했던 바를 지키지 않고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패배했으며, 이 사실을 안 손권은 주적의 전술을 칭찬하고 제갈융을 노여워하며 문책했지만 형 제갈각이 권세가 있었기에 면직되지는 않았다. 이로 인해 원래부터 좋지 않았던 주적과 제갈각, 제갈융과의 관계는 더욱 나빠진다.

252년에 손권이 죽자 평소 제갈각과 친하게 지내지 못한 손홍은 제갈각을 죽이려 했으나 손준이 이를 제갈각에 알려 손홍은 처형되는데, 그 후 제갈각은 손권의 부음을 선포하고 제갈융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니 얼마 안 있어 제갈융은 분위장군으로 임명된다.별 내용 없으니 무시하고 내려가도 무방하다.

이 달 16일 을미시(乙未時)에 대행황제(손권)가 만국을 버리고 떠나갔고, 지위의 높고 낮은 신하들은 슬퍼하며 애도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우리 부자와 형제에 이르면 한결같이 특별한 은혜를 받아 단지 평범한 신하가 아니었다. 이 때문에 매우 슬퍼 간과 심장이 찢어지는 듯하다. 황태자(손량)는 정유일에 황제의 지위에 즉위하니 나의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며 공존해 취할 바를 모르겠다. 내 몸은 임종할 때 남긴 명령을 받아 어린 군주를 보좌하고 있는데, 스스로 사사로이 헤아려 보면 재능은 박육에 미치지 못하는데 희공이 어린 성왕을 보좌해 제후들의 알현을 받는 것같은 중임을 받아 승상이 한왕조를 보좌한 효과를 더하는 일을 두려워하고, 선제께서 중임을 맡긴 영명함을 손상시키게 될 것이 두렵다. 이 때문에 걱정하며 두려워 매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백성들은 위에 있는 자를 싫어해 행동하면 주시를 받게 되는데, 언제나 이것을 바꾸겠는가? 현재 어리석고 노둔한 자질로 군주를 보좌하는 고관의 위치에 있으면서 어려움은 많고 지모는 부족하고, 임무는 무겁고 모략은 얕으니 누가 입술과 치아처럼 되어 돕겠는가? 가까이로는 한왕조의 시대에 연왕 단과 개장공주가 결탁해 상관걸이 곽광을 살해하려고 했던 변란이 있었다. 현재 나의 처지는 그 때와 거의 같은데, 어찌 감히 편안히 머뭇거리고 있겠는가? 또 동생이 있는 곳은 적과 경계가 교차되어 있으니 이러한 때에는 군수물자를 정돈하고 장수와 병사들을 격려하고 평상시보다 경계와 방비를 강화하고, 만번이라도 나와 함께 죽을 생각을 해 한 번의 삶을 돌아보지 않음으로서 조정에 보답해 조상에게 부끄러움이 없어야만 한다. 또 각 장수들은 각기 자신의 지역을 수비하며 적군이 황제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임의로 침입하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변방의 각 관소에는 이미 별도로 약속한 문서를 내려 수하의 독이나 장은 임의로 자신의 방위 임무를 버리고 직접 달려오지 못하게 했다. 비록 마음 속에는 참지 못할 처참한 심정이 자리하고 있을지라도 공의로 사사로운 감정을 빼앗아 백금도 상중에 출정했던 것이다. 만일 공의를 어겼다면 단지 작은 잘못이 아니었을 것이다. 가까운 사람의 모양으로 소원한 사람을 바로잡는데, 이것은 옛사람들이 분명하게 경계했던 것이다.

253년에 제갈각이 신성으로 출병해 주적의 힘을 빌리기 위해 주적을 반주에 머물게 하고 제갈융에게 주적의 일을 대신하게 했으며, 제갈융에게 부절을 내려 군대를 이끌고 면수로 들어가서 서쪽에서 병사를 공격하도록 명을 내렸다. 겨울의 제갈각 몰살 계획 때 제갈각이 죽자 시관, 손일, 전희, 시적이 제갈융을 죽이기 위해 공격하자 제갈융은 두려워서 머뭇거리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데, 병사들이 도착해 성을 포위하자 금인장의 거북을 깎아서 먹어 자살한다. 또한 그의 세 아들도 모두 형을 받아 죽으니 이로 인해 제갈근의 대가 끊길 위기에 처해 결국 촉으로 갔던 제갈교의 아들 제갈반이 돌아와서 후사를 잇게 된다.

삼국전투기 에서는 형인 제갈각이 데스노트야가미 라이토로 등장한 것 때문인지 같은 작가의 작품인 바쿠만타카기 아키토로 등장하며, 첫 등장씬에 주적에게 한 대사가 '나랑 콤비하자!' 다. 그러나 서로가 콤비로서 손발이 전혀 맞지 않는 것으로 그려진다.

여담으로 실제로 주적과의 관계는 좋지 않았고, 또 그 주적에 의해 최후를 맞이하는 만큼 그 악연의 결말을 짧게나마 그렸으면 좋았겠지만 작가가 중요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분량 때문인지 그냥 형 제갈각이 죽자 삼족이 주멸되었다는 식으로 일축. 뭔가 초반에 비해 어물쩍한 느낌이다. 단, 그와는 별개로 두 사람이 사이가 안 좋았다는 건 제대로 언급된다.
  1. 布衣, 벼슬 없는 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