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보싱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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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건 사진뿐
우와 저기 가운데에 저 선수 누구야? 팀의 에이스인가봐
그리고 보싱와와 옆의 두 명 모두 몇 달 후 첼시를 떠났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많은 축구 팬들의 표정은 살로몬 칼루 뒤에 있는 정장 입은 아저씨의 표정과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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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브존스포르 No.3
주제 보싱와 다 실바 (Jose Bosingwa da Silva)
생년월일1982년 8월 24일
국적포르투갈
출신지콩고 민주 공화국 음반다카
신체 조건183cm, 75kg
포지션수비수
등번호17번
프로입단2000년 SC 프레아문데팀
소속팀SC 프레아문데(2000~2001)
보아비스타 FC(2001~2003)
FC 포르투(2003~2008)
첼시 FC(2008~2012)
퀸즈 파크 레인저스(2012~2013)
트라브존스포르(2013~ )
국가대표30경기 / 0골

축구 역사상 가장 눈치 없는 선수 미래를 예언한 보스트라다무스
첼시의 다크나이트 #

1 선수 소개

포르투갈의 오른쪽 풀백. 활발한 오버래핑과 스피드, 그리고 간간히 찔러주는 패스와 중거리 슛을 가진 선수이다. 일대일 마크 능력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지만 강한 압박 수비를 통해 상대의 패스길을 차단하는 것을 통해 수비력을 매꾸는 선수. 전성기 시절에는 풀백과 윙어도 겸하며 적극적인 공격 참여와 크로스로 상대를 위협하는데에 능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예전만한 움직임과 스피드 및 공격력은 떨어졌지만 수비력이 상승하면서 2012년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는 바이에른 뮌헨의 맹공을 협력 수비로 막아내었다.

2 클럽

어린 시절 콩고 민주 공화국에서 포르투갈로 건너와 보아비스타 FC 유스 출신으로서 축구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는 측면 미드필더와 수비형 미드필더를 오가며 활약했다. 그리고 2000년에는 포르투갈 2부 팀인 SC 프레아문데로 임대가 활약하다가 2001년부터 친정팀인 보아비스타 FC에서 뛰었다.

02/03시즌부터 주전 자리를 확보한 보싱와는 좋은 활약을 보여 2003년, 주제 무리뉴 감독의 눈에 들어 FC 포르투로 이적했다. 허나 그 시즌에는 파울루 페레이라에게 밀리며 자주 기용되지는 못했으며, 주제 무리뉴히카르두 카르발류, 파울루 페레이라 등을 데리고 첼시 FC로 건너가면서부터 주전으로 자리잡아 활약했다.


그리고 그 자신 역시 2008년 첼시 FC로 건너갔다. 첫 시즌에는 대활약을 펼치며 첼시 팬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축구팬들에게 오른쪽의 지배자 급의 찬양을 받았다. 동시에 킥복싱와 혹은 싱하형이라고 욕도 먹었다

허나 09/10시즌에는 잘 뛰다가 갑작스런 장기 부상을 당해 무려 1년 가까이 출전하지 못하고 10/11시즌 중반 즈음에야 겨우 출전하게 되었다. 다시 돌아온 보싱와는 이전과 같지 않은, 폼이 급격하게 떨어진 선수였으며 당시 부진하고 있던 첼시에 맞게 본인 역시 OME급의 활약을 선보이며 자책골까지 기록할 정도였다.

거의 방출이 확정되다시피 할 정도로 부진해 시즌 종료 후 이적설이 나올 정도였는데, 안드레 비야스 보아스 감독이 부임하고, 쩌리 생활을 하던 유리 지르코프가 떠난 후에도 이적하지 않고 오히려 주전 자리를 꿰차며 시즌을 맞이했다.

그리고 11/12 시즌, 첫 세 경기에서 생각보다 훨씬 준수한 활약을 보이며 골까지 넣고 어시스트도 하나 기록했다. 얼리 크로스 남발이 좀 심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움직임이나 드리블은 확실히 전성기 급을 보여줘 팬들은 기대를 갖고 있는 중...

이었으나 그 후로부터는 공격, 수비 모두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공격적인 풀백 스타일이였지만 드리블, 크로스 모두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첼시팬들 사이에서는 까이고 또 까이고 있다. 이바노비치가 부상 중이여서 딱히 쓸 오른쪽 풀백이 없기는 하지만 아직 파울루 페레이라도 팀에 남아있고 차라리 은퇴를 번복하고 팀에 돌아온 리저브팀 오른쪽 풀백 샘 허친슨이나 다비드 루이스를 쓰자는 의견도 있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그리고 겨울 이적 시장에서 방출 명단에 들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첼시 팬들은 모두 기대하면서 새로 영입될 오른쪽 풀백을 기대했으나 정작 겨울 이적 시장이 끝나도 계속 팀에 남아있었다. 당연히 팬들은 분노. 그리고 재계약을 할 거라는 뉴스까지 나오면서 팬들은 2차 분노. 다행히도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가 복귀했지만 정작 맨유전에서는 저번 경기 퇴장으로 경기에 나오지 못하는 애슐리 콜을 대신해 왼쪽 수비로 나왔다.

메수트 외질과 함께 한국에서 이름 때문에 놀림받는 선수 중 하나. 분명 보싱와인데 올라오는 실시간 댓글을 보면 모두 보징와로 읽는다.

12/13 시즌을 앞두고 첼시에서 방출되었으나 QPR이 공짜로 줏어갔다. 그리고 레드냅 감독과 싸우기도 하면서(...) QPR 강등 멤버가 됐다. 결국 방출(...) 현재는 터키 리그 트라브존스포르에서 뛰고 있는데 QPR 시절보단 나은 듯하다. 말루다랑 다시 만나서 신난 듯

2013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트라브존스포르로 이적하였다.

3 국가대표

2007년 5월 유로 2008 지역예선 벨기에전에 출전하면서 포르투갈 국가대표에 첫 데뷔했다. 이후 유로 2008에 출전하여 기존의 주전이었던 미구엘을 제치고 대회 4경기 전부 주전으로 출장한다. 그러나 2010년 월드컵에는 장기 부상으로 인해 출전이 좌절되었다.

2011년 11월 유로 2012 지역예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의 홈 & 어웨이 경기에 명단 제외되었고 보싱와는 이를 결정한 파울루 벤투 포르투갈 국가대표팀 감독을 맹비난했다. 벤투 감독은 보싱와의 제외 이유를 두고 그의 태도와 정신상태에 문제가 있다며 설명했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보싱와는 감독이 바뀌지 않는 한 내가 국가대표에 돌아갈 일은 없다고 말하며 포르투갈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3년 후, 2014년 11월 유로 2016 지역예선 아르메니아전과 아르헨티나와의 친선 경기에 페르난두 산투스 감독이 보싱와를 재발탁하면서 국가대표에 복귀했다.

4 빅이어 사건

넌씨눈의 좋은 예

첼시 FC 역사상 최초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세레모니를 망친 자
맨전드로부터 첼시 최초의 챔스 우승 순간을 지켜낸 영웅
맨전드를 예언한 보스트라다무스
센터싱와의 숨겨진 이야기

11/12 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이바노비치-존테리의 결장으로 뛰게 되었는데 경기가 끝난 이후 해축 관련 커뮤니티에서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우승 이후 트로피 욕심을 엄청나게 내는 바람에(...) 존테리와 램파드를 제치고 첼시 역사에 남을 사진에 주인공 포지션으로 위치하게 되었다. 첼전드의 위엄 앞에선 존테리와 맨전드도 한 수 접고 들어간다

위의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팀의 고참인 디디에 드록바는 주장 존 테리와 부주장 프랭크 램파드가 트로피를 동시에 들어올리도록 배려하고 준비한다.[1] 보싱와가 앞에서 길을 막고 있자 드록바가 계속해서 비키라고 말하는 것이 보인다.[2] 이윽고 세레모니 시간이 되어 선수들의 환호 속에 테리와 램파드가 트로피를 들려고 하는데 보싱와가 앞에서 기다렸다는 듯 트로피를 낚아채 들어올린다. 보싱와의 행동에 당황한 동료들은 자연스럽게 테리와 램파드가 앞으로 나가서 들 수 있도록 시도하는데, 이에 보싱와는 한 술 더 떠서 트로피를 아예 빼앗아 들어올리고, 시상대 위에 올라가 홀로 트로피를 들어올린다. 그렇게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빼앗으며 보싱와는 영원한 첼전드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3] 이를 라이브로 지켜본 첼시팬들의 흥은 완전히 깨져버렸고 로만 아브라모비치 부임 이후 빅이어를 드는 모습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첼시팬들 사이에서 보싱와는 역적이 되어 엄청나게 까였고, 지금까지 까이고 있다. 클럽의 주장과 부주장인 테리와 램파드가 감격스럽게 드는 모습을 수 년간 꿈에서라도 상상해 온 팬들에게 보싱와는 프레디 크루거나 다름없다. 이 사건으로 인해 팬들 사이에서 완벽히 찍힌 보싱와는 계약을 1년 연장할 수 있음에도 즉각 첼시에서 방출되고 지금까지도 첼시 팬들 사이에서 비호감으로 찍혀있다. 구글에서 영문으로 보싱와를 검색하면 bosingwa ruined the trophy presentation이 자동으로 검색되는 수준.

그리고 그로부터 2년 반 뒤 그의 이런 행동은 모 맨전드로부터 첼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행동임이 밝혀졌으며 현재 진정한 첼시의 영웅 첼전드로 재평가 되고 있다 다... 다크나이트[4]

그리고 또 1년 뒤 선수들이 첼전드 감독을 상대로 단체로 태업을 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찌질이들에게 빅엿을 날린 진정한 첼전드로 다시 한 번 재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한국에서 대상을 받은 사람에게서 포커스를 뺏은 한 여성 연예인 때문에 그가 또 주목을 받았다

여담이지만 농구에서도 이런 비슷한 사건이 일어날 뻔 한 적이 있다. 1996년 당시 마이클 조던이 이끌던 시카고 불스는 네번째 우승을 차지했는데, 야구에서 복귀한 조던이 호사가들의 비판을 제치고 다시 정상에 오른 점, 72승이란 당시 역대 1위 기록을 남긴 팀이 화룡정점을 찍은 점, 무엇보다 강도에게 아버지가 살해당해 충격받아 은퇴한 조던이 하필이면 아버지의 날에 우승해 감정이 폭발한 그가 우승이 결정되는 순간 농구공을 붙잡고 코트에 쓰러져 오열한다. 당연히 언론도 그 극적인 순간을 잡으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근데 조던의 파트너인 스카티 피펜이나 감독 필 잭슨도 아니고 눈치없는 랜디 브라운이란 후보가드가 조던과 같이 공을 잡고 그를 안고 같이 코트 바닥에 눕는 바람에 정작 세계가 보려고 했던 조던은 완전히 가려지고 왠 듣보잡 유니폼만 보이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도 한 팀 관계자가 브라운의 등을 계속 치며 비키라고 한 덕에 늦게나마 그가 정신을 차리고 비키고, 조던이 코트 위에서 엎드려 오열하는 그 유명한 사진이 찍히게 됐다는 점에서 보싱와 사건과 다르게 결말은 해피엔딩이 됐다는 점이 다행...
  1. 드록바가 계획했던 세레모니는 FA컵 우승 세레모니 상황과 같다. 그런데 보싱와는 이 사진에서도 트로피를 낚아채려고 벼르고 있다. 말루다가 앞으로 뛰쳐나오려는 보싱와를 막았기에 세레모니는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
  2. 위 영상 1분 50초 경
  3. 시상식 영상을 풀로 감상하면 시상대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로베르토 디 마테오 감독 다음으로 입장하는 것이 보인다.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저지른 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4. 진지하게 말하자면 램통수 파드가 안 들었어도 테리가 들었어야지 보싱와가 들었으면 안 되는 트로피였기 때문에 여전히 잘한 짓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