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테리

첼시 FC 2016-17시즌 스쿼드
1 베고비치 · 3 마르코스. A · 4 파브레가스 · 5 주마 · 6 아케 · 7 캉테 · 10 아자르 · 11 페드로
13 쿠르투아 · 14 로프터스치크 · 15 모지스 · 16 케네지 · 19 디에고 코스타 · 21 마티치 · 22 윌리안 · 23 바추아이 · 24 케이힐
#0000000 26 테리 · 28 아스필리쿠에타 · 29 찰로바 · 30 다비드 루이스 · 34 아이나 · 35 무손다 · 37 에두아르두 · 41 솔랑케
* 이 표는 간소화된 버전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 본래 스쿼드에서 타 팀으로 임대간 선수는 제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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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F.C. No. 26
존 조지 테리 (John George Terry)
생년월일1980년 12월 7일
국적잉글랜드
출생지런던, 바킹
신체 조건187cm, 90kg
포지션센터백 골키퍼[1]
등 번호26번[2]
유소년 클럽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1991-1995)
첼시 FC (1995-1998)
소속 클럽첼시 FC (1998- )
노팅엄 포레스트 FC (2000) (임대)
국가 대표
(2003 - 2012)
78경기 6골
별명글래디에이터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데이비드 베컴
(2000~2006)
존 테리
(2006~2012)
스티븐 제라드
(2012~2014)
2005 FIFPro World XI
FW
안드리 셰브첸코
FW
사무엘 에투
MF
프랭크 램파드
MF
클로드 마켈렐레
MF
지네딘 지단
MF
호나우지뉴
DF
파올로 말디니
DF
알레산드로 네스타
DF
존 테리
DF
카푸
GK
디다
2006 FIFPro World XI
FW
호나우지뉴
FW
티에리 앙리
FW
사무엘 에투
MF
카카
MF
지네딘 지단
MF
안드레아 피를로
DF
잔루카 참브로타
DF
존 테리
DF
파비오 칸나바로
DF
릴리앙 튀랑
GK
잔루이지 부폰
2007 FIFPro World XI
FW
호나우지뉴
FW
디디에 드록바
FW
리오넬 메시
MF
스티븐 제라드
MF
카카
MF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DF
카를레스 푸욜
DF
존 테리
DF
파비오 칸나바로
DF
알레산드로 네스타
GK
잔루이지 부폰
2008 FIFPro World XI
FW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FW
페르난도 토레스
FW
리오넬 메시
MF
카카
MF
스티븐 제라드
MF
사비 에르난데스
DF
카를레스 푸욜
DF
존 테리
DF
리오 퍼디난드
DF
세르히오 라모스
GK
이케르 카시야스
2009 FIFPro World XI
FW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FW
페르난도 토레스
FW
리오넬 메시
MF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MF
사비 에르난데스
MF
스티븐 제라드
DF
파트리스 에브라
DF
네마냐 비디치
DF
존 테리
DF
다니에우 아우베스
GK
이케르 카시야스
"프리미어 리그에는 수많은 정상급 수비수들이 있었지만 그 중 최고는 존 테리라고 생각한다. 위치 선정과 특히 '경기를 읽는 능력'에 관해서 그보다 뛰어난 수비수를 본 적이 없다."

- 제이미 캐러거

첼시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이자 2000년대 최정상급 센터백.[3]

페트르 체흐, 디디에 드록바, 프랭크 램파드와 함께 첼시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레전드.[4]

1 소개

첼시 FC 유스에서 배출한 몇 안 되는, 잉글랜드를 넘어 세계 최고급의 센터백. 현역 생활 동안 노팅엄 포레스트 임대 시기만 제외하면 첼시에서 2016년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뛰고 있는 말 그대로 첼시의 레전드이며, UEFA 올해의 팀에 4차례, FIFA/FIFPro 월드 XI에도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연달아 5번이나 뽑힐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가진 선수이다. 2004년 마르셀 드사이의 이적 후 공석이 된 주장직을 무리뉴에 의해 역임하게 된 이후로 첼시의 주장을 역임하고 있고, 잉글랜드 국가대표로서도 꾸준히 활약했다. 히카르두 카르발류와 함께 첼시 왕조 건설에 큰 공을 세웠다.

2 선수 경력

2.1 초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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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에서 막 데뷔했을 시절 존 테리

존 테리는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관심을 뒀고 이스트버리 종합 중등 학교에 입학해 학업을 수행하는 동시에 지역 선데이 리그 클럽인 Senrab에 입단해 축구 기술을 갈고 닦았다. (참고로 솔 캠벨, 저메인 데포, 바비 자모라, 레들리 킹, 그리고 제이로이드 사무엘 등 훗날 EPL에서 명성을 떨치게 될 이들도 어린 시절 이 Senrab이란 클럽에서 활동했다.) 테리는 1991년 11살의 나이에 웨스트햄 유스팀에 입단했는데, 처음에는 센터백이 아닌 미드필더로 뛰었다. 그는 웨스트햄 유스팀에서 4년간 활동하다가 1995년 첼시 유스팀으로 이적해 첼시의 유스팀과 리저브팀에서 활동했다. 이무렵 첼시는 팀내 센터백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에 키가 크고 수비적 능력이 우수한 테리의 포지션을 센터백으로 변경시켰다. 이후 테리는 16살에 첼시 구단과 프로 계약을 맺으면서 본격적인 축구 선수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테리는 1998년 10월 28일 아스톤 빌라와의 리그컵 경기에서 경기 종료 몇분을 남겨놓고 출전했다. 이것이 그의 프로 데뷔전이었다. 이후 그는 올더햄 애슬래틱과의 FA컵 3라운드 경기에서 처음으로 선발 데뷔전을 치뤘고 첼시는 이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했다. 하지만 그는 초기엔 그렇게 인상적인 활약을 하지 못했고 첼시는 그에게 기량을 좀더 가다듬고 출전 기회를 주기 위해 2000년 1월 노팅엄 포레스트로 임대보냈다. 그는 노팅엄 포레스트에서 6경기를 소화했고 2000년 여름 첼시로 복귀했다. 그후 테리는 2000-01 시즌에 리그 22경기, 컵 대회 4경기에 출장해 총 26경기를 소화하며 팀의 주요 선수로 거듭났으며 올해의 첼시 선수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그리고 2001-02 시즌엔 당시 첼시의 주장이었던 마르셀 드사이와 함께 첼시의 핵심 수비 요원으로 활약했다. 2001년 12월 5일에는 처음으로 첼시의 주장 완장을 차고 찰튼 애슬레틱과의 경기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첼시는 이 시즌에 FA컵 결승전에 진출했지만(이때 테리는 FA컵 준결승전에서 풀럼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으며 1:0 승리를 이끌어냈다) 결승전에서 아스날에게 2:0으로 패해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2002년, 테리는 좋지 않은 일에 연루되었다. 팀동료 조디 모리스와 윔블던 FC 선수 Des Byrne과 함께 런던의 어느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그 곳의 바운더와 언쟁을 벌이더니 급기야 폭력을 행사하는 짓을 저지른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재판에 회부되어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잉글랜드 축구협회로부터 국가대표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또한 2001년 9월에는 미국에서 프리시즌 투어를 수행하던 와중에 911 테러에 대한 미국인 비하 발언을 해 비난을 받았고 구단으로부터 주급 2주 정지 징계 처분을 받았다. 이렇듯 테리는 초창기부터 실력이 우수한 선수였지만 인성 면에선 문제를 드러냈다. 이런 모습은 이후 그의 선수 경력 내내 지속되었다.

2.2 '더 블루스'의 캡틴

2003-04 시즌, 테리는 계속해서 마르셸 드사이와 함께 첼시의 수비진을 이끌었다. 당시 첼시 감독이었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는 드사이가 부상으로 경기를 뛰지 못할 때면 항상 테리를 주장으로 삼았고 윌리엄 갈라스와 함께 또다른 수비 조합을 결성하게 했다. 테리는 갈라스와도 훌륭한 팀워크를 맺고 첼시를 리그 준우승과 챔피언스리그 4강으로 이끌어냈다. 그러던 2004년 여름, 로만 아브라히모비치 구단주는 라니에리 감독을 경질한 후 첼시의 황금시대를 이끌어낼 인물을 선임한다. 그는 바로 조세 무리뉴였다. 무리뉴는 첼시로 부임하자마자 테리를 공식적으로 주장으로 삼고 전폭적인 신임을 아끼지 않았다. 테리는 그의 신임에 힘입어 '로얄 블루스'시대를 이끌어가는 핵심 멤버로 군림한다.


영광의 시절. 왼쪽부터 프랭크 램파드, 조세 무리뉴, 존 테리.

2004-05 시즌, 첼시는 무리뉴의 완벽에 가까운 지략과 탄탄한 선수진에 힘입어 EPL을 문자 그대로 씹어먹었다. 리그 25경기 무실점, 리그 최소 실점 (15실점), 역대 최다 승리 (29승), 역대 최다 승점 (95점) 등 유수한 기록들이 바로 이 시즌에 달성되었다. 테리 또한 이 시기에 엄청난 활약을 선보이며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또한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골을 기록하는 등 훌륭한 활약을 선보여 챔피언스리그 최고의 수비수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세계 베스트 11에서 수비수 부분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테리는 2005-06 시즌에서도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절정에 달하는 폼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첼시가 승점 91점을 획득해 리그 2연패를 달성하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2006-07 시즌에도 엉덩이쪽 디스크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받는 바람에 여러 경기를 뛰지 못한 것을 제외하면 훌륭한 활약을 꾸준히 선보였다. 그러던 2006년 10월 14일 레딩 전에서 페트르 체흐가 끔찍한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실려갔고 그를 대신해 투입된 카를로 쿠디치니까지 부상으로 아웃되자, 테리는 그들을 대신해 골키퍼 노릇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의외로 골키퍼 역할을 잘 해내 팀이 1:0 승리를 거두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첼시는 아쉽게도 맨유에게 밀려 리그 2위를 기록해 리그 3연패를 달성하진 못했다.

2006-07 시즌이 끝난 뒤, 테리는 구단에 주급을 대폭 늘린 계약 조건으로 재계약을 체결할 것을 요구했다. 이후 기나긴 협상 끝에 7월 말에 13먄 천 파운드에서 13만 5천 파운드 사이의 주급을 받는 조건 하에 제계약을 체결했다. 테리는 이로서 당시 EPL 선수들 중 가장 많은 주급을 받는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 맞이한 2007-08 시즌에서, 그는 시련에 직면했다. 2007년 12월 5일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에마누엘 에부에에게 발이 밟히는 바람에 발가락 뼈 3개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이로 인해 테리가 여러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자 가뜩이나 이 시즌에 수비 불안으로 성적이 좋지 않던 첼시는 급격히 흔들렸고 결국 무리뉴는 경질되고 말았다.

그래도 당초 석달 동안 재활받아야 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빠른 속도로 회복한 테리는 아브람 그랜트와 함께 첼시의 전열을 가다듬고 성적을 끌어올려 리그 준우승, 리그컵 준우승을 거두며 유종의 미를 이루었다. 또한 무리뉴 시절 번번히 챔스 4강도 가지 못했던 첼시는 아브람 그랜트의 지휘하에 챔피언스리그 결승전까지 올라 마침내 고대하던 빅이어 획득을 눈앞에 뒀다. 테리는 결승전 상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훌륭한 활약을 선보이며 맨유의 공세를 호날두의 헤딩골을 제외하고 모조리 저지했다. 그후 승부차기에서 모든 것이 결판나게 되었다. 체흐가 호날두의 슛을 저지해내면서 승부는 첼시 쪽으로 기울었다. 이제 다섯 번째 키커로 나선 존 테리가 골을 넣는다면, 첼시는 승부차기에서 5:3의 스코어로 승리를 거두어 빅이어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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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의 캡틴은 그만 미끄러지며 공을 찼고 그의 슈팅은 골망을 맥없이 벗어나고 말았다. 그후 첼시는 아넬카의 실축으로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그로서는 그야말로 최악의 하루가 아닐 수 없었으리라...

2.3 암흑기에도 빛난 주장

무리뉴를 떠나 보낸 후, 첼시는 암흑기에 빨려들어갔다. 아브람 그랜트, 펠리페 스콜라리가 연이어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무리뉴의 빈자리를 메우기엔 턱없이 부족했고 선수들 및 로만과의 갈등 끝에 경질되고 말았다. 그래도 테리는 이 기간 동안에도 프랭크 램파드, 디디에 드록바와 함께 첼시의 든든한 핵심 멤버로서 꾸준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그러던 2008-09 시즌 후반기에 거스 히딩크가 스콜라리를 대신해 부임한 후 첼시는 다시 잘 나가기 시작했고 챔피언스리그 4강까지 진출해 결승전을 눈앞에 뒀다. 그러나 4강전에서 바르셀로나를 만나 원정 0:0, 홈에서 1:1 무승부를 거둬 원정 골득실에서 밀려 탈락하고 말았다. 특히 홈에서의 4강 2차전은 지금까지 오브레보 심판의 판정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첼시 팬들은 현재까지도 이때를 두고두고 한스러워하고 있다.

2.4 안첼로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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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맨체스터 시티가 테리에게 거액의 비드를 제시했다. 그러나 테리는 안첼로티 감독의 설득을 받아들여 첼시에 그대로 남았다. 이후 첼시는 안첼로티의 지휘하에 강력한 공격력과 탄탄한 수비력을 발휘해 리그를 씹어먹었고 테리는 주장으로서 첼시의 4번째 리그 우승을 이끌어냈다. 또한 그는 FA컵 결승전에서도 포츠머스를 상대로 활약해 1:0 승리를 이끌어내며 개인 통산 4번째 FA컵 우승을 달성했다. 이후 테리는 2011년 12월 31일 아스톤 빌라와의 경기에 선발 출전했는데, 이 경기는 그가 프로에 데뷔한 이래 400번째로 치르는 경기였으며 첼시 역사상 가장 많은 출장 기록이기도 했다. 또한 테리는 2011년에 전 세계에 1000개 이상의 패스를 한 선수들 중 3번째로 패스 성공률이 높은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패스 성공률은 91.%였는데, 이보다 높은 선수는 오직 사비 에르난데스(93%)와 레온 브리튼(93.3%) 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개인적으로 이렇듯 잘한 것과는 달리, 첼시는 안첼로티의 두번째 시즌 때는 지난 시즌에 비해 위력이 떨어져 고전하다가 막판에 가까스로 순위를 올려 리그 2위를 기록했고 챔피언스리그 8강에 진출했으나 맨유에게 패해 준결승전 진출이 좌절되었다. 이에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성적이 불만족스럽고 리빌딩에 차질이 생겼다는 이유로 안첼로티를 경질했다.

2.5 불운의 2011-12 시즌

안첼로티가 경질된 후 안드레 비야스 보아스가 새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첼시의 수비 라인을 끌어올려 경기 내내 공격적으로 플레이하는 전술을 시행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주력이 느려진 테리에게 보아스의 이 같은 전술은 상극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테리는 2011-12 시즌에 크게 부진하고 말았고 첼시는 이로 인해 성적이 지지부진해졌다. 게다가 보아스가 첼시의 베테랑들을 배제하는 태도를 보이자 이에 대해 불만을 품은 베테랑들이 태업을 일삼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그 중엔 테리도 이 태업에 가담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다가 보아스가 경질된 후 첼시의 레전드였던 로베르토 디 마테오가 부임한 후 전력을 가다듬은 첼시는 리그는 비록 로만 구단주 부임 이래 최악의 성적인 6위로 마감했지만 FA컵 우승을 달성하고 뒤이어 챔피언스리그에서도 기적적인 행보를 보이더니 마침내 우승을 달성했다. 다만 테리는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 알렉시스 산체스의 무릎을 걷어차는 행위를 저지르다 퇴장당하는 바람에 결승전엔 출장하지 못했다. 2008년의 악몽을 씻어버리고 싶었을 그에게는 참으로 아쉬운 일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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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진은 찍었다!

2.6 무리뉴와의 재회

2012-13 시즌은 그에게 또다른 시련을 안겨줬다. 그를 굳건히 신뢰했던 디 마테오 감독은 시즌 초반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고 그 뒤를 이은 베니테즈 감독은 그가 노쇠화했다고 판단하고 주전 자리를 게리 케이힐다비드 루이즈에게 넘겨줬다. 결국 테리는 이 시즌에 치른 경기들 중 상당수를 벤치에서 시작해야 했고 리그에서 겨우 14경기에 출전하는 등 예전에 비해 입지가 위태로워진 모습을 보였다. 이제 테리에게 남은 길은 계약 만료 때까지 백업으로 뛰다가 은퇴하거나 다른 팀으로 이적하는 것 밖엔 없는 듯 했다.

그러다가 2013년 여름, 무리뉴가 첼시로 복귀했다. 무리뉴는 테리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고 그를 다시 주전으로 기용했다. 이에 테리는 회춘한 모습을 보이며 첼시의 수비진을 훌륭하게 이끌었다. 그 결과 첼시는 2013-14 시즌 리그 3위,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하는 등 선전했다. 이후 2014년 5월 14일, 테리는 첼시와 1년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2.7 첼시 FC/14-15 시즌

첼시에서의 마지막 영광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

14-15 시즌에도 부동의 주전이다. 최근 활약상을 보면 제 2의 전성기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센터백 파트너인 게리 케이힐이 시즌 초반부터 현재까지 많은 실수를 범해서 테리가 할 일이 더 많아진 상황이다. 말년에 더 고생 구단의 정책 변화로 인해 30세 이상 선수들에게 1년씩 재계약하는 방식이 적용되면서 프랭크 램파드애슐리 콜 이 떠나는 모습을 보고 느낀 바가 많은 것 같다.

14-15시즌 첼시의 통산 5번째 프리미어리그 우승에 크게 공헌했다.
EPL 역대 2번째로 전경기 풀타임 출전 기록도 보유한 시즌.

첼시 수비의 테리 의존도는 매우 높다. 테리가 있는 경기와 없는 경기를 비교하면 테리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테리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날은 선수들간의 간격이 유지되면서 완벽한 수비가 되지만 테리가 없는 날은 선수들이 우왕좌왕하고 정신차리지 못하며 실점하기 일쑤다. 정작 더 큰 문제점은 첼시가 아직까지 현실적인 테리의 대체자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때 게리 케이힐이 테리의 대체자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14-15시즌의 모습을 보면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주마는 지금 당장 대체자가 되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리고 테리와는 다른 스타일의 수비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고... 테리 은퇴하면 첼시 수비 무장 해제될 듯.

2.8 첼시 FC/15-16 시즌

15-16시즌 초반에 몇 경기 나오더니, 9월달 부터 무리뉴 감독은 전술상의 이유를 들어서 주마-케이힐 조합을 선택하면서 계속 벤치를 달구고 있다. 위의 취소선의 말처럼 테리가 주전에서 빠지자마자 첼시는 자동문 수비를 보여주는데, 최악의 폼을 보여주는 이바노비치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테리의 부재[5]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다시 주전을 잡으면서 2경기 째 무실점을 이끌고 있다.

개리 리차드슨이 자신의 BBC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첼시 선수들이 무리뉴의 방식에 반발이 심해 관계가 극에 치달았고 한 선수는 "무리뉴를 위해 뛰느니 지겠다" 는 발언을 했다고 말했으며 “무리뉴 감독과 아자르의 관계가 극으로 치달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자 첼시 팬들은 ‘설마 그런 선수가 있겠느냐?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선수 이름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한편 그 선수가 누구인가를 놓고 설전을 벌이고 있다. 물론 이미 빌리스 보아스 감독을 한번 내쫒은 전적이 있는 존 테리가 제일 거론되고 있는 중이다.
리그 11라운드 리버풀전에서 1:3으로 패배했을 때는 워스트 플레이어로 뽑히는 등 기량이 극심하게 떨어진 상태임을 보여주었다. 현지 해설의 평가로는 그냥 축구장에서 뛰고 있는 노인[6]... 위에 언급된 일로 태업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폼이 저하된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두 가지 모두 전년도 우승팀 주전이라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태인 것은 확실하다.

2015년 11월 29일 토트넘전에서 부상으로 인해 경기에 출전을 하지 못했다. 테리 대신 케이힐이 출전하여 주마와 호흡을 맞췄는데 이 경기에서 주마는 평점 7.2점 케이힐은 평점 7점으로 각각의 활약상을 반영해 높은 점수를 받았으며 주마는 MOM으로 선정되기도 했다.[7] 주마-케이힐 조합의 안정감을 확인한 주제 무리뉴가 과연 부상에서 복귀할 테리에게 계속 선발 자리를 내어 줄 지 의문이다.

포르투전에서 선발 복귀, 흠 없는 수비를 하며 완승을 이끌었다. 주마 역시 경험 전수를 받은 듯한 플레이를 보여줬다.

2015년 12월 18일 무리뉴는 첼시와 상호간의 합의로 계약을 해지했으며, 첼시 보드진인 에메날로는 첼시 선수들의 태업을 시인했다. 현재 존 테리는 자신의 개인 SNS에서 엄청난 욕을 먹는 중. 하지만 자신은 인스타에서 무리뉴에게 감사하는 메시지를 올리는 행동을 취했다.태업이 아니라 그냥 못하는 거였나보다.

히딩크 부임 이후 케이힐을 밀어내고 주마와 수비 조합을 맞추고 있다. 수비도 안정화가 되고 본인도 오프사이드 오심빨로 에버턴전 극장골을 넣었으니 폼이 꽤 올라왔다.

15/16시즌을 끝으로 첼시를 떠난다고 한다. 재계약 제안을 못 받았다고. 이 소식에 팬들은 난리가 났고 첼시는 바로 아직 테리의 재계약건은 끝난 게 아니며 대화의 가능성도 남아있다는 해명을 했다. 테리는 예전에도 주급 협상을 유리한 방향으로 끌기 위해 맨시티 이적 언플을 때린 인물인데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말년에도 여전히 구단 우롱 수준의 언플과 정치질을 하고 있다.

리그 37라운드 선더랜드 원정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경고누적 퇴장을 당했다. 이 경고누적 퇴장때문에 이 경기가 테리의 첼시 선수 커리어 마지막 경기일지도 모른다.[8]

하지만 1년 재계약을 하면서 다음 시즌에도 첼시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2.9 첼시 FC/16-17 시즌

여전히 첼시의 핵심

지난 시즌에 겪은 폼저하와 팀 성적 부진 때문에 우려와 기대속에서 새 시즌을 맞이하였지만 큰 문제 없이 시즌 초반을 보내고 있다.

4R 스완지전 막판 부상 이후 리버풀, 아스날전에 모두 결장하였는데 첼시는 두 경기 모두 패배하였으며 특히 아스날전에서는 수비 문제가 대폭발하면서 존 테리가 아직 첼시의 수비진에 기여함이 큰 것을 입증했다. 게리 케이힐이바을과 함께 명실상부한 첼시의 구멍으로 자리잡았으며 다비드 루이스박스 투 박스 센터백답게 가출이 너무 잦다. 비록 수비 커버 범위도 좁고 느린 발을 가지고 있지만 그가 가진 리더십, 수비 조율 능력 때문에 그나마 이정도라도 버티는 것이었다.[9] 이 현상이 퀴르트 주마가 온다고 하더라도 해소될지는 의문.[10]

곧 부상에서 복귀한다고 기사가 났다. 맨유전을 기준으로 3-4-3 시스템이 팀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있는데, 스위퍼 자리에는 루이스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테리를 스토퍼로 쓰기에는 커맨딩 능력을 십분 활용하기 어려울 뿐더러 스피드면에서는 같이 느린편에 속하는 케이힐보다도 떨어지기 때문에 콘테가 테리를 어떻게 기용할지 관심이 쏠리는 중이다.

3 국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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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 문제만 아니면 우승한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결국 본인이 부상 트러블을 일으킨 잉글랜드의 캡틴(…)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 승선,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였지만 웨인 루니 등과 함께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였고 팀은 16강에서 광탈했다. 세계 최고의 센터백 중 한 명이자 국대 파트너인 리오 퍼디난드가 부상으로 빠진 게 컸던 듯. 잉글랜드보다 약팀만 있었던 조별예선은 어찌저찌 무실점으로 잘 막았으나, 독일과의 경기에서는 메수트 외질, 토마스 뮐러, 미로슬라프 클로제 등에게 제대로 농락당하며 체면을 구겼다. 이 와중에서도 카펠로 감독의 전술을 비난하고 주장인 제라드와 한판 붙었다.(...) 베컴의 중재로 어찌어찌 넘어갔지만 많은 지탄을 받았다.

4 플레이 스타일

첼시의 수비라인을 10년이상 지키고 있는 첼시의 캡틴

그를 이 시대 최고 센터백의 반열에 오르게 한 것은 강인한 피지컬, 떡대 등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푸욜과 동급이라고 해도 무방한 게임 리딩 능력. 즉 수비지능이다. 최고의 커맨더 수비수로 2000년대 중반 부터 계속해서 입증되어왔으며 이 밖에도 공격적인 태클, 위치 선정에도 정평이 나 있고, 득점력도 정말 뛰어나다. 한 시즌에 챔스에서 수비수인 주제에(..) 4골을 넣은 적도 있고[11] EPL 역대 수비수 중 가장 많은 골을 넣었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히 증명할 정도. 그런데 왜 그 땐 못 넣으셨나요... 30대 중반을 훌쩍 넘기고 후반에 접어든 지금에도 그 험하다는 EPL에서 박싱데이를 가볍게 견디고 리그를 풀로 소화할 만큼 철강왕이다. 단점이라면 거북이 스피드(...)가 있는데, 이 때문에 자신 못지않게 느린 케이힐과 듀오를 형성할 때, 뒷 공간을 자주 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키가 작으면서 스피드가 빠른 날렵한 공격수에게는 약한 경향이 있다. 또한 테리의 느린 스피드는 공격에도 지장을 주는데, 수비진을 올려 가둬놓고 패야 되는 상황인데 올리자니 뒷공간 스루패스로 털리고, 내리자니 3선 미들진과 간격이 벌어져서 실점 빌미를 제공하고, 여러모로 첼시의 딜레마이다.[12]
그래도 그 수비센스는 어디 안 가서 14-15 시즌 리그 전 경기 출장을 하며 첼시가 리그와 리그컵을 제패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언제 노쇠화가 올 지 모르기 때문에 현재 첼시는 계속해서 중앙 수비수와 링크가 나고 있다.

그리고 특유의 몸을 사리지 않는 수비로 슈팅을 온 몸으로 막는다. 그야말로 강인한 정신력을 보여준다, 그런데 슈팅을 막으려다 발이 얼굴로 향해버려서 의식을 잃은 적도 있었지만 그 수비 방식을 버리진 않았다. 또 피파하나? 187이 크지 않은 키면 얼마가 되야 되는거야[13] 헤딩 능력이 상당히 좋다. 정확도가 장난이 아니다. 다비드 루이스처럼 공격 본능이나 슈팅능력이 있는 선수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가 역대 EPL 수비수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게 된 것은 8할이 헤딩능력.

세르히오 라모스, 제롬 보아텡, 마츠 후멜스같은 센터백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현대 축구에서 요구되는 후방 빌드업이 굉장히 좋은 센터백이기도 하다. 일단 패스미스를 거의 범하지 않고 시야도 넓은 데다가 양발로 중장거리 패스를 뿌려줄 수 있는 능력까지 있다.

5 이슈

존 테리가 한국선수였다면 논란중인 국내 인물 틀이 달려있어야 할 정도로 논란이 많다.

축구장에서는 투지 넘치는 모습과 훌륭한 기량으로 팬들에게 사랑받지만, 알게 모르게 축구 외적으로는 자잘한 이슈를 꽤 만들어내는 선수다. 1주일에 2억을 넘게 버는 축구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전용 주차장에 고급 외제차를 주차시켜 놓은 장면이 파파라치에게 찍혀 된통 욕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하고는 2015년 9월 27일, 같은 짓을 반복했다. 초범이 아니었어???

개인과 연관시키는 것은 연좌제스러울 수 있어 조심해야 하지만 가족들이 문제를 일으켰는데, 1주일에 수억을 버는 선수의 어머니가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걸리고 아버지는 코카인 밀매를 하다가(...) 법정에 갔다.

2010년 3월 16일에는 챔피언스리그 16강 인테르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던 중 뺑소니 사건까지 일으켰다.

그외에 밝혀진 그의 행적들은 9.11 테러 직후 침통해있는 미국인들 앞에서 주정을 하거나, 나이트 클럽에 출입하면서 폭행 사건에 연루되거나, A매치 기간 중 팀을 이탈해서 술집에서 노상방뇨를 하며 추태를 부리거나, 25살때 17살 짜리 여자애한테 '니 끈팬티가 좋아'라는 문자를 보냈다거나으악 [14] 도박으로 거액을 잃은 사건 등이다.

5.1 불륜 스캔들

영국판 흔들린 우정
친구를 배신한 영구까임권의 소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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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 구성이 제대로 알차다

2010년 1월 30일. 그 동안 보도금지령에 묶여있던 충격적인 사실들이 드러나면서 선수 인생 최악의 상황에 마주치게 된다.
그 내용은 존 테리가 결혼하기 이전인 2006년부터 국가대표팀 동료이자 과거 같은 팀에서 활약했던 웨인 브리지의 애인 바넷사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것. 바넷사는 테리와 관계를 갖고 임신까지 했으며, 결국 낙태를 했다고 한다[15]. 게다가 이번 기사로 인해 과거 존 테리가 저질렀던 수많은 문제들이 다시 대두되었다. 이로 인해 테리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주장 자리에서 물러났고 주장직은 리오 퍼디난드에게 넘어갔다. 이후 브리지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인 카펠로의 국대 승선 권유도 거절하였고 국가대표팀을 은퇴하게 되었다. 잉글랜드 현지에 나온 기사 중엔 브리지가 국대 승선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테리로부터 사과 한 마디조차 없었다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흔한 맨시티빠이자 원래부터 존 테리를 싫어했던 노엘 갤러거[16] 이 일을 언급하면서 존 테리는 XX끼이며 맨시티 팬들이 존 테리를 더 욕해줬으면 좋겠다는 인터뷰를 하였다.

게다가 테리는 그 전 해인 2009년에 영국인이 뽑은 올해의 아버지상을 받았기 때문에(...) 배로 까였다.인디펜던트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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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이후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는 이른바 불륜더비로 다시 태어났다. 2월 28일 첼시의 홈 스탬포드 브리지에서 벌어진 제1차 불륜 더비에서 맨시티는 전 팀원들이 분기탱천해 첼시를 4-2로 대파했다. 참고로 경기 시작 전 서로 악수할 때 과연 테리와 브리지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에 대해 전 세계 축구팬의 이목이 모였고 모두의 예상대로 브리지는 테리의 악수를 무시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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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내내 브리지는 테리를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노려보았지만, 아무런 위해나 시비 없이 프로다운 모습으로 경기에 임하였다. 오히려 테베즈가 펄펄 날뛰면서 테리에게 덤비려 했다.

형인 폴 테리 또한 팀 동료의 애인과 불륜을 저질렀다고 하는데 이 쪽은 오쟁이 진 동료 선수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참고). 뜨거운 형제들 자살한 축구선수는 데일 로버츠라는 5부 리그의 선수다. 이 선수는 선덜랜드의 젊은 윙어인 아담 존슨의 절친.[17] 이에 관련하여 아담 존슨은 자신의 이너웨어에 R.I.P DALE이라는 글귀를 적고 탈의 세레모니를 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동료 선수의 부인과 불륜관계를 맺은 전설적인 행보물론 이 분야에 넘사벽같은 존재가 있어서 2위다 때문에 2015년 8월 첼시 팀닥터 섹스 스캔들에 당연히(...) 연루되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팬들이 많다. 물론 자세한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기에 존 테리가 얽힌 지는 알 수 없지만 아직도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 불륜 스캔들의 상흔이 남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5.2 인종차별 논란

2011년 10월에는 퀸즈 파크 레인저스와의 리그 경기 도중 리오 퍼디난드의 동생인 안톤 퍼디난드에게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렇지 않아도 테리에게 국대 주장 자리를 넘기면서 불만이 많았던 리오 퍼디난드였기에, 이 사건으로 국대 불화 문제가 한층 커졌다.
결국 이 일로 2012년 2월 잉글랜드 국대 주장직까지 박탈당했다. 이에 대하여 반발하던 파비오 카펠로 국대 감독은 결국 감독직을 사임해야 했다.
2012년 유로컵을 겨우 몇 달 앞두고 갑작스런 감독 교체로 잉글랜드 국대 팀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가운데, 잉글랜드에서 반응은 당연히 이건 카펠로 잘못보다 존 테리 저 새끼 잘못이라는 분위기.

하지만 2012년 7월 중순부터 이루어진 재판에서 여러 공방 끝에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아 인종차별 혐의를 벗어냈다. 여러 가지 잡음이 많기는 했으나 결국 지금까지 카펠로 감독을 자르고, 존 테리의 주장 직위를 박탈하고, 리오 퍼디난드가 유로 2012에 불참하는 등의 각종 끔찍한 해프닝들은 모두 잉글랜드 FA의 병크가 되어버렸다. 테리 쪽에서는 퍼디난드 형제 또는 FA를 상대로 맞고소까지 준비하는 분위기.
하지만 판결의 결과는 Not Guilty지 Innocent가 아니다. 본인도 black cunt라고 말한것을 인정했고 실형을 살지는 않아도 FA차원에서 징계를 내릴 것은 확실하다. FA는 결과에 반발하며 반대성명을 내면서 장기전으로 끌고 갈 전망이다(참고).

결국 2012년 9월 23일,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FA로부터의 불충분한 지지가 이유라는데 영국에서는 한창 까이는 중.

동년 9월 27일에는 FA에서 4경기 출장 정지 처분과 함께 22만 파운드의 벌금을 부과했다. 스페인어로 파트리스 에브라에게 Negrito라고 했던 루이스 수아레스의 8경기 출장정지 + 4만 파운드 벌금에 비하면 출장정지에 대해서는 솜방망이라 할 수 있겠으나 벌금은 5배로 늘어났으니 그럭저럭 쌤쌤인걸까...? 하지만 리버풀 팬들은 FA의 이중잣대라고 분노했다.[18][19]

6 기타

얼굴이 상당히 크고 노안이다. 탈모도 있다. 탈모 때문에 대표팀 시절에는 루니랑 서로 디스를 교환했다는듯... 믿기 힘들지만 앨런 스미스와 동갑. 그래서 지금은 다른 팀의프랭크 램파드나 첼시 감독인 주제 무리뉴 감독 같은 사람들과 같이 서 있으면 상당히 비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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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뿐만 아니라 잊을 만하면 나오는 챔스 결승에서의 실축도 흑역사. 맨유쪽에서 실축을 했고 첼시쪽은 모두 성공해서 자신만 넣으면 우승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발이 미끄러지면서 날려먹었고 그대로 러시안 룰렛 돌입. 아넬카의 슈팅이 반 데 사르에게 막히면서 맨유가 우승을 한다. 당연하게도 마지막에 슛을 막힌 아넬카보다 존 테리가 욕을 더 바가지로 먹었다.
첼시의 주장 존 테리! 이것은 뭐 대단한 선택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어쨌든 빅이어를 들어올린 2015년까지도 이 실축을 생각하면 무척 괴롭다고 한다.[20]

11-12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바르셀로나전에서 퇴장당하며 대단한 선택(…)을 다시 볼 수는 없게 되었고, 첼시는 기적적으로 빅 이어를 들어올리게 된다.

12-13시즌에서도 부상으로 유로파 리그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했다. 다만 팀이 우승하면서 아쉬움을 달랬고, 조제 보싱와가 없어 프랭크 램파드와 함께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게 되었다.

13-14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 때의 부상으로 인해 올해도 결승 불운이 계속되는 건가...했는데 2차전 때 복귀했다. 그런데 팀은 3-1로 패하며 또 결승 출전 실패.(...)

어릴때는 맨유 팬이었다. 아버지 할아버지도 맨유팬. 퍼거슨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다.#

프로 의식과 팬 서비스는 좋다는 평을 듣는다. 지금까지 주장으로서 첼시의 전성기를 이끌어왔으며, 어렸을 때부터 첼시에서만 있었던 원 클럽 맨이고 첼시 팬들에 대한 팬 서비스만큼은 흠 잡을 데 없기 때문에 첼시 팬들의 사랑도 독차지한다. 게다가 13-14시즌이 끝난 후에 휴가까지 반납하고 훈련에 몰두하고 있다고 하니, 인간으로서의 그는 비난받을 점이 많지만 그 외에 축구선수로만 봤을 때는 존경을 받을 만한 선수 중 하나이다.

그러나 구설수에 자주 오르내리는 선수이며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평이 많다. 안드레 빌라스-보아스가 자신의 전술에 부합하지 않아 존 테리를 주전에서 제외했을 때 애슐리 콜 등 고참선수들과 작당해 태업하며 빌라스-보아스의 경질에 큰 힘을 보탰다는 얘기는 기정사실화되었다. [21]

거기다가 15-16시즌 태업 논란에서는 본인이 주도를 했어도 문제, 아니어도 문제인 상황이다. 했으면 당연히 문제고, 안 했어도 본인을 다시 주전으로 앉혀 준 무리뉴를 상대로 태업을 하는 선수단을 주장이 전혀 제어하지 못했다는 뜻 밖에 안 된다.

2009년에는 해체 위기에 놓여 있던 첼시 레이디스 FC[22]에 자기가 직접 투자해서 구단주 자리에 앉았다.

지소연 선수가 지목해 슛포러브에 나왔다! 참여 후 유니폼을 제작진에게 주면서 자선경매에 부쳐 기부금으로 써 달라는 말을 하며 훈훈한 마음씨를 보여줬다. 불륜만 안 했어도
여기로.

마음의 소리 901화에서 행인으로 출연했다.# 같이 나온 선수는 로랑 코시엘니뱅상 콤파니(...)

묘하게 GTA 5마이클 드 산타와 닮았다.

7 첼시 FC 1군 선수 명단

첼시 FC 2016-17 시즌 스쿼드
등번호이름영문 이름포지션국적생년월일신체 조건비고
1아스미르 베고비치Asmir BegovićGK30px1987년 6월 20일198cm, 83kg
3마르코스 알론소Marcos AlonsoDF30px1990년 12월 28일188cm, 81kg
4세스크 파브레가스Cesc FàbregasMF30px1987년 5월 4일175cm, 74kg
5퀴르 주마Kurt ZoumaDF30px1994년 10월 27일190cm, 92kg
6나단 아케Nathan AkéDF30px1995년 2월 18일180cm, 71kg
7은골로 캉테N’Golo KantéMF30px1991년 3월 29일169cm, 69kg
10에덴 아자르Eden HazardMF30px1991년 1월 7일173cm, 74kg
11페드로 로드리게스Pedro RodríguezFW30px1987년 7월 28일167cm, 62kg
13티보 쿠르투아Thibaut CourtoisGK30px1992년 5월 11일199cm, 91kg
14루벤 로프터스-치크Ruben Loftus-CheekMF30px1996년 1월 23일191cm, 83kg
15빅터 모지스Victor MosesMF30px1990년 12월 12일177cm, 75kg
16케네지KenedyMF30px1996년 2월 8일182cm, 77kg
19디에고 코스타Diego CostaFW30px1988년 10월 7일188cm, 85kg
21네마냐 마티치Nemanja MatićMF30px1988년 8월 1일194cm, 84kg
22윌리안WillianMF30px1988년 8월 9일175cm, 75kg
23미키 바추아이Michy BatshuayiFW30px1993년 10월 2일185cm, 78kg
24게리 케이힐Gary CahillDF30px1985년 12월 19일193cm, 86kg부주장
26존 테리John TerryDF30px1980년 12월 7일187cm, 90kg주장
28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César AzpilicuetaDF30px1989년 8월 28일178cm, 75kg
29너새니얼 찰로바Nathaniel ChalobahMF30px1994년 12월 12일185cm, 75kg
30다비드 루이스David LuizDF30px1987년 4월 22일188cm, 84kg
34올라 아이나Ola AinaDF30px1996년 10월 8일175cm, 65kg
35찰리 무손다Charly Musonda JrMF30px1996년 10월 15일173cm, 66kg
37에두아르두EduardoGK30px1982년 9월 19일187cm, 84kg
41도미니크 솔랑케Dominic SolankeFW30px1997년 9월 14일185cm, 75kg
출처 : 첼시 공식 웹사이트 , 마지막 수정 일자 : 2017년 2월 1일
  1. 2006년 10월 14일, 레딩 FC과의 경기에서 주전 골키퍼인 체흐와 교체로 나온 쿠디니치까지 부상을 당해 임시로 골키퍼로 뛰었다.
  2. 첼시 FC의 레전드 미드필더 지안프랑코 졸라의 25번을 뛰어넘을 포부로 선택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3. 2000년대 최고의 센터백을 논할 때마다, 알레산드로 네스타, 카를레스 푸욜, 파비오 칸나바로와 함께 반드시 거론된다.
  4. 14-15 시즌을 끝으로 드록바가 프리미어리그를 떠났고 체흐까지 아스날로 이적하며 이 줄에 언급된 이름 중에서 유일하게 첼시에 남아있는 선수가 되었다.
  5. 디마테오 감독은 테리의 부재로인한 케이힐-루이스 조합으로 수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경질당했다. 결국 베니테즈가 케이힐-이바노비치 조합으로 수비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다.
  6. Old man이라고 트래버 프랜시스가 BT Sports에서 평가하였다.
  7. 기재한 평점은 데일리 스포츠에서 발췌해 왔으며 모든 선수들의 평점 또한 데일리 스포츠에서 확인 할 수 있다.
  8. 경기 내에서 퇴장당한 경우라면 보통 두 경기 출전 불가 징계를 받는다. 그리고 첼시는 (일정 조정때문에 늦춰진) 30라운드 리버풀전과 38라운드 레스터 시티전, 두 경기가 남아있다. 이러한 사실 때문인지 경기장을 빠져나가면서 표정관리가 안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9. 사실 테리를 기용하는 이유는 전성기때나 지금이나 그의 리더십, 수비 조율 능력이 8할이다. 데뷔때부터 발이 느렸던 선수인데도 불구하고 그가 최고의 센터백으로 평가 받을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리더쉽과 수비 지능의 자신의 모든 단점을 상회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10. 주마도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수비 기술이 좋은거지 위치 선정같은 멘탈적 능력은 아직 부족하다.
  11. 2004-05 챔피언스리그
  12. 테리의 폼이 떨어져있던 13-14 시즌, 이 패턴으로 실점을 많이 해서 양민학살을 못하고 무관으로 마감했다.
  13. 근데 테리의 프로필 키는 그때그때 달랐다. 186cm로 나왔던 적도 있고 188cm, 189cm로 나왔던 적도 있다(예전 피파 게임에는 183cm로 나왔던 적도 있음). 그리고 신장이 작은 센터백들도 많아서(푸욜, 라모스, 실바 등등) 187cm면 평균 정도는 되는 편이지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다.
  14. 그 소녀는 뉴스 오브 더 월드에 그 문자를 팔아넘겼다. 근데 영국에서 만 16세 이상과의 성관계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15. 영국은 조건에 따라 임신 24주 이내에 낙태가 가능한 국가다.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 경제적 문제, 임산부의 육체적/정신적 건강문제가 있을 경우 낙태가 가능한데, 이 경우에 해당되는 건 없는 듯.
  16. 09/10시즌이 시작하기 전 맨시티가 존 테리를 영입한다는 설이 돌 때부터 반대하였다.
  17. 그리고 2015년 3월 현재 아담 존슨은 15세 소녀와 성관계 혐의로 체포되었다(...).
  18. 게다가 그 출전 정지 기간에 공교롭게도 맨유와의 리그전과 컵 경기가 들어있다. 데이비드 길 맨유 사장이 FA의 부의장이 되고, 최근 맨유에 대한 편파 판정 문제제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내려진 판단이라 더욱 분위기가 안 좋은 듯.
  19. 게다가 벌금 액수가 적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저 정도 수준의 선수 주급(테리의 경우 2주치가 안된다!)을 생각하면, 출장정지보다는 훨씬 가벼운 처벌로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20. 출처
  21. 애슐리 콜이 2014년 겨울에 이를 인정하는 인터뷰를 했다. 이때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태업한 선수단에게 선수 모두를 해고하는 것보다는 감독을 교체하는 게 품이 덜 들기 때문에 너네들을 그대로 두는 것이며 결과를 내지 못한다면 다음 차례는 너네들이다'가 요지인 발언을 했다고 한다.
  22. 지소연 선수가 있는 그 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