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페헤이라

(파울루 페레이라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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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파울루 헤나투 헤보슈 페헤이라
(Paulo Renato Rebocho Ferreira)
생년월일1979년 1월 18일
국적포르투갈
출신지카스카이스
포지션라이트백(레프트백도 된다)
프로입단1997년 이스토릴 프라이아 입단
소속팀이스토릴 프라이아(1997~1999)
비토리아 FC(2000~2001)
FC 포르투(2002~2003)
첼시 FC(2004~2013)
국가대표62경기
2003 UEFA BEST 11
FW
뤼트 판 니스텔로이
FW
티에리 앙리
MF
파벨 네드베드
MF
지네딘 지단
MF
데이비드 베컴
MF
루이스 피구
DF
호베르투 카를루스
DF
파올로 말디니
DF
알레산드로 네스타
DF
파울루 페헤이라
GK
잔루이지 부폰

1 소개

첼시의 전성기를 이끈 라이트백.

포르투갈 소속의 풀백. 2000년대 중반 통곡의 벽이라 불릴 정도로 탄탄한 수비진을 갖춘 첼시의 주전 라이트백이었고 강력한 수비력, 활발한 오버래핑, 준수한 외모, 그리고 깔끔한 패스와 크로스 능력을 보유한 선수였다.
또한 클럽에 대한 충성심이 꽤나 남다른 선수였다.

2 클럽 경력

2.1 포르투갈 시절

포르투갈 세군다 리가의 팀인 이스토릴 프라이아에 입단했으며, 2000년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비토리아 FC에 입단, 1부 리그에 데뷔했다. 이적 후 첫 시즌에만 34경기나 출장하면서 상당한 이목이 집중되었으며, 2002년에는 FC 포르투로 자리를 옮겨 뛰었다. 포르투갈의 빅 클럽이었던 FC 포르투에 쟁쟁한 수비 자원을 모두 제치고 주전 자리를 꿰차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2003-04 시즌, 그는 주제 무리뉴 감독이 이끄는 FC 포르투 트레블의 일원으로서 리그 우승, 챔피언스 리그 우승, 컵 우승에 기여했다. 페레이라는 2003 UEFA BEST 11 에 미첼 살가도, 릴리앙 튀랑, 하비에르 자네티 등의 레전드들을 제치고 선정되었다.

2004-05 시즌부터는 같은 팀의 히카르두 카르발류와 함께 감독 무리뉴를 따라 첼시 FC로 이적[1]. 그리고 무리뉴 사단이 이끄는 첼시 제국이 시작되었다.

2.2 첼시 FC

첼시에서의 첫 시즌인 2004-05 시즌, 첼시는 승점 95점[2], 실점은 단 15점[3]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우승했으며, 페레이라는 리그에서 29경기를 출장하며 프리미어 리그 라이트백의 최강자로 불릴 만큼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당시 윌리엄 갈라스-존 테리-히카르두 카르발류-페레이라의 철의 포백은 프리미어 리그 공격수들의 무덤이라 불릴 만큼 탄탄했다.

2005-06 시즌에도 철의 포백의 일원으로 좋은 활약을 보여준다. 그 다음 시즌인 2006-07 시즌부터는 칼리드 불라루즈, 제레미 은지탑, 라사나 디아라 등의 영건들과 경쟁하는 과정속에서 주전에서 밀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맨유와의 FA컵 결승전[4]에서 120분간의 혈투 끝에 첼시가 FA컵에서 우승하는데 큰 공헌을 한다. 첼시 입단후 네번째 시즌인 2007-08 시즌부터는 미카엘 에시앙, 줄리아누 벨레티에 이은 3옵션정도의 선수가 되면서 폼이 많이 떨어지기에 이르지만, 경기에 출장할땐 그래도 괜찮은 수비력을 보여주며 2008년 2월, 새로이 5년 재계약에 사인한다.

2008-09 시즌은 부상에 시달리는 통에 별로 활약을 못해 먹튀 소릴 들을 뻔..했으나 그 다음 시즌 애슐리 콜,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 조제 보싱와[5] 등이 싹 드러누워 버리자 유리 지르코프와 함께 풀백 땜빵(..)요원으로 나와 2009-10 시즌엔 20경기에 출장(리그에선 13경기)하면서 더블(리그, FA컵)에 기여한다. 특히 풀백자원들이 싹 나가리 되버린 상태에서 치른 맨유전, 그것도 올드 트래포드에서 치른 경기에서 전성기를 보는듯 한 뛰어난 수비를 보여주었다.

2010/11시즌 초기에는 많은 출전 기회를 얻었으나, 이바노비치와 보싱와의 복귀 후 다시 벤치로 밀려났다. 이 시즌 후반에는 선발출전이 거의 없었지만, 초반에 많이 벌어놓은 것과(..) 교체출장 경기수를 합해 29경기 출장을 기록하며 첼시 FC에서 200경기를 기록했다.

2010-11 시즌이 끝나고 카를로 안첼로티가 경질당한 이후 안드레 비야스 보아스안비보가 감독으로 오고 보아스는.후안 마타, 하미레스, 다니엘 스터릿지 등의 어린 선수들을 중용하고 알렉스, 디디에 드록바 등의 고참들을 벤치로 내리는 세대교체를 단행한다.[6]페레이라 또한 세대교체라는 명목으로 벤치를 달구는 신세가 된다. 그런데 성적이 계속 안나오고 선수와 감독간의 불협화음이 계속해서 커지자,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보아스를 경질하고 수석코치였던 소년명수로베르토 디 마테오를 임시감독으로 선임한다. 감독이 달라져도 페레이라의 입지는 그렇게 큰 변화는 없었지만, 2011-12 챔피언스리그 8강전이었던 벤피카와의 원정경기에서 출장하여 좋은 폼을 보여주며 첼시의 4강행을 이끈다. 블랙번과의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오랜만에 나와 홈 팬들에게 박수를 받은 그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후보멤버로 포함이 된다. 그리고 첼시는 기적같은 경기를 보여주며 우승을 거머쥐고, 그는 커리어 통산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라는 기록을 세운다.

페레이라의 계약은 2013년 여름에 종료되고, 첼시는 그와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결국 그는 2012-13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한다. 그리고 2013년 5월 19일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에버튼과의 홈경기[7]에서 교체출장하며 그는 첼시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뛰게되고, 경기 종료 후 유로파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고 피치로 나와 팬들에게 인사를 했다. 은퇴식은 2013년 5월 23일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이루어졌다. 첼시에서 남긴 기록은 217경기 출장, 2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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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딸을 품에 안고 은퇴를 발표하는 페레이라, 그의 앞날에 행복이 가득하길 빈다.

3 대표팀 경력

상당히 오랜기간동안 포르투갈 수비의 한 축을 담당했다.

탄탄하고 일관성 있는 수비력을 발휘하며 페레이라는 포르투와 계약한지 6개월 만에 국가대표로 데뷔했다. 그는 2000년에 빌라 파크에서 잉글랜드와의 친선경기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첫번째 메이저 대회였던 유로 2004에서 국가대표로 뽑히지만, 그리스와의 개막전에서 많은 실수를 범하면서 명단에서 제외되다 시피하고 포르투갈이 준우승에 그치자 욕을 진탕 얻어먹었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도 다시 한번 뽑혀 설욕할 기회를 얻었고 준결승전인 프랑스와의 경기에 후반 교체출장했지만 게임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못했고, 지단의 PK 결승골로 패배한 포르투갈은 독일과의 3~4위전을 치르게 된다. 이 경기에선 선발로 나왔으나 슈바인슈타이거의 중거리슛 두방과 자책골을 더한 스코어 3:1로 포르투갈은 대패하게 된다.

유로 2008에도 또 국가대표로 뽑히게 되고, 포르투갈은 이번엔 8강전에서 또 독일한테(..) 3:2로 깨져 귀향한다. 페레이라는 이 경기를 포함해 4경기에서 모두 왼쪽 풀백 선발로 나왔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에도 어김없이 본선 멤버로 포함되어, 코트디부아르드록국와의 조별예선 첫경기에서만 출장한다. 이 경기는 득점없이 비겼고, 포르투갈은 그 대회 챔피언 스페인과 16강부터 만나서 1:0으로 패배한다.

그리고 2010년 8월,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며 국가 대표 커리어를 마감한다. 그는 총 62경기에서 뛰었고, 메이저 대회 4개에 참가했다.[8]]

4 수상

4.1 클럽

4.2 국가대표

4.3 개인

  • UEFA BEST 11(1): 2003

5 기타

요즘 해외축구팬들에겐 생소한 이름이겠지만, 예전엔 상당히 잘생긴 외모와 좋은 실력으로 많은 해외축구팬들의 사랑을 받은 선수중에 하나이다.사실 예전에도 비중이 그렇게는 높지 않았다


파페옹 옆 분에게서 메딕의 향기가 난다

또한 2008-09 시즌 스콜라리가 감독으로 선임된 후 폼 다 떨어진 데쿠를 영입했을때, 그에게 자신의 번호였던 20번을 양보하고, 자신은 19번을 다는 것에 아무런 불만을 내비치도 않았다. 거기에다 첼시에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가 영입된 후 2010-11 후반기, 2011-12 시즌 동안 극악의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엄청난 욕을 처먹으며 (..) 살 때 페레이라가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그가 직접 증언했다. 요약: 적응하거나 받아들여야 할 때 많은 조언을 해주었고, 언제나 열심히 훈련한다 등

UEFA 베스트 일레븐에도 들어간 선수였지만 말년엔 경기에 몇번 나오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자존심이 상할 법하지만, 앞서 말한대로 등번호 변경도 흔쾌히 받아들이고, 주급삭감도 감수하고, 급할땐 포르투갈어를 쓰는 선수들을 위해 통역까지 해주면서 구단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인 대단한 멘탈을 가진 선수였다.

그리고 유로파 리그, 챔피언스 리그를 각각 2회 우승한 흔치않은 기록의 보유자이기도 한다.
  1. 이적료는 약 20m
  2. 역대 프리미어리그 최다 승점이다. 2003-04 시즌 무패우승이었던 아스날도 첼시의 승점은 넘지 못했다
  3. 이것 또한 역대 최소 실점
  4. 여담으로 이 경기는 새로 개장된 뉴 웸블리 스타디움에서의 첫 경기였다
  5. 이분은 이 다음시즌까지만 해도 공수를 겸비한 최고의 윙백이었다.
  6. 보아스는 이런 과정속에서 불만이 쌓인 램파드, 드록바, 테리 등의 고참들과의 불화로 지휘봉을 내려놓게된다.
  7. 이 경기에는 챔스 직행 or 플레이오프행 이 달려있는 중요한 경기였는데, 그 토레스가 결승골을 집어넣으며 2013-14 시즌 챔스 직행권을 따낸다
  8. 출처 - 첼시의 숨어있는 레젼드 : 파울로 페레이라 (Paulo Ferreira) (We Are The Blues: 첼시 팬 포럼) |작성자 파페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