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치적 · 이념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포함할 수 있어 문서를 열람할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한 문서의 악의적 서술 · 편집은 민사 · 형사 상 소송이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정치적 · 이념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포함할 수 있어 문서를 열람할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한 문서의 악의적 서술 · 편집은 민사 · 형사 상 소송이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曺昌大
1928년 7월 15일 ~ 1969년 8월 25일
1928년 경상남도 부산부(현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마산 해인대학(현 경상남도 창원시 경남대학교), 육군사관학교 제8기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복무하였다. 육군대학 교수, 제1야전군사령부 교육과장 등을 지내다가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치안국(현 경찰청) 정보과장에 임명되었다. 1963년 육군 준장으로 진급과 동시에 예편하였다.
예편 후 민주공화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전국구 국회의원 11번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공화당에서 중앙상임위원을 역임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남도 진해시-창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신민당 후보로 출마한 차점 낙선자 황낙주로부터 개표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선거소송을 당하였다. 그러던 중 1969년 세기항공 경비행기인 파이피기를 타고 가다가 경기도 안성군 금광면 삼흥리 야산에서 비행기가 추락하여 사망하였다. 사망으로 선거소송도 취하되었다. 그런데 그가 별세하였음에도 시간을 질질 끌다가 재보궐선거는 실시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