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낙주

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치적 · 이념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포함할 수 있어 문서를 열람할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한 문서의 악의적 서술 · 편집은 민사 · 형사 상 소송이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黃珞周

1928.3.22 ~ 2002.12.12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928년 경상남도 창원군 진해면(현 창원시 진해구)에서 태어나 마산상업고등학교(현 용마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1965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1955년 진해세화여자고등학교의 전신 충무상업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에 취임하고, 1966년에 이사장이 되었다.

1967년 신민당 정책위원 겸 경상남도 부위원장이 되어 정계에 입문하였다, 이후 김영삼계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치러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경상남도 진해시-창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조창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0월 유신으로 중선거구제 하에서 치러진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경상남도 마산시-창원군-진해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이도환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6년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이철승 대표최고위원 체제가 출범하자 인권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박종규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9년 5월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김영삼이 총재가 되자 다음 달인 6월 원내총무가 되었다. 1979년 김영삼의 구속을 막기 위해 같은 선거구의 국회의원이었던 박종규와 자주 만나기도 하였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그러다가 정치규제에서 풀리고 나서 1985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창원시-진해시-의창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배명국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그러나 당선된 직후 민주한국당을 탈당하여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창원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년 동안 대한민국 국회 동력자원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통일민주당이 해체되고 민주자유당이 창당하자 이에 따라갔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1994년까지 국회부의장이 되었으며, 1994∼1996년에는 국회의장을 역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신한국당-한나라당, 경남 창원 을)으로 당선되어 신한국당 상임고문, 대한민국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1991년 창원시 갑/을 분구 때 게리맨더링의 원흉으로 지적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