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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쑤 쑤닝 No.9 | |
조 (Jô) [1] | |
국적 | 브라질 |
생년월일 | 1987년 3월 20일 |
출생 | 상파울루 주 상파울루 |
신장 | 189cm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유소년 클럽 | 코린치안스 (2000~2003) |
소속팀 | 코린치안스 (2003~2005) CSKA 모스크바 (2005~2008) 맨체스터 시티 (2008~2011) 에버튼 FC (임대) (2009) 에버튼 FC (임대) (2009~2010) 갈라타사라이 (임대) (2010) 인테르나시오나우 (2011~2012)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2012~2015) 알 샤밥 (2015~2016) 장쑤 쑤닝 (2016~) |
국가대표 | 20경기 5골 |
1 클럽
브라질 출신의 축구 선수로, 일명 블랙죠조(Jô)라고 한다. 중국 슈퍼 리그의 장쑤 쑤닝에서 스트라이커로 뛰고 있다. CSKA 모스크바 시절에는 나름 좀 쩌는 득점력을 선보인 바 있다. 문제는 러시아 리그가 한계였다는 점이지만...
2001년 SC 코린티안스에서 데뷔한 뒤, 2005년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의 CSKA 모스크바로 이적해 자신의 첫 해외 이적을 이뤄냈다. 이적 이후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인터 밀란을 상대로 득점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고, 2008년 1800만 파운드의 이적료에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했다.[2]
하지만 2008-09 시즌 중반부까지 리그에서 단 9경기에 출장해 포츠머스 FC와의 경기에서 넣은 1골이 전부였으며, UEFA 컵에서도 6경기에 출장해 플레이오프에서 키프로스 팀인 오모니아 니코시아를 상대로 넣은 2골이 전부였다. 결국 주전 자리에서 밀린 채 2009년 겨울 이적시장에서 공격진의 줄부상에 시달리고 있던 에버튼 FC로 시즌 종료때까지 임대를 떠나게 되었으며, 볼턴 원더러스를 상대로 치른 데뷔전에서 2골을 터뜨려 팀의 3:0 승리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는 등 시즌 종료때까지 12경기에서 5골을 기록하며 맨체스터 시티에서보다 나은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맨체스터 시티에서 노팅엄 포레스트와의 FA컵 경기에 출전했던 경력 때문에 첼시 FC와의 FA컵 결승전에 나오지 못했고, 결국 팀도 1:2로 패했다.
시즌이 끝난 이후 에버튼 사정상 비싼 이적료를 지불하고 조를 완전 이적시킬 형편이 못되어 일단 맨체스터 시티로 복귀했지만, 여전히 맨체스터 시티에서 주전 자리를 확보할 수 없어 다시 한 번 에버튼으로 1시즌동안 임대를 떠나게 되었다. 2009-10 시즌 초반에는 AEK 아테네와의 UEFA 유로파 리그 경기에서 골을 넣어 팀의 4:0 승리에 일조하는 등 나름 활약했지만, 리그에서 15경기에 출전할 동안 무득점에 그치며 부진한 활약을 보였다. 여기에 무릎 부상으로 재활 훈련을 받던 도중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의 허락 없이 고국 브라질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고, 결국 반 시즌만에 맨체스터 시티로 복귀했다.
하지만 맨체스터 시티에는 여전히 조의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남은 시즌 동안 터키 쉬페르 리가의 갈라타사라이 SK로 임대를 떠났고, 13경기에서 3골을 넣는 적절한 활약을 보였다. 시즌 종료 이후 맨체스터 시티로 진짜로 복귀했으며, 더 이상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프리 시즌동안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2010-11 시즌 전반부에는 그런대로 기회를 잡아 UEFA 유로파 리그 조별 리그에서 레드불 잘츠부르크와의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해 팀의 2:0 승리에 공헌했으며, 이후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어 1:1 무승부를 기록해 팀이 1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하는데 기여했다. 거기에 비록 1:2로 패하긴 했지만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과의 풋볼 리그 컵 경기에서 득점을 올리는 등 이전과는 나름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리그에서는 여전히 12경기 무득점 행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전형적인 컵대회 전용 선수
결국 다시 원위치로 돌아온 채(...) 시즌을 마쳤으며, 시즌 종료 이후 자신이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닫고는 고국인 브라질 리그의 인테르나시오나우로의 이적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리그 16경기에서 단 2골만을 득점하는 부진을 보인 끝에 2012년 아틀레치쿠 미네이루로 팀을 옮겼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아틀레티쿠 미네이루에서 1시즌 동안 대활약! 호나우지뉴와 함께 팀을 남미 챔피언스리그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정상에 올렸고, 본인은 대회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이에 대표팀에도 차출되지만차라리 이때 활약을 못했어야해ㅜㅜ, 조의 활약은 딱 이 기간만이었다. 그는 다음 시즌부터 부진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2014년에는 약 1년 동안 무득점 행진을 이어갈 정도. 조의 아버지마저 "내 아들이 아드리아누처럼 될까봐 무섭다."라고 말했다. 이에 팀은 그의 판매를 모색, 이후 아라비안 걸프 리그의 알 샤밥을 거쳐 2016년 2월 중국 슈퍼 리그의 장쑤 쑤닝으로 이적했다.
2 국가대표
2006 FIFA 월드컵 이후 국가대표팀의 수장이 된 둥가에 의해 브라질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3차례 뛴 바 있다. 2007년 잉글랜드와의 친선경기에서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었지만 경기에 나오지는 못했고, 며칠 뒤 치러진 터키와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하였다. 이후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 국가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벨기에와의 3-4위전에서 2골을 득점해 팀의 3:0 승리를 이끌어 팀이 동메달을 따는데 공헌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최악의 모습을 보였다. 주전인 프레드가 1골에 그치며 프주영이라는 굴욕적인 호칭[3]을 얻자 자신도 질세라 부진하여- ↑ 본명은 주앙 아우베스 지 아시스 시우바(João Alves de Assis Silva)이다.
- ↑ 참고로 조를 데려오기 위해 지불한 1800만 파운드는 당시 구단 역사상 가장 많은 이적료였으며, 그 전까지는 파리 생제르맹 FC에서 니콜라 아넬카를 데려오면서 지급했던 1300만 파운드가 최고였다.
- ↑ 다만 프레드는 2013년까지 A매치 6경기 연속 공격포인트, 컨페더레이션스컵 베스트 11에 선정될 정도의 활약을 선보였다. 그러나 하필 2014년 초 부상, 컨디션이 회복되지 못한 상태에서 대회에 참가했다. 그리고 월드컵 종료 직후 컨디션을 회복해 브라질 리그 득점왕에 등극. 박주영보다는 이동국이라고 부르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