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몬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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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2014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경기에 나타난 몬태나. 여전히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스포츠 레전드로서 종목을 불문하고 대우를 받고 있다.

이름Joseph "Joe" Montana, Jr.
생년월일1956년 6월 11일
출신지펜실베이니아주 뉴이글
대학교노트르담 대학교
체격188cm, 93kg
포지션쿼터백
프로입단1979년 드래프트 3라운드 전체 82순위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지명
소속팀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1979~1992)
캔자스시티 치프스(1993~1994)
1989, 1990년 NFL 정규시즌 MVP
부머 어사이어슨
(신시내티 벵골스)
조 몬태나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서먼 토머스
(버펄로 빌스)
제16회 슈퍼볼(1982) MVP
짐 플런킷
(오클랜드 레이더스)
조 몬태나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존 리긴스
(워싱턴 레드스킨스)
제19회 슈퍼볼(1985) MVP
마커스 앨런
(로스앤젤레스 레이더스)
조 몬태나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리처드 덴트
(시카고 베어스)
제24회 슈퍼볼(1990) MVP
제리 라이스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조 몬태나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오티스 앤더슨
(뉴욕 자이언츠)
1990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맨
그렉 르몽드조 몬태나마이클 조던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영구결번
No.16


미식축구 선수. 포지션은 쿼터백.

대학풋볼 최고 명문 노트르담 대학교전설. 테리 브래드쇼를 잇는 슈퍼볼 4회 우승의 최다 우승 쿼터백이자 [1] 역사상 최고의 쿼터백으로 손꼽히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선수. 슈퍼볼 MVP도 3회 수상으로 최다이다.

같은 슈퍼볼 최다 우승 쿼터백이면서도 테리 브래드쇼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브래드쇼의 스틸러스는 스틸커튼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수비와 오펜시브라인맨의 비중이 보다 부각되는 이었던 반면, 조 몬태나의 포티나이너스는 웨스트 코스트 오펜스로 대표되는 쿼터백의 현란한 패싱 공격이 돋보이는 팀이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몬태나가 팀을 지휘하는 것. 무엇보다도 4번 우승하면서 슈퍼볼 MVP에 3번이나 뽑혔다는 사실이 포티나이너스의 우승이 조 몬태나의 지휘능력 덕분이었다는 것을 반증한다.[2]

이 때문에 수많은 미식축구 게임에서 NFL의 대표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1990년 세가가 발매한 메가드라이브의 미식축구게임이 바로 조 몬태나 풋볼이었다.[3]

별명은 쏘 쿨조 쿨(Joe Cool). 팀이 뒤지고 있을 때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컴백 드라이브를 이끌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기에 이 같은 별명이 붙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종료 51초를 남겨두고서 역전을 이끌어 낸 1981년 NFC 챔피언십 게임. 당시의 플레이는 아직도 "The Catch"라는 이름의 전설적인 플레이로 기억되고, 하이라이트 필름에서 두고두고 회자된다. 그리고 종료 39초를 남기고 역전 터치다운을 성공시킨 수퍼볼23(1989) / (7분 이후) 역시 마찬가지. 특히나 이 같은 대역전극을 끝마치고는 (조 쿨이라는 별명답게) 그저 환하게 웃으면서 두 팔을 번쩍 치켜드는 것이 셀레브레이션의 전부였다. 또한 이듬해인 1990년 수퍼볼24에서는 당시 새롭게 떠오르던 존 엘웨이덴버 브롱코스를 55-10으로 그야말로 관광 보내버렸다. 샌프란시스코의 55점은 수퍼볼 역대 최고 득점이고, 45점이라는 점수차 역시 역대 최고 점수차로 남아있다.

무엇보다도, 몬태나는 슈퍼볼 네 경기에서 인터셉션(상대 선수에게 공을 가로채이는 것)을 하나도 내지 않았다. 실로 퍼펙트한 운영. 이러한 전적 때문에 당시 상대팀 선수들은 "악몽이란, 간발의 차로 이기고 있고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때, 조 몬태나가 필드에 들어서는 순간"이라고 할 정도였다. 한 때 보스턴 지역 언론이 젊은 나이에 4년만에 3번 슈퍼볼 우승을 달성한 톰 브래디를 조 몬태나에게 비교하면서 "브래디야말로 몬태나를 제치고 역사상 최고의 쿼터백으로 남을 선수"라면서 설레발을 쳤지만 42회 슈퍼볼에서 일라이 매닝이 이끄는 뉴욕 자이언츠에게 역전패, 전승준으로 쳐박히면서 역시 거기까지 이르진 못했다고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래도 나중에 49회 슈퍼볼을 우승하면서 본인 어린 시절의 영웅 조 몬태나와 함께 슈퍼볼 4회 우승의 최다 우승 쿼터백과 슈퍼볼 MVP 3회의 최다 수상 타이 기록에는 도달했다.

아들이 두 명 있는데, 둘 다 현재 대학에서 쿼터백으로 뛰는 중. 장남 네이트 몬태나는 아버지의 모교인 노트르담에서 뛰다가 파사데나 시립대학교로 전학했다가 다시 1년간 노트르담으로 돌아왔다가 (...) FCS 레벨로 내려가 몬태나 그리즐리스의 주전 쿼터백으로 뛰었다. 몬태나의 쿼터백 몬태나 2012 시즌에 한번 더 전학해 디비전 II 대학인 웨스트버지니아 웨슬리언에서 드디어 주전을 따내고 커리어를 마쳤다. NFL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지 않았고 FA계약도 하지 않은 걸로 보아 프로 진출은 힘들 듯. 둘째인 닉 몬태나는 2011년 워싱턴 허스키스에서 레드셔츠 시즌을 포함해 2년을 후보 쿼터백으로 있었으나 주전경쟁에서 패배, 2년제 대학에서 한 시즌을 채우고 튤레인으로 전학했다.

미식축구 포지션 중에서는 그나마 피지컬이 덜 요구되는 쿼터백 포지션임을 감안해도 많이 마른 몸을 갖고 있다. 같이 샌프란시스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전설적인 와이드 리시버 제리 라이스는 몬태나는 종아리가 없는 남자다. 새다리다(...) 하며 놀려대기도.[4] 본인도 그걸 알고 있는지 카메라에 자기 다리를 들이대며 35년동안 운동한 결과가 이 정도다라며 농담을 하기도 했고.

2013년 2월 4일(한국시간)에 열린 슈퍼볼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vs 볼티모어 레이븐스의 경기에서는 섬유표백제 'Tide' 광고에 기적의 얼룩으로 등장하였다. 슈퍼볼 광고 최고의 평을 받고 있는 중. Stain is not sacred #
  1. 선배로는 테리 브래드쇼와 동률이며, 이후 톰 브래디가 그 뒤를 잇는다.
  2. 테리 브래드쇼도 슈퍼볼 MVP로 두번 뽑히긴 했다.
  3. 이후 세가는 NFL 2K시리즈를 통해 매든 NFL의 경쟁자로 미식축구 게임 시장에 다시 뛰어들었다.
  4. 웃긴건 그렇게 놀린 제리 라이스도 그다지 튼실한 몸은 아니었다는거. 프로필 상으로 둘의 체격 조건은 6-2에 200파운드로 똑같다(...) 말라깽이 듀오가 이끌었던 전설의 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