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잘나온 사진이고 | 미국에서는 |
뉴욕 자이언츠 No.10 | |
일라이 넬슨 매닝 (Elisha Nelson Manning) | |
생년월일 | 1981년 1월 3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
체격 | 193cm, 99kg |
포지션 | 쿼터백 |
출신대학 | 미시시피 대학교 |
프로입단 | 2004년 드래프트 1라운드 1위 샌디에이고 차저스[1] |
소속팀 | 뉴욕 자이언츠(2004~) |
제42회 슈퍼볼(2008) MVP | |||||
페이튼 매닝 (인디애나폴리스 콜츠) | → | 일라이 매닝 (뉴욕 자이언츠) | → | 산토니오 홈즈 (피츠버그 스틸러스) | |
제46회 슈퍼볼(2012) MVP | |||||
애런 로저스 (그린베이 패커스) | → | 일라이 매닝 (뉴욕 자이언츠) | → | 조 플라코 (볼티모어 레이븐스) |
1 개요
미식축구 선수. 포지션은 쿼터백. 소속팀은 뉴욕 자이언츠.
매닝 가문의 막내이자 페이튼 매닝의 동생. 별명은 자칭 엘리트 쿼터백[2]. NFL 쿼터백 중에서도 최고 엘리트였던 자기 형과 번번이 비교되었다.[3] 드래프트 나올 때부터 명예의 전당행 표를 예약해놓은 상태라는 평판을 들을 정도였던 형 페이튼에 비해 2004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지명되었음에도 데뷔 초기에는 형만큼 다른 동기를 압도하는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특정팀에 가기 싫다고 떼를 썼던 드래프트 징징 때문에 프로생활을 시작도 하기 전에 평생까임권의 대상이었다. 신인이었던 2004년 시즌 개막 직전에 인터뷰에서 일라이는 나도 형만큼은 할 수 있다고 말하자 사람들은 일제히 웃기지 마라!!! 라며 비웃었다(...) [4]
그러나 워낙 엄청난 형을 둬서 그렇지 그도 엄연히 벤 로슬리스버거, 필립 리버스같은 쿼터백들을 제치고 드래프트 전체 지명 1번을 받았던 특급 재능이었으며 프로 데뷔 후 슈퍼볼까지 2회나 차지하면서 확실히 엘리트로 분류될 자격은 충분한 쿼터백이다. 현 시점에서도 NFL 최고액 연봉선수 중 하나로, 계약을 갱신할 때마다 지금은 은퇴한 형과 경쟁이 붙곤 했었다(...). [5]
2 대학 풋볼
프로가 되기 전에는 아버지 아치 매닝의 모교 미시시피 대학교에 진학, 올 미스 레벨스팀에서 대학 무대을 밟았었다.[6] 시기는 다르지만 형과 같은 컨퍼런스에서 뛰었었던 것. 그리고 이때부터 형보다 못한 아우라는 말 비록 내셔널 챔피언쉽 우승은 못했지만 대학 시절 내내 팀을 우승 후보급으로 이끌며 여러 영웅적인 활약과 드라마틱한 스토리들을 만들어냈던 형에 비해 4학년이 될때까지 개인 활약은 훌륭하지만 팀은 컨퍼런스 약체 신세에서 구해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4학년 시즌 드디어 걸출한 활약과 함께 팀을 우승을 기대해볼만한 위치까지 이끌지만 하필 같은 컨퍼런스 디비전팀이자 당시 닉 세이반이 이끌던 LSU 타이거스와의 맞대결에서 패해 컨퍼런스 우승에 실패한다.[7] 이어진 플레이오프에서는 슈가 보울에 진출,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를 꺾으며 대학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게 된다.
3 NFL
3.1 드래프트 논란
비록 대학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기진 못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미 아버지나 형만한 재능을 충분히 보여줬던지라 일라이 역시 동년배 최고의 쿼터백 재능으로 평가받으며 2004년 NFL 드래프트에 참가, 유력한 전체 1순위 지명후보로 꼽히게 된다. 하지만 이때 희대의 NFL 드래프트 사건을 일으키게 되니, 당시 간신히 막장팀의 이미지를 벗어던지던[8] 드래프트 지명권 1순위[9] 샌디에이고 차저스에 입단하기 싫다는 이유로 징징을 시전한 것. 거기다 드래프트 거부와 트레이드 요구 과정에서 자기 아버지까지 동원하는 바람에 더 심하게 까였다.[10] 아버지인 아치 매닝은 "샌디에이고에는 드류 브리스라는 확실한 주전 쿼터백이 있어서 일라이의 재능을 썩히기만 할 게 뻔하니까, 당장 주전으로 뛸 수 있는 뉴욕 자이언츠 같은 팀을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샌디에이고는 단시간 안에 일라이를 주전으로 기용하겠다고 설득을 했으나 실은 더 높은 계약금을 줄 수 있는 뉴욕 자이언츠에 가고싶다는 말이었다.
결국 일라이 매닝은 지명후 전체 4순위인 필립 리버스와 트레이드 되어 뉴욕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그러고는 실질적으로 4순위니 4순위 계약금을 받아야 한다는 자이언츠 구단을 상대로 입단 경위야 어쨌든 지명 받은 건 전체 1순위이니 1순위 계약금을 받아야 한다[11]면서 징징을 시전, 입단 과정에서 또 까이면서 자이언츠 팬들 중에서 여전히 이 선수의 안티가 존재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 참고로 일라이의 아버지인 아치 매닝은 두 아들을 대학보낼때도 이런 식의 입김을 넣었다. 페이튼 매닝이 아버지 아치 매닝, 형 쿠퍼 매닝의 모교인 미시시피대학을 거절하고 테네시대학을 택했을때, 아치 매닝이 몇년만 기다려 얘보다 더 잘하는 동생은 미시시피로 보낼께라고 학교 관계자에게 말했던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3.2 첫 슈퍼볼 우승
우여곡절의 드래프트 사건끝에 뉴욕 자이언츠에 입단한 후, 어찌됐건 벤 로슬리스버거, 필립 리버스같은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전체 1위에 지명된 쿼터백이니만큼 그가 받는 기대는 컸다. 그러나 루키 시즌은 주전이 되고 싶다면서 그렇게 입단한 자이언츠에서도 커트 워너에 밀려 절반밖에 선발로 나서지도 못했으며 두번째 시즌은 본격적으로 주전이 되며 시즌 초반 드디어 활약하기 시작하나했더니 후반가서 폼이 떨어지며 와일드카드전에서 캐롤라이나 팬서스에게 셧아웃 패배를 당하는 졸전을 펼쳐버렸다. 두번째 시즌도 9주차까지는 팀을 6-2로 이끌며 선전하더니 후반가서는 팀의 연패행진의 주역이 되면서 8-8로 시즌을 마쳤다.
그렇게 형은 커녕 그가 받던 기대에도 못미치던 쿼터백이 되는가 싶었는데... 2007시즌 역시 10-6이란 성적 때문에 과연 자이언츠가 이 놈을 프랜차이즈 쿼터백으로 믿고 가야할지 의문까지 드는 와중에 턱걸이로 간신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그가 사고를 쳐버리게 되니, 와카전, 디비전 라운드, 컨퍼런스 챔피언쉽에서 정규 시즌 기록들을 웃도는 활약을 펼치며 팀을 승리로 이끌어버린 것. 그리고 이어진 슈퍼볼 XLII(Super Bowl XLII)에서 정규시즌 전승에다가 전승 우승 도전으로 기세등등한 톰 브래디, 랜디 모스의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상대로 경기 종료 50초를 남기고 역전에 성공해 뉴잉글랜드를 전승준으로 쳐박으며 자이언츠에 슈퍼볼을 가져오는 역사적인 승리까지 이뤄냈다. 당시의 경기는 슈퍼볼 역사에 길이남을 명승부이자 역전극으로, 그의 커리어의 반환점이자 평생동안 기억될 순간이었는데 특히 4쿼터에서 쌕을 당할 절제절명의 위기를 빠져나와서 던진 패스를 리시버 데이빗 타이리가 헬멧으로 꽉 고정시켜 받아낸 장면은 역대 슈퍼볼 최고의 장면 1위에 올랐다.[12] 이 경기로 자신은 슈퍼볼 MVP가 되며 형이 슈퍼볼 링을 얻은 바로 다음해에 슈퍼볼 링을 얻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으며 이 시즌의 전승준은 뉴잉글랜드 팬들이 8년이 지난 지금도 언급하기도 싫어할 정도의 흑역사이며 악몽 같은 최악의 슈퍼볼로 여겨질 정도로 임팩트가 컸다.
3.3 두번째 슈퍼볼 우승
이어진 2008 시즌은 드디어 슈퍼볼 우승 경험치를 먹고 제대로 프랜차이즈 쿼터백스러운 활약을 펼쳤다. 팀도 12-4라는 호성적으로 디비전 우승과 함께 디비전 라운드로 플레이오프 직행을 한다. 그런데 하필 자신의 천적 필라델피아 이글스를 만나면서 졸전을 펼쳐주면서 깔끔하게 패배를 당해버렸다. 비록 시즌을 또다시 일라이스럽게 끝내긴 했지만, 2009년에는 커리어 첫 4,000야드 패스 전진 기록을 세우면서 계속해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팀이 부상 문제에 시달리는 통에 8-8로 시즌을 마쳤으며, 2010년에도 4,000야드를 넘기며 팀을 이끌었지만 이번에도 천적 필라델피아 이글스에게 4쿼터에만 28점을 내주며 38-31로 역사적인 역전패를 당하며 지구 우승을 뺏기고 플레이오프 진출에도 실패했다. 비록 나쁘진 않은 세 시즌이었지만 슈퍼볼 우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꾸준한 기복 기복이 꾸준하다. 덕분에 엘리트라기엔 부족함이 있는 모습이었던 참에 2011 시즌을 맞게 된다.
2011 시즌에는 수비가 부상 등으로 전력이 크게 떨어지면서 좋은 성적을 내긴 어려울거란 평가를 받았다. 거기에 본인도 프리시즌 인터뷰에서 자신을 톰 브래디에 비교하며 대차게 까이기까지 했는데... 이 말은 이 시즌 슈퍼볼 역사 한정으로 현실이 된다. 정규 시즌 4,933야드로 5,000야드에 육박하는 엄청난 활약을 펼쳤지만 팀이 수비불안에 시달리며 5할을 간신히 넘는 성적(9승7패)에 그쳤다. 그러나 다른 지구팀들도 함께 죽을 쒀준 덕분에 NFC 동부 우승과 함께 플레이오프에 와일드카드 홈경기에 겨우 진출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턱걸이 플레이오프에서 또다시 전설을 써내려가게 되니... 애런 로저스, 알렉스 스미스 등 엘리트 쿼터백을 차례차례로 꺾고 결국 46회 수퍼볼 (Super Bowl XLVI)에서 톰 브래디의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 4년 만에 리턴매치를 벌이게 됐다. 그리고 경기 전 전문가 및 라스베가스 도박사들의 예상부터 경기 전개 내용, 결과까지 4년전의 판박이. 그리고 이 경기에서 다시 한번 톰 브래디를 슈퍼볼 준우승으로 처박으면서 명실상부한 톰 브래디 킬러로 떠올랐다. 거기에 두번째 슈퍼볼 MVP 수상은 덤. 이것이 진정한 데자뷰. 이 두번째 슈퍼볼 우승으로 그토록 놀림을 받아도 결국 엘리트라 자칭하고 다닐만한 업적을 세웠으며 드래프트 때 징징거려서 깎아먹은 평판도 거의 묻어버리게 됐다.[13]
3.4 그 이후
2012, 2013년에는 각각 프로볼에 선정되고 자이언츠 프랜차이즈 역대 최다 패싱 전진 선수가 되는 영예를 안았지만 또다시 슈퍼볼 반지 보유 쿼터백치곤 확실하게 부족했다. 거기다 2014년엔 오델 베컴 주니어의 등장과 함께 커리어 최다인 4,410야드, 2015시즌은 조금 더 많은 4,436야드는 형이 좀 잘했다 싶은 시즌엔 쉽게 찍어주던 숫자다.를 찍었지만 결국 4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로 계속 까이고 있다. 2년간 최약 오펜스 라인맨이라던가 러닝백과 일라이간 불협화음이 그칠날이 없었다는 핑계도 댈 수 있지만, 어차피 성적 안좋으면 까일수밖에 없는게 쿼터백 숙명. 계속 이런식으로 시간보내다 은퇴할 경우 2번 슈퍼볼 우승&MVP 따놓고도 명예의 전당에도 못들어가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올 정도이다.
특히 슈퍼볼 50에서 페이튼이 생애 두 번째 슈퍼볼 우승을, 그 것도 역사상 최초로 두 팀에서 우승을 한 쿼터백이 되면서 슈퍼볼 우승반지 갯수도 똑같아지면서 우승 외엔 정규시즌 성적이나 플옵 진출등에서 한참 밀리는 일라이가 형 따라잡으려면 더 분발해야될 상황이다. 아무리 슈퍼볼 우승 반지 2개가 있어도 매년 쉬지 않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슈퍼볼 우승에 도전하던 형에 비해 정규시즌 승률 5할도 못채우고 예선통과도 못한 시즌이 많은 건 분명히 팀빨 이전에 일라이가 스스로 넘어야할 문제이다.
4 까임의 연속
자이언츠의 주전 쿼터백으로 무려 슈퍼볼 MVP를 두번이나 해봤지만 미국에서의 취급은 형에 밀리는 콩라인. 형보다 기복이 심하고 경기가 안풀리면 그게 표정에서 확 보이는게 언제나 진중하고 무게감있는 형과 비교되어 아마도 죽을때까지 전국구 2인자 취급을 당할듯. 안습. 현역 쿼터백중 엘리트를 꼽으라면 보통 형, 톰 브래디, 드류 브리스, 애런 로저스 이 네명을 꼽는데 일라이는 엘리트 쿼터백 논쟁에서 언급도 안된다(...) 요즘은 러셀 윌슨, 캐퍼닉, 캠 뉴튼, 앤드류 럭같은 젊은 쿼터백들에게 밀리는것도 모자라 매체에 때라서 토니 로모, 마이클 빅같이 안습하거나 한물간 쿼터백들보다도 아래에 놓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로모도 빅도 같은 지구에 소속되어 있다. 그나저나 토니 로모보다도 못하면 비교상대는 알렉스 스미스 정도일텐데...마크 산체스나 팀 티보우하고 동급에 안 놓인 것만도 다행. [14]
형과 동생 사이에서 묘한 기류가 흐르면 이렇게 하기도 하고, 이러기도 한다. 실은 광고. 진짜로 사이가 나빠지면 장남인 쿠퍼가 중재한다고 한다. 쿠퍼는 촉망받는 리시버였지만 척추질환으로 풋볼을 관둬야만 했다. [15]
2013년 형님과 찍은 DirecTV 광고 Football On Your Phone. 일취월장한 일라이 매닝
형과의 비교 외에도 유독 디비전 라이벌 필라델피아 이글스와의 경기에선 약점을 보이는데, 2010년 시즌에서 졸전끝에 어처구니 없는 역전패를 당하고 나서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절대로 몰래카메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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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안풀릴때의 안습한 표정도 유명해서 엄청난 까임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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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볼 50에서 브롱코스가 우승을 확정짓는 터치다운을 성공시키자, 형의 두번째 슈퍼볼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있다." 사실은 매닝 일가가 전원 다 모여서 스위트 룸에서 경기를 관전하고 있었는데 페이튼의 두번째 우승이 거의 확정되자 온 가족이 기뻐하고 있는 데 혼자만 저런 표정으로 일관해서 "혹시 형이 자기하고 우승회수가 같아지면서 이제 우승반지 개수 가지고 형을 놀릴 수 없게 돼서 삐친게 아니냐"라는 식으로 안티들로부터 찌질하다면서 소소하게 까이기도 했다[16]. 에이, 설마요. 대신 이 양반은 우주급 실력의 쿼터백과 대결해서 2번이나 이겼잖아, 더구나 슈퍼볼 무패고..
5 기타
Saturday Night Live - Eli Manning - Little... by BigBlueBruiser
- ↑ 지명은, 차저스에서 받았으나 직후 전체 4픽이었던 필립 리버스와 트레이드 되면서 데뷔는 뉴욕 자이언츠에서 했다.
- ↑ 성적도 성적이지만 약간 비꼬는 의미도 들어있다.
- ↑ 실제로 지역 라디오와 언론들은 페이튼 매닝과 비교하면서 '형보다도 못한 아우'라고 노상 까댔다. "네 형은 이런데 넌 뭐니 대체??" 뭐, 이런 식으로...
- ↑ 2011년 시즌 시작전 뉴욕 지역 라디오 대담쇼에서 "당신은 최고의 쿼터백이라 생각하나요?"란 진행자의 질문에 "네, 그렇다고 믿어요."라고 대답했다가 여론과 안티들에게 "실성했나"란 까임을 당해야 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 ↑ 형이랑 슈퍼볼 우승 횟수도 같으나 (2대2), 슈퍼볼 우승을 톰 브래디한테 했다.
그런 선수가 씹히는 걸 보면 팬서비스 확실 - ↑ 형인 페이튼 매닝은 같은 컨퍼런스의 테네시에 진학했었다.
- ↑ LSU는 해당 시즌 내셔널 챔피언쉽을 차지했다.
- ↑ 1998년 드래프트 전체 2번으로 지명한 쿼터백 라이언 리프가 폭삭 망한 후유증이 오래 갔다. 그해 전체 1번 픽이 바로 페이튼 매닝.
- ↑ 이 시기의 차저스는 라이언 리프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어느 정도 팀을 재건하여 매년 플레이오프 진출 유력 후보로 꼽히고 있었는데 유독 그 해에만 성적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서 1순위 지명권을 차지했다.
- ↑ 한마디로 "네 나이가 몇인데 그 나이 먹고도 네 진로를 네가 스스로 결정 못하고 아버지 품 속에서 징징거리고 있냐?"라는 식. 비슷하게 드래프트에서 징징을 시전하고 욕을 먹었던 징징계의 선배 존 엘웨이는 적어도 아버지가 표면에 나서지는 않았다.
- ↑ NFL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신인은 자기보다 앞선 순위로 지명된 선수보다 계약금을 단돈 1센트도 더 받을 수 없게 되어있다. 즉 일라이를 전체 지명 1순위로 취급하면 받을 수 있는 계약금의 상한선은 무한대(...)이지만 4순위로 취급하면 3순위 지명자(애리조나 카디널스의 래리 피츠제럴드)의 계약금이 계약금의 상한선이 된다. 구단과 선수 입장에서는 일라이를 1순위로 간주하느냐 4순위로 간주하느냐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차이.
- ↑ 더구나 데이빗 타이리는 이전에는 스페셜 팀에서 허드렛일이나 도맡아 하던 거의 듣보잡격 선수였으니...
- ↑ 그럼에도 일부 안티들은 어김없이 시전되는 그의 인터셉션을 예로 들어 "아직까지 멀었다"고 도리질 중. 사실 지금까지의 커리어로 볼때는 형보다는 브렛 파브의 커리어를 따라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플레이 스타일이 형보다는 파브에 훨씬 가깝기도 하고.
파브만큼만 해줘도 욕 안 먹는다. 비록 파브가 말년에 현역연장 욕심 때문에 좀 모양 빠지게 은퇴를 했지만 비교할 걸 비교해야. - ↑ 사실상 미국내의 NFL 전문가들 까지도 엘리트급 쿼터백으로 뽑는 것에 주저하고 있다. 2번의 슈퍼볼우승을, 그것도 톰 브래디에게서 일궈냈으니 엘리트급으로 뽑는것도 당연한게 아니냐는 말도 나오지만 슈퍼볼 우승은 쿼터백 1명의 힘으로 일궈낼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제외로 친다. 여기에 기복이 너무나도 심하다는 문제는 그냥 넘길일이 아니다. 형보다 더 심하다! 꾸준한 경기력을 보여줘야 하는 NFL의 특성상 이는 굉장한 문제거리이고 여기에 약간 고집불통 격의 플레이를 보여주는 것 역시 취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 ↑ Cooper Manning- 고교 졸업때 루이지애나 주 올스타급인 All-State 팀의 Wide Receiver로 뽑히며 아버지 Archie Manning의 모교인 미시시피 대학교에 입학 예정이었다. 대학교 입학 전 여름방학때 손가락과 발가락에 통증을 느껴, 미네소타주의 Mayo Clinic에 가서 진찰을 하니 척추협착증(Spinal Stenosis)에 걸린 것으로 확인되며 풋볼 선수로써의 인생을 포기해야 했다.
- ↑ 사실 위의 짤방에서 보여지는 허당 이미지가 강렬해서 그렇지 이 분 역시 승부욕으로 치면 둘째가라면 섭섭해 하는지라. 또 실질적으로도 프로선수로 뛸 수 있는 기간도 얼마 남지않았다. 올해 2016-17 시즌이 자신의 프로생활 12년째가 되니..은퇴하기 전에 한번 더 우승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는 하다.
- ↑ 아버지 역할을 해줄 남자가 필요한 소년들에게 자원봉사자를 붙여주는 Big Brothers라는 자선단체의 패러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