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7년 이전까지 존재했던 동명의 야구 팀을 찾으신다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문서로 이동 바랍니다.[1]
National Football Conference | |||
◀ 동부지구 소속구단 | |||
뉴욕 자이언츠 (New York Giants) | 댈러스 카우보이스 (Dallas Cowboys) | ||
워싱턴 레드스킨스 (Washingtons Redskins) | 필라델피아 이글스 (Philadelphia Eagles) |
심볼 마크 | 워드 마크[2] |
뉴욕 자이언츠 | |
New York Giants | |
창단 | 1925년 |
NFL 가입 | 1925년[3] |
연고지 | 뉴욕 주 뉴욕[4] |
구단 연고지 변천 | 뉴욕(1925~) |
구단명 변천 | 뉴욕 자이언츠(1925~) |
홈 구장 | 폴로 그라운드(1925~1955) 양키 스타디움(1956~1973) 예일 볼(1973~1974) 셰이 스타디움(1975) 자이언츠 스타디움(1976~2009) 메트라이프 스타디움(2010~)[5] |
구단주 | 존 마라(John Mara) & 스티브 티시(Steve Tisch) |
사장 | 존 마라(John Mara) |
단장 | 제리 리스(Jerry Reese) |
감독 | 벤 맥아두(Ben McAdoo) |
별칭 | Big Blue, G-Men, Jints |
약칭 | NYG |
홈페이지 | |
우승: 8회 | |
NFL (4회) | 1927, 1934, 1938, 1956 |
슈퍼볼 우승 (4회) | XXI(1986), XXV(1990), XLII(2007), XLVI(2011) |
컨퍼런스 우승: 11회 | |
NFL Eastern (6회) | 1956, 1958, 1959, 1961, 1962, 1963 |
NFC (5회) | 1986, 1990, 2000, 2007, 2011 |
디비전 우승: 16회 | |
NFL East (8회) | 1933, 1934, 1935, 1938, 1939, 1941, 1944, 1946 |
NFC East (8회) | 1986, 1989, 1990, 1997, 2000, 2005, 2008, 2011 |
플레이오프 진출: 31회 | |
NFL | 1933, 1934, 1935, 1938, 1939, 1941, 1943, 1944, 1946, 1950, 1956, 1958, 1959, 1961, 1962, 1963, 1981, 1984, 1985, 1986, 1989, 1990, 1993, 1997, 2000, 2002, 2005, 2006, 2007, 2008, 2011 |
- 모두 뉴욕 자이언츠를 찬양하라!!- NEW YORK GIANTS !! - 마다가스카의 한 장면
목차
1 개요
NFL의 뉴욕 기반 미식축구 팀. NFC 동부 지구에 소속되어 있다. 미국 동북부 지역 팀 중 가장 오래된 팀으로, 1925년에 창단하였으며 지금까지 이름을 바꾸지 않고 '자이언츠'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애칭은 빅 블루(Big Blue).
상대적으로 뉴욕은 야구 팀 양키스와 농구 팀 닉스의 인기가 높아서 뉴욕 팀 치고는 인지도가 떨어지지만,[6] 우승 경력에서도 보듯이 우승 8번(슈퍼볼 4번)으로 NFL을 대표하는 명문 팀이다. 더불어 슈퍼볼을 포함한 NFL 결승전에 가장 많이 진출한 팀으로(19회), 그린베이 패커스와 함께 리그 초창기부터 가장 꾸준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프랜차이즈이다. 1970년대 암흑기 이후 댈러스 카우보이스와 워싱턴 레드스킨스에 인기 면에서 약간 밀리긴 하지만 2000년대 이후 팀 성적은 우위를 계속 점하고 있다.
2004년 페이튼 매닝의 동생 일라이 매닝이 입단하고,[7] 헤드 코치로 톰 커플린이 들어온 이후 5번 플레이 오프에 진출해 2번 슈퍼볼 우승을 기록하며 플레이 오프에 강한 팀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2번 모두 정규 시즌 절대 강자로 슈퍼볼 우승 가능성이 높았던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치열한 접전 끝에 꺾었다. 2007-08시즌, 정규시즌 16전 16승 0패를 기록한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의 슈퍼볼 맞대결에서 종료 1분전, 극적인 역전에 성공하며 슈퍼볼을 차지한 것은 NFL 역사상 최고의 업셋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빌 벨리칙, 톰 브래디 킬러 이미지가 강해지고 있는 중이다.
2 역사
2.1 초기
오늘날 NFL이 천문학적인 성공을 거둔 가운데, 뉴욕 자이언츠는 NFL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프랜차이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1920년에 출범한 NFL이 10주년을 맞은 1930년에 미국에선 여전히 대학 풋볼이 대세였다. 인기가 월등히 많았던 것은 물론이고 역설적이게도 실력 또한 대학 풋볼이 더 뛰어나다고 믿는 사람들도 다수 있었다. 이때 뉴욕 자이언츠는 이런 인식을 깨부수는 한편 1929년 대공황으로 인해 불어난 뉴욕 실업자들을 돕기 위해 이벤트 하나를 계획하게 된다. 그것은 당시 풋볼 명문으로 군림했던 노트르담 대학교와 폴로 그라운드에서 친선 경기를 가져 기금을 마련하는 것이었는데, 이 경기에서 뉴욕 자이언츠가 단 1실점도 하지 않고 압승을 거두면서 프로 풋볼이 대학 풋볼보다 실력적으로 우수하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NFL 인기의 기반이 다져졌다.
- 1935년에 팀의 스타였던 레이 플래허티(Ray Flaherty)가 은퇴하자 자이언츠는 그가 썼던 1번을 앞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했는데, 이는 미국 스포츠 사상 최초의 유니폼 영구결번이다.
- 1948년, 대학 졸업 후 팀을 찾지 못하던 엠렌 터넬(Emlen Tunnel)이라는 선수를 받아들여 NFL 최초로 흑인 선수를 배출한 팀이 되었다. 그리고 터넬은 커리어의 대부분을 자이언츠에서 보낸 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1958년 NFL 결승전에서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와 'The Greatest Game Ever Played(사상 최고의 경기)'라고 불리는 명경기를 연출하였다. 경기 결과는 자이언츠의 석패였지만, 이 경기로 NFL의 흥행은 탄력을 받았고 자이언츠는 또다시 리그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 가장 중요한 점으로, NFL의 큰 특징 중 하나인 '수익 공유(revenue sharing)'에 동의했다. 현재 NFL은 중계권 계약과 관련한 모든 수익, 구장 입장 수익의 일부와 기타 수익 일체를 리그 관리하에 균등 분배하거나, 수익이 떨어지는 팀에겐 기금을 지급하는 등 매우 강력한 수익 공유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당연하게도 이런 구조를 위해선 구단들의 동의가 필수적이었는데, 그 중 빅 마켓의 이점과 1950~60년대에 이룬 성공을 통해 압도적인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었던 자이언츠의 동의 여부가 특히 중요했다. 이때 자이언츠의 오너 웰링턴 마라(Wellington Mara)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찬성 의사를 표하였고 이는 NFL의 성공에 날개를 단 결정으로 평가된다.
- 1978년에 조지 영(George Young)을 단장으로 임명하면서 NFL 최초로 단장을 도입한 팀이 되었다.
- 이렇게 빛나는 역사를 가진 명문팀이었지만 1967년 슈퍼볼I이 처음으로 거행될 즈음해서는 거짓말 같이 디비젼 꼴지 단골팀이 되었다. 다만 이 때도 빅마켓 팀의 큰 손질은 변하지 않아서 프랜 타켄톤, 레리 크송카 등 각 팀의 슈퍼스타들을 비싼 몸값을 들여 모셔 왔지만 몇 경기 못 뛰고 부상 당해서 다시 꼴지로 전락하는 등의 전형적인 빅마켓 팀의 삽질을 벌이고 있었다. 또한 팀의 구단주였던 웰링턴 마라와 그 조카인 팀 마라가 팀의 소유권을 두고 장기간의 소송에 걸려 있는 등 팀 내외로 뒤숭숭한 상태로 바닥을 기고 있던 중에 앞서의 조지 영을 단장으로 영입하면서 팀은 큰 전환기를 맞게 된다.
2.2 빌 퍼셀스 시대
파셀스 시대 최고의 스타이자 자이언츠의 영원한 레전드인 로렌스 테일러(56번)과 그의 반대쪽 OLB 콤비였던 칼 뱅크스(58번)에 무등태워진 빌 파셀스
뉴욕 자이언츠는 1979년, 여러 대학을 거치며 라인배커코치를 맡던 38세의 젊은 코치였던 빌 파셀스를 수비코치에 올린다. 레이 퍼킨스라는 평범한 헤드코치 밑에서 수비를 전담하던 빌 파셀스는 점차 자신이 키운 수비라인맨들의 활약을 바탕으로 입지를 넓히면서 결국 4년뒤인 1983년 뉴욕 자이언츠의 헤드코치직을 차지한다. 코치시절 그의 별명은 Big Tuna. 그야말로 선이 굵고 호탕한 마초적인 풋볼 전략으로 팀을 휘어잡는데 성공한다.
지금이야 재평가되고 있지만 1979년 드래프트에서는 PAC-10의 패싱 기록을 경신한 워싱턴 주립대의 잭 톰슨[8] 외에는 마땅한 쿼터백 자원이 없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쿼터백 뎁스가 약한 드래프트였다. 쿼터백의 보강이 급하다고 생각한 조지 영 단장은 자이언츠가 가진 1라운드 7번픽으로 모어헤드 주립대라는 듣도 보도 못한 대학에서 금발의 쿼터백을 뽑게 된다. 당연히 뉴욕 팬들은 난리가 났고 성난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게 되는데... 그 쿼터백이 바로 필 심스(現 CBS NFL 해설자) 였고 일라이 매닝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의 팀의 프랜차이즈 패싱 기록을 모두 경신하는 그야말로 신의 한수가 되었다. [9]
이 당시 빌 퍼셀스의 코칭 철학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Power Football is Winning (tool).. 공격에서는 파워백을 이용하여 러쉬 위주의 공격을 통해 공의 소유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고 대신 수비에서는 수비라인과 라인배커진에서 상대편의 러싱을 최대한 봉쇄하는 전략을 일관적으로 활용하게 된다. 당시 자이언츠의 수비진에는 시야가 넓고 민첩한 인사이드 라인배커인, 이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해리 칼슨이라는 우수한 인사이드 라인배커가 있었지만 또 한명의 프로볼 아웃사이드 라인배커인 브래드 반 펠트는 점점 나이가 들고 있던 상황. 이에 드래프트에서 러닝백과 수비진의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 중심에는 1981년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지명했던 뉴욕 자이언츠 역사상 최고의 스타이자, NFL 역사상 최고의 패스러셔로 꼽히는 L.T. 로렌스 테일러가 있었다. 로렌스 테일러는 신인임에도 전경기를 풀타임 선발 출장하며 무시무시한 운동능력[10]과 테크닉을 바탕으로 상대 공격라인맨과 쿼터백을 그야말로 압살하는 플레이를 보여주었고 이에 빌 파셀스는 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미식축구 수비의 주류라고 보기 어려웠던 3-4 디펜스를 로렌스 테일러 중심으로 재편하기로 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시기까지만 해도 수비라인맨의 닥돌은 이시기까지 미식축구 공격의 중심이었던 공을 들고 뛰는 러닝백의 저지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2년전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가 선보인 웨스트코스트 오펜스의 시작과 더불어 선수들의 기술 발전과 환경 변화로 인해 점차 쿼터백의 패싱 전술이 늘어나면서 수비 전략 역시 러닝백보다 먼저 공을 잡고 패스를 던지는 쿼터백을 직접 때려잡는걸 목표로 하자라는 수비 발상의 전환이 있었다. 이것이 바로 패스러쉬의 개념. 빌 파셀스는 로렌스 테일러라는 리그 최고의 운동능력을 가진 수비수에게 패스러쉬와 프리롤을 주어 테일러가 상대 공격태클과 1대1 맞대결을 걸어 실력으로 제끼고 쿼터백을 직접 제압하는 수비를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했다. 현대 미식축구에서 매 스냅마다 리플레이로 등장하는 수비팀 최고의 패스러셔 vs 공격팀 주전 레프트 태클의 몸싸움 맞대결 구도를 처음으로 만들었던게 바로 빌 파셀스이다. 그리고 테일러는 파셀스의 기대에 부응하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매경기 상대 레프트 태클을 농락하고 상대 쿼터백을 박살내는 대활약을 보였고, 이런 하이라이트 장면을 만드는 것에 주목해 1982년 NFL은 수비수가 쿼터백이 패스를 던지기 전 태클하는 기록을 특별히 쌕으로 분류하여 공식 기록화하기 시작했다.[11]
빌 파셀스는 이러한 수비의 완성을 위해 수비 태클 짐 버트에 1983년 드래프트에서는 로렌스 테일러의 영혼의 단짝이라고도 할 수 있을 수비 엔드 레오너드 마셜을, 1984년 드래프트에서는 로렌스 테일러의 반대편에서 수비진을 압박해 줄 수 있는 다재다능한 아웃사이드 라인배커인 칼 뱅크스와 파워 있는 인사이드 라인배커인 게리 리즌스를 지명하여, 일명 Big Blue Wrecking Crew라는 막강한 슈퍼스타군단으로 완성해 상대 공격라인맨과 쿼터백을 무자비하게 철거하며(...) 강력한 수비로 맹위를 떨쳤다. 그리고 그 중심의 로렌스 테일러는 NFL이 쌕 기록을 정식으로 기록하기 시작한 1982년 이후 1986년 NFL 최초이자, 라인배커로써 NFL 최다 쌕 기록인 20.5 쌕을 기록하고,[12] 수비수로는 두번째로 AP MVP의 영예를 따기도 한다[13].
공격진에서도 퍼셀스의 전략대로 팀을 다시 만들기 위해 거의 4년간 매해 3명씩(!)의 러닝백을 드래프트로 선발했지만 정작 그 성과는 1982년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에 지명된 조 모리스가 프로볼 급으로 성장하면서야 나타났다. 하지만 다소 작은 체격의 스피드를 무기로 한 모리스는 당시의 상대적으로 약한 공격라인으로는 퍼셀스가 원하는 '세번의 러닝으로 10야드 획득'을 일관되게 해주기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해서 블로킹에 능한 풀백 모리스 칼쏜을 붙여 주는 것도 모자라 1986년에는 당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올프로 파워백 오티스 앤더슨을 획득한다.
수비진과 러닝백에 총력을 기울인 탓인지 부족한 리시버진을 꾸역꾸역 필 심스가 이끌어 나가는 중에서 그나마 No.1 타겟이 되어 준 것은 1985년 드래프트에서 4라운드에 지명된 타이트엔드 마크 바바로였다. 천재라고 불리울 정도로 높은 전술 이해도와 캐칭 능력에 비해 잔부상이 너무 잦았던 그야말로 유리몸이었던 것이 단점이었던 탓에 이번에는 1986년과 1987년에는 드래프트에서 세 명씩 와이드리시버를 지명한다[14]. 그 와중에도 수비진의 보강도 게을리하지 않아 수비라인 에릭 돌시[15], 에락 하워드, 미들 라인배커 페퍼 존슨[16], 코너백 마크 콜린스[17]를 보강하여 전력을 더 튼튼히 하게 된다.
결국 1986년에는 슈퍼볼 XXI에서 존 엘웨이가 이끄는 덴버 브롱코스와 슈퍼볼을 놓고 일전을 벌이게 되었고 내내 팽팽하게 진행되던 경기는 막강한 자이언츠의 수비진에 의한 피지컬한 파상 공세에 엘웨이와 공격진, 공격 라인들의 체력이 떨어지면서 3쿼터부터 급속히 승부의 추가 기울면서 39-20으로 승리, 30년만에 뉴욕에 챔피언쉽을 가져오게 되었다.
파일:Kkah7Uf.jpg [18]
이듬해 조 모리스의 부상과 리시버진들의 줄부상, 주전 태클이던 칼 넬슨의 호지킨씨 병으로 인한 결장 등으로 이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지만 탄탄한 수비로 곧 다시 우승전력을 회복할 수 있었던 자이언츠에 다시 대권 도전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걸프 전쟁이 한창이던 1991년의 슈퍼볼XXV 이다. 시즌 시작전 주전 코너백이던 페리 윌리엄스는 코너백으로는 스피드가 함량 미달의 판정을 받아 세이프티로 이동, 코너백의 자리가 비어버리는 일이 벌어졌고 이를 메꾸기 위해 댈러스 카우보이스에서 방출된 에버슨 월스를 긴급수혈하는 등 결코 안정적인 스타트는 끊지 못했던 상황이지만 은퇴한 해리 칼슨의 빈 자리는 페퍼 존슨이 잘 막아주었고 세이프티 마이런 가이튼 등이 더 보강된 수비진은 리그 최고의 수비팀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정작 큰 일은 시즌 14전 버펄로 빌스와의 경기에서 주전 쿼터백인 필 심스의 발이 부러지는 사고였지만 백업이었던 제프 호스테틀러가 이후 NFL 역사상 손꼽히는 명경기로 'End of Dynasty Game'으로 불리우는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와의 NFL 챔피언쉽 게임의 혈투를 승리로 이끌면서 팀은 다시 한번 슈퍼볼에 도전하게 된다.
슈퍼볼XXV의 상대는 당시 껌을 한쪽 입으로만 씹는 모습이 특징적이었던 최고령 마브 레비 감독과 공격 코치 테드 마치브로다가 도입한 노허들 오펜스로 쉴새 없이 몰아치는 공격을 특기로 하는 버펄로 빌스. 스포츠 신문이 아닌 국내 신문에서도 창과 방패의 대결로 이례적으로 수퍼볼 기사가 나올 정도로 정말 극단적으로 반대인 팀 컬러를 가진 두 팀의 맞대결이 성사되어 화제가 되었다. 쿼터백 짐 켈리, 러닝맥 서먼 토마스, 리시버 안드레 리드, 제임스 롭턴, 타이트 엔드 키스 맥켈러, 공격 라인으로는 센터 켄트 헐, 태클 윌 울포드 등 그야말로 스타 군단. 수비진으로도 수비엔드 브루스 스미스, 라인배커 코넬리어스 베넷, 쉐인 콘란, 코너백 네이트 오돔스 등도 모자라 킥 블럭과 펀트 블럭의 스페셜리스트인 스티브 태이스커, 그리고 시즌 초전에 강풍으로 단 한개의 필드골만을 미스하고는 모두 성공시켰던 키커 스콧 노우드까지 그야말로 약점이 없는 팀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전문가들은 주전 쿼터백이 부상중인 자이언츠보다 폭설이었음에도 AFC 챔피언쉽에서 로스앤젤레스 레이더스를 무려 51-3으로 대파하여 기세가 오를대로 오른 버펄로 빌스의 우세를 조심스럽게 점쳤지만... 퍼셀스는 그야말로 육탄수비를 통해 끈적끈적한 저득점 경기로 경기를 이끌고 간다. 경기내내 진흙탕 중원싸움을 벌이던 경기는 4쿼터에 키커 맷 바의 필드골로 20-19로 자이언츠가 리드하게 되었고 빌스는 마지막 공격을 통해 종료 8초전 역전 필드골 찬스가 맞았으나 믿었던 키커 스콧 노우드가 실축, 자이언츠는 두번째 슈퍼볼을 거머쥐게 된다.[19]
파일:F6FCPYZ.jpg
빌스 팬들에게는 이 짤은 혐짤이 되고 말았다.
빌 파셀스는 1990년을 마지막으로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로 이적하며 자이언츠 시대를 마감하였지만, 패트리어츠를 슈퍼볼 진출시키는 등 특유의 파워 러싱 오펜스+공격적인 3-4디펜스의 활용이라는 트렌드를 정립해 이후에도 승승장구하였고, 파셀스 밑에서 보조 코치로 있던 빌 벨리칙, 이후 자이언츠를 또다시 슈퍼볼 우승팀으로 끌어올린 톰 커플린, 댈러스 시절 QB코치로 많은 것을 배운 션 페이튼 뉴올리언스 세인츠 헤드코치등 여러 제자들을 성공한 NFL 지도자로 만들어내고 NFL 헤드코치계에 이름을 남긴다.
여담으로 이 시기의 자이언츠의 헬멧은 최악의 헬멧 디자인 랭킹에서 3위 밖으로 떨어질 정도가 없을 정도로 평이 안좋았다.
파일:ApK7lpa.jpg
심지어는 정말 아~~~무 무늬 없이 그림 없이 오렌지색만 덩그러니 칠해진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헬멧보다도 최악으로 뽑힌 해도 있을 정도. 2000년에서야 이전의 n과 y 를 의미하는 로고로 바꾸고 나서야 최악의 헬멧을 가진 팀이라는 오명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20].
3 홈 구장
메트라이프 스타디움 항목 참고
4 라이벌
1984년부터 홈 구장을 공유했던 뉴욕 제츠와 라이벌리가 있지만, 서로 컨퍼런스가 달라서 뉴욕 더비는 이름값만큼 인기 있는 대진은 아니다. 제츠가 상대적으로 인기나 성적 면에서 떨어지는 편이라 티켓 가격도 자이언츠가 제츠보다 높게 잡혀 있다. 하지만 양 팀 간 라이벌 의식은 매우 치열한 편.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슈퍼볼을 2번 차지한 자이언츠에 비해 제츠는...[21]
5 이야깃거리
뉴욕 양키스나 뉴욕 닉스 정도는 아니지만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미국드라마나 영화에서 가끔씩 등장인물이 응원하는 팀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뉴욕 제츠 역시 동일) 국내에서는 NFL이 마이너라 그런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랑 헷갈리는 사람도 많은 듯.
6 시즌별 정리(2013~)
6.1 2013년 시즌
망했어요.
뭐 하나 멀쩡한 게 없다. 리그 최악의 공격 라인맨 진영 덕에 일라이 매닝이 패스를 제대로 던져 보기 전에 태클을 얻어맞고 러닝 백들은 전진은 커녕 후진만 반복하고 리시버진은 나사 몇개는 빠진 듯 제멋대로 뛰어다니면서 일라이의 인터셉트를 늘렸다. 수비진까지 무기력증에 빠진 가운데 NFC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나마 개막 6연패 하는 동안 15개의 인터셉트를 범한 일라이가 이후 이글스전과 바이킹스전에서 인터셉트를 던지지 않으며 연승을 이끌었다는 게 위안이다. 하지만 두 팀 모두 리그 최하위권 팀
그리고 결국 플레이 오프 진출이 좌절되고 최종적으로 7승 9패를 기록. 2013 시즌에도 슈퍼볼은 개최지 출신 팀이 나가지 못하는 경기가 되었다. 슈퍼볼 XLVIII는 뉴저지의 메트라이프 구장에서 열리며 역사상 최초로 추운 지역에서 열리는 대회가 되었다.[22] 문제는 이 지역은 개최일인 2월달에는 영하의 날씨가 기본인 데다가 눈이 내리는 경우도 있기에 대회를 열기가 심하게 골룸이라는 점. 이미 일기 예보에 영하의 온도에 눈까지 내릴 것이라는 예보도 있어 차질이 있을까 우려된다. 게다가 작년 시즌 대회에 있었던 정전 사태가 생생하기에 더욱 더 신경쓰일 수밖에 없다.
6.2 2014년 시즌
작년보다 나은 수비진, 작년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공격진.
오펜시브 코디네이터였던 케빈 길브라이드가 은퇴를 선언함에 따라 그린베이 패커스에서 쿼터백 전담 코치를 지냈던 벤 맥카두를 영입해 웨스트코스트 오펜스의 완벽한 토착화를 시도했으나 별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특히나 No-huddle 오펜스에 일라이 매닝이 적응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 절망적이긴 하나, 다음 시즌은 어떨지.
초반 2연패 후 휴스턴, 워싱턴, 애틀랜타를 연파하며 부활을 노렸으나 지구 라이벌 이글스, 카우보이스에 연패하고 콜츠에 또 져서 9주차까지 3승 5패로 3위로 처졌다.
수비진 쪽은 팀의 에이스인 JPP 제이슨 피에르 폴이 부상에서 돌아와 이름값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주었으며, JPP가 이끄는 수비 라인맨 파트너들도 제 몫을 해주었지만 나머지 멤버들이 좋지 못했다. 공격에 있어서는 2013년처럼 완전히 엉망진창인 케미스트리를 보이진 않았지만 정작 일라이가 제대로 못 던졌다. 설상가상으로 에이스 빅터 크루즈도 시즌 아웃 부상을 당해 플레이오프 진출은 결국 좌절됐다.
하지만 올시즌 큰 수확도 있었는데...
신인 1라운드로 지명한 와이드 리시버 오델 베컴 주니어가 댈러스 카우보이스 전에서 보여준 'The catch of the year'.
데뷔 첫해 터치다운 12개를 잡아내며 1305야드 리시빙을 기록한 오델 베컴 주니어는, 기록도 기록이지만 위 장면에서 보여준 미칠 듯한 원 핸드 캐치로 하이라이트 필름을 쏟아내며 차세대 넘버원 와이드 리시버로 벌써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아울러 일라이 매닝이 2015년 시즌에는 11년차가 되는지라 노쇠화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당장 후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어서 여기에 대한 대비책도 필요할 듯하다.
6.3 2015년 시즌
망한...줄 알았는데 기회가 찾아왔네?
시즌초 팀의 슈퍼스타 수비수 JPP 제이슨 피에르 폴이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오른손 손가락을 절단당하질 않나, 팀의 수비수 타일러 새쉬가 원인불명으로 세상을 떠나는 등 팀 분위기가 개판 5분전이었다. 거기다 팀의 주축 리시버 빅터 크루즈의 결장이 장기화되며 여전히 오펜스는 막장이었다[23].
그런데, 강력한 지구우승팀 후보였던 댈러스 카우보이스가 토니 로모를 부상으로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고, 필라델피아 이글스 역시 샘 브래포드가 제대로 팀을 이끌지 못하고 망가지면서 9주차 종료후 5승 4패를 거두며 은근슬쩍 지구 1위로 등극. 플레이오프 진출이 매우 유력해지는줄 알았으나...12주차 워싱턴 레드스킨스한테 패하면서 다시 5승 6패로 내려앉았다. 그러나 여전히 지구 1위 레드스킨스와 동률이므로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이 제법 남아있다[24]. 전체적으로 4쿼터 후반에 어이없이 역전당하는 경기가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역시 DTD다운 모습을 보이면서 16주차 원정경기인 미네소타 바이킹스전을 19대 47로 대패함으로서 사실상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었다. 그 이전 주 경기였던 전승모드의 캐롤라이나 팬서스와의 15주차 경기에서 35대 38로 석패하긴 했는데 오델 베컴 주니어가 젊은 혈기를 제어하지 못해 막장 파울을 저질러 1경기 출전금지크리를 먹고 말았었다.
문제는 헤드 코치 탐 코플린의 지도력이 한계상황에 이르렀다는 점이 분명해졌고 팀을 쇄신해야 하는 분기점이라는 것이 벌써부터 지적되어 오던 바였으나. 구단측이 너무나 과소평가를 했다는 점이다. 2011년 시즌 수퍼볼 우승이후 내리 4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루지 못했고 이미 팀의 기둥역할을 해오던 주전급 선수들이 은퇴로 떠났거나 자유계약으로 팀을 떠난 상황에서 구단은 코플린 코치의 지도력을 믿는다는 식으로 일관했고 이는 성적 그대로 표현되었다. 더구나 이전까지는 시즌 초반에는 승승장구하다가 종반에 이르러 막장을 달리는 루트와는 달리 올 시즌은 아예 4쿼터부터 무너지는 노답경기를 시전하는 바람에 팬들이 어이없어 하는 경우가 일쑤였다. 일부에서는 코플린 코치의 선수단 장악력이 약해졌다고 보는 시각도 있어서 교체수순을 밟아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
게다가 주전 쿼터백인 일라이 매닝이 올 시즌으로 11번째 시즌을 맞았고 벌써 노장이 된 상황이라 이에 대한 대비책 또한 절실한 형편이다. 아직까지는 노쇠화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지만 형이 이미 쇠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일라이 역시 조만간 쇠락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아직까지 큰 부상을 당한 적이 없는지라 2016년 역시 장기집권(?)을 할 전망이지만 형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란 보장 역시 할 수 없기에 여기에 대한 대비 또한 시작해야 함은 물론이다.
2016년 1월 4일부터 톰 코플린이 감독직을 사임했다. 그리고 공격 코디네이터였던 벤 맥아두를 헤드 코치로 승격시켰다.
6.4 영구결번
뉴욕 자이언츠의 영구결번 | |||||
1 | 4 | 7 | 11 | 14 | 14 |
Ray Flaherty | Tuffy Leemans | Mel Hein | Phil Simms | Ward Cuff | Y.A.Tittle |
16 | 32 | 40 | 42 | 50 | 56 |
Frank Gifford | Al Blozis | Joe Morrison | Charlie Conerly | Ken Strong | Lawrence Taylor |
- ↑ 그런 이유로 미국 언론사들은 물론, 해당 미식축구팀도 혼선을 피하기 위해 'New York Football Giants'라고 구별해 부르는게 일반적이다. 홈구장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도 위처럼 명기되어있다.
- ↑ 과거에는 헬멧에 부착된 심볼 마크로도 썼다.
- ↑ NFC 동부 지구에 완전히 자리잡은 것은 1970년.
- ↑ 홈 구장 소재지는 뉴저지 주 이스트 러더퍼드.
- ↑ 뉴욕 제츠와 공유.
- ↑ 다만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 팀 중 하나인 양키스를 제외하면, 다른 팀들은 성적에 따라 기복이 있는 편이다.
- ↑ 원래 샌디에이고 차저스에 종합 1차 지명되었다가 일라이 매닝이 거부하고 뉴욕 자이언츠로 입단하길 원해서 자이언츠가 쿼터백 필립 리버스를 지명하고 둘을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입단시켰다.
- ↑ 여담으로 NFL 드래프트 역사상 최고의 버스트(Bust)에 10위에 올라있을 정도로 형편없는 성적을 내다가 사라졌다. 참고로 이 랭킹의 #1위는 같은 워싱턴 주립대(!)의 라이언 리프(...)
- ↑ 여담이지만 당시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를 새로 맡은 빌 월쉬 감독 역시 필 심스를 주목하고 있었는데 예상외로 자이언츠에서 1라운드 지명픽을 이용해서 뽑아가버리자 2라운드에서 빼빼 마르고 키가 작은 쿼터백을 대신 뽑게 된다. 그가 바로...
- ↑ 체구도 체구거니와 압도적인 스피드로 인해 상대 공격 라인맨들이 막느라 애를 먹었다. 그래서 상대 쿼터백이 치핑블록(러닝백이나 풀백이 보디체크같은 형식으로 상대 패스러셔의 타이밍을 흐트려놓는 기술)을 요구할 정도였지만 그것마저도 뚫었을 정도
- ↑ 쌕이라는 개념의 고안은 1961년 NFL에 데뷔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역사상 최고의 수비태클중 1명이자 패스러쉬 개념의 시작을 제시한 디콘 존스(로스앤젤레스 램스)가 최초였다,.
- ↑ 단일시즌 최다 쌕 기록은 2001년 자이언츠의 후배 마이클 스트라한이 22.5쌕으로 기록을 경신했으며, 라인배커로써 최대 쌕 기록은 2014년 캔자스시티 치프스의 저스틴 휴스턴이 22썍으로 기록을 경신했다.
- ↑ 수비수로는 역대급의 수비 라인의 리더였던 'Purple People Eaters'의 리더인 앨런 페이지가 1971년 최초로 이미 수상한 바 있다. 다만, 로렌스 테일러는 그해 AP는 물론 PFWA,스포팅뉴스 MVP 3관왕으로 더 압도적인 포스를 선보였다는 점.
- ↑ 사실 이런 물량 작전 끝에도 큰 소득은 없었다. 스테이시 로빈슨이 주전이 되어 주기는 했지만 그다지 1급의 리시버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이런 물량 작전은 슈퍼볼 XXI 우승 후에야 루트를 타는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마크 잉그램을 지명하게 되면서 그나마 한명 성공하기는 했지만... 뭔가 모자라면 우르르 뽑고 뭔가 모자라면 우르르 뽑아서 남으면 장땡인 전형적인 땜빵 드래프트였지만 당시 뉴욕 제츠가 워낙 드래프트의 삽질을 거듭하고 있던 탓에 상대적으로 언론에서의 비난은 적은 편이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기고 있으면 장땡이다 - ↑ 사실 별다를게 없는 커리어의 소유자이기는 하지만 별도로 이름을 기록한 이유는 다름아닌 1991년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와의 NFC 챔피언쉽 경기에서 조 몬태나의 커리어를 끝내버릴 수도 있었던 하드태클로 1년반 동안 조 몬태나가 경기를 뛸 수 없게 만든 주범이었기 때문
한마디로 포티나이너스 팬들에게는 천하의 개쌍놈여담으로 돌시는 몬태나의 노트르담 대학 후배이다(...) - ↑ 본명은 토마스 존슨. 이름이 된 페퍼는 어린시절 씨리얼에 후추를 뿌려먹던 특이한 식성을 보고 그의 할머니가 지어주셨다고 한다. 빌 벨리칙의 코칭 스태프들 중 한명으로 활동했다.
- ↑ 출신 대학교가 칼스테이트 풀러튼이다. 야구로 유명한 그 대학이다. 현재는 미식축구부는 폐부된 상태.
- ↑ 우승 후 게토레이가 담긴 통을 코치에게 쏟아 붓는 전통도 이때 처음으로 생겨났다. 이 '게토레이 덩킹'는 해리 칼슨의 아이디어였다고(...)
- ↑ 당시 TV중계에서의 캐스터 알 마이클스가 "No Good! ....Wide Right!" 라고 했던 멘트는 위키백과에 단일 항목으로 올라올 정도로 유명하다. 그리고 결정적인 그 필드골 미스 이후로 버펄로 빌스와 그 키커의 운명은...
- ↑ 파일:K5vsNCO.jpg 역대 뉴욕 자이언츠 헬멧의 변천사
- ↑ 이는 자이언츠가 쿼터백을 무력화시키는 전략의 핵심인 수비 라인의 증강을 최우선으로 둔 반면, 제츠는 와이드 리시버를 무력화하는 디펜시브 백들의 증강을 우선한 탓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공수 양방향에 알맞는 선수들을 뽑기로 유명한 자이언츠 구단 관계자들에 비해 제츠는 아니면 말고 식으로 선수 선발 관련 병크를 자주 저질러서...
- ↑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추운 지역의 노천 경기장에서 열리는 대회가 맞다. 왜냐하면 실내 구장인 디트로이트 실버 돔, 포드 스타디움 등에서 열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 ↑ 사실 이건 도저히 쉴드를 처 줄 수 없는 이유가 자이언츠 러싱공격이 거의 없다시피한 상황에서 거의 공격의 중심을 일라이 매닝을 위시한 패싱공격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그런대로 밸런스 있는 공격 플레이를 불렀던 케빈 길브라이드 오펜시브 코디네이터가 은퇴한 후 후임자로 웨스트코스트 오펜스를 선호하는 벤 맥아두를 그린베이 패커스에서 영입했으나 러싱공격이 거의 실종되다시피한 공격 플레이 때문에 애를 먹고있다. 더구나 팀들 역시 이러한 자이언츠 공격행태를 파악해 자이언츠 리시버들을 꽁꽁묶는 수비전략으로 응수하는 일이 다반사가 된지라 답이 없는 형국이다.
- ↑ 사실 2015-16시즌 NFC 동부지구 성적 자체가 그다지 좋은 상황이 아니다. 1위인 레드스킨스의 승률이 가까스로 5할을 넘기는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