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지라디

?width=40 MLB 아메리칸 리그 소속 구단 현재 감독
동부지구 소속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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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 쇼월터
(볼티모어 오리올스)
존 패럴
(보스턴 레드삭스)
조 지라디
(뉴욕 양키즈)
케빈 캐시
(템파베이 레이스)
존 기븐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중부지구 소속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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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렌테리아
(시카고 화이트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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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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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자스시티 로열스)
폴 몰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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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지구 소속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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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J. 힌치
(휴스턴 애스트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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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밥 멜빈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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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매리너스)
제프 배니스터
(텍사스 레인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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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양키스 No.28
조셉 엘리엇 지라디 (Joseph Elliott Girardi)
생년월일1964년 10월 14일
국적미국
출신지일리노이 주 페오리아
출신학교노스웨스턴 대학교
포지션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86년 드래프트 5라운드 (CHC)
소속팀시카고 컵스 (1989~1992)
콜로라도 로키스 (1993~1995)
뉴욕 양키스 (1996~1999)
시카고 컵스 (2000~2002)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003)
지도자뉴욕 양키스 벤치코치 (2005)
플로리다 말린스 감독 (2006)
뉴욕 양키스 감독 (2008~)

1 개요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선수이자 現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의 감독.

2 이력

조 지라디는 전직 블루 칼라 노동자이자 미국 공군 베테랑이었던 아버지 제리 지라디와 어머니 안젤라 지라디 사이에서 태어났다. 유년기를 일리노이주에서 보낸 그는 학창 시절 그의 아버지에게 농구를 코칭받기도 하고 미식축구에선 쿼터백, 야구에선 포수를 보는 등 다양한 스포츠 종목을 접하기도 했다. 이 시절엔 상당한 인텔리였는데, 노스웨스턴 대학교에 진학해선 야구를 계속함과 동시에 산업공학 학위를 따기도 했다.

2.1 선수 시절

1986년 아마추어 드래프트 5라운드에서 시카고 컵스에 지명되면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고 컵스의 마이너리그 시스템에서 4시즌을 보낸 후 1989년 포수로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컵스에선 1992년까지 뛰고 신생팀인 콜로라도 로키스플로리다 말린스를 위해 열린 확장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어 콜로라도 로키스로 이적한다. 로키스에선 1995년까지 뛰었으며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 되어 1996년부터 양키스에서 뛰게 되었다.

양키스에선 호르헤 포사다가 성장하기 전까지 그 양키 다이너스티의 주전 포수로 활약했다. 드와이트 구든의 노히터와 데이비드 콘퍼펙트 게임을 캐치하기도 했으며, 포사다가 주전으로 정착한 뒤에는 그의 멘토가 되어주면서 1999년까지 양키스에서 뛰면서 세 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 공헌하였다.

양키스 이후엔 시카고 컵스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소속하였고 2004년 양키스 스프링 트레이닝에 초청선수로 참가했지만 시즌을 앞두고 은퇴했다. 컵스 시절인 2000년에 개인 첫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선수 시절의 모습은 한해 최고 홈런이 로키스 시절 쳐본 8개이고, 줄곧 두 자릿수 홈런을 쳐본 적이 없을 정도로 타격에 별다른 강점을 보여주지 못한 똑딱이였지만, 수비에서는 꽤 좋은 평가를 받은 수비형 포수. 커리어 통산 15시즌 1277경기에 출장해서 타출장 .267 .315 .350 36홈런 422타점을 기록했다.

2.2 은퇴 이후와 감독 시절

은퇴 이후, 양키스 케이블 방송국인 YES 네트워크에서 해설자로 활약하였다. 2005년엔 조 토레 감독 밑에서 양키스의 벤치 코치 역할을 수행하다가 2006년 잭 매키언이 사임한 플로리다 말린스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말린스 감독이 되고 나서는 파이어 세일로 팀 주축 선수들이 대부분 빠져나간 팀 분위기를 다잡기 위함인지 양키스 구단주인 조지 스타인브레너와 비슷하게 선수들의 턱수염을 금지하는 규율을 만들기도 했다. 이때의 선수단 총연봉은 약 $15M으로 메이저리그 최저. 총연봉이 몇몇 메이저리그 스타 선수들보다도 낮았다. 이 때문인지 시즌 초반의 상황은 패를 마구 적립하면서 승점자판기로 전락하는 등 영 안 좋았지만, 조시 존슨, 아니발 산체스, 리키 놀라스코, 스캇 올슨 등 영건 4인방의 활약과 타자 쪽에서는 핸리 라미레즈댄 어글라가 신인왕급 활약을 펼치는 등 깜짝 신인이 마구마구 튀어나오면서(...) 시즌 최종 78승 84패라는, 비록 5할에도 못 미치는 성적이긴 했지만 당초의 팀 전력을 감안하면 시즌 초반의 예상을 뒤엎는 깜짝 돌풍을 일으켰다. 신인 감독이 막장 팀을 이끌고 막판까지 분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지, 지라디는 시즌 종료후 내셔널리그 올해의 감독에 선정되었다. 5할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성적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시즌 종료 후 바로 짤렸다(...)

원인은 8월 초에 어느 경기에서 경기를 관전하던 구단주 제프리 로리아가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심판에게 큰소리로 야유를 퍼부었는데, 참다참다 못한 심판이 지라디에게 좀 조용히 시켜달라고 요청했고, 지라디는 로리아에게 그만하라고 요청하다가 그만 대판 싸움이 벌어진 것. 결국 시즌이 끝나기 전부터 지라디의 해임설이 돌더니 끝나자마자 바로 짤렸다. 사스가 막장 구단주

2008년, 조 토레가 해임된 뉴욕 양키스의 감독으로 3년 750만불의 조건으로 부임한다. 지라디는 등번호로 27번을 골랐는데, 이는 양키스의 27번째 우승을 염원해서라고. 부임 이후 일시적으로 아이스크림이나 탄산음료 등 단것을 클럽하우스에 먹는 걸 금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첫해 성적은 영 좋지 않았다. 89승 73패로 AL 동부 3위. 90승에도 도달하지 못하면서 양키스는 1993년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9년엔 프런트로부터 CC 사바시아, 마크 테세이라, A.J. 버넷이라는 화끈한 지원을 받으며 페넌트레이스 최종 103승 59패, 승률 .636이라는 무지막지한 성적으로 팀을 27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시즌 종료 후, 28번째 우승을 염원하는 의미에서 커티스 그랜더슨에게 등번호를 양보받아 번호를 28번으로 바꿨다(...).

2010년에도 팀을 ALCS까지 이끌면서 공로를 인정받아 양키스와 3년 계약을 맺었다.

2013년 10월, 양키스와 4년 $15M의 연장계약을 맺었다.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긴 했어도 뉴욕의 엄청난 압박을 이겨내면서 성적을 내는 이만한 감독은 없기에 당연한 결과.

3 이모저모

  • 이탈리안 혈통이며, 크리스찬이다.
  • 성격이 선수 시절부터 매우 불같기로 유명하다. 위의 제프리 로리아와의 다툼뿐만이 아니라, 오심이 나왔을 때, 잊을만 하면 심판과 랩배틀(...)을 하다가 모자를 땅에 패대기치고 장렬하게 퇴장 그리고 관중들은 폭소와 환호의 도가니을 당하는 건 매우 자주 볼 수 있는 광경. 당장 유투브Girardi Ejected(지라디 퇴장)이라고 검색만 해도 지라디가 얼마나 불같은지 알 수 있다. 심지어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2013년에 바이오제너시스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복귀했다가 보스턴 레드삭스에게 브러시백을 쳐맞자 펜웨이 파크를 뒤흔드는 우레와 같은 환호가 나오는 중에도 심판과 랩배틀을 감행한 전례가 있다.
  • 꾸준히 피타고리안 승률보다 좋은 실제 팀성적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감독중 한명이다. 이것은 질 때는 크게 지더라도, 이겨야 할 순간에는 적은 점수차로 승리한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서는 어느정도는 운의 요소도 있다는 평도 있지만, 지라디의 경우는 뉴욕 양키스에 부임한 이후로 단 한번도 피타고리안 승수 이하를 기록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