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소타 트윈스 No.4 | |
폴 레오 몰리터 (Paul Leo Molitor) | |
생년월일 | 1956년 8월 22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미네소타 주 세인트폴[1] |
포지션 | 3루수, 지명타자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77년 드래프트 1라운드 (MIL) |
소속팀 | 밀워키 브루어스 (1978~1992) 토론토 블루제이스 (1993~1995) 미네소타 트윈스 (1996~1998) |
지도자 | 미네소타 트윈스 벤치코치 (2000~2001) 시애틀 매리너스 타격코치 (2004) 미네소타 트윈스 코치 (2014) 미네소타 트윈스 감독 (2015~) |
밀워키 브루어스의 영구결번 | |||||
1 | 4 | 19 | 34 | 42 | 44 |
버드 셀릭 | 폴 몰리터 | 로빈 욘트 | 롤리 핑거스 | 재키 로빈슨 | 행크 애런 |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폴 몰리터 | |
헌액 연도 | 2004년 |
헌액 방식 | 기자단(BBWAA) 투표 |
투표 결과 | 85.2% (1회) |
1993년 월드 시리즈 MVP | ||||
팻 보더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 → | 폴 몰리터 (토론토 블루제이스) | → | 파업으로 열리지 않음 |
1996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안타왕 | |||||
랜스 존슨 (시카고 화이트삭스) | → | 폴 몰리터 (미네소타 트윈스) | → | 노마 가르시아파라 (보스턴 레드삭스) |
1 개요
메이저리그의 전 야구선수으로 2016년 현재 미네소타 트윈스의 감독이다. 별명은 Molly, Ignitor인데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로서는 최초의 지명타자 헌액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화려한 시즌은 많지 않았지만, 꾸준히 커리어를 이어간 당대 최고의 교타자 중 한 명으로 MLB에서 3000안타와 500도루를 기록한 7명의 선수 중 한명이다.[2]
통산 성적은 21시즌 동안 타율 .306, 출루율 .369, 장타율 .448, OPS .817, 순장타율 .142, 3316안타, 504도루, 234홈런, BB/K 0.88, wRC+ 122, 1307타점을 기록했다.
2 선수 생활
2.1 밀워키의 레전드
고향인 미네소타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4년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28라운드에 그를 지명했지만, 입단을 거부하고 미네소타 대학교에 진학한다. 원래는 투수였지만, 대학에서 야수로 전향해서 유격수를 맡으면서 명성을 얻었다. 그런 그를 눈여겨 본 밀워키 브루어스[3]가 1977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3번으로 지명하면서 본격적인 프로 선수의 길에 접어들었다.
1978년 신인왕 투표 2위에 오르면서 화려하게 데뷔했고, 로빈 욘트와 함께 밀워키를 이끌면서 1980년대 초반의 밀워키의 짧은 전성시대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특히 1982년 팀을 사상 첫 월드시리즈로 올려놓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밀워키에서는 포지션을 변경해서 3루를 맡게 되는데, 이는 그가 로빈 욘트에게 유격수 자리에서 밀렸기 때문. 하지만 3루에서도 공격적인 측면에서는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다.
밀워키에서 15시즌을 뛰었는데, 아쉬운 점은 좋은 공격력에도 불구하고 부상이 잦았다는 점. 잦은 부상 때문에 150경기 이상 소화한 시즌 자체가 21년 선수 생활 동안 여덟 번에 불과했고, 시즌 아웃에 가까운 100경기 미만 소화 시즌도 2번이나 될 정도로 부상이 많았다. 3000안타 달성 시점에서 부상으로 빠진 경기를 합하니 거진 4시즌에 가까운 592경기였는데 이를 통해 그가 부상 때문에 자기 재능을 다 보여주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역경에도 불구하고 몰리터는 꾸준히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주로 맡은 타순은 1번 타자. 장타력도 그럭저럭 있는 편이라서 한 경기 3홈런을 1번 타순에서 친 적도 있었고, 1987년에는 39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세웠다. 밀워키 타선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 한 선수 중 한 명. 하지만 위에 서술한 부상 때문에 그 재능을 매시즌마다 발휘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대목이었다.
2.2 블루 제이스에서의 우승
1992년 시즌이 끝나고 FA로 풀릴 당시 몰리터는 밀워키 잔류를 희망했지만, 밀워키에서는 잦은 부상과 노쇠를 이유로 계약을 거부했고 결국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이적했다. 이 이적은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몰리터는 이적 첫해에 211개의 안타를 치며 MVP 투표 2위에 오를 정도로 맹활약했고, 월드 시리즈에서도 단일 월드시리즈 득점 타이 기록인 10득점을 기록하며 월드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이 때 얻은 우승반지가 그의 선수 경력 유일한 월드시리즈 우승반지였다.
2.3 귀향, 은퇴, 명예의 전당
토론토에서 3년을 보낸 후, 말년은 고향인 미네소타에서 보내며 통산 3000안타를 달성했다. 놀랍게도 다른 3000안타 달성 선수들이 말년에 다소 부침을 겪으면서 근근히 선수 생활을 이어간 것과 달리 몰리터는 나이 39세에 225안타를 치며 리그 최다 안타 1위에 다시 오르고, 40세에 타율 3할을 기록했으며, 은퇴 시즌에도 141안타를 때려냈다. 39세 때 고향으로 돌아와 3시즌만 뛰었지만 매년 정규타석을 채웠고 .312 타율을 기록하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이런 꾸준한 커리어를 통해 그의 통산 안타는 3316안타에 이르렀고, 당연히 2004년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85.2%의 높은 지지를 받아 한 번에 입성했다. 그의 은퇴와 동시에 밀워키에서는 그의 등번호 4번을 영구결번했다.
3 코치 및 감독 시절
은퇴 이후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벤치코치를 지내다가 2004년에 시애틀 매리너스의 타격코치를 역임했다. 이후 야인으로 지내다가 2014년 11월에 미네소타 트윈스 측에서 새로운 감독으로 몰리터를 선임한다고 밝혔다. 2015년 첫 해는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83승 79패로 포스트시즌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시즌 막판까지 와일드카드 진출을 놓고 다투면서 미네소타에 2010년 이후 가장 좋은 성적을 안겼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스포팅뉴스에서 선정하는 '2015년 아메리칸리그 올해의 감독'에 뽑혔다.
다만 2016년 초에는 메이저리그의 행복한 팀 비슷하게 굴러가면서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박병호가 아무리 홈런을 까도 죄다 앞에서 병살이니 광고(...)니 해서 솔로 샷만 나오는 촌극이 벌어지며 타순 똥고집 문제가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공히 지적받고 있다보니 일부 팬들 사이에선 "돌리터"라며 까이고 있는 상황.
4 그외 이모저모
온라인 야구게임 마구마구에 레전드 등급의 카드가 있다. 마구의 레전드 3루수 카드중 가장 스피드 능력치가 높다.[4] 듀얼포지션기능으로 2루수로도 사용할 수 있다.- ↑ 고등학교 후배 중에 조 마우어가 있다. 마우어는 몰리터가 말년에 미네소타에서 활약할 때부터 그를 동경하며 트윈스 열혈 팬으로 자랐다고.
- ↑ 나머지 여섯 명은 타이 콥(4189안타 892도루), 호너스 와그너(3415안타 722도루), 에디 콜린스(3315안타 744도루), 루 브록(3023안타 938도루), 리키 핸더슨(3055안타 1406도루), 스즈키 이치로이다. 이치로의 기록은 현재 진행 중이다.
- ↑ 지금은 속한 리그가 다르기 때문에 매년 정기적으로 만나는 인터리그 경기를 빼면 잘 느껴지지 않지만 밀워키(와 위스콘신주)는 미네소타와 험악한 라이벌리를 형성했다. 다른 스포츠들도 미네소타 바이킹스와 그린베이 패커스, 그리고 대학팀 등등 여러 불꽃튀기는 구도가 펼쳐진다. 그런데 그런 위스콘신주 야구팀이 미네소타 선수를 지명한 것.
열도의 자이언츠도 머리 큰 한신팬을 데려간 전례가 있지. - ↑ 전체 등급으로 치더라도, 05 피긴스(스피드 86) 다음의 85 능력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