存王攘夷
1 중국
1.1 개요
춘추시대 때 춘추오패 즉 패자들이나 방백들이 주변의 여러 나라를 휘어 잡으면서 쓰던 명분이자 레퍼토리. 뜻은 왕을 떠받들어 오랑캐들을 물리친다는 당시 중국 기준으로는어쩌면 중국 전근대시대 전체에 자못 그럴듯한 제법 그럴듯한 명분이라 춘추시대 만이 아닌 후대에도 우려먹었다.[1]
1.2 이것을 명분으로 내세운 이유
이것을 명분으로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춘추시대 특유의 역사적 상황에서 기반한다. 일단 춘추시대 때 주나라는 주유왕 이후 권위가 많이 떨어졌으나 여전히 중원의 제후들에게는 경외의 대상이었는데, 그 이유는 아직 주나라의 힘이 약간이나마 남아있었고,[2] 진나라 등 주나라를 도와주는 제후 세력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다소 명분론적이고 피상적으로 보일 수 있어서 보충하자면, 봉건제는 기본적으로 경제력이 많이 발전하지 못하거나 중앙집권적 정치 체계가 발달하지 못한 국가에서 나오는 정치 형태다.[3] 그 봉건제 체계 내에서는 서로 간에 나라를 잡아먹으면 그 과정에서 날려 먹은 여력을 회복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주나라의 질서체계를 무시해가면서, 다른 나라를 병탄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컸던 것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주나라 때부터 본격적으로 중화사상이 있었는데, 북쪽 이민족은 북적, 남쪽 이민족은 남만, 서쪽 이민족은 서융, 동쪽 이민족은 동이라고 하였다.[4] 이들은 당시 중국에 위협이 되었다.[5] 그 이유는 서융의 경우 견융족이 주나라를 쳐서 호경에서 낙읍으로 동천하게 만들었고, 북적의 경우는 위(衛)나라를 털어버려 멸망 시켜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탈탈 털어버리고 왕을 받든다고 하면, 당시 기준으로는 지금 식으로 말하면 명분적 측면에서 간지가 나는 그런 행위였다.
1.3 사례
사례를 들자면, 먼저 정환공이 주유왕을 모시고 호경에서 낙읍으로 피신하면서, 견융족과 싸우다가 전사한 것. 제환공이 관중의 조언을 받아들여, 주나라 천자를 받들어 모시면서, 당시 이민족인 고죽국을 탈탈 털어버렸고, 위나라를 침략해 위의공을 죽이고 멸망에 이르게 한 북적의 일파인 적족 또한 작살 내놨다.[6] 그리고 진문공은 당시 오랑캐로 분류되었던 초나라를 박살냈으며, 그 전에 주나라 천자인 주양왕의 아우로서 당시 형을 몰아낸 아우인 희대를 토벌하였다.
그런데, 그 뒤는 왜 없냐고? 이들 이후부터는 존왕양이에 대한 이렇다 할 행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당시 주나라의 권위가 점차 약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4 후일담
이 명분이 전근대 중국 기준으로는 상당히 매력적인 명분론이었기 때문에 혼란기에 군벌들이 자주 울궈먹는 레퍼토리였고, 유교에서는 당연히 주나라 질서를 좋아하니 만큼 신하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에 들었다.[7] 후대에는 봉건제가 없어졌고,[8] 중앙집권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제후로서가 아닌 지방관으로서 혹은 대신으로서 집행한다는 식으로 현실에 맞게 변화하였다.
2 일본
일본의 사례는 존황양이 참조.- ↑ 비록 말로는 내세우지 않아도 행동으로 실천한 사례가 있다면, 조조. 뭔지 궁금하다고? 오환을 직접 털어 답돈을 죽이고, 하후연을 시켜 강족을 탈탈 털었으며, 조조는 기본적으로 황제를 건드리지 않았는데, 황제의 명분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즉, 황제의 명을 받들어 니네들을 털어버리겠다. 이런 뜻.
- ↑ 대표적으로 진나라와 곡옥의 내전에 개입한 것.
- ↑ 로마 제국 멸망 이후 유럽은 게르만족의 부족제를 기반으로 로마의 제도를 실정에 맞게 받아들여 봉건제를 실시한 바가 있다. 단 중국과는 다른 점이 혈연이 아닌 쌍무적 계약관계를 기반으로 하며, 그 외에도 세세한 점이 차이가 나는데, 그것은 봉건제 문서를 참조.
- ↑ 몇몇 사람들이 동이족을 꼭 한국인만 나타내는 줄 아는 사람이 있는데, 중국 입장에서 동쪽 이민족은 다 동이라 불렀다.
- ↑ 남만의 경우는 주로 초나라를 일컫는다.
- ↑ 단, 이것은 위의공이 학을 너무 좋아해 학덕후질을 하다가 나라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탓이 적지 않다.
- ↑ 유교는 중화사상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중 평천하에 덕목에 들며, 존왕사상은 충으로 포장되었다.
- ↑ 단, 분봉하는 형식 자체는 남아있었지만 실권은 없고, 경제적 이익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