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프로펠러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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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 대해 모르는 친구들에게 이 사진을 보여주며 제주도 수요가 적을 땐 이걸 타고간다고 하면 진짜 믿더라
1 제원 및 성능
제원 | |
승무원 | 2명 |
탑승인원 | 2 ~ 3명 |
길이 | 7.7 m |
익폭 | 10.2 m |
기고 | 2.7 m |
익면적 | 14.86 m² |
자중 | 839 kg |
적재중량 | 1,225 kg |
최대이륙중량 | 1,259 kg |
엔진 | 1× 라이코밍(Lycoming)사 IO-360-A1B6 piston, 200 hp |
성능 | |
최대속도 | 339 km/h |
순항속도 | 242 km/h |
상승고도 | 5,025 m (16,500 ft) |
항속시간 | 4.9 hr |
항속거리 | 최대연료 탑재시 1,500 km |
행동반경 | 1,128 km |
익하중 | 78.0 kg/m² |
추력중량비 | 0.?? |
2 개요
1991년 대한항공이 개발하고 과학기술처(현 미래창조과학부)의 지원을 받아 대한항공, 한국화이바, 삼선공업이 참여하여 결성한 한국항공우주연구조합이 제작한 5인승 다목적 경비행기로 구조시험기 1대, 시제기 2대 등 총 3대를 제작했다.
3 상세
대한항공은 이전부터 초경량 항공기인 창공-1,2,3호를 제작하였으며 이를 통해 본격적인 경비행기를 개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어 이 연구 개발에는 약 36억 3천만 여원을 투입하여 창공-91호를 개발하게 되었다.
창공-91호라는 명칭은 비행기의 완성 및 시험 비행이 1991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렇게 명명했다. 대한항공이 설계 및 개발사업 관리, 부품제작 및 최종 조립을, 한국화이바는 복합재 부품을, 삼선공업이 알루미늄 압출재를 담당했다. 이로써 항공기 품질인증체제 구축 및 주요 부품의 국산화에도 성공함으로써 양산체제로 돌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엔진은 미국 라이코밍(Lycoming)사 제품이 창작되기로 했다.
외형은 파이퍼(Piper)사의 PA-28 체로키(Cherokee) 경비행기와 매우 비슷하다.
교통부(현 국토교통부)의 형식승인 및 감항증명을 받은 최초의 국산 항공기이기도 하다. 교통부는 1992년 7월부터 1년간 검사를 실시하고 80여 시간의 시험 비행을 마친 후 항공기형식증명을 받았다. 항공기형식증명을 받게되면, 양산 실용화가 가능하다.
1994년 4월 한반도 상공의 황사오염을 측정을 하는 임무에 투입되기도했다.
다목적 운용이 가능하고 가격이 1~2억원 정도로 외제 경비행기보다 저렴했으며 군용으로도 운용이 가능하여 T-41 초등훈련기[1]를 대체할 후보였지만 아쉽게 탈락하였다.
대한항공은 창공-91호를 공군과 대한항공 제주비행훈련원의 초급 훈련기로 공급할 계획을 세웠고 수출확대를 위해 미국 연방항공청(이하 ‘FAA’)의 형식승인까지 받으려고 했지만, FAA의 형식승인을 받지는 못했다. 이란·볼리비아 등 해외 업체에서도 주문 생산 제의가 들어오기도 하여 대한항공 측도 양산을 심도있게 검토했었다. 그러나 화물칸이 협소하다는 문제가 있었고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양산은 하지 않았다.
4 매체에서
가상전쟁소설 데프콘(소설) 초간본에서는 한일전쟁편에서 등장하며 현재 북한군의 An-2 처럼 이 기체가 대량 양산되어 통일한국군 특수부대를 쓰루가 공항까지 이동시키는데 사용한다. 조종사도 특수부대원에게 딱 1회 이착륙할 능력만 될 정도로 속성 양성해서 충당했다는 설정. 재간본에서는 이 기체가 양산되지 못한 점을 반영하여 이 기체는 삭제되고 이 기체의 역할은 기종 미상의 경항공기로 내용이 변경되었다.
- ↑ 세스나 T-41은 그 뒤로도 15년을 넘게 더 날다가 퇴역한 뒤 필리핀에 공여되었다. 국군의 T-41은 원래 미군에게서 받은 것이다. 불곰사업으로 구매한 T-103이 대신했는데 유지보수에 애로가 있어 운용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KT-100으로 교체할 것이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