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총통

파일:Attachment/천자총통/천자총통.jpg
天子總統 天字銃筒
크고 아름다운 대장군전이 장전된 모습.날개안정분리철갑탄? 정말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이다. 대함미사일 같이 생겼는데?[1] 실제로 아다케부네세키부네 입장에서는 대함 미사일이었을 물건이다.

1 설명

1.1 스펙

조선전기 조선에서 가장 규격이 큰 재래식 화포. 총 길이 131cm, 통신 길이 1.16m, 포구 지름 12.8㎝로써 (문화재청) 조선의 대형화포에 해당하는 지자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 중에서 가장 큰 화포였다. 사실 천, 지, 현, 황(天, 地, 玄, 黃) 자체가 천자문식 넘버링. '천자총통'을 요즘 말로 옮기면 'K-1 중포' 정도가 될 듯. 청동합금을 사용해서 가격이 상당히 비싼 편이었다.[2] 총통들은 그 양식에 따라 발사방식이나 장전방식이 달랐지만, '-자' 자 돌림의 총통류는 크기만 다를 뿐 발사, 장전양식은 모두 같았다. 또한, 본 항목에서는 천자총통뿐만 아니라, 대형화기로 분류되는 현자총통 이상급의 총통을 모두 다룬다.

최대 사거리는 약 960m정도로 추정되고, 육군 사관학교의 시험에서는 기준량보다 1/3만 넣은 화약을 사용해서[3] 대장군전을 발사했음에도, 400m를 날아가 화강암 석축 사이의 작은 틈바구니를 비집고 80cm 가까이 박혀버렸다. 운이 좋게 틈바구니에 박힌 탓도 있지만...

당시 무기들과 비교했을 시 총통류의 유효한 살상 사거리는 대략 2~500m 정도로 추정된다.

또한, 여러 드라마 탓에 "조선의 주력 화포"[4]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지만, 천자총통급은 주력이 아니었다. 천자총통은 화차처럼 그 위력에 비해 화약낭비가 심하다는 소리가 많았다. 따라서 지자총통과 다른 화약병기를 주력으로 보급했다. 동아시아의 갑주는 현자총통만으로도 충분했던 것 같다.[5]

"백사집"과 "정만록"에서도 천자총통은 화약을 많이 소모한다고 지적했으며, 이순신이 대포를 만들 청동을 요구하는 장계에서는 지자총통과 현자총통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수량만 적혀있다. 심지어 개전 1년후부터 천자총통에 대한 기록이 없다. 학계에서는 지자, 현자를 조선군의 주력무기라 추정하고 있다. 이것은 비단 조선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인식이었다. 즉 동아시아에서는 너무 거대한 화포가 낭비라고 생각했다. 유럽 문화권 또한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대구경의 화포들을 주로 생산하였으나, 점차 대구경 화포들은 공성전을 위한 특별한 무기로 소수만 생산하고, 소구경포의 생산에 주력하게 된다.

다만 명과 청에서 적극적으로 도입했던 홍이포를 보면 동아시아에서 거대한 화포를 완전히 낭비라고 생각했던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1.2 서양의 화포와의 비교

구경만으로 컬버린, 데미컬버린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구경은 비슷해도 컬버린이나 천자총통은 상당히 다른 무기였다. 화약 사용량만 보면 천자총통은 30냥=2.4 파운드인데, 보통의 컬버린 포는 화약을 12파운드를 쓴다. 포신길이는 천자총통이 전장 1.3m 급이지만, 컬버린은 전장 3미터에 달한다. 또한 무게는 300kg대 1200kg 정도로 훨씬 커다란 화포이다. 단순히 화약량으로만 본다면, 천자총통의 30냥은 미니온포의 3파운드보다도 약간 더 적은 양이다.[6] 근데 천자총통보다 화약을 적게 쓰는 카로네이드는 최고등급이다.

다만 이는 단순한 수치만을 비교한 것으로, 실질적인 화포의 원리를 생각하여 효율성의 문제로 관점을 달리하면 말이 달라진다.

18~19세기 초반까지 저속고중량대구경 개념으로 사용되었던 12파운드 카로네이드 포(구경 114.3mm 전장 0.8m 화약량 1파운드)는 동시대 동일구경의 롱 캐논(전장 2.7m 화약량 4파운드 포중량 1.6 톤)과 비슷하거나 훨씬 효과적이였다. 천자총통보다 더 짧고, 화약을 더 적게 쓰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이유는 카로네이드 포 항목 참조. 또한 프랑스제 나폴레옹 9파운드 포, 19세기 남북전쟁에서 사용된 미군의 12파운드 야포는 포신이 1.82m 남짓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포신의 길이와 화약량은 사거리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조선 총통류, 카로네이드 포, 19세기의 육군포처럼 적정한 사격비율만 찾아내면 전반적인 성능에서는 취약점이 생기지 않는다.

결국, 무작정 "포탄, 화약, 포신이 크면 강하겠지?"라는 생각은 실질적인 성능을 논하는 차원에서 문제가 많은 생각이다. 당대의 주조 기술, 포탄의 질, 중력의 문제를 고려해보면, 19세기까지 전세계에서 중소형 화포를 애용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7]

산업혁명 이후 생산했던 12파운드 철제 롱 캐논조차도 4파운드라는 적은 화약을 사용했는데, 강철제 포가 양산되기 전까지는 이런 적은 화약으로도 항상 포의 폭발 위험성이 상존하는 수준이었다. 16세기의 청동주조 데미 컬버린이 12파운드의 화약량을 사용했다면, 폭발 위험성, 화약 낭비량만 증가하는 자살적인 전법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화약량/포신의 크기만 놓고 효율성을 비교하는 것은 실제 화포의 매커니즘에 대한 이해없이 수치상의 스펙만 따지면서 생긴 오류이다.

1.2.1 반론

모든 무기들은 장단점이 있으며 각각의 용도에 맞추어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위의 내용에 잘못된 점들이 있기에 반론을 제기한다.

1.2.1.1 카로네이드 포

천자총통의 짧은 사거리를 옹호하기 위해 카로네이드 포를 예로 든 것은 적절하지 않다. 카로네이드 포의 개발사를 보면 당시 서양의 군함에 탑재하던 롱건의 최대 유효사거리가 1km 정도[8]였지만, 실제 해전은 대부분 500m이내에서 이루어졌으며 넬슨이 주도한 이후로 영국 해군의 주 전술은 30m이내의 근접전이었다. 당시에 군함의 전투력은 대구경의 함포를 얼마나 많이 탑재하느냐에 달려 있었기에 대구경의 함포를 더 많이 탑재하기 위해 18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대포가 카로네이드 포다. 포신의 길이를 줄이고 두께를 얇게해서 무게를 감랑해서 화약 소모량이 줄어들어 32파운드 카로네이드 포는 9 파운드 롱건과 무게와 운용인원이 같았다. 함대함 전투에서는 기존의 롱건보다 더 큰 피해[9]를 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었고, 사거리가 기존 롱건에 비해 1/3에서 절반까지 줄어들었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초기에 영국 해군에서는 카로네이드 포가 모든 롱건을 대체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롱건은 체이스 건[10]으로만 사용하고 카로네이드 포를 주무장으로 하는 군함들을 건조[11]했다. 하지만 롱건이 없이 카로네이드 포만 탑재한 군함이 사정거리가 긴 소구경 롱건을 탑재한 소형 군함에게 일방적으로 얻어터진 사례가 나오면서 롱건을 대체하리라는 기대는 사라졌고, 영국해군은 나폴레옹 전쟁 후반기에 가면 카로네이드 포를 주무장으로 하는 군함들의 건조도 중지했다. 이와 같이 카로네이드가 발명된 이후에도 영국 해군의 주력 함포는 여전히 사정거리가 긴 대구경(3급 이상의 전열함은 32 파운드 롱건, 64문 3급 전열함, 4급함과 소수의 5급 프리깃은 24 파운드 롱건, 5급 프리깃은 18 파운드 롱건[12])의 롱건이었고, 카로네이드 포는 1~5급함의 부무장, 6급함과 등급외 함들같은 소형함들의 주무장으로 머물렀을 뿐이었다.

동시대 동일구경의 롱 캐논과 비슷하거나 훨씬 효과적이었다고 위에서 주장했지만 이는 근거리에서만 해당하는 말이고, 짧은 사거리가 너무 치명적이어서 개발하고 처음으로 도입한 영국 해군에서 롱건을 보조하는 부무장으로만 사용했다. 적정한 사격비율만 찾아내면 전반적인 성능에서 취약점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지만, 짧은 사거리는 절대 극복할 수 없는 단점이다. 이처럼 카로네이드 포의 장점만을 언급하고 천자총통이 가지는 단점과 같은 카로네이드 포의 단점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1.2.1.2 화약의 양

카로네이드 포와 산업혁명 이후의 12 파운드 롱건의 화약 사용량과 비교한 것 역시 정당한 비교가 아니다. 먼저 청동이나 주철 대포가 쓰기만 하면 폭발을 일으킨건 아니었고, 항상 최대 화약으로만 사격을 하지도 않았다. 예를 들면 영국 해군에서는 용도에 따라서 사용하는 화약의 양을 조절하였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 32 파운드 롱건의 경우 최대 사거리로 발사할때는 10 파운드 11 온스를 사용했지만, 근접전에서 포신의 과열을 막으면서 연사를 할때에는 6 파운드를 사용했다. 당시 영국 해군은 1분 30초마다 사격이 가능하도록 선원들을 훈련시켰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한 세기간의 기술 발전을 감안해야겠지만)폭발의 위험성이 크다면 이렇게 훈련을 시킬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산업혁명이후 대포에서 사용하는 화약의 양을 언급해서 컬버린이 비효율적이라고 했는데, 두 시기는 200년 이상의 차이가 존재하며 이 기간동안 과학 기술의 발전을 고려하지 않은 비교이다. 초기에는 적절한 화약의 양을 계산할 수 없었기에 대포의 구경(포탄의 무게)와 같은 화약을 사용[13]했으며 대포의 구경이 작거나 같은 구경이더라도 포신의 길이가 짧은 경우에는 더 적은 양을 사용했다. 이후 과학이 발달하면서 화약과 대포의 성능을 시험하는 체계가 나와서 화약의 양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1750년에 영국에서는 화약의 양을 3배 늘여도 포탄의 속도는 50%만 증가할뿐이고, 속도가 증가하면 저항도 늘어나서 위력은 그만큼 증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대포에 사용하는 화약의 양을 대폭 줄였다. 이것이 바로 나폴레옹 시대 대포들의 화약사용량이 줄어든 결정적인 이유이다.

동시에 화약 제조 기술도 발달했는데 흑색화약은 초석, 숯, 황을 일정한 비율로 혼합해서 만들었다. 초석의 양이 많을수록 위력이 증가하며 이 비율에 따라 위력이 달라졌기 때문에 각국은 이를 비밀로 해서 나라마다 화약의 성능이 달랐다. 초기에는 1:1:1의 비율을 사용하다가 이후 4:1:1을 거쳐 17세기에는 6:1:1, 1780년에 75:15:10의 비율이 나오면서 이를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흑색화약은 굉장히 위험하고 불안전한 물질이라서 보관하는 동안 수분을 흡수해서 품질저하가 발생하거나 부주의로 폭발하는 등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이런 문제들을 보완하고 개선하는 과정을 거쳐 나폴레옹 전쟁 시대의 화약 사용량이 나온것인데, 이런 과정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결과만을 놓고 비교하는 것은 2차대전시기의 무기와 현대의 무기를 비교하면서 전자가 비효율적인 무기체계라고 말하는것과 같다.

마지막으로 카로네이드와 천자총통은 컬버린과 같은 롱건과 비교할 때 사정거리가 짧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전혀 다른 무기체계로 비교대상이 아니다. 카로네이드의 화약 사용량이 극단적으로 적은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사실과 롱건에 비해 유극[14]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롱건은 사격을 하면 포신에 탄매가 심하게 끼기 때문에 사격할 때 포신의 내부 소제를 해도 제대로 제거하지 못해 포탄이 포신 내부에 끼어 불발탄이 나오는 문제들이 일어났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영국 해군은 롱건의 유극을 일부러 크게 만들었고, 유극이 크면 폭발시에 압력이 세어나가기 때문에 화약의 양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카로네이드는 이 유극이 거의 없기에 화약 사용량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천자총통의 화약 사용량이 적은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 18 파운드 카로네이드 포의 화약 사용량은 1.5 파운드, 12 파운드 카로네이드 포는 1 파운드임을 볼때 천자 총통의 화약 사용량이 적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자총통의 화약 사용량이 컬버린에 비해 적은 이유는 단순히 단포신에 소구경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유럽은 철에 비해 가벼운 돌로 만들어진 석탄을 사용할 경우에는 정량의 1/3만을 사용했다. 천자 총통의 경우 2.4파운드가 정량이라고 하지만, 이는 어떤 포탄을 가지고 어느 정도의 사거리에서 발사할 때의 양인지 알수가 없기 때문에 이런 단편적인 정보만 가지고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게다가 아래의 홍이포 항목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조선도 컬버린을 도입했던 것을 보면 폭발 위험성, 화약 낭비량만 증가하는 자살적인 전법이 아니라 컬버린과 같은 대구경의 화포가 가지는 장점이 컸다고 봐야 한다.

1.2.1.3 컬버린의 크기

컬버린의 크기가 단점만을 가진것처럼 서술을 했지만, 이 역시 대포의 발전사를 생각하지 않은 편협한 지적이다. 컬버린의 포신이 길고 두꺼운 이유는 그게 더 안전하기 때문이고 당시 기술자들은 이를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대포들을 이렇게 만들었다. 이는 당시의 대포 제조 과정을 보면 과학적으로도 맞는 사실이다. 포구 부분을 아래로 하고 세워서 제조를 했는데 대포의 포신이 길고 두꺼울수록 위에서 가해지는 압력에 의해 포구 부분의 조직이 치밀해져서 내구성이 더 좋아진다. 그래서 사격시에 화약을 많이 사용할 수 있었고, 이는 대구경의 포탄의 사용을 가능하게 했으며, 포탄의 속도가 빨라져서 사거리, 명중률, 위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이는 천자총통은 절대 가질 수 없는 장점이다.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포신의 길이는 짧아지고 무게는 가벼워지는데 이는 경제적인 이유때문이었다. 전쟁에서 대포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더 적은 가격으로 많은 대포를 만들기 위해 폭발의 위험성이 커지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변화를 줄 수 밖에 없었다.[15] 16세기경 대포의 사진을 보면 성능과 상관이 없는 화려한 문양들을 볼 수 있었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이런 문양들도 없애면서 나폴레옹 시대의 밋밋한 대포가 나온 것이다.

1.2.1.4 해상전

전세계에서 19세기 전까지 중소형 화포를 선호했다고 했지만, 이는 육상전과 해상전에서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주장으로 일부만 맞다. 육상전은 기동력과 보급 문제때문에 무거운 대구경의 대포를 운용하기 힘들어서 유럽은 17세기 경부터 가볍고 기동성이 좋은 소구경의 대포가 주력이 되었다. 그러나 요새포와 공성포로는 24파운드 이상의 대구경 대포를 여전히 사용하였고, 공성용으로 개발한 10인치 박격포의 경우 무려 90 파운드 포탄을 사용했다. 여기에 군함은 대포를 탑재하고 다니기에 육군에 비해 무거운 대구경의 함포를 운용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어서[16] 본격적인 전열함 시대가 막을 올림과 함께 유럽 각국들은 이를 많이 탑재할 수 있는 대형함들을 많이 보유하고자 노력했다.

영국은 1540년부터 6~14문의 캐논과 데미 캐논, 20~30문의 컬버린과 데미 컬버린을 탑재하는 34~56문 갤리온들을 건조했고, 네덜란드 독립 전쟁 동안에 전열 전술이 자리를 잡으면서 1640년부터는 전열함이 군함의 표준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40년 후인 1637년에 진수한 영국의 HMS Sovereign of the Seas는 무려 102문의 함포를 탑재했는데, 현측에 42파운드 캐논을 20문이나 탑재해서 당대 최고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무적의 함으로 네덜란드와의 전쟁에서 그 위용을 발휘했었다.[17] 이 시기의 영국 해군은 1급함부터 4급함까지 전열함으로 취급을 했는데, 4급함은 컬버린(구경은 대략 18파운드이며 10~12 파운드인 데미 컬버린을 같이 탑재)을 주무장으로 하는 30~40문함, 3급함은 데미 캐논(대략 32 파운드이며, 컬버린과 데미 컬버린을 부무장으로 탑재)을 주무장으로 하는 50문함, 2급함은 데미 캐논을 주무장으로 하는 60문함, 1급함은 캐논(대략 42파운드이며 20문을 탑재)을 주무장으로 하는 80문함이었다. 이처럼 17세기 중반부터 유럽은 대구경의 함포를 탑재하는 대형 군함들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영국 해군은 18세기 초에 대포의 구경을 42 파운드-32 파운드-24 파운드-18 파운드-12 파운드-9 파운드-6 파운드로 통일하면서 규격화를 이루었다. 18세기 후반에는 주조 대포의 문제를 해결하는 신공법[18]이 나오면서 대구경의 대포를 많이 탑재하는 전열함의 중요성은 더 커져만 갔다. 이후 전열함의 기준은 계속 올라가서 나폴레옹 전쟁중에는 32 파운드 롱건을 28문 정도 탑재하는 74문 3급함이 전열함의 표준이 되었다. 유럽 해군의 역사를 보면 함포가 해상전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대구경의 함포를 많이 탑재하는 군함들을 건조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거함거포주의로 이어져 항공모함이 해상전의 주인공이 되기전까지 계속되었다.

1.2.1.5 홍이포

천자총통과 컬버린의 비교는 애초에 만들어진 목적이 다르므로 각각의 용도에 맞추어 사용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서양의 화포체계와 비교할 때 조선은 컬버린에 해당하는 사정거리가 긴 대구경의 화포가 없었다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이는 비교대상인 컬버린을 명, 청, 조선에서 홍이포란 이름으로 도입했다는 것을 보면 해당 국가들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명나라는 네덜란드와의 전쟁에서 겪은 컬버린의 성능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도입해서 청과의 전쟁에서 사용을 했고, 명과의 전쟁에서 홍이포에 호되게 당한 청나라는 이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서 운용을 했다. 조선도 병자호란을 통해 청나라가 공성용으로 사용한 홍이포를 접하게 되고 홍이포를 도입하기위해 노력을 했다. 위에서 천자총통은 화약의 낭비가 심해서 주력이 아니었고, 임진 왜란 개전 1년후부터는 기록조차도 없다고 나와있다. 하지만 천자총통보다 화약의 낭비도 심하고 훨씬 비싼[19] 컬버린을 홍이포란 이름으로 도입해서 주요 거점에 배치했던 것을 보면 조선에서 사용하던 기존의 화포들에 없는 장점들을 컬버린이 가졌다고 볼 수 있다.

2 구조 및 운용법

총통들은 크게 화약을 담는 "격실" 약실부분과 탄체 부분사이의 가스누출을 방지하는 격목을 끼우는 "격목통" 포열인 "부리"로 이루어져 있다. 화약을 다져 넣는 약실부분은 포열보다 더 두껍게 만들어졌고 윗부분에는 도화선을 끼우는 구멍이있다.

총통의 발사순서는 1603년 한효순이 쓴 신기비결에 나와있는데, 이 순서는 천자총통에 중형 납탄환 100발을 동시에 넣고 사격하는 순서이다.

  1. 세총(洗銃) - 총통안을 쓸고 씻는다.
2. 입약선(入藥線) - 약선혈(도화선을 넣는 구멍)에 도화선을 밀어넣는다.
3. 하화약(下火藥) - 총구로 화약을 넣는다.
4. 하복지(下覆紙) - 총구에 종이를 넣어 화약을 덮는다.
5. 하송자경(下送子經) - 나무자루로 화약과 종이를 살짝 두드려 다진다
6. 하목마(下木馬) - 총구에 격목을 넣는다. 목마는 격목의 중국식 이름인데, 신기비결이 중국 병서의 영향을 받은 책이라 그렇다.
7. 하송자 용력타 지약전(下送子,用力打,至藥田) - 나무자루로 힘껏쳐 격목을 화약 바로 앞까지 밀어넣는다.
8. 하연자일층 하토하송자(下鉛子一層,下土子送子) - 총구에 납탄환 30여발을 넣고 흙을 넣는다.
9. 하연자일층 하토하송자 (반복)
10. 하연자일층 하토 하송자 (반복)
11. 하합구대연자 일장 하송자 용력타입구평총(下合口大鉛子,一杖下送子,用力打入口平銃) - 마지막으로 총구에 맞는 큰 탄환(대연자)을 넣는다. 힘으로 쳐서 총구에 평평하게 넣는다
12. 방포하라!

2.1 발사체

천자총통은 일반적으로 포환 한발만을 장전하지만, 여러가지 탄을 함께 섞어서 발사할 때도 있었다. 천자총통에 쓰이는 포탄은 매우 다양한데, 대장군전 같은 대형 화살, 포환, 조란환등 여러가지 탄종을 사용했다. 이를 통해서 위력이나 정확성을 비롯한 전반적인 쓰임새를 늘릴 수가 있었다.

  • 포환

쉽게 말해 포탄. 조선시대에는 쇠로 만든 철환, 돌을 다듬어 만든 단석, 납으로 만든 연환, 철환 표면에 납을 씌운 수철연의환을 주로 사용했다. 천자총통에서 사용하는 것은 납을 씌운 수철연의환이었다. 일반적인 철환은 튼튼하고 위력적이면서도 저렴했지만, 너무 무거워서 화약낭비가 생기고 포강을 마모시킨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수철연의환은 철환 표면에 납을 씌웠기 때문에, 포강을 심하게 마모시키지 않으면서도 포강과 밀착해서 철환보다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포탄에도 연구를 많이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순수 연환은 부드러워 포강에 밀착되어 멀리 날아가기 좋지만 위력면에선 좀 떨어지고 단가도 비싸다. 단석은 돌을 갈아 만든 것으로 단가는 매우 싸지만 역시 포강 마모가 심하고 발사 중에 깨질 수 있다.근데 이러면 사거리는 산탄이 되어서 좀 줄어도 스플래쉬가 되는 거 아닌가 [20]

  • 대형 화살

일반적으로 대형 철환이나 단석을 운용하는 방식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밀덕들을 중심으로 대장군전의 인기나 인지도가 높아진 상태이다. 아무래도 현대 미사일을 연상시키는 폭풍간지를 자랑하는 외형 때문일듯. 실제로도 천자총통을 비롯한 지자, 현자, 황자총통은 대형 화살을 발사하여 적 함선이나 적 시설물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조선의 대함 APFSDS[21]

현재 일본에 구키 요시타카가 가져간 대장군전 실물이 남아있다. 안골포 해전 당시 어립선에 맞은 것을 기념으로 보존한 듯하다. 참고로 이 해전에서 구키 요시타카, 도도 다카토라, 가토 요시아키 등은 42척의 함대로 분전했으나, 상대가 상대인지라 42척의 함선을 전부 잃고 육지를 통해 도망쳐야 했다. (...). 기념품이라도 챙겨갔으니 다행...인가? 뭐 그런걸 챙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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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란환/수마석

조란환은 새알 크기의 철제 탄환. 수마석은 풍화작용으로 반질반길하게 자연 연마된 작은 돌멩이들을 말한다. 둘 다 접근한 적병들에게 끼얹는 산탄 용도로 쓰였다. 샷캐논 서양에서도 포도탄(Grapeshot)이라는 식으로 사용했다. 천자총통에는 400개씩 넣고 발포했다. 해전에서도 상대 갑판에 쏴제끼며 승무원 살상을 노렸고, 그 위력은 정말 확실했다고. 포도탄의 예시지만, 트라팔가 해전에서 프랑스 기함 부상테르가 영국 기함 빅토리호의 카로네이드 포에서 발사된 포도탄을 선수에 맞았는데, 배는 배대로 승무원들은 승무원들대로 걸레짝이 되어버려[22] 기함을 잃은 프랑스 함대 전체가 아노미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점에서 제대로 맞았을 시의 그 엄청난 위력을 알 수 있다. 대포 다 갖추고 전열함 타고 다니던 프랑스 해군도 이럴진대, 갑판위에 옹기종기 모여 도선하기만을 기다리는 일본 수군이 이걸 맞으면 어떤 결과가 날지는 상상에 맡긴다(...). 불멸의 이순신 마지막회에서는 와키자카 야스하루를 호위하고 있던 병사들을 싹 쓸어버렸다. 영화 명량에서는 근접전에서 조란탄을 쓰는데 위력이 가히 크레모아급이다. 조선의 총통류가 근접용으로도 훌륭한 디자인인데다가, 한번에 쏘는 탄환이 400개나 되었으니... 화약의 질을 생각해도 현대의 크레모아보다는 파괴력이나 사정거리가 뛰어나다. 조총의 위력도 그렇지만, 중세의 화약무기는 운동량만 보면 충격적일 정도로 강하다.

3 실제 운용법

3.1 함선에서의 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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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총통이 가장 잘 알려진 이유는 바로 이순신 함대 때문인데, 번동아제의 이글루에 당시 포술 운영을 짐작할 수 있는 사료들을 볼 수 있다. 사료들을 놓고 짐작해 보면 대중형 총통 같은 경우엔 함상에서의 여러가지 문제점 때문에 200보(약 240m)에서 사격을 시작하고, 100보에 이르게 되면 평저선인 판옥선의 선체를 360도 회전시켜 현측을 개방하는 방식을 사용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 바다에서 실제 사거리는?

바다에서는 우리가 짐작하는 사격거리보다 심히, 매우 심히 짧은데, 이것은 이순신 함대가 "우수한 화기를 통한 원거리전"으로 일방적인 승리를 거뒀다는 통념에 상당한 제한을 가할 수가 있다. 이들 사료에 따르면 100보에 조총, 90보에서 을 사격했다 하니, 사실상 100보 이내에 들어오게 되면 총과 활을 사용하는 근접전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결국 판옥선이 200보에서 화포사격을 시작하고 100보에서 측면사격을 시작했다고 하면, 거의 조총이나 활의 교전거리 근처에서 싸웠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다만 조총의 실제 살상거리는 50보 정도다.

  • 해상에서도 접근전을 병행하다

판옥선이란 함선이 일본군 함선에 비해 상당히 크기에 근접전에서도 유리한 건 매한가지지만, 이순신의 전술에 대해 "절대 근접을 허락하지 않는다"하는 통념은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이건 18세기 대양에서 싸우던 전열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물며 16세기 조선에서의 연안 해전에서야... 되려 좋은 목재와 견고한 제작방식으로 만들어진 튼튼한 함선으로 일본군의 배를 침몰시키진 않았을까?라는 해석도 있다.[23] 명량해전의 경우가 대표적인 접근전이다.

이런 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조선수군이 중형화포를 주력으로 사용했던 이유는 판옥선을 성채처럼 사용하여 일본수군을 요새의 농성전처럼 산탄으로 제압하는 전법을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전에서 총통류는 산탄을 끼얹는 형식으로 운용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개활지에서 잘 싸우던 왜군이 함선/성채에 거치한 대형총통에 줄줄이 죽어나간 이유도 설명이 된다. 보병들의 입장에서는, 수백발씩 쏟아지는 산탄이 가장 무섭기 때문이다! 보병학살 종결자

3.2 장거리 화력

총통류는 대장군전을 비롯한 화살형 발사체들을 도입하여, 전장식 중세화포임에도 사거리를 상승시키는 방식을 사용했다. 임진왜란 외에도 여진족이나 병자호란에서 싸운 기록을 보면, 조선의 포수들은 우수한 비거리를 활용하여 적들의 포대를 저격하여 무너트렸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아래 본문에는 홍이포와 호준포의 이름이 혼용되고 있으나, 중근거리 소형 산탄포인 호준포와 달리 모과만한 포탄을 수십 리 날렸다는 점을 보면 홍이포임을 알 수 있다. 천자포는 천자총통의 다른 이름이다.

(전략) 며칠 전에 적이 망월대(望月臺) 밖에 대포를 설치하니 신경진이 사졸들에게 천자포(天字砲)를 쏘도록 하여 오랑캐의 장수와 졸개 몇 명을 맞추니, 적이 흩어져 갔다. 이에 이르러 적이 또 10여 대의 대포를 설치하고 남격대(南隔臺) 밖에 또 7, 8대를 설치하였는데, 대포의 이름을 호준(虎蹲)이라 하고 일명 홍이(紅夷)라고도 하였다. 탄환의 크기는 모과와 같고 능히 수십 리를 날 수 있었는데, 매양 행궁(行宮)을 향해 종일토록 끊임없이 쏘았다. 탄환의 위력은 사창(司倉)에 떨어져 기와집 세 채를 꿰뚫고 땅 속으로 한 자 가량이나 들어가 박힐 정도였다. (후략)
  • 출처 : 한국고전종합 DB <연려실기술> 제 25권 인조조 고사본말(仁祖朝故事本末)-병자노란(丙子虜亂)과 정축 남한출성(南漢出城)# 종종 DB사정으로 검색이 안되거나 링크가 말을 안들을 경우 안정화되기를 기다렸다가 검색어로 천자포, 혹은 신경진 천자포로 검색하면 된다.

최근의 연구로 의외의 사실들이 많이 밝혀지고 있지만, 익히 알려져 있는대로 조선의 화포들은 장거리 운용에 있어서도 유용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3.3 근접전 화력

천자총통의 사거리가 예상보다 짧다고 해서, 실제 전장에서 이들의 역할이 미약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현대인들이 선입견으로 당시를 판단한 오류이다.[24] 당시 개인화기 개념이었던 승자총통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의 총통들은 근접한 상태라고해서 전투력이 줄어드는 무기가 아니었다.

최근의 연구로 보면 조선군의 포수들은 근접사격을 주력전술로 삼았을 가능성이 크다. 1인 운용무기인 승자총통조차도 20발 이하의 조란환을 쏠 수 있어서 쓸만한 방어용 화기로 인식되었는데, 당시의 대형총통들은 무려 50~400발의 중형 쇠구슬을 조총보다 멀리서 발사할 수 있었다! 당장 후대 유럽의 대포에서 자주 발사하는 포도탄[25]도 근거리 발사용이다. 즉, 중세에는 화포라는 물건이 근접 사격도 상정한 물건임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 기록을 보아도 조선초기의 총통류 화기들은 엄폐물이 있는 상황(방어전, 해상전)에서 집단으로 기어올라오는 적들에게 산탄을 끼얹어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총통들이 가진 특유의 작고 운반하기 쉬운 모양[26]도 이러한 운용법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또한 조선군에서 천자총통급의 대형 화포를 꺼린 이유도 추측할 수 있다. 산탄을 끼얹는 방식으로 쇄도하는 적군을 막아야 했다고 생각해보면, 대형포탄 한방 쏘는 것보다는 화약을 여러 병사들에게 나누어서 사격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전략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3.4 평가 : 종합적 무기체계

조선총통이 당시로서 뛰어났던 이유는 다양한 거리에서 종합적인 대처가 가능하다는 점에 있었다. 근접전 화력은 훈련도가 떨어지는 조선병사들조차도 왜군을 거점에서 좇아내기에 충분했으며, 장거리 화력은 명나라와 청나라 군대도 놀랄 정도로 뛰어났다. 즉, 조선의 총통들은 화약 에너지를 가지고 모든 거리를 커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전에서 화포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집단적이고 유기적인 운용 시스템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자. 만약에, 화포를 갖춘 조선군에게 적들이 접근하면 양산형 소형화포인 지자/황자를 비롯한 무수한 철환이 쏟아진다. 산탄이 무서워 성곽/함선에 다가가지 않고 멀리서 맴돌면? 대장군전이나 신기전이 날아온다! 으으아악 이런 점에서 볼때, 조선 총통은 당대로서는 분명히 효율적인 무기체계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4 임진왜란 이후

임진왜란 이후 불랑기포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홍이포가 들어오면서 기존 총통류는 비중이 줄어들게 된다. 다만 불랑기포는 구조상 대구경으로 제작될 수 없는 등 구조적 문제로 인해 천자총통을 비롯한 전통 총통들은 조선 후기까지 계속 사용된다.
  1. 히스토리 채널 다큐멘터리에서 실제로 미사일 드립을 쳤다. 사실 미사일이라는 단어 자체가 넓은 의미/현대적 미사일 병기 출현 이전에는 투사무기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니 딱히 틀린 건 아니다.(...)
  2. 철로 주조된 대포에 비해 청동제 대포가 더 안정적이다. 위력과 신뢰성이 우수했던 나폴레옹포도 청동제 대포이다. 강철제 대포를 양산하는 것은 근대에나 가능했으므로, 유럽도 19세기 중반까지 철제대포뿐만 아니라 청동대포를 계속 사용했다.
  3. 참고로, 당시의 화약의 순도나 조합비로 인한 현대의 흑색화약과의 성능차를 생각해서, 현대 흑색화약을 당시 화약 넣던 양의 1/3만 넣고 쏜 것이다.
  4. 여기에는 드라마를 위한 이유도 있다. 실제 주력 화포인 지자총통이나 현자총통은 일반인들의 생각보다 크기가 작은 편이다. 현자총통의 경우 포신의 크기만 따지면 현대의 보병용 60mm 박격포와 비슷한 수준. 드라마에서는 대구경 화포 특유의 위압감을 표현해야 하는데 이런 크기로는 표현하기가 부족하다.
  5. 사실 중세 화포는 동서를 불문하고 화력이 문제가 아닌, 명중률과 사거리의 문제였다. 화력 자체는 현대 기준으로도 매우 높다. 잊으면 곤란한게 중세 시대에는 방어력이 필요하다 싶으면 철갑으로 도배하는 시대였다. 바꿔말하면 화약 무기에게 철갑을 확실하게 관통-파괴하는 위력을 요구하는 시기라고도 할수 있다. 화포는 근대 - 현대 시기까지 발전해도 같은 체급에서라면 화력 차이는 별 차이 없다. 명중률과 사거리 차이가 비교가 안될 뿐이지.
  6. 대항해시대에서 가장 낮은 등급의 포로 나오는 그 물건이다.
  7. 포탄이 크다 → 당대의 포탄은 재질이 약했으며, 크기만큼 에너지 낭비가 심했다. / 포신이 길고 큰 화포를 탑재한다 → 위력에 비해서 낭비되는 화약량이 늘어나고, 강철이 양산되기 이전에는 화포의 크기만큼 내구도도 약했으므로(청동합금은 비싸다!) 대형 화포를 실어나를 함선이 없다면 크기만큼 효율성이 급감한다. 유럽에서도 이에 대한 지적이 많았으므로, 19세기까지도 살상력이 비슷하면서 화약을 적게 쓰는 중소형 대포를 애용했다. 조선에서 필요했던 화포는 명백하게 후자에 속했다.
  8. 컬버린은 당시의 사격제원표가 남아있지 않아서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나폴레옹 시대의 롱건은 사각을 6도로 사격할 때 구경에 따라 2~2.5 km 정도였다. 그렇지만 이 거리에서는 명중률을 기대할 수 없었다.
  9. 롱건은 포탄의 속도가 빨라 반대편 현측을 관통해 빠져나가 큰 피해를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카로네이드 포는 포탄의 속도가 낮아 관통을 못하기 때문에 내부에서 이러 저리 튕기면서 2차 피해를 줄 수 있었다.
  10. 함수와 함미에 2~4문 정도 탑재하며 추격전에서 상대방 군함의 돛을 공격하여 속도를 떨어트리기 위한 용도로 탑재하는 함포이다.
  11. 초기에는 시험적으로 5급 프리깃을 개조해서 카로네이드 포를 탑재했으나 롱건을 탑재하지 않으면 짧은 사거리가 치명적인 단점이 된다는 것을 발견한 후에는 주무장이 6 파운드 롱건과 9 파운드 롱건이었던 등급외 함과 6급함들만 12, 24, 32 파운드 카로네이드를 주무장으로 탑재했다.
  12. 프리깃이 점점 대형화되면서 주무장이 9 파운드 롱건에서 12 파운드 롱건을 거쳐 18 파운드 롱건으로 바뀌었으며 나폴레옹 전쟁중에는 18 파운드 롱건을 주무장으로 하는 프리깃이 주력이 되었다.
  13. 구경이 30 파운드일 경우 30 파운드의 화약을 사용했지만 60 파운드일 경우에는 40 파운드만 사용하는 등 경험적으로 최적의 화약 사용량을 찾아내었다.
  14. 포신의 내부와 포탄 사이의 간격
  15. 이런 흐름에서 나온 무기 중의 하나가 스웨덴의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만든 레더 캐논(Leather Cannon)으로 포신을 극단적으로 얇게 만들고 그 주위를 가죽으로 둘둘 말아 보강한 초경량 대포이다. 당연히 내구성 문제로 금방 사라지고 만다.
  16. 이는 현대에도 마찬가지다. 육상용 장비는 해상용으로 전환할 때 큰 문제 없이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반면에 해상용으로 개발한 장비는 육상에서의 운용을 위해 크기와 무게를 줄이기 위한 추가 개발을 해야 한다.
  17. 물론 건조비용이 엄청나다 보니 영국은 이 함을 건조하기 위해 건함세를 걷었고, 이는 많은 반발을 사서 다른 여러 문제들과 합쳐져 내전이 일어나 결국 찰스 1세가 목이 잘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18. 당시 주조 대포는 포신의 두께가 균일하지 않아서 대포마다 성능이 다른 문제가 있었지만, 포신의 안을 깎아내어 대포의 두께를 균일하게 만드는 기술이 나오면서 이 문제을 해결하였다.
  19. 현재 남아있는 천자총통의 무게는 각각 300kg과 400 kg이고, 홍이포는 1.8 톤이다. 당시 청동은 비싸서 제작하는 비용도 홍이포가 훨씬 많이 들었을 것이다.
  20. 포탄이 포신 내에서 깨지면 파편들이 끼이면서 포신에 심각한 무리를 주고 심하면 포 자체가 폭발할수도 있다. 군대에서 총기손질 잘하라고 하는 이유도 총열 내부에 끼인 화약찌꺼기 때문에 위험하니까 그런건데 포탄 자체가 터지면...
  21. 엄밀히 말하면 새보(사보)를 사용하진 않으므로 표현하자면 APFS정도로 표현가능 할 듯
  22. 다시 말하면, 포도탄들이 배 앞쪽에서부터 후미까지 날아가며 진행방향의 모든 것들을 싹 쓸어버렸다는 거다.
  23. 당시 일본배는 강도가 떨어지는 녹나무, 삼나무로 만들었고, 한국배는 참나무, 소나무 등 단단한 나무를 이용했다. 게다가 목재의 기본적인 두께도 한국배가 더 두꺼웠다. 제작방법도 일본배는 판재를 맞대고 쇠못을 박아 고정하는 방식이었던데, 반해 한국배는 나무에 턱을 내어 짜맞추는 턱따기 이음 방식으로 배의 내구성면에서는 한국배가 더 좋은 방식이다.
  24.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기록에서 나타나는 조총의 살상거리는 50m 미만이다. 이것을 무시하는 것은 당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조선시대의 화포들은 조총보다도 장거리/근거리를 확실하게 제압할 수 있었다. 총통에 죽은 왜군이나 여진족이 바보였던게 아니다.
  25. 포도탄은 기병이 접근하거나 근거리에 보병대가 진을 치고 있을 때 포병들이 발악하는 형식으로 많이 써먹었다.
  26. 일단, 손잡이가 달려있다! 게다가 무게중심이 가운데 쏠려있고, 둥글둥글한 모양 때문에 운반하기가 쉬웠다. 근접전에서 쓰기가 매우 좋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