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조제

요의 역대 황제
8대 도종 야율사랄9대 천조제 야율아과서요 10대 덕종 야율대석
묘호없음
시호천조황제(天祚皇帝)
연호건통(乾統, 1101년 2월 ~1110년)
천경(天慶, 1111년 ~1120년)
보대(保大, 1121년 ~ 1125년 2월)
거란어야율(耶律)
거란어아과(阿果)
중국어연희(延禧)
생몰기간1075년 6월 5일 ~ 1128년
재위기간1101년 2월 12일 ~ 1125년 3월 26일


거란족이 세운 (遼)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천조제(天祚帝).

본명은 거란식으로는 야율아과(耶律阿果), 중국식으로는 야율연희(耶律延禧).

전 황제 도종의 손자로 아버지 야율준(순종(順宗)으로 추존)은 일찍 주살되어 그가 뒤를 이었다. 천조제는 어릴 때 아버지를 잃고 이것을 불쌍하게 생각한 할아버지 도종에 의해서 여동생 진진국장공주(秦晉國長公主)와 함께 길러져 양왕으로 책봉 되었다. 일시적으로 조부 도종은 조카 야율순(耶律淳)을 황태자로 삼으려 하지만 신하들의 견제를 받아 천조제가 황태자가 되었다.

그러나 즉위한 천조제는 어리석은 성격이며 정무를 돌아보지 않고 가신의 간언에 대해서는 처벌로 임하는 등 민심의 배반을 불렀다. 여진족 부락에 가서 완안아골타에게 춤을 추라고 했으나, 거절당하자 그를 죽이려고 하다가 신하들의 만류로 그만두었다. 외교면에서도 1115년에 요나라에 종속되고 있던 완안아골타의 완안부(여진족)가 금나라를 건국하여 독립하면서 토벌군을 파견했지만 오히려 대패하여 요나라가 쇠퇴하는 결과를 불렀다. 1114년 (金)나라의 태조 완안아골타(完顏阿骨打)가 요나라 동북변을 공략할 때 친히 정벌에 나섰으나 패배하였다.

1121년 남송, 금 연합군의 다굴을 맞고 1125년 응주에서 항복하여 금의 포로가 되었으며 이 때 요는 멸망했다. 그 후에는 금에 의해 해빈왕(海濱王. 바닷가에 사는 왕이라는 조롱의 의미)으로 봉해져서 조용히 지내다가 병으로 백두산에서 죽었다. 그 후 황족 야율대석은 중앙아시아로 피하여 서요를 건국했으며 천조제의 후손은 해릉양왕에게 주살되어 대가 끊겼다.

대송선화유사에서는 해릉양왕 때인 1156년까지 살아 있었다고 주장한다. 80대 노인이 된 천조제는 정강의 변때 금나라로 온 북송의 흠종과 함께 격구장으로 끌려와 말발굽에 밟혀 죽었다는데, 야사인 것으로 추측된다.

수호지에서 '야율휘'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역시 송나라를 괴롭히지만, 양산박애들이 아주 관광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