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로

崔承老
(927 ~ 989)

1 개요

신라 출신이자 고려 초기의 문신.

2 생애

몰락해가던 후삼국시대 신라 서라벌에서 927년 경애왕 치세에 최은함(崔殷含)의 아들로 태어났다. 신라 골품6두품으로, 신라 말의 문인 최치원의 후손이고 최언위의 사촌이다.

고작 3개월 갓난아기일 때 후백제 견훤이 서라벌을 침공해 경애왕을 죽이고 도시를 약탈하는 대사건이 일어났는데, 이 때 최승로는 아버지가 중생사(衆生寺)라는 절에 숨겨서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935년 신라 경순왕고려태조 왕건에게 항복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고려 개경으로 갔고, 12살 때 태조에게 불려갔는데 논어를 술술 읽어내 왕건이 감탄했다고 한다. 이 때 학생으로서 커리어를 시작해 고려 초기 문신으로 활동했다.

성종(고려) 때인 982년 그 유명한 '시무 28조'를 올려 고려 초기 국가의 기틀을 잡는데 큰 역할을 했다. 시무 28조의 내용은 28개 중 22개가 전하는데 대체로 유교적인 나라로의 변혁을 건의했고, 고려 왕 중에서도 약간 숭유억불적 성향이 강했던[1] 성종은 최승로를 총애해서, 최승로가 나이가 많고 건강이 나쁜 이유로 물러나고 싶다고 여러 번 청했지만 성종은 요청을 거절하고 계속 일하라고 몰아부쳤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989년에 사망했다.

시무 28조의 내용으로 본 최승로의 성향은 신하우대, 불교약화, 중앙집권, 신분제 강화. 즉 어떻게 보면 개혁이라기보다는 고려에 문벌귀족이 등장하게 되는 단초를 열게 된 셈이다. 단적으로 여기서 노비환천법이 등장해서 광종평민으로 풀어준 사람들이 다시 노비로 돌아가는 일대사건이 벌어진다.

3 창작물에서의 최승로

  1. 다만 조선시대처럼 본격적인 숭유억불은 아니다. 교과과정에서는 불교와 유교의 균형 정도로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