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忠粹 (?~1197)
고려의 무신으로, 최충헌의 동생이다. 종교는 불교다. 집권자였던 이의민의 아들 이지영에게 자신이 키우던 비둘기를 빼앗기자, 최충수가 이지영을 찾아가 돌려달라고 했는데 언사가 매우 거칠었다. 분노한 이지영이 가동을 시켜 최충수를 결박하게 하자, 최충수는 '장군이 손수 묶는 것이 아니라면 누가 감히 나를 묶겠는가'라고 말하였고, 그 기세를 장하게 여긴 이지영은 최충수를 놓아주었다. 그러나 이 일로 원한을 품은 최충수는 형 최충헌을 부추겨 반란을 일으켜 이의민 일가를 제거했다.[1] 이 때 이의민에게 직접 칼을 휘둘렀으나 맞지 않자, 최충헌이 나서 이의민을 죽였다고 한다.
형과 함께 명종에게 봉사 10조를 건의했으나 왕이 제대로 이행하지 않자, 형에게 왕을 폐위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 때 최충수는 사공 왕진의 왕진을 왕으로 옹립하려고 하였고[2] 최충헌은 왕민을 왕으로 옹립하려 하여 의견이 갈리게 되었는데, 박진재의 중재로 왕민을 옹립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때 옹립된 왕이 신종.
일약 큰 권력을 손에 넣게 되었으나, 이에 만족하지 못한 최충수는 태자비를 내쫓고 자신의 딸을 태자비로 만드려고 했다. 이에 최충헌은 최충수와 함께 술을 마시며 "자기 딸을 태자비로 세우려다 패망한 이의방의 전철을 밟을 생각이냐?"라고 타일렀고, 최충수도 천정을 바라보고 크게 한숨을 쉬며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형의 말을 따라 계획을 취소하였다.
...는 훼이크.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생각을 고쳐 먹고서는 자기 계획대로 밀고 나갔다. 자신을 만류하는 늙은 모친을 넘어뜨리는(!) 패륜까지 저질렀고, 결국 이 일로 형제 사이가 완전히 갈라져 골육상쟁이 일어나기에 이른다. 이 싸움에서 참패한 최충수는 파평군(지금의 파주시) 금강사까지 도주하다가 붙잡혀 참수당했다. 최충헌은 크게 통곡하며 "사로잡으라고 명령했는데 무엇이 급해 죽여버렸냐?"며 추격군들을 꾸짖고, 시신을 수습해 장사지내 주었다.
사극 무인시대에서는 김형일이 연기하였다. 역사적 행보와 마찬가지로 형보다 과격하고 충동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남춘자 작가가 그린 학습만화 '태조왕건과 고려왕조 500년'에서는 최충수가 죽은 뒤 최충헌이 홀로 진수성찬을 우걱우걱 먹으며 '옛날에는 동생이랑 같이 먹었는데...'하며 쓸쓸해하는 모습이 나온다. 최충수: 형님,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