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lla Parker Bowles
찰스 왕세자 | 프린스 오브 웨일스, 체스터 백작, 콘월 공작[1], 로스시 공작[2], 캐릭 백작, 렌프루 남작, 아일즈의 영주, 스코틀랜드 대공이자 왕실 최고시종관 (Prince of Wales and Earl of Chester, Duke of Cornwall, Duke of Rothesay, Earl of Carrick, Baron of Renfrew, Lord of the Isles, Prince and Great Steward of Scotland) 찰스 필립 아서 조지 (Charles Philip Arthur George) 1948년 11월 14일 ~ 현재 | |||||||
재혼 | 이름 | 카밀라 로즈메리 파커 볼스 (Camilla Rosemary Parker Bowles) 1947년 7월 17일 ~ 현재 | ||||||
결혼 | 2005년 4월 9일 |
카밀라 파커 보울스의 문장 |
영국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왕세자의 후처.
칭호 : 콘월 공작부인, [3] 카밀라(Camilla, Duchess of Cornwall)
1 소개
첫 결혼 전 이름은 카밀라 로즈메리 샌드이며, 전남편 앤드류 파커 볼스와 이혼한 뒤에도 그 이름을 유지해 카밀라 파커 볼스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잘 부각이 되지 않지만, 다이애나 스펜서와 비슷하게 귀족 출신이다.[4]
카밀라가 왕세자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 증조할머니[5]가 당신 고조할아버지의 정부였던 거 알아요?"[6] 하고 말했다. 그리고 왕세자와 카밀라는 조상님들의 바람기 습성을 고대로 물려받아 대를 이어 불륜 행각을 보였고, 파렴치하게도 세기의 사랑을 나눴지만 세간의 비난에 희생당한 피해자 코스프레를 철저히 했다. 그리고 저 코스프레에 속아 넘어간 사람도 꽤 많다는 것이 함정(...)
2 직위
일단 왕세자와 정식으로 결혼한 뒤 정해진 호칭은 다음과 같다.
'웨일스 공작부인(=왕세자비), 체스터 백작부인, 콘월 공작 부인, 로스시 공작부인, 캐릭 백작부인, 렌프루 남작부인, 아일의 레이디, 스코틀랜드 공작부인, 빅토리아 여왕 훈장의 데임 그랜드 크로스이신 전하(Her Royal Highness The Princess of Wales and Countess of Chester, Duchess of Cornwall, Duchess of Rothesay, Countess of Carrick, Baroness of Renfrew, Lady of the Isles, Princess of Scotland, Dame Grand Cross of the Royal Victorian Order)'
위에서 보다시피 카밀라는 일단은 왕세자비(웨일스 공작부인)의 직위를 공식적으로는 가지고는 있지만, 왕태자비(妃) (Princess) 칭호를 공식석상에선 쓰지 못한다. 또한 다이애나 스펜서가 가졌던 찰스 왕자비(The Princess Charles)의 작위는 갖지 못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는 각각 한 단계 낮은 직위인 콘월 공작부인과 로스시 공작부인이라고 부른다. 자세한 이유는 아래 항목 참조.
3 일생
3.1 불륜의 시작
1972년 당시 첫 남편이자 약혼자였던 앤드류 파커 보울스의 소개로 찰스 왕세자를 만났다. 찰스는 첫눈에 카밀라에게 반했지만 그가 입대하면서 이들의 관계는 끊어졌고, 카밀라는 찰스의 마음을 알면서도 그를 기다리지 않고 앤드류와 결혼했다. 카밀라의 결혼 소식은 찰스에게 큰 충격을 줬다고.
하지만 찰스가 제대하자 바로 다시 만났으며, 앤드류와의 사이에서 아들 톰과 딸 로라를 낳으면서도 불륜 행각은 계속 이어갔다. 최초로 약혼녀였던 카밀라를 찰스에게 소개시켜 준 카밀라의 남편 앤드류는 아내의 불륜을 알면서도 아내의 내연남이 왕세자라는 이유만으로 묵인하고 있어야만 했다.
그러다 1981년에 찰스 왕세자는 다이애나 스펜서와 결혼했다. 사실 원래 찰스는 다이애나 스펜서의 친언니인 새라를 왕세자비로 삼으려 했으나, 새라가 일종의 말실수를 하자 왕실은 언니보다 더 순수한 성격의 동생인 다이애나를 다시 낙점했다. 또한 카밀라는 당시 만 20살의 어린 나이였던 다이애나가 더 휘두르기 쉬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찰스에게 다이애나와 결혼하는 것을 적극 추천했다고 한다. 천하의 개썅년 찰스-다이애나의 결혼식때 다이애나의 드레스를 일부러 폐지처럼 바스락거리게 종이같은 질감으로 골라준 장본인으로 못된년.. 하지만 이 드레스는 다이애나의 미모빨을 받아 왕족이 입은 최고의 드레스로 선정되었다.
이 때에도 당연히 카밀라와 불륜을[7] 지속하고 있었고[8] 왕세자 부부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사실 결혼 직전까지 다이애나는 찰스가 약혼녀인 자신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딴 여자를 만나는 행실을 보며 결혼을 몹시 망설였다고 한다. 이미 이때 찰스가 카밀라와 주고 받은 편지며 선물을 발견했었다고. 그러나 이미 약혼이 발표된 상태였고, 당시에 파혼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으며 친정 식구들까지 결혼하라고 강요하는 바람에 결국 반강제로 결혼해야 했다. 그렇게 결혼한 뒤에 겉으로는 잘 사는 듯했지만 찰스는 여전히 카밀라를 만나고 다녔고, 결국 다이애나는 왕자들을 낳고 성실한 공무로 영국인들의 인기를 얻어 입지를 다지기 전까지는 찰스의 불륜을 알고도 한동안 휘둘리며 살아야 했다.
1990년에 둘 사이의 대화를 폭로한 테이프가 언론에 공개되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 사실 오래 전부터 부부 사이가 끝난 거나 다름 없었던 찰스와 다이애나는 1992년부터 공식적으로 별거에 들어갔다. 그러다 1996년에 다이애나는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찰스와 카밀라의 불륜 사실을 폭로해 버렸고, 어떻게든 장남 부부의 이혼만은 막으려 했던 엘리자베스 2세는 그 인터뷰를 보고 이제 다 끝났다 생각했는지 찰스를 불러들여 이혼하라고 지시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해 중순에 결국 찰스와 다이애나는 이혼하고 말았다. 겨우 자유를 되찾은 다이애나에게 많은 동정과 응원이 따랐고 다이애나를 저 상황으로 내몬 찰스와 카밀라에게 엄청난 비난이 따랐다.
설상가상으로 이혼하고 고작 1년 뒤인 1997년 8월에 다이애나가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급사했는데, 다이애나를 아꼈던 많은 영국인들과 전 세계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애통해하며 찰스와 카밀라를 더더욱 비난했다. 여담이지만 이때 카밀라에 대한 비난 여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고 한다. 심지어 카밀라가 베이커리에 왔을 때 그녀를 알아보고 빵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는 루머도 있었는데 물론 관계자들은 부인했다.
참고로 카밀라는 찰스보다 나이가 많다. 1살 차이긴 하지만.
3.2 인생의 승리자?
세간의 비난과 각종 논란 속에서 2005년 4월 9일에 찰스 왕세자와 정식으로 결혼했다.[9]
찰스 왕세자의 현재 부인이므로 전하(Her Royal Highness)의 경칭은 받았지만, 국민의 반발 때문에 왕세자비(Princess of Wales) 칭호는 대외적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결국 왕세자비와 찰스 왕자비(The Princess Charles)에 해당하는 비(妃, Princess) 대신 공작부인(Duchess)를 쓰게 된 것이다. 그래서 콘월 공작 부인(Duchess of Cornwall)으로, 스코틀랜드에서는 로스시 공작 부인(Duchess of Rothesay)으로 불린다.
게다가 그녀는 결혼 계약에 의해 찰스가 왕이 되어도 왕후(王后, Queen Consort)의 칭호를 받기는 하지만 위처럼 대외적으로는 한 단계 낮은 왕비(王妃, Princess Consort)이라는 칭호를 쓰도록 내정되었다. 사실 헌법부에서는 찰스가 즉위한다면 카밀라가 왕후 칭호를 쓸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으나, #[10] 하원의 반대와 국민의 부정적인 여론 때문에 저리 되었다.[11] 일단 법률상으로는 문제가 없기에 실제로 찰스 왕세자가 즉위하면 상황이 바뀔 가능성이 없진 않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재혼한 뒤에 한동안 부적절한 처신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이 사치 문제. 명품 브랜드의 옷과 가방을 마구잡이로 구입하고, 한 번에 2만 5천 달러의 수당을 받는 헤어 디자이너를 고용한 것이 알려져 안 그래도 먹던 욕을 더 먹었다. 대인지뢰 제거운동 등 활발한 사회운동을 벌이며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 영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다이애나 스펜서와 대조되며 더더욱 비난받았다.
그 후엔 대체로 찰스 왕세자와 카밀라는 조용히 지내고 있다. 그러나 2011년 왕세손의 결혼식 때 윌리엄의 의붓어머니이자 왕실의 일원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게 보인다는 평도 있었다. 영국 왕실로서는 명색이 왕세자의 부인인 카밀라를 저리 대우하긴 뭐하다는 판단을 내렸는지, 결혼 7주년이 되는 2012년 4월 9일에 엘리자베스 2세가 로열 빅토리아 훈장(Royal Victorian Order)의 여성 최고 서열인 데임 그랜드 크로스(Dame Grand Cross)를 수여함으로서 왕실에서의 카밀라의 입지가 한층 강화되었다. # 이대로라면 왕세자가 즉위했을 때 세간의 반응이 어떠하든 간에 정식으로 왕후 작위를 받을 가능성도 크다. 실제로 영국 내에서도 '그래도 왕세자의 아내이고 장차 왕의 아내가 될 사람이 '왕후' 작위를 못 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응도 심심찮게 있다고 한다.
물론 다이애나의 인생을 망쳐 놓으면서까지 카밀라를 평생 지극히 사랑한 찰스는 결혼할 때부터 세간의 부정적인 반응은 모조리 무시한 채 '내가 즉위하면 카밀라가 왕후다'라고 공공연히 카밀라를 왕후로 만들어 주려고 선언하고 다녔다. 하지만 지금 영국의 여론은 찰스가 왕이 되는 사태가 일어나면 왕정을 폐지한다는 여론이 크다. 일단 왕에 등극하고 국민 여론이 나빠지면 아들에게 양위할 가능성도 크다. 예전에도 이렇게 불륜으로 결혼한 경우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
게다가 세월이 약이라고 시간이 흐르며 고인이 된 다이애나가 거의 잊혀지자 엘리자베스 2세의 다이아몬드 쥬빌레 같은 큰 공식 행사에서 왕실 맏며느리 노릇을 하며 점점 인정받고 있다. 사실 해리는 진작부터 카밀라를 계모로 인정해 예우하고 있었다. 또한 그녀에게는 의붓 며느리가 되는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조차 공식석상에서 '좋으신 분'이라고 칭찬할 정도. 하기야 싫어하더라도 공식석상에서 시어머니에게 욕할 수는 없는 노릇이긴 했겠지만, 사실 케이트의 절친한 친구가 카밀라의 친아들인 톰과 결혼하여 그 며느리가 됐기 때문에 전부터 돈독한 사이였다고 한다.[12] 사실 불륜이 지속되던 기간에도 엘리자베스 2세를 비롯한 왕실 어른들에게는 평판이 좋았다고 한다. 찰스보다 더한 인기를 누린 다이애나를 고깝게 본 그들로선 순종적인 카밀라에게 호감을 품을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었다. 한마디로 지금 자리에서 인정받기까지 카밀라도 부단히 노력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여담이지만 불륜일지언정 몇십 년 넘게 남녀관계 유지한 건 분명한 사랑이니 함부로 비난해선 안 된다고 동정하는 여론도 꽤 많아졌다고. 실제로 찰스와 카밀라가 결혼할 때 카밀라에게 감정이입한 미국의 중년 여성들이 카밀라에게 지지를 많이 보냈다는 기사가 뜬 바 있다. 카밀라가 불쌍하면... 다이애나는? 하지만 대부분은 '세기의 불륜'이라며 비난하고 카밀라의 이미지는 좋지 않다.
4 그 이후
2005년에 재혼하고 쭉 잘 사는 듯했지만 2015년부터 카밀라와 찰스 왕세자의 불화설이 간간이 돌았다. 다만 저 불화설이 사실이라 해도 이제 와서 둘이 이혼할 리는 없다는 견해가 정설이다.- ↑ 전통적으로 왕의 적장남에게 주어지는 작위로 불륜 끝에 찰스와 결혼한 카밀라의 직위가 콘월 공작부인인 이유가 여기 있다.
- ↑ 이건 스코틀랜드 왕위계승자의 작위다.
- ↑ '왕실 적장남의 부인'라는 칭호. 그렇다면 왜 다이애나 스펜서와 달리 카밀라는 웨일스 공작부인은 아니냐, 법적으로는 맞으나 공식적으로 프린세스를 쓸 수 없다. 왕실 후계자를 낳는 왕세자비의 의무를 다한건 다이애나기에 카밀라는 '왕실 후계자의 비'로는 인정하지 않고 '장남의 부인'으로만 인정한다는 뜻.
- ↑ 하지만 다이애나 스펜서는 백작의 딸이였던 반면 카밀라는 남작의 외손녀(남작의 딸의 딸)이었으니 나름 큰 차이가 있다. 게다가 다이애나의 가문은 현 윈저왕조보다도 역사가 유서깊은 백작가문이다. 백작은 고위 귀족이므로 백작의 딸인 다이애나는 레이디 칭호를 가진 반면, 카밀라의 어머니는 남작의 딸로 더 낮은 아너러블 칭호만 가지고 있었다. 의전서열에서의 의전 순위도 백작의 딸이 남작부인(같은 남작가 식구들이라 하더라도 당연히 남작 부부와 후계자인 아들, 차자 이하의 아들들과 며느리, 딸들은 서열이 천양지차다. 이건 남작가 뿐 아니라 모든 귀족가에 동일한 사항. 공작의 차자는 후작의 장자보다 아랫서열인 식이다. 그런데 가주의 부인인 남작부인이 백작의 딸보다 뒤쳐지는 건 고위 귀족과 하위 귀족 사이의 서열상 차이가 그만큼 큰 것이다.)보다 높다. 이건 생득권을 더 중시하는 영국 여성 의전과도 관련이 있지만. 물론 양판소의 영향으로 남작 작위가 상당히 하찮게 여겨지는 부작용이 있지만, 일단 유작귀족 자체가 영국 전체에서 얼마 되지 않는다. 다만 그 안에서도 서열이 갈리는 것 뿐이지 남작의 외손녀만 되더라도 흔히 보는 사람들은 아니다. 일례로 카밀라의 동서인 요크 공작부인과 웨식스 백작부인(엘리자베스 2세의 (전) 며느리들)도 귀족의 먼 후손이긴 하나 조부대에는 귀족 작위를 가진 조상이 없다. 카밀라의 출신은 귀족은 맞지만 백작의 딸인 다이애나에 비해서는 뒤쳐지는 것.
- ↑ 이름은 앨리스 케펠이며 에드워드 7세의 마지막 정부. 이 사람은 카밀라가 태어날 때까지 살아있었지만 카밀라가 태어나고 2달 뒤에 이탈리아에서 사망했다.
- ↑ 다만 20세기 초반에 와서 왕의 정부라는 위치가 전세기들에 비해 낮아지긴 했어도, 당시까지만 해도 왕의 정부는 사교계에서 인정받는 지위였다.
- ↑ 사실 카밀라는 학구열 높은 찰스 왕세자와 얘기가 잘 통할 정도로 교양도 있고 화술도 좋았다.
그렇게 멀쩡한 교양으로 남편 두고 왕세자랑 바람을 피운다찰스가 몇십년이나 카밀라와 불륜을 지속한 이유 역시 카밀라와 말이 잘 통해서라고. 뿐만 아니라 카밀라는 왕실에 대해 잘 알고 살뜰히 왕실 어른들을 대우했기에 엘리자베스 2세는 카밀라를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찰스보다 봉사활동 등으로 인기가 높은 다이애나를 견제하고 있었다. 심지어 다이애나가 남편의 불륜에 대해 시어머니에게 얘기하자 엘리자베스 2세는 "왕세자는 구제불능이구나" 라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아들의 불륜을 사실상 방관했다. 남편의 불륜을 알았음에도 참고 의무를 다해 왕자들을 낳아 왕실에게 순종적이었던 다이애나는 자신을 카밀라와 찰스의 사이에 끼어든 사람마냥 대하는 왕실과 시어머니에 대해 배신감이 컸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혼발표 후 다이애나는 매스컴에 대고 왕실에게 들으란 듯이 "우리의 결혼 생활에는 늘 셋이 있어서 좀 시끄러웠어요." 라며 체념하는 인터뷰를 한 것은 그 때문이다. - ↑ 이 때 불륜 사실이 국민들에게도 소문나는 바람에 카밀라가 봉변을 당했다. 길을 가다가 아줌마들에게 붙잡혀 머리를 뽑히고 물세례와 주먹질을 당했다고 한다.
- ↑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모후이자 찰스 왕세자의 외할머니인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이 살아있었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엘리자베스 왕대비는 심슨 부인과의 트러블로 인해 이혼녀와 불륜을 매우 싫어했기 때문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해당 항목 참조.
- ↑ 참고로 귀천상혼으로 취급받으면 왕후의 칭호를 사용할 수 없다. 그런데 헌법부는 이와 상관없다고 판결했다.
- ↑ 영국 여론은 카밀라와 찰스 왕세자에게 부정적이며, 찰스 왕세자가 아예 왕위를 장남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스 왕세손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 ↑ 여담이지만 케이트가 왕실에 입성하여 카밀라와 캣파이트를 떠 주길 바란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케이트의 태도를 볼 때 물거품이 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