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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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mo의 수록곡에 대해서는 Noblesse Oblige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1 원 의미

Noblesse oblige[1].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귀족은 의무를 진다'는 뜻의 프랑스어 표현이다. 부와 권력은 그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수반한다는 의미를 가지며, 주로 사회 지도층 혹은 상류층이 사회적 위치에 걸맞는 모범을 보이는 행위를 표현할 때, 혹은 그 의무를 어기는 이들을 비판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심심하면 많이 쓰이는것과 달리 JTBC 비정상회담에서도 이야기가 나왔는데, 프랑스어권 화자들은 "그런말이 없는건 아니고, 있는 말이긴 한데 거의 쓰이진 않는 말"이라고 한다.
타국의 사례를 들어 우리나라 현실을 비판하는 용도로 사용하기 때문.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 사자성어로는 심계천하(心系天下)[2] 등이 있다.

2 예시

2.1 칼레의 시민

<칼레의 시민> - 오귀스트 로댕 작. [3][4]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적인 예시로 꼽히는 이 일화는 백년 전쟁 시기에 배경을 두고 있다. 영국과 오랜 시간 맞서 싸우던 프랑스의 칼레 시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항복하겠다는 뜻을 전하자, 에드워드 3세는 사절단에게 "모든 칼레 시민의 목숨을 살려 주는 대신에 그 동안 저항한 죄를 물어 6명의 대표를 처형하겠다."는 말을 전한다. 전 시민이 살기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6명은 누가 되야 하는가 의견이 분분하던 가운데, 도시의 최고 부호였던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제일 먼저 자신이 죽겠다고 나섰고, 그 모습을 본 많은 칼레의 고위층들이 스스로 죽음을 자청하여 그 중 6명이 뽑혀 나왔다. 교수대에서 사형당하기 직전, 이들은 오랜 세월 임신을 하지 못했었던 영국 왕비가 임신에 성공해 왕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요청하면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지게 된다. 이 극적인 일화는 이후 독일의 극작가 게오르그 카이저에 의해 '칼레의 시민'이란 희곡으로 쓰여지기도 했으며, 조각가 로댕에 의해 프랑스에 동명의 동상이 세워지기도 했다.[5]

다만 칼레의 시민이야기가 이 표현의 기원이 된 것은 아니며, 'Noblesse oblige' 라는 표현 자체는 19세기 프랑스 극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의 희곡 골짜기의 백합(Le Lys dans la Vallee)에서 처음 등장한다.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일리아드에서도 유사한 개념이 언급되는 등, 즉 고대 로마 시절부터 쭉 존재했었던 개념이 통일된 표현으로 정립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2 해외 사례

일반적으로 영국 왕실과 귀족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적인 모범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전쟁 시 귀족들이 자원하는 모습으로 많이 나타나는데, 아예 왕실 내부 규율과 영국 병역법에 왕실과 왕실에 속한 귀족들은 죄다 징병검사 후에 예외없이 장교로 군대에 징집을 시키기로 규정을 되어있다.[6]

귀족 자제들이 주로 가는 영국 최고 명문사학 중 하나인 이튼칼리지 출신으로만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5619명이 참전해 1157명이 죽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4690명이 참전해서 748명이 죽었다.# 오죽하면 대영제국의 몰락의 원인 중 하나가 이렇게 엘리트 계층이 원체 많이 죽어서라거나, 전후 작위 수여가 다른 시기보다 많았던 것이 이때 대가 끊긴 귀족집안이 너무 많아서 그 벌충용이라는 우스갯 소리가 나올 정도. 해군사관학교 출신[7]으로 장교 출신인 찰스 왕세자[8]의 동생인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포클랜드 전쟁 당시 헬리콥터 파일럿으로 참전했으며[9], 찰스 왕세자의 아들인 윌리엄 왕세손도 육사를 나와 육해공을 모두 순시하고 공군 헬기 조종사로 복무하다가 할머니 여왕이 왕실 전속 부관으로 불러들었으며, 말썽 피우고 다니는 해리 왕자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장교로 참전했다. 물론 호위 병력으로 SAS가 줄줄이 따라다녔지만, 국방부는 "부대원들이 테러리스트들의 표적이 될 수 있으므로 본국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다"고 발표[10]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군 복무를 위해 훈련을 받던 왕자들은 "아 내가 옛날에 그 왕자를 발로 뻥뻥 차고 다녔지!" 라고 말하고 싶었던 선임들 때문에 하나같이 훈련소에서 신나게 굴렀다고 한다(...). 일례로 해군사관학교 교장이 지나가다 한쪽 구석에서 생도였던 왕자가 훌쩍거리길래 왜 우냐고 물어보니까 선배들한테 갈굼당해서 라고 했다는 카더라도 있다.

파일:Attachment/Queen Elizabeth II WW2.jpg

엘리자베스 2세제2차 세계대전 당시 차량 정비 장교 보직[11]으로 돌아다닌 건 꽤 유명하다. 그런데 엘리자베스 여왕은 1926년생으로 나치독일의 영국공격이 한창이던 1941년에는 겨우 15세였다. 소년병? 아니 소녀장교?? 당연히 실질적으로 참전 했다기 보다는 전시에 왕실도 대중들과 함께 고통분담을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봐야 한다.
게다가 영국의 귀족들은 봉건제하에서 귀족들에게 부과된 병력동원의 의무가 완전히 사라진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소 피트가 추진한 세제개편을 별 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바로 귀족들이 가진 부동산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해 부과하는 소득세. 프랑스 혁명의 원인 중 하나가 토지보유를 대가로 부과된 병력동원의 의무가 사라진 귀족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려는 시도가 좌절되면서 악화된 프랑스 정부의 재정상태였고, 아시아 대륙의 귀족들이 하나같이 보유한 재산에 대해서 과세받는 것을 격렬하게 저항했다는 점에서[12] 영국 귀족들은 엄청난 결단을 한 것. 다만 영국 귀족들이 정말 백성을 끔찍히 아껴서 이를 실천한 것은 아니며, 프랑스 혁명과 같은 민중혁명에 대한 공포, 혹은 나폴레옹의 유럽 제패와 같은 국가적 위기상황에서의 양보라고 봐야 한다.세금 좀 내기와 성난 민중들 손에 참수당하기/나라 망하기 중 양자택일[13]

고인이 된 다이애나 왕세자빈은 지뢰 제거 운동 등 반전 운동에 앞장서면서 전세계를 돌아다녔다. 이 점 때문에 그녀의 죽음이 죽음의 상인이라고 불리는 무기상인들의 테러라는 음모론이 나오기도 하였다.

비단 귀족만이 아닌 빌 게이츠이나 워런 버핏 등의 부유층들도 자선사업 활동을 벌이면서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기도 한다. 미국의 자본가들은 기부를 사회적 의무이자 또 하나의 투자 수단으로 본다. 즉, 사회에서 이득을 봤으니 당연히 그 부를 돌려줘야 한다. 또한 이는 우리 회사의 이미지를 좋게 심어주어 결과적으로 우리 회사는 더욱 큰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14] 설명이 덜된부분을 더하자면 미국은 자선사업이 아니라 기부를 통해서 세금감면혜택을 받을수있다. 그 절세율이 상당하기 때문에 미국의 부자들은 기부를 하는것이고 따라서 미국의 부자들은 세금내기 대신 기부를 통해 기업 및 개인의 이미지 개선 및 인지도 상승을 꾀하고 미국정부는 반대급부적으로 사회환원이 되니 결과적으로는 상부상조.

의외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대숙청과 독재로 유명한 이오시프 스탈린에게도 관련 사례가 있다. 독소전쟁 당시 성년이던 그의 아들들 전원이 전쟁터에 보내졌고, 장남 야콥은 중위로 복무하던 중 키에프 포위전에서 독일군에 포로로 잡혔다.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군에 잡힌 프리드리히 파울루스와의 포로 교환 협상을 제의했으나 스탈린은 정 그러면 모든 소련군 포로들을 데려와서 독일군 포로들과 교환하자. 수많은 소련인들이 자기 자식을 전쟁터에 보냈는데 내 아들 하나만 뺄 수 없다"는 말로 응수했고. 결국 수용소에서 죽었는데, 탈출을 시도하다 죽었다고 하였으나 현재 조사결과는 자살에 가깝다.[15]

한국전쟁제임스 밴 플리트(미8군 사령관)의 아들도 전사했다.[16] 심지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둘째 아들인 존 아이젠하워는 아버지에게 '만일 포로로 잡히면 자결하겠다.'면서 생떼를 써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17] 그 외에도 제임스 스튜어트도 전쟁에 참가하여 지옥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꾹 참고 자기 아들을 군대에 보냈다.

2.2.1 반대 사례

정보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몇십년 전만해도 유럽 왕실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본받자는 구호만 한국에 가득했었는데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유럽 왕실이 일으킨 병크 역시 발굴되고 있는 중.

예를 들자면 영국엘리자베스 2세의 경우는 워낙 왕실이 청렴해서 빈민기금으로 난방을 해야할 정도이며, 보다못한 국민들이 요트를 여왕에게 바치는 일도 있었다.

또한 스페인의 민주화를 실현한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스페인의 청년 실업에 잠못이루다가 동물보호를 위해 아프리카를 방문중 엉덩이가 부러져서 지팡이를 짚을 정도로 국가에 헌신했다.

스웨덴칼 16세 구스타프경찰과 스웨덴 여성들까지 참여한 성스러운 왕실의식을 하면서 국민들의 변함없는 지지를 과시했다.[18]

국왕만 모범적인 활동을 하는게 아니라 후계자인 왕자들도 부모를 본받아서 모범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전 여왕 베아트릭스 의 가족들은 매우 모범적인[19] 구성원으로 유명하다.

링크 열어보면 알겠지만 반어법(…)이다. 자세히 읽어보면 이들이 결코 순수한 애국자이자 진정한 상류층인 것만은 아니고 비도덕적인 행태도 자주 보이는 걸 알 수 있다. 유럽 왕실이 정말 모범적인 엘리트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역시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걸 보여준 좋은 예시.

사실 자세히보면 혼란기에 사고친 왕족들도 많다. 국왕 경력이 있던 영국의 에드워드 8세는 친독적인 성향이 있어 2차 대전 기간 동안 바하마 총독으로 쫓겨났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의 왕족들은 전쟁을 일으키는데 동조했고 전쟁이 패전으로 끝나자 다시는 왕좌에 복귀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유럽의 왕족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잘 실천한 게 아니라 비교적 잘 실천한 왕족만이 살아남은 것이며 아무리 이전까지 잘했다고 해도 국민사정도 나쁜데 깽판을 쳤다가 왕실의 위상과 존재가 위기에 처하는것은 스페인의 예로만 봐도 분명하다. 영국의 예를 봐도 분명하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고위층이 가진 도덕적 의식이 선행된게 아니라 고위층들이 시대의 변화에 맞춰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고 그것이 의무화되어 도덕적 의식으로 정착한 사례에 더 가깝다.한 마디로 적당히 우리가 잘해주면 쟤들이 우리를 위협하진 않겠지가 기본사상이다 그리고 애초에 왕족은 병역 의무가 주어진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닌 각종 의전에 대한 급부이다.

2.3 대한민국

한국의 기득권층은 소수를 제외하면 노블리스 오블리주와는 거리가 멀다. 잊을 만하면 뉴스에 보도되는 병역기피, 재산 해외도피, 원정출산, 이중국적, 2005년의 대규모 국적포기 사태, 땅콩 회항이나 라면 상무 사건 등 기득권층이 자신의 재력과 사회적 위치를 스스로의 보신을 위해 남용하는 사례들은 이런 주장의 근거가 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거리가 멀기는 커녕 방향부터 정 반대를 향해 달려가는 사례가 수도없이 많고 현재진행형으로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물론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데는 원인이 있는데 대체로 일제강점기, 한국전쟁5.16 군사정변 후 군사 독재를 겪는 등 혼란스러운 근현대사를 거친 한국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특권층들의 사회적 위치에 걸맞는 책임의식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다는 것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최근 헬조선 드립도 살기 힘든 대한민국의 상황 속에서 형성된 서민들의 이런 사회 지도층 혹은 기득권층의 부도덕한 행위에 대한 반감이 주 원인이며 여기에 상대적 박탈감이 더해진 것. 그리고 이런 분노는 가면 갈수록 강해지는 추세이다.

물론 기득권층 중에서도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던 유일한 박사,김용환,이회영처럼 훌륭한 인물도 있고 대중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모범적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극소수나마 분명히 존재하므로 성급한 일반화는 삼가야 할 것이나 적어도 대중들에게 알려진 기득권층들 중에 모범적인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찾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하겠다.

역사적으로 봤을때 전통적으로 국란기에 전 재산을 털어 의병을 모집하거나 환란기 정세에 띄어드는 이들은 대부분 지역 유지나 양반층이었다. 임진왜란때도 그러하였으며 구한말의 의병장들 또한 대부분 실력가들이었다. 비록 현대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상과의 근본적인 괴리는 있을지 몰라도 한국 역사에서 국난에 뛰어들었던 권력자나 재력가는 없었다고 단정하는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실제적인 상황과 체감하는 상황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 이유는 자극적인 기사를 쓰는 기자들로 인해 일단 논란이 생기면 충분한 사실 확인 없이 기사가 쓰여지고 점점 부풀려지고 확산되지만 정정보도는 잘 하지 않고 대중의 뇌리에 남지도 않는 반면 선행에 관한 기사는 별로 쓰이지 않고 이슈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해외의 사례와 비교하는 경우 더욱 그러하다. 국내에 들어오는 상당수의 해외 기사는 독자취재보다는 그 국가의 기사에서도 특히 화제가 되는 기사를 그대로 배껴서 번역하거나 바탕으로 쓰여지는데 국내에까지 전달될 정도로 이슈가 된 선행관련 기사는 그 나라에서도 드물기 때문에 화제가 된 것이고 국내에도 조회수가 높게 나오니 기사로 쓰여진 것이다. 반면 논란이 되는 해외 기사는 국내에 사례가 많아 대체제가 있으니 기사를 써도 비교적 화제가 되지 않으니 실제로 일어난 사건 대비 국내까지 알려지는 비율이 선행관련기사보다 낮다.
실제로 한국발의 그런 선행류 기사들, 예를들면 최근 입법된 김영란법 같은 소식이 중국에 들어가자 중국 네티즌들은 한국을 본받자는둥 우리와 똑같은 반응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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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해외 역시 선행과 악행의 상대치가 국내와 비슷하다 해도 나라도 많고 사람도 많으니 선행이 일어난 절대치는 국내보다 많을 수 밖에 없는데 특정 어느나라의 선행이 어느정도라고 인식하고 기억하기 보다는 막연히 뭉뚱그려서 해외에는 선행이 많이 일어난다고 여기게 된다. 따라서 해외뉴스를 보면 실제보다 과장되게 인식해 살기 좋다고 느끼게 될 수 있다.

3 비판

위에도 언급된 것처럼, 사회 지도층이 대중에게 모범을 보이는 것이 반드시 도덕적인 목적만을 위한 것은 아니며, 개인 혹은 단체의 이미지 관리나 감세 혜택 등의 실용적인 이유가 수반되는 경우가 많다.

현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인 부유층의 기부, 재단 설립이나 자선행위에는 감세 혜택을 노린 것이라는 비판이 늘상 따라붙는다. 일례로 기업의 조직적인 기부를 통한 사회 환원은 기업과 정부, 그리고 노동자와 기업가의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던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록펠러카네기로 대표되는 미국의 거대 기업이 생존을 위해 택한 방법들 중 하나기도 했다. 원래는 세금으로 내야 할 금액을 자선, 혹은 재단 설립을 통한 감세 혜택을 받고, 증여를 통한 증여세를 부과받지 않으면서 재단의 명의를 차근차근 2세, 혹은 자신의 가신들에게 돌리는 방법을 통해 감세효과를 누리는 동시에 명성까지 얻을 수 있었던 것. 이를 통해 록펠러는 단순한 갑부가 아닌 사회와 재계의 원로 및 명사가 되는데 성공했다.

지나치게 엘리트주의적인 느낌이 강하다는 이유로 이 단어의 사용이나 그에 입각한 일체의 개념 자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인, 기업가의 아들이나 서민 김모씨의 아들이나 똑같이 병역법 앞에 동등하게 국가에 대한 의무를 지는 대상인데 왜 전자의 것을 더 가치를 부여해주냐는 식. 선민사상적인 느낌도 있고, 부자가 되어야 사회에 봉사할 수 있다는 식의 성공지향적 사고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위에 언급한 실용적인 이유에서 더 나아가서 다음과 같은 비판도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그 자체가 기득권 계급과 그렇지 않은 위치의 계급 격차를 인정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시민 사회에서 의무와 권리는 항상 똑같이 다니게 되므로, 기득권층의 이런 의무는 결국 그들이 기득권을 가지는 것을 합리화시키고 지배 계급이 피지배 계급의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것.

그래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흔한 좋은 이미지와는 다르게, 진보좌파들이 본질적으로 싫어하는 개념이다. 다른 면에서 자유지상주의자본가, 신자유주의를 대변하는 우파들도 극히 싫어하는 개념이다. 전통적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귀족 계급을 대변하는 보수주의자들이 내세우는 개념이며[20] 귀족이 없(던)는 국가에서는 '사회 지도층'들의 의무로서 강조된다.[21] 그러나 실질적으로 상류층의 부담을 늘리는 정책에 상류층이 기꺼이 동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일부 유명 부자들의 기부행위로서 실천되는 정도이다.

4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기득권 층의 강제적 의무?

'청빈론'이 아직도 대세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에선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더 집중적으로 부각되는 면이 있으며, 기득권 층이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의무라는 인식 또한 널리 퍼져 있다. 대표적인 예로 세월호 참사 당시 일부에서 지나치게 연예인이나 기타 상류계급에게 '왜 기부를 하지 않느냐? 기부를 안하다니 잘못이다.' 라는 식의 비난이 이어져 논란이 일기도 했고 조용히 선행을 베풀려던 일부 연예인들이 해명을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부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다. 사회문제는 근본적으로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신경써야 하는 사안이며, 부유층에만 책임을 지우는 강제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이유는 없다는 것.

자본주의는 근본적으로 개인의 노력으로 부를 쌓는 것을 권장하고 있고 그 대가로서 부를 누릴 권리가 주어지는데 지나친 기부 열풍과 강제는 개인의 부를 추구할 욕구를 꺾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열심히 노력해 쌓은 부를 포기하는 것이 의무의 굴레에 포함되어야 하냐는 것..내 돈을 마음대로 쓰지도 못하고 물론 사회복지를 강화할만한 세금과 같은 기본적인 의무조차 지키지 않으려 하는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결론적으로는 국민의 기본적 의무인 세금만 제대로 낸다면 사회적 기부를 하던 말던 개인의 자유의 범주에 들어가며, 사회적 기부를 해 모범을 보인 사람에게는 존경과 대우를 해주는게 당연하지만 기부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무조건 적인 비난이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5 아머드 코어 4아머드 코어 포 앤서에서 등장하는 로젠탈 소속 넥스트

5.1 개요

로젠탈의 소수 정예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산물. 로젠탈 내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전력이다.

실제로는 AC4에서는 오메르 사이언스 소속 링크스인 미도 아우리엘과 같이 등장하여 미션에서 주인공을 도와 싸우는데, 처참하게 밀린다. 하드 모드에서는 오자마자 발려있는 상태.

ACfA에서는 아르테리아 카펄스 방어와 아르테리아 카펄스 공격 미션에서 등장하는데 꽤나 잘 싸워준다.[22] 실제로 오더 매치에서 붙어보면 중거리에서 라이플로 견제하다가 일정거리로 좁히면 날개 레이저포[23]와 라이플 연동사격/양 날개 레이저 사격을 하고 지근거리에선 블레이드로 공격하는 패턴을 보여준다.

5.2 여담

디자인은 멋있으나, 플레이어가 실전에서 사용하기에는 EN이 너무 후달린다는 단점이 있다. 제너레이터를 바꾸거나, EN 계열 튠을 해서 사용하는 게 좋다.

ACfA에서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어셈을 그대로 하면 중량초과(…)라는 안습함을 보인다. 그렇기에 미션에서 등장하면 한 쪽 날개를 떼고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나마 다행히도 1.30 이후로는 날개포가 강화되어 그럭저럭 할 만한 정도… 지만 역시 쓰긴 어렵다. 날개포를 믿고 기동력을 포기하느냐, 날개포를 버리고 기동력을 얻느냐의 문제.

참고로 초기 AC4 공개 영상 때 고속으로 움직이면서 노멀들을 농락하다가 마지막에 날개 레이저를 쏘는 넥스트가 지금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그때의 성능을 보고서는 수많은 팬들이 충격과 공포에 빠졌었지만, 현재에 와서는 좀 시궁창…

링크스는 AC4에서는 레온하르트, ACfA에서는 제럴드 젠들린. ACfA에서 레온하르트는 일선에서 물러나 넥스트를 설계하는 아키텍트로 활동하고 있다. 링크스가 바뀜에 따라 포 엔서 버전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라이플이 다른 것으로 바뀐 상태이며, 포 엔서 버전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제작자는 레온하르트이다.

날개포의 간지와 포스와 위력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파괴천사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2009년 8월 코토부키야에서 프라모델로 5200엔에 발매되었다. 근데 하얀색과 금색이 어우러진 날개포가 하얀색 통짜 사출로 나온 것에 많은 이들이 분개하고 있다.
  1. 오블리제가 아니다. 하지만 편의상 노블레스 오블리제로 검색해도 들어올 수 있다.
  2. 높으신 분들이 세상을 걱정한다는 뜻.
  3. 왼쪽부터 차례대로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Eustache de St Pierre), 장 데르(Jean d'Aire), 피에르 드 위쌍(Pierre de Wissant)과 자끄 드 위쌍(Jacques de Wissant) 형제, 쟝 드 피엥스(Jean de Fiennes), 앙드리에 당드르(Andrieus D'Andres)
  4. 일반적인 위인상이 영웅적인 모습으로 미화되어 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인물들의 우울, 공포, 내적 갈등같은 심리 묘사가 세밀하여 수작으로 평가된다.
  5. 다만 칼레의 시민 이야기의 유래는 중세 극작가 Jean Froissart 의 글에 의한 것이며, 역사적 사료 중에서 칼레의 여섯 시민에 대한 언급이 없는 등 일화 자체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 창작이라 보는게 정설이다.
  6. 상대적으로 안전한 직책으로 배정받았다고 까는 사람도 있지만, 전시에 전방이라면 장교던 보병이던 다 위험하다.
  7. 영국은 사관학교의 체제가 정규 4년제 대학인 한국이나 미국의 사관학교와는 좀 다르다. 최소 요구 학력이 고졸이며, 교육기간은 10개월이다. 즉 생도 과정이 아니라 후보생 과정이며, 그렇다고 학사 학위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입학조건에서 필수는 아니지만 대개의 생도들이 정규 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에 들어오고, 복무 중인 현역병들도 꽤 들어온다.
  8. 불륜으로 까이기는 하지만 찰스도 군대도 갔다오고 자선활동도 활발히 하는등 왕족으로서의 다른 면모는 흠잡을 데가 없다.
  9. 당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승인을 요청하는 마거릿 대처 총리를 굉장히 불편하게 생각하며 승인을 했다고 한다.
  10. 사실 영국 언론들은 왕자의 안전이나 부대원들을 위해서 이를 보도하지 않았지만 미국 언론에서 보도해버렸다고. 염병할 양키 놈들. 그놈들은 우리 편인 줄 알았는데!
  11. 하지만 실제 보직은 영국군 명예사단장이었다.
  12. 일례로는 흥선대원군이 양반들에게 세금을 걷기 위해서 어떤 반발을 감수했는지 생각해 보면 된다.
  13. 그런데 그 마저도 부담하기 싫어서 나라 말아먹은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쨌든 대단한 것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이라고 폄하할 만한 것은 아니다.
  14. 미국도 사람 사는 곳이다. 게이츠나 이 칭송받는 이유는,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게 당연한 거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이유도 없겠지.
  15. 경비병에게 "날 쏴라"라고 소리치고 경비병이 멈추라고 하면서 총 겨누고 있는데 전기철조망에 걸어가서 전기철조망을 잡은 상황에서 경비병이 총을 쏘았다. 사인도 쇼크사.
  16. 제임스 밴 플리트의 아들은 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인민군의 대공포에 격추돼서 전사했다. 마오안잉은 그 중요성 때문에 비교적 후방인 항미원조군 총 사령관인 팽덕희의 부관으로 사령부에서 근무했다. 그러나... 북한의 최후방까지도 밤낮으로 미공군이 골고루 조밀하게 폭격을 한다. 언제나처럼 팽덕희와 부하들은 공습경보를 받고 뒷산에 있는 굴로 들어갔는데 마오안잉이 나두고 온것이 있다며 사령부로 돌아갔다가 시밤쾅~. 밴플리트의 아들의 사망 일화는 한국군 장성들의 일대기에서 가끔 볼수 있는데 그야말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밴플리트는 의연하게 다음날 위험이 따르는 수색작전은 중지해달라고 한다. 그에반해 당사자인 남한 지도부의 아들들은 그런거 없다. 부산 앞바다에 어선 수백척을 빌려서 항상 그안에 타고 있으면서 수시로 댄스 파티를 벌였다고 한다. 이승만의 심복이자 정치깡패 김두환이 그꼴보고 열받아 어선에 쳐들어가서 자신의 이승만 친위 조직의 활동비를 달라고 협박했다고 한다.
  17. 사실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엘리트 장교였지만 현직 대통령이자 2차대전 원수의 아들이 잡히면 골치 아파지니까 군 상층부에서 일부러 후방으로만 돌렸다고 한다. 이건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상층부에서 강제한 것이므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후방에서 일하는 것도 의무를 다하는 일이기도 하고.
  18. 참고로 성(聖)스러운이 아닌 성(性)스러운으로 읽으면 된다. 다만 국민들의 변함없는 지지는 사실이다.국민들이 대인배….
  19. 남편은 나치스 의혹에, 큰 며느리는 아르헨티나 독재정권 관료의 딸.
  20. 영국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21. 중도보수나 기독교 보수 세력의 구호로서 흔히 쓰인다. 한국에서도 새누리당 계열의 인사들이들이 자주 내세우는 주장이다.
  22. 어디까지나 FA의 시스템상의 이점을 꽤 많이 받은 편
  23. 놀랍게도 이걸 사용한다! 대다수 유저들은 이걸 스태빌라이저 취급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