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 비트

Katarina Witt

1375797477172.cached.jpg

395px-Bundesarchiv_Bild_183-1988-0227-128%2C_Calgary%2C_Olympiade%2C_Kati_Witt.jpg

1988년 동계올림픽에서 연기한 카르멘.

26007338,7320634,highRes,maxh,480,maxw,480,71-22312982neu.jpg

2014년의 모습.

1 개요

동독피겨 스케이트 선수. 독일의 방송인.

전설적인 피겨 스케이팅 선수 중 한 명으로, 미셸 콴, 김연아 등으로 이어지는 피겨 여제 계보의 원조.

2 상세

1965년 12월 3일생으로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 싱글에서 2회 연속 금메달(1984 사라예보, 1988 캘거리)을 수상한 선수이다.[1] 세계선수권에선 4회 우승을 기록한 여자 피겨 스케이팅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손꼽히는 선수. 뛰어난 예술성을 가진 선수였으며 기술력도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다만 점프의 파워풀함은 동시대 선수였던 데비 토머스를 더 쳐준다.

브룩 실즈를 닮은 빼어난 미모와 아직까지도 스포츠 역사상 가장 섹시한 여자 운동선수 랭킹에서 지속적으로 상위권에 들 만큼 뛰어난 몸매를 가졌다. 선수 시절 키는 167cm로 요즘 기준으로 보면 피겨 스케이터로서는 조금 큰 키이다.

세계선수권에선 1984년과 1985년에 우승해 2연패를 했고 87년~88년 다시 2연패했다. 86년에만 미국흑인 스케이터 데비 토머스에게 뒤져 은메달. 1984년 사라예보 올림픽 우승 직후부터 1988년까지는 그야말로 비트의 원톱 독주 체제였다.

1985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한 후 대한민국을 방문해서 서울 태릉 아이스링크와 대구 스포츠센터 아이스링크에서 시범경기를 하기도 했다. 세계선수권에서 입상한 다른 나라 선수들과 함께 내한했는데, 동독 선수 외에 소련체코슬로바키아 선수들도 포함되어 냉전이 끝나기 전이던 시절 공산권 선수들 여러 명이 한꺼번에 한국을 방문하여 경기를 한 최초의 사례였기 때문에 당시 피겨 스케이팅이 비인기 종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의 방한이 상당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2007년 이후 김연아가 한국에서 받는 관심과 찬사를 1980년대 후반 당시 공산권 국가들에서 한 몸에 받는 빙상의 여제였다. 동독은 물론 공산권 국가들의 동계스포츠의 자존심이자 간판이었으며 "공산권에서 배출한 가장 자본주의적 상품" 이란 평까지 따라다녔을 정도로 서구권에서도 인기가 많았던 선수였다. 그녀가 활동했던 냉전 시대에 스포츠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양 진영의 대리전이나 마찬가지였고,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국가들의 수많은 선수들이 그녀의 아성에 도전했으나 선수로서의 역량은 물론 스타성으로도 당대에 그녀를 뛰어넘는 피겨 싱글 여자 선수는 없었다. 84년부터 88년까지 비트를 단 한 번이나마 이겼던 선수는 미국의 흑인 피겨 스케이터 데비 토머스가 유일했다. 이 둘은 1988년 캘거리 올림픽에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인 일명 카르멘 전쟁으로 여자 피겨 라이벌리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어린 시절 국가 차원에서 운영하는 스포츠 영재학교(Kinder- und Jugendsportschule, 일명 KJS)에 일찌감치 발탁되었고 동독의 체계적인 체육 프로그램으로 엘리트 선수로 길러졌다. 후에 독일이 통일된 직후 그녀가 8살 때부터 동독의 비밀경찰 슈타지에 의해 그녀의 모든 일상생활이 감시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공개되었다. 동독에서는 그녀가 서방 세계로 망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일상생활을 감시했는데 3천여 페이지에 달하는 그녀의 감시 기록에는 전 코치 유타 뮐러 그런데 이 분 여자다 와의 연인 관계는 물론이고 심지어 "성관계를 몇 시에 시작해서 몇 시에 끝났다."는 기록까지 있었다.[2]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동독을 나쁘고 끔찍한 나라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며, 자신이 운동선수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최대한의 지원을 해준 나라이며 그에 맞춰 최상급 대우를 받으며 멋진 삶을 살 수 있게 해준 나라"라고 말했다.

1988년 동계 올림픽과 세계 선수권을 제패한 이후, 은퇴를 하고 당시 동독 국적이었는데도 드물게 미국으로 건너가서 프로 무대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면서 활동의 자유를 얻었고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3년/94년 시즌 복귀를 선언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예전만큼의 기량은 선보이지 못했고 유럽 선수권에서 8위를 했고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는 7위를 했다. 그러나 비트는 이 대회를 통해 오히려 더 큰 인기를 끌었는데 "나이가 들어도 선수로 뛸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 후로도 아이스쇼 활동을 하고 영화에도 출연하기도 했으며, 방송 진행도 하며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리고 98년 플레이보이에서 누드 화보가 실렸을 때는[3] 메릴린 먼로 화보가 실린 창간호 이후로 두 번째로 전량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다. 오오오!!!

은퇴 후에도 아이스 쇼에서 최고의 인기 스타였고, 프로 활동을 2008년까지 했을 정도로 피겨 스케이팅의 대중화에 관심을 가지고 가장 크게 기여한 선수 중 하나이다.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하는 2011년 동계올림픽 유치전 당시, 경쟁 도시 뮌헨의 유치위원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평창 유치위원회에서 활동한 김연아와 함께 구 여왕과 현 여왕의 대결로 해외 언론에서 자주 거론되어서 피겨에 문외한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이 때 꽤나 이름이 알려졌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김연아가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금메달을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게 내주자 독일 국영방송 ARD와의 인터뷰에서 "완전히 열받았다. 소트니코바를 비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화가 난다." 라고 말하며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너무 짜증이 난다. 이럴 수는 없다고, 이건 토론이 필요한 문제다." 라면서 크게 분노한 모습을 보였다.[4] 이후 캐나다 CBC 방송에서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이 경기의 판정은 비트 뿐만 아니라 많은 전직 피겨선수들도 의문을 표하기는 했었으나 특히 비트의 이러한 발언은 그녀의 피겨스케이팅 철학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릴레함메르 올림픽 출전 이후에 했던 인터뷰를 보면 피겨스케이팅은 빙상예술이지 도약경쟁이 아니라고 했던 발언이 그 예이다. 밴쿠버 올림픽 당시에 캐나다 언론과 했던 인터뷰에서도 예상 우승자로 김연아를 지목하면서 김연아의 연기력과 예술성을 높게 평가한 바 있다.[5]

독일의 테니스 선수인 보리스 베커 등 현역 시절부터[6] 은퇴 이후까지 숱한 염문설이 있었고 구애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으나 2014년 현재까지 미혼이다. 아무래도 구 동독 시절부터 사생활까지 감시당했던 경험도 있거니와, 현역 시절부터 결혼에 대한 생각이 분명히 없다고 밝힐 정도로 독립심이 강한 성격인 탓도 있다. 하도 결혼을 안 해서 독일인들도 제발 결혼 좀 하라고(...) 할 정도.

참고로 미국 제45대 대선후보 경선에서 어그로이슈를 도맡고 있는 모 부동산 재벌의 데이트 신청을 최초로 거절한 여성이라고 한다.
  1. 그렇다고 올림픽 피겨 역사상 가장 대단한 기록이냐면 그건 아니다. 3회 연속 금메달인 소냐 헤니가 있기 때문에... 저 분은 세계선수권 10회, 유럽선수권 6회 연속 우승에 최초로 피겨 경기복에 미니스커트를 도입한 선수이자 발레의 기술을 피겨에 접목하는 등 현대 피겨 스케이팅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과 같은 존재라 어떤 선수건 이분과의 비교는 논외로 친다.
  2. 첨언하자면, 성관계 기록에 대해서는 그녀 뿐만이 아니라 당시 슈타지의 감시하에 있던 동독인이었다면 모두가 피할 수 없었다(...).
  3. 구글링해보면 누드 사진도 뜬다(...). 다만 당시 100만달러의 거금을 받고 찍었다보니 아무래도 '스포츠마저 성의 상품화에 오염된 것 아니냐?' 라는 논란과 비판의 목소리도 있긴 했다. 본인은 나중에 인터뷰에서 "빙판위에서 귀엽고 공주같은 고정된 이미지를 도발적인 이미지로 바꾸고 싶었다." 라고 밝혔다.
  4. 심지어 진정하라는 진행자의 말에도 "진정을 할 수가 없어요!" 라면서 강력한 분노를 표시했다.
  5. 초창기 올림픽 3연패를 달성한 선구자격인 소냐 헤니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2연속 올림픽 챔피언이라는 기록을 본인만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치에서 제대로 된 판정이 나왔다면 자신과 같은 2연속 올림픽 우승 기록을 가지게 되는 김연아를 대기록 독점 욕심 없이 순수하게 실력만으로 고평가 하고 칭찬하고 불의에 화까지 내는 모습으로 보아 아무래도 대인배. 게다가 본문에 상기한 듯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전 때도 각각 뮌헨과 평창의 홍보를 맡았다가 평창에 진 기억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독일인
  6. 88년 캘거리 올림픽 당시 이탈리아 스키 선수 알베르토 톰바가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던 일이 유명하다. 비트가 금메달을 못 따면 자기 금메달을 주겠다고 말했을 정도(...). 역시 이탈리아 남자 당연히 비트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정작 92년 알베르빌 올림픽 기간에는 둘이 데이트했다. 뭥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