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포이저 성역 회전

1 개요

은하영웅전설의 전투. 립슈타트 전역을 구성하는 전투 중 하나로 빌헬름 폰 리텐하임 후작귀족연합군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가 지휘하는 황제군 별동대가 가르미슈 요새가 있는 키포이저 성역에서 맞붙은 전투이다.

2 배경

립슈타트 동맹 소속의 문벌대귀족들이 수도성 오딘을 탈출하면서 내전이 시작된 이후로 황제군은 은하제국군 최고사령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원수가 이끄는 본대와 우주함대 부사령장관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상급대장이 이끄는 별동대로 분리되어 있었다. 라인하르트의 본대가 립슈타트 동맹 주력을 물고 늘어지는 역할이었다면, 키르히아이스의 별동대는 변경성역을 돌면서 립슈타트 동맹을 견제하고 립슈타트 동맹에 동조하는 자들을 제압하여 질서를 확보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키르히아이스는 60회 이상의 전투를 벌여 모조리 승리해가면서 불패의 제독으로서 명성을 쌓아가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립슈타트 동맹의 부맹주 빌헬름 폰 리텐하임 후작은 맹주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대판 싸운 다음 자신을 따르는 귀족들을 중심으로 구성한 5만 척 가량의 병력을 거느리고 키르히아이스 함대 토벌에 나섰다. 대외적으로는 부맹주가 변경성역을 탈환하기 위해 직접 나선 셈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브라운슈바이크와 리텐하임이 과거에 있었던 제위계승 경쟁으로 인한 대립 문제가 숨겨져 있었다. 립슈타트 동맹의 성립 자체가 단순히 에르빈 요제프 2세의 즉위로 브라운슈바이크와 리텐하임 두 사람 모두 제위계승 경쟁에서 동시에 낙오하자 성질 뻗힌 두 사람이 급하게 동맹을 맺은 것이어서 동맹이라고는 해도 사실상 감정적으로 맺은 야합이라 결속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리텐하임 후작은 동맹이 결성된 후에도 간간히 브라운슈바이크를 견제하는 모습[1]을 보였고, 브라운슈바이크는 연거푸 라인하르트 직속 부하들에게 물만 먹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리텐하임은 키르히아이스 함대 토벌이란 성과를 보여주어 립슈타트 동맹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 했다.

정보보안 따윈 엿 바꿔먹은 귀족들답게 리텐하임의 출격 소식은 곧바로 라인하르트의 귀로 들어갔고, 라인하르트는 즉시 키르히아이스에게 리텐하임을 추적하여 토벌할 것을 명령했다. 명령을 받은 키르히아이스는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코르넬리아스 루츠를 소집하여 이 사실을 공표하고 키포이저 성역의 가르미슈 요새에서 결전을 벌일 것임을 통보했다. 그리고 키르히아이스는 800척의 고속순양함으로 구성된 기동부대를 이끌고, 남은 병력은 반으로 나눠 루츠가 좌익, 바렌이 우익을 담당하며 본대의 일격이탈전술과 좌우익 부대의 시차협격전술로 적을 격파한다는 작전을 내놓았다. 두 부장은 사령관이 고작 800척을 지휘한다는 것에 놀라며 우려를 표시했지만, 키르히아이스는 병력배치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리텐하임을 상대로는 800척이면 충분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다.

한편 가르미슈 요새까지 진출한 리텐하임은 키르히아이스 함대의 접근 소식을 듣고 "같은 애송이면 금발과 붙어야지 붉은 머리 따위는 체면이 안 선다"면서 큰소리를 뻥뻥 쳐대고 있었다.

3 전투

전투는 리텐하임 함대의 선공으로 시작됐지만 유효사거리에 들어오기도 전에 쏜 탓에 포화는 에너지 중화자장에 걸려 아무 의미 없는 포격이 되고 말았다. 이에 루츠가 이끄는 좌익부대가 포문을 열고 공격을 시작했고, 바렌 함대의 그늘에 숨어 타이밍을 재고 있던 키르히아이스는 리텐하임 함대가 루츠 함대를 향해 무질서한 돌격을 시작하자 그늘에서 튀어나와 리텐하임 함대의 옆구리를 찔렀다. 갑작스런 기습에 당황한 리텐하임 함대는 방향을 선회하여 키르히아이스의 함대를 공격하려 하였으나 그 순간 바렌 함대가 포문을 열어 공격을 시작했다.

세 방향에서 공격이 시작되자 리텐하임 함대는 어느 적을 상대해야 될지 판단을 내리지 못한 채 우왕자왕하기 시작했고, 그 사이 키르히아이스가 이끄는 고속기동부대는 리텐하임 함대 중앙부를 휘젓고 다녔다. 리텐하임의 부장, 참모들은 진영 내부로 침입한 키르히아이스를 포위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키르히아이스의 고속기동부대가 워낙 빠르게 기동하고 있어 포위하기는커녕 더 큰 피해만 입고 있었고 이로 인해 부대의 진영이 흐트러지면서 되려 혼란에 빠졌다. 리텐하임 본대에서 시작된 혼란은 곧 함대 전체로 파급되기 시작했는데 그 절정에 달한 순간 바렌과 루츠가 돌진을 시작했다. 당시 전황은 아주 가관이었는데, 키르히아이스의 기함 바르바로사가 리텐하임의 기함 오스트마르크 바로 코앞에서 날뛰고 있을 정도였다. 리텐하임의 위치가 발견되자 키르히아이스는 "전란의 원흉을 잡아라!"며 전 함대를 독려했고 사기 충천한 키르히아이스 휘하의 병력은 리텐하임을 거세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한편 느긋하게 전황을 바라보고 있던 리텐하임은 갑작스런 전황 변화에 당황하고 있었고, 곧 적이 코앞까지 들이닥치자 공포에 질려 퇴각을 지시했다. 이에 리텐하임의 기함은 즉시 방향을 바꿔 가르미슈 요새로 도망가기 시작했고 휘하의 전투병력도 부맹주를 따라 패주하기 시작했는데 전방에 그들의 진로를 가로막는 부대가 나타났다. 리텐하임은 자신의 진로를 방해하는 저 부대를 공격하라고 참모들에게 명령했는데 문제는 그 부대가 바로 리텐하임 함대 휘하의 수송부대였다는 것이다. 깜짝 놀란 참모들이 "저건 아군입니다!"라고 외치며 거듭 명령 철회를 요구했지만, 리텐하임은 "저게 아군이라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을 리 없고, 설령 아군이라도 방해되므로 닥치고 포격하라!"는 정신 나간 명령을 내렸다.

이 무렵 전방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던 수송부대는 우군의 패주를 보고받고 방향선회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포격을 당하는 바람에 크게 당황하면서 서둘렀다. 하지만 곧 그것이 우군의 의도적인 포격이란 사실을 알고는 격노했다. 결국 리텐하임의 팀킬은 장병들의 사기를 바닥까지 끌어내렸으며, 출격한 5만 척 가운데 리텐하임을 따라 가르미슈 요새로 퇴각한 병력은 3천 척에 불과했다. 1만 8천 척은 격침됐으며, 5천 척은 전장에서 이탈한 후 종적을 감췄고, 나머지는 모두 키르히아이스 함대에 투항했다.
투항자 중에는 수송선 뒤렌8호[2]의 부함장이었다가 아군의 팀킬로 팔을 잃은 콘라트 린저 대위가 있었으며, 키르히아이스와 대면한 자리에서 리텐하임의 만행을 동료들에게 증언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저와 똑같은 생각을 가진 전우가 요새 안에 다섯 사람만 더 있다면 리텐하임 후작의 목은 머지않아 몸통과 이별을 고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고, 키르히아이스는 손해볼 것이 없었기에 협조를 약속하였다.

4 리텐하임의 최후

키르히아이스에게 패퇴한 이후 리텐하임은 가르미슈 요새로 후퇴해 공포와 패배감,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수치심, 브라운슈바이크 앞에서 큰소리 뻥뻥 치고 나왔는데 일이 이 지경이 된 것에 대한 자괴감으로 요새의 고급 살롱에 처박혀 술만 축내고 있었다. 그 무렵 키르히아이스 함대의 추격을 피해 한 척의 함선이 입항했고 하반신이 날아간 파울루스 일등병의 시신을 업고 온 라우디츠 중령이 내리면서 리텐하임 후작은 어딨느냐고 소리쳤다. 모두들 그 기세에 놀라 섣불리 손대지 못했고, 리텐하임이 있는 곳으로 간 라우디츠는 리텐하임의 면담을 요구했다. 경비병들은 라우디츠의 살기와 파울루스 일병의 끔찍한 시체 때문에 그를 제지하지 못했다.

리텐하임에게 다가간 라우디츠는 부하의 시신에게 "파울루스 일등병! 네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지켜줘야 했던 리텐하임 후작은 바로 이분이시다. 충성에 대한 포상으로 감사의 키스를 해주실 거다. 고맙게 알아라."란 말를 한 뒤 부하의 시신을 리텐하임에게 내던졌고, 술에 쩔어 잠시 상황 파악을 못하던 리텐하임은 자신이 당한 봉변을 파악하고는 시신을 밀어내치며 하우디츠를 사살하라고 명령하였다. 하지만 라우디츠는 후작 몰래 제플입자 발생장치를 작동시키고 있었고, 중령을 사살한 블래스터가 제플입자를 인화시키면서 사령실은 물론 요새의 1/4이 폭발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이후 묘사를 보면 리텐하임 후작은 시체도 남지 않았고 그대로 우주의 먼지가 되어버린 듯하다. 을지서적판은 이 부분을 통째로 삭제하여 후작이 어찌 죽었는지 모르게 만들었다. 이래놓고 나중에 후작이 우주의 먼지가 됐다는 서술이 나온다.

폭발 직후 키르히아이스군이 진주하자 요새의 병사들은 곧바로 투항해 버렸고, 장교들도 잠시 저항하다가 곧 투항함으로써 리텐하임군은 완전히 패배했다. 애니에서는 일반 병사들은 키르히아이스군이 몰려오자마자 총기를 내버리고 항복하는데 장교들이 열받은 얼굴로 싸우라고 지시하지만 곧 분위기를 보고 그들도 벙찐 얼굴로 총기를 내버리고 항복한다. 귀족연합군은 이로서 전병력의 4/3을 잃었다. 이후 브라운슈바이크는 자신의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가 죽어 없어지자 토가 나올 정도로 거들먹거리면서 최고권력자 행세를 했다. 자기가 곧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5 그 외 이야기

키르히아이스가 변경에서 활동을 한 이유는 "변경의 립슈타트 동맹 지지 세력을 축출하기 위해서"라는 정도로만 서술되어 있다.
  1.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상급대장이 실전 총사령관으로 초빙된 것도 브라운슈바이크가 군공을 세우면 리텐하임 자신의 영향력이 감소하기 때문에 강력히 주장한 것이었다.
  2. 을지서적판의 번역명은 류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