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카마츠 성(사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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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松城(1588? ~ 1869년). 현재는 타카마츠 성터(高松城跡)와 타마모 공원(玉藻公園)이라는 명칭이 널리 쓰이고 있다. 일본 100명성 중 하나.

1 개요

카가와타카마츠 시에 남아 있는 사누키노쿠니. 윤곽식(輪郭式) 구조의 평성(平城)이지만, 바다 근처에 위치하며 해자를 바닷물로 채운 독특한 형식을 가지고 있기에 보통 수성(水城), 혹은 해성(海城)으로 불린다.

1588년, 이코마 치카마사에 의해 축성이 시작되었으며 완공되자 사누키 통치의 거점으로 사용되었다. 이코마 가문이 대대로 성주를 맡아 타카마츠 번을 통치하였지만 1640년에 발생한 이코마 소동(生駒騒動)으로 인해 이코마 가문은 데와노쿠니로 전봉 당하게 되었고, 막부에 의해 사누키는 동서로 나뉘게 되었다. 그후 동쪽에는 미토계 마츠다이라(松平) 가문이 들어서게 되었고 이코마 가문이 그랬던 것처럼 타카마츠 성을 중심으로 타카마츠 번을 통치, 메이지 유신 때까지 그 영향력을 이어갔다.

2 역사

사누키노쿠니는 예로 부터 국가의 요소로 평가받아 고대에도 방어를 위한 성이 세워졌으며 중세가 되자 중앙의 무사들은 사누키를 거점으로 세력싸움을 진행하기까지 하였다. 무로마치 막부 시대에는 쇼군의 일족, 호소카와 가문이 지방 토호들과 함께 사누키를 통치했으나 센고쿠 시대가 되자 아와노쿠니를 지배하는 미요시 짓큐에게 토호들이 굴복, 포섭당하게 되면서 사누키는 미요시 가문의 아래로 들어가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자 미요시 가문의 사누키 지배력은 약해져 갔고 이 틈을 노려 토사노쿠니쵸소카베 모토치카가 사누키를 정복하면서 사누키의 대부분은 쵸소카베 가문의 아래로 들어가게 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하시바 히데요시시코쿠 정벌로 인해 최종적으로는 센고쿠 히데히사가 대부분의 사누키의 영토를 자신의 영지로 얻게 되었다.

근세의 바람이 불어오는 와중에 센고쿠 가문과 비토 가문은 큐슈에서의 실책으로 카이에키 당하고 이내 이코마 치카마사가 사누키로 들어오게 되었다. 1587년, 치카마사는 해로를 이용해 히케타 성으로 들어와 히데히사가 본성으로 이용한 쇼츠지 성(聖通寺城)[1]에 정착하였다. 그리고 1588년에 사누키 중앙에 위치하는 노하라(野原) 지역을 타카마츠로 개명한 뒤 축성을 개시한다.[2]

곧 성은 완성되었고[3] 치카마사는 타카마츠 성으로 본거를 옮겨 타카마츠 지역을 중심으로 사누키의 통치를 시작하였다.[4] 이후로 이코마 가문은 조선 정벌을 거쳐 세키가하라 전투오사카의 진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살아남아 에도 막부 시대에도 타카마츠 성을 중심으로 타카마츠 번을 통치해나갔다.

하지만 4대 번주 이코마 타카토시(生駒高俊)의 시대가 되자 이코마 가문은 내분으로 골머리를 앓았으며 결국 1640년에 카이에키라는 최악의 판결을 받아 타카토시는 현재의 아키타 현에 해당되는 우고노쿠니로 전봉되어 4대 54년에 해당하는 이코마 가문의 사누키 통치는 막을 내렸다. 이코마 가문의 꼴을 본 막부는 사누키의 영토를 동과 서로 나누었고 동 사누키에 마츠다이라 요리시게(松平頼重)를 번주로 임명하였다. 요리시게는 히타치노쿠니에서 사누키까지 건너와 1642년 8월 28일에 타카마츠 성에 입성하였으며 타카마츠 번은 존속되었다.

마츠다이라 가문은 1670년부터 타카마츠 성의 대대적인 개수를 감행했다. 텐슈를 수리하여 새로 만들었고, 히가시노마루(東ノ丸)와 키타노마루(北ノ丸)를 신설하여 성의 나와바리를 확장시켰다. 또한 츠키미 야구라(月見櫓)와 우시토라 야구라(艮櫓)를 신설하였으며 성의 정문인 오테몬을 이축하여 우리가 현재 보고있는 타카마츠 성터의 기본적인 나와바리를 완성시켰다.

개수된 타카마츠 성은 마츠다이라 가문이 11대 228년이라는 시간 동안 유용하게 사용하였다. 시간이 흘러 1869년, 일본에서는 판적봉환을 실시하며 번정은 중지되었고 번정의 중심이던 타카마츠 성은 1870년에 폐성되어 그 모습은 사라졌다.

메이지 시대가 되자 성터의 건축물들은 대부분 해체되었으며 성의 소토보리(外堀)는 메워져 시가지의 발전에 사용되었다. 바다와 맞닿아있던 북쪽의 나와바리에 간척을 진행하여 바다를 메웠고, 나카보리(中堀) 안쪽은 병부성이 이용하여 성터는 크게 훼손되었다. 남아 있던 텐슈는 1884년, 노후화를 이유로 해체되었다. 1890년에는 다시 마츠다이라 가문이 타카마츠 성터의 소유권을 갖게 되었으며 텐슈가 해체된 텐슈대(天守台)에 마츠다이라 타카마츠 번의 초대 번주를 기리는 타마모묘(玉藻廟)를 건설하였고 1914 ~ 17년에는 12대 당주 마츠다이라 요리나카(松平頼寿)가 성주의 거처인 고텐이 위치했던 산노마루에 히운카쿠(披雲閣, 피운각)를 세우고 토쿄에서 정원사를 불러 히운카쿠 정원을 만들었다.[5]

이후 전쟁이 끝나면서 1954년에 타카마츠 성터는 타카마츠 시의 소유가 되었고, 1955년에는 국가사터(国史跡)로 지정되어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3 유적과 관광

일단 타카마츠 성은 타카마츠 시의 중심이 되는 타카마츠역과 5분도 되지 않는 거리에 위치해 있기에 관광하기에 매우 편리한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텐슈는 남아있지 않지만 세 야구라가 현존하고 있고 바닷물로 채워진 넓은 해자로 둘러 싸여있기에 텐슈대에 오르면 타카마츠 성의 경치를 조금 높은 곳에서 즐길 수 있다.

보통 타카마츠 성에 입장할 때는 타카마츠역 쪽에 있는 서문으로 들어가게 된다. 티켓 값은 성인 200엔으로 상당히 저렴한 편, 입장하게 되면 니노마루에 위치한 것이 되며 직진하면 산노마루로 진입하며 성내를 둘러볼 수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텐슈가 있던 곳에 올라가 볼 수 있다.

오른쪽으로 향하면 사야바시(鞘橋)라는 다리가 나온다. 전쟁시에는 다리를 끊어 혼마루에서 최후의 저항을 할수 있도록 설계해 놓은 다리로, 현재의 다리는 옛날보다 길이가 길어진 형태라 한다. 텐슈대에는 텐슈 내부 지하 1층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설치된 계단을 타고 올라가 비록 낮은 높이지만 타카마츠 성 일대를 둘러볼 수 있다. 타마모묘는 2005년부터 시작된 이시가키 해체수리 당시 같이 해체되어 복원되지 않았기에 지금은 직접 볼 수 없다.

직진하여 성내로 들어가면 현존 유적인 츠키미 야구라와 미즈테고몬(水手御門), 와타리 야구라(渡櫓)를 볼수있다. 이 망루들은 건설된 당시부터 무너지지 않고 수리를 받아 현재까지 내려오는 현존 유적으로써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옛날엔 미즈테고몬을 나서면 바로 바다로 이어져 있었다고 하며, 번주들은 이 문을 통해 바다로 이동하거나 해상에서 유희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츠키미 야구라와 와타리 야구라는 평소엔 잠겨있지만 일요일에는 야구라 내부를 무료 개방하므로 타카마츠 성을 들릴 땐 가능한 일요일에 들리도록 하자. 야구라 안은 목조 건물이며 야구라에 대한 설명과 몇가지 자료들이 놓여져있다. 츠키미 야구라는 3중 3계의 구조를 가지고 있어 1, 2, 3층을 전부 돌아 다니는 것이 가능하며 3층에서는 히운카쿠의 전경과 타카마츠 항, 세토내해를 조금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볼 수 있다. 미즈테고몬 또한 일요일에는 문을 열어두기 때문에 한때 는 바다였던 육지에서 야구라를 바라보는 것이 가능하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히운카쿠가 나온다. 정원은 국가명승으로 지정되어 있고 히운카쿠는 회의, 다도회, 전시회 등의 회장으로 사용된다. 히운카쿠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 타카마츠 성의 자료를 전시해 놓은 진열관이 있으며, 더 남쪽으로 내려오면 바바(桜の馬場)와 우시토라 야구라를 볼수있다. 상기의 사진이 우시토라 야구라이며 현존 유적이자 중요문화재로 등록되어있다. 원래는 히가시노마루의 북동쪽에 있었지만 1965년 해체수리를 하며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북쪽에 있는 야구라들과 다르게 일반인은 출입이 불가능한 것 같으며 우시토라 야구라의 앞은 오테몬이 위치하고 있다.

이외에도 수성이라는 특수한 구조를 이용해 가이드와 함께 조각배를 타고 물길을 따라 해자를 돌아보는 것이 가능하며, 이곳 저곳 설치된 뽑기에서 100엔으로 물고기 사료를 뽑아 해자에 살고있는 도미같은 바다 물고기들에게 던져주는 것이 가능하다.

4 기타

타카마츠 성을 에히메 현의 이마바리 성, 오이타현의 나카츠 성과 합쳐 일본 3대 수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타카마츠 성이 지어지기 이전인 중세 시대에도 타카마츠 성이 언급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키오카 성(喜岡城)을 지칭하는 말이다. 원래 타카마츠는 키오카 성 주변의 지명이었으며 키오카 성 또한 타카마츠 성이라 불렸으나, 치카마사가 노하라 지역을 타카마츠로 이름을 바꾼 뒤에는 후루타카마츠(古高松)로 이름을 바꿔 타카마츠와 구분하였으며 현재까지도 후루타카마츠란 명칭이 쓰이고있다.

아쉽게도 설명문에는 일본어영어만이 쓰여 있다. 표지판에는 한국어가 표기되어 있지만 유적의 이름만이 조그맣게 쓰여 있기에 한국어만으론 유적에 대해서 많이 알아갈 수가 없다.

21세기 들어 텐슈의 복원을 진행하고 있다곤 하나 그 경과는 시원치 않아보인다. 텐슈가 기록된 사료가 부족한 것이 1차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으며 2016년이 되자 타카마츠 시가 텐슈와 관련된 자료에 현상금을 걸만큼 텐슈의 복원에 열성을 쏟고 있다.

성터의 동쪽에 카가와현립 박물관이 위치해있다.

보통 일본의 성 옆에 일본식 정원이 놓여져있는 경우가 많기에 리츠린 공원이 타카마츠 성 주위에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둘은 도보로 약 3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JR 시코쿠코토덴이 두 곳을 전부 통행하므로 편하게 이동하고 싶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하자.
  1. 佐藤竜馬에 의해 히데히사가 쇼츠지 성이 아닌 자신이 새로 개수한 히라야마 성(平山城)을 본거로 이용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치카마사 또한 쇼츠지 성이 아닌 히라야마 성에 입성하였으며 사누키 입부 당시부터 히라야마 성을 본거로 이용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2. 치카마사의 축성에 도움을 준 다이묘가 존재하는데 토도 타카토라, 쿠로다 요시타카, 호소카와 타다오키 중 한 명이라고 전해진다.
  3. 역시 佐藤竜馬에 의해 1590년 완성 설은 근거조차 발견되지 않은 낭설이라고 판명되었다.
  4. 치카마사는 좌우로 넓은 사누키를 통치하기 위해 히케타 성과 마루가메 성을 개수한 다음 자신의 아들을 성주로 임명하여 동, 서 사누키의 통치 거점으로 사용하였다. 또한 최근엔 아마타키 성(雨滝城)같은 중세 유력 호족의 본성에도 이코마 가문의 개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5. 에도 시대에도 같은 지역에 현재보다 약 2배 정도 큰 히운카쿠가 있었으나 메이지 시대에 노후화를 이유로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