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의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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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의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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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명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는 기원전 3세기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섬에 세워진 거대한 건축물을 말하며 모든 등대의 원형으로 여겨진다. 참고로 파로스의 등대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파로스는 그리스어로 등대를 의미한다등대의 등대. 물론 어원은 이 건축물이다.

고대 알렉산드리아는 파로스 섬과 헵타스타디온이라고 불리던 1㎞정도의 제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곳의 동쪽 끝에 파로스 등대가 서 있었다. 이집트 해안선은 매우 단조로와서 항구를 찾는 것이 어려웠는데 이 파로스의 등대는 항해의 편의를 위해 건설된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3세기 경 알렉산드로스 대왕 휘하의 장군이자 헬레니즘-이집트 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첫 번째 통치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에 의해 건축되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자 프톨레마이오스는 스스로 이집트의 왕으로 즉위하여 자신을 소테르(구원자 라는 뜻)로 칭하고 알렉산드리아 항구 부근의 파로스 섬에 등대를 건축하도록 명령하였다. 이에 따라 등대의 건축이 시작되었으며 그의 아들인 프톨레마이오스 2세 대에 이르러 완공되었다. 정확한 완공 시기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원전 280년경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치세에 그리스인 소스트라투스라는 건축가에 의해 완공된 것으로 보인다.

2 구조

전설에 따르면 등대는 하얀색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높이가 약 130 미터에 달했으며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맨 아랫부분은 정사각형의 거대한 성채, 중간 부분은 팔각형, 맨 윗부부은 원형으로 만들어졌는데 맨 윗 부분에서 빛이 나와 불을 밝혔다고 하며, 맨 꼭대기에는 여신 이시스의 조각상이 있었다. 불빛이 나오는 부분에는 거다란 거울같은 반사경이 있어 밤에 빛을 반사했으며 내부에는 300개 이상의 방이 있어서 군대의 막사 역할도 했다. 이 등대의 불빛은 43km 밖에서도 보일 만큼 밝았다고 한다.

내부는 3층까지 경사로가 있어 나귀로 연료를 실어 옮겼다고 한다. 하지만 이설로 연료는 엘리베이터와 같은 장치가 있어 날랐다는 설도 있다.

3 파괴

796년 맨 꼭대기 부분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파괴되었다. 그 뒤로 등대는 팔각형의 중간 부분 위에 등댓불을 설치하여 사용되었다. 950년과 956년, 2회에 걸쳐서 팔각형 중간 부분의 외벽에 큰 금이 갔다. 그 금은 건물의 안정을 위협했기에 어쩔 수 없이 팔각형의 중간 부분을 철거해야 했고 이 부분의 해체로 등대의 높이는 22m가 줄어버렸다. 이 후 1100년에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 상당부분이 파괴되었는데, 이 때 반사경이 파괴되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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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모의 단계를 거쳤지만 등대 건물은 매우 견고하게 지어져서 1183년 아랍의 지리학자 이븐 주바일의 기록에도 등장한다. 그러나 1303년과 1323년의 대지진으로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14세기경 모로코 출신 여행자인 이븐 바투타는 알렉산드리아를 두번 방문했는데 1325년에는 등대의 램프에 올라 탑의 문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1349년 두번째 방문했을 때는 파로스 등대가 완전한 폐허로 변했다고 했다. 지진이 원수로다.

잔해가 일부 남아있었지만 1480년 이집트의 술탄 카이트베이가 그 잔해로 카이트베이 요새를 만들어 완전히 사라졌다. 카이트베이 요새 또한 19세기 영국의 공격으로 파괴되었다가 이집트 고대유물위원회에 의해 복원되어 현재 이 요새 안은 사원과 해군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1994년 알렉산드리아 바다 속에서 높이 4.55m 무게 12t에 이르는 여신상을 비롯한 등대 잔해 수백점이 발견되었다. 이후 2006년 이집트 고대유물위원회가 파로스 등대를 카이트베이 요새 부근에 다시 복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